< 226 한상 vs 그락카르 >
“혹시 가시려는 건 아니겠죠? 함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함정? 벤센이 그락카르를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그 단순무식한 오크가 함정 같은 걸 만들 리 없다. 내 적이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녀석이 그락카르다. 그 녀석이 만나자고 했으면 정말 만나자는 거다.
문제는 내가 그 녀석을 ‘만나고 싶어 하는가.’이다.
만나려는 이유는 뻔하다. 그 녀석이 오래 못 만났으니 이야기나 나누자고 만나고 할 리 없지 않나. 무조건 싸우자는 거다.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다. 그락카르 하나만 없애도 오크 전체 전력의 40~50%는 없애는 거다.
그 녀석 개인의 힘도 힘이지만 그 녀석만 없앨 수 있으면 ‘군주의 위엄’이 없는 오크들과 싸우게 된다. 인구수에서 이쪽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으니 ‘군주의 위엄’도 이쪽이 더 강한 효과가 적용되고 있지만 문제는 오크가 ‘군주의 위엄’과 정말 잘 맞는다는 거다.
우리는 무기가 총기지만 그쪽은 도끼니까. 직접 몸으로 싸우는 오크 쪽에 훨씬 ‘군주의 위엄’ 효율이 좋지. 아마도 ‘군주의 위엄’은 오크들의 전력을 1.5배~2배 가까이 올려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락카르를 죽이고 전쟁을 시작하면 우리쪽 승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교주님께서 그락카르라는 오크를 만나러 가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전 세계에 오크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군인 3,000만 명이 있습니다.”
3,000만 명. 많다. 하지만 적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적을 수가 없다. 전체 인구가 70억이긴 하지만 싸울 수 있는 군인은 많아봐야 3,000만~4,000만. 제대로 훈련받고 제대로 무기를 지급받은 군인만 따지면 2,000만도 안 될 거다.
그에 반해 오크는 도끼만 쥐어주면 전사다. 전체 인구가 1억이면 그 중 5,000만이 전사일 거다. 그러니 실제 싸울 수 있는 자만 따졌을 때 숫자로는 이미 오크 쪽이 앞서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앞으로 더 벌어질 테지.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우리 쪽의 전력이 아직은 앞서 있다. 이번에 오크 부락을 공격할 때 55명의 성전사들은 자신들의 특수능력 없이 무기의 위력에만 의지해서 싸웠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우리 비텔교는 개발한 기술을 전부 공개하니 성전사와 비슷한 무기를 각국의 군인들도 장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성전사가 사용하는 무기는 반동이 심하고 제작비용이 비싸서 똑같은 무기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약간 다운그래이드 한 무기 정도는 쓰고 있겠지.
그것만 해도 일반 오크 전사와의 싸움은 이쪽이 압도할 거다.
문제는 그 무기가 통하지 않는 강자와의 싸움이다. 그런 강자와는 아무래도 성전사가 아니면 싸우기 힘들다.
각국의 군대에도 비텔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 있긴 하지만 내 축복까지 받은 자들은 아무래도 많지 않으니까. 내게 축복받으면 단번에 3번의 추가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 차이는 크다.
3번 연속으로 축복을 내리면 꽤 많은 교단 기여 포인트가 소모된다. 능력을 사용하는데 300만 포인트, 거기에 추가로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몸에 축복을 우겨넣기 위해 쓰이는 추가 소모 포인트가 약 500만~1,000만 정도 소모된다.
물론 포인트 소모는 신경 쓰지 않는다. 70억 신도에게서 받아들이는 포인트는 거의 무한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으니까. 기도를 많이 하게 교칙을 만들어놔서인지 쓰는 것보다 쌓이는 게 더 빠를 정도다.
가끔은 자동 축복 기계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인간의 전력을 더 빠르게 올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하튼 내게 3번의 축복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이 성전사다. 그리고 그들 중 전투방식에 알맞은 특수능력을 얻은 일부만이 오크 강자와 싸울 수 있을 거다. 그런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교주님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10만 성전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10만 성전사. 꾸준히 성전사를 늘려 10만 명까지 늘렸다. 그 중 반 이상이 특수부대 출신이며 특수부대가 아닌 이들은 비텔님의 축복을 받아 성전사가 된 이들이다. 10만이지만 엄청난 전력이다.
