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한상 vs 그락카르 >
“너희들이 한상이냐.”
오크 대전사의 말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내가 한상이다.”
“너 말고 다른 한상은?”
“네가 알고 말하는 한상은 세상에 나 하나뿐일 거다.”
“하나뿐이라고? 그락카르가 우리의 적은 한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라고?”
그락카르가 날 적으로 인정했다니.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으면서 말이야. 기분이 나쁘진 않군.
“그락카르는 네가 있던 곳에서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지?”
“한상. 약해 보인다.”
“그락카르가 어디 있...”
“덩치 작다.”
“그락카...”
“피부도 약해 보인다. 툭 치면 죽을 거 같다.”
빌어먹을 오크 놈이. 내 말은 전혀 안 듣고 있다. 툭 치면 죽을 거 같다고? 주먹을 가볍게 휘둘렀다.
빡!“구우우억!”
오크 대전사의 배에 내 주먹이 박혔다. 거인이나 다름없는 오크 대전사의 배에 비하면 내 주먹 크기는 아이 주먹이나 다름없겠지만 결과는 아이 주먹과 다를 거다.
“구어억! 아프다.”
오크 대전사가 헛구역질을 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프겠지. 나도 힘 하면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는다. 그락카르 놈 빼고.
“닥치고 대답 좀 해라. 그락카르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냐.”
“아프다. 이렇게 아픈 주먹 처음 맞아본다.”
... 이 시끼가 정말. 소매를 걷어 올렸다.
***
“그러니까 북쪽에 있다고? 그쪽에 다른 종족 놈들이 숨어들어서?”
“그렇다.”
이종족이 완전 멸망한 건 아니군. 그런데도 여섯 신 놈들은 오크를 지원했다는 건가? 자기 신도들을 버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아베네고를 포기하지 않았던 비텔님의 품성과는 비교하는 게 죄송할 정도로 천박한 놈들이다.
오크 대전사를 바라봤다. 딱 처음 그락카르를 만났을 때, 단순무식의 끝을 달리던 때의 모습과 판박이다. 여섯 신의 가호가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을 거다. 알지도 못할 거고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억! 구어억! 그만 때려라!”
안 때려. 임마.
“각국에 연락해서 공개 실험을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어떤 실험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움직임 중 하나니까. 저 오크 대전사는 이제 모든 국가가 보는 중에 온갖 실험을 당하며 죽어갈 것이다. 오크의 현재 신체 상태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 조사 결과는 앞으로 벌어질 오크와의 전투에서 많은 도움이 되겠지.
다른 나라를 실험에 참여시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협조를 얻어야 하니까. 세상이 비텔교 일색이기는 하지만 각국은 독립되어 운영된다. 아직 비텔교의 혜택은 받으면서 다른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말이야.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비텔교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세상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대로 하려면 세계정복이라도 해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건 바보짓이지. 인간의 전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셈이니까.
여하튼 지구가 비텔교의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세상을 움직이려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공동 실험도 그런 약간의 수고 중 하나지.
집무실