그들 중 1,000명 정도가 내가 내린 것까지 합쳐 여섯 번의 축복을 받았고, 20,000명 정도가 다섯 번, 70,000명 정도가 네 번, 10,000명 정도가 세 번의 축복을 받은 정예 중의 정예다.
하지만 성전사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강자를 모두 합쳐도 강자의 수에서는 우리 쪽이 적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절대강자의 수에서는 우리 쪽이 확실하게 부족하다.
대족장, 대군주와 싸울 수 있는 강자가 이쪽에는 없으니까. 잘해봐야 해역이가 대족장, 대군주 중 가장 약한 자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정도일까?
물론 내가 함께 한다면 각자가 가진 비텔님의 기운에 내 기운을 더해줘서 전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그건 그락카르도 마찬가지다. ‘성난 자의 외침’이 있으니까.
절대 강자가 너무 부족하다.
물론 강자가 부족하다고는 해도 우리가 절대 지지는 않을 거다. 오크가 우리 세계로 쳐들어온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싸울 수 있을 테니까. 미사일, 전투기, 공격헬기 등 강력한 위력의 무기가 많고 그것으로 막기 힘든 적이 있다고 해도 환경이 망가지는 것만 각오한다면 핵폭탄으로 얼마든지 적을 물리칠 수 있다.
강자의 부족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것이다. 해역이도 착실히 강해지고 있으니 앞으로 두세 번만 더 비텔님의 축복을 받는다면 듀키츠까지는 힘들어도 그 바로 밑까지는 추격해갈 수 있을 거고, 성전사 사이에서도 대족장, 대군주급의 강자가 생겨날 거다.
문제는 우리가 강해지는 것보다 오크가 강해지는 속도가 더 빠를 거란 거다. 여섯 신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우리보다 더 많을 것이고, 가호덕분에 기본적으로 강력하고 가능성이 큰 육체를 타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번식력. 시간을 조금만 더 줘도 오크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지.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핵폭탄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오크가 강력해질지 모른다. 신의 가호란 한계가 없는 법이니 그락카르 급 강자가 수십 생겨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 날이 온다면 핵폭탄으로도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을 거다.
지금 상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쳐들어오면 물리칠 자신은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불리해지고 있고 쳐들어간다고 해서 적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거다. 그락카르만 죽인다면 쳐들어가서 이길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아질 테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고위성전사 100명과 함께 건너가 그락카르를 죽이고 오겠습니다.”
좋은 방법이다. 그락카르는 함정을 파지 않았겠지만 나는 함정을 팔 수 있다. 난 오크가 아닌 인간이니까. 인간은 원래 비열한 법 아니겠는가. 하지만 해역이와 고위성전사만 보내서는 답이 없다.
나만해도 해역이와 고위성전사가 아무리 몰려온다 해도 도망가거나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그락카르도 그럴 거다.
그러니 그락카르를 암살 할 거라면 내가 같이 가야한다. 내가 같이 가서 해역이와 고위성전사들의 기운을 강화한 상태로 빠르게 암살하고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불안하다. 그락카르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해졌으면 어떡하지? 오히려 내가 당해서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죽는다면 그락카르가 죽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인간들의 전력이 약화 될 것이다. 나 또한 ‘군주의 위엄’을 신도들에게 제공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수십만 명에게 축복을 내렸으니까.
내가 죽는 순간 그것들 전부 사라지는 거다. 어쩌면 이미 내린 축복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추가로 축복 받은 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다. 반면에 그락카르는 살아있을 테니 인간은 빠르게 약해지고 오크는 빠르게 강해질 거다.
... 사실 저런 거 전부 관심 없다. 내가 죽은 후의 세상 따위 어떻게 되든 뭔 상관인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게 가장 문제다.
죽기 싫다.
겨우 비텔교로 지구를 물들였다. 이 상태가 안정적으로 오랜 시간 지속되게 만들고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말이다. 내가 죽은 후에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오크를 물리치는 상황 같은 건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비텔님의 세상을 내 손으로 이룩해 내가 직접 비텔님께 바치고 싶다. 죽어 그분의 곁에 갔을 때 당당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중년에 이른 나는 정말 많은 걸 이뤘다. 세상의 정점에 올랐다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이것을 오래도록 살면서 누리고 싶다.
난 죽은 후 비텔님의 곁에 가게 될 것이다. 비텔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아마도 그 때가 되면 영원히 비텔님의 곁에 머물게 될 터. 그 전에 인간들의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누려보고 싶다.
너무 세속적인 희망일까? 하지만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 애초에 비텔님께서 말한 유일한 말씀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인 걸. 난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뿐이다.
살고 싶다. 그래서 그락카르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무섭다.
그락카르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학 인간이 나,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오크가 그락카르.
천적끼리 만나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다. 7년 전에 그락카르를 만날 수 있었다면 자신 있게 찾아갔을 텐데.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결정이 나지 않는다.
그락카르를 죽여야 하는데 나도 죽을 수 있다.
그락카르를 만나야 하는데 만나면 안 된다.
벤센, 해역이 등이 여러 의견을 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1시간을 더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해역아. 신무기의 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고위성전사가 몇이지?”
“47명입니다.”
“그 사람들 전부 불러 모으고 직급, 특화에 상관없이 가장 강력한 성전사 50명을 내일 정오까지 안악군에 모아.”
“알겠습니다.”
안악군은 이번에 차원문 실험이 성공한 곳이다.
“그리고 벤센은 차원문 책임자를 불러 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내가 결정할 수 없어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문을 열거다. 그리고 그 문에 이전과 똑같은 장소에 열린다면 그락카르를 만나러 갈 거다. 당연히 다른 장소에 열린다면 안 갈 거다.
모르겠다. 내가 차원문이 똑같은 장소에 열리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열리길 바라는 건지 말이다.
***
“전에 왔던 곳이군요.”
이렇게 됐다. 하늘은 내가 그락카르와 만나길 원하는 모양이다.
해역이, 97명의 고위성전사에게 내 힘을 덧 씌워 강화했다. 이 능력은 많은 기운을 대기중에 풀어놓기에 부락에 가까이 가서 하면 들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움직이는 동안 기운의 손실이 있더라도 지금 하는 게 낫다.
저번에 습격했던 부락이 있는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성전사들이 방호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저번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 대기 성분이 우리에게 해가 없다고 해도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지 모르니 방호복을 입어야 하지만 인류의 운명이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싸움을 하러 가는 이상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기로 했다.
중간에 방향을 바꿔 저번에 봐뒀던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저기에서 저번에 습격했던 부락까지는 시야가 탁 트여있다.
부락까지의 거리는 약 5,000m. 부락에서 보이지 않도록 산 반대편에 자리를 잡은 후 가지고 온 드론을 띄웠다. 일단 그락카르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약 1시간에 걸쳐 컨트롤 장치와 신호 증폭을 위한 장치, 전력 공급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100kg에 가까운 전술용 드론 10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드론만 해도 1톤이고 컨트롤, 신호 증폭 장치가 거의 3톤, 전력 공급 장치가 2톤이 넘었다.
저거 가지고 차원문 넘느라 상당히 힘들었다.
금세 부락의 모습이 컨트롤 장치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훨씬 많은 오크가 주둔하고 있었다.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나는 드론 때문에 천막에 있던 오크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곧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듀키츠, 오르히, 마수드...”
내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 할 때마다 성전사들이 이름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캅카스가, 미흐로크, 트자릭, 마렉. 그리고... 그락카르.”
있었다. 그락카르가 거기 있었다. 강렬한 붉은색 피부를 가진 거대한 오크. 화면을 통해 그를 본 것만으로도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런데 만나러 오라면서 대족장, 대군주를 저렇게 전부 모아두면 내가 무서워서 어떻게 만나러 가겠냐.
“7호 로스트! 4호 로스트! 9호 로스트!”
곧 빠르게 드론이 격추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바다.
“이동한다.”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부락이 보이는 쪽으로 이동했다. 나무가 우거져있기에 멀리서 보면 이쪽이 보이지 않지만 이쪽에서는 저쪽이 보인다. 저격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저격 준비.”
신무기를 든 47명의 고위성전사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신무기는 관통력을 극대화한 저격무기다. 화약을 쓰지 않고 자석인지 뭔지를 쓴다고 하는데 관통력이 기존 저격총의 5배 이상이고, 반동이 거의 없어 명중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최적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무게가 70kg에 가깝고 연사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70kg짜리 저격총은 일반인이 들고 다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축복 받은 군인이나, 성전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무기다. 그리고 제작비용이 엄청 비싸다. 그래서 우리 교단도 500정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
“표적 확인. 붉은 피부의 오크.”
곧 표적확인 완료했다는 통신이 들어왔다.
오늘 신무기를 들고 온 고위성전사는 전부 무기의 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나에 의해 능력이 강화된 47명의 고위성전사가 신무기로 일제히 하는 저격에 무방비로 당한다면 나조차도 위험하다.
“표적환인 완료. 준비됐습니다. 교주님.”
제발 이 공격에 죽어라. 오면서 몇 번을 빌었는지 모른다.
“준비.”
기이이이이이이이잉.
내 구령에 신무기가 작동을 시작했다. 이 소음또한 이 무기의 단점 중 하나다. 하지만 3000m나 떨어져 있으니 누가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락카르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괴물시끼. 들었구나.
“쏴!”
더 이상 목소리를 낮출 필요가 없었다.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크게 외쳤다.
토통.
47명이 쐈지만 한둘이 쏜 것처럼 동시에 괴음을 냈고 47개의 탄환은 정확히 그락카르를 향해 날아갔다.
“빌어먹을.”
아직 탄환이 그락카르에게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난 욕을 내뱉었다. 탄이 쏘아지는 순간 그락카르가 지은 미소를 봤으니까.
그락카르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퍼버버버버버벅.
탄환이 그의 피부에 막혀 튕겨 나왔다. 역시 저 괴물 놈에게 저격이 먹힐 리 없지.
“세상에...”
“말도 안 돼.”
누구든 저격해 죽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고위성전사들이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그래 놀랄만 하지. 탱크의 강철 장갑도 뚫고 들어가는 그들의 저격이 생명체의 얇은 피부도 못 뚫었으니까. 하지만 7발이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그락카르에게 저 정도라면 다른 대족장, 대군주에게는 잘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족장, 대군주에 대한 저격은 잘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빌어먹게도 현 상황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락카르의 외침이 천지를 흔들었다. 3,000m나 떨어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홀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뜻인지는 명확하다.
“모두 이 자리에 있도록.”
“안 됩니다! 교주님!”
해역이가 반대하며 나섰지만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저기 그락카르가 홀로 걸어오고 있다. 이미 저격이라는 꼼수를 쓴 상태인데 조금이라도 늦게 마중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 앞으로 나서려는 해역이를 기운으로 짓눌렀다.
“그걸 벗어날 수 있다면 와도 좋다.”
“큭. 크윽.”
기운의 양에 있어서는 그락카르도 아베네고도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겨우 일곱 번의 축복을 받은 해역이가 벗어날 수 있는 양이 절대 아니다. 해역이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내게 그런 것을 배려해줄 여유가 없다.
그락카르의 모습은 예전과는 꽤 달랐다. 예전엔 미로크 하나와 양 허벅지에 투척용 한손 도끼를 달고 있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거의 10개는 되는 무기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이 한손 도끼지만 미로크와 똑같이 생긴 도끼도 하나 보였다.
서로의 거리가 100m 정도 되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멈췄다.
“크흐..”
그락카르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가 좋다고 웃는...
후후후후후후훙!
그락카르가 갑자기 양손도끼를 집어던졌다. 빠르고 강하다. 대충 살펴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할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턱.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끼의 자루를 잡았다. 원래는 손만 움직여 잡아내려 했지만 생각보다 도끼에 담긴 힘이 상당해서 몸을 살짝 옆으로 피하며 두 손으로 잡았다. 손이 저릿했지만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크흐.. 한상이 맞구나.”
이 빌어먹을 오크 시끼가 몇 년을 나 봤음에도 얼굴 하나 못 알아본 거냐.
< 226 한상 vs 그락카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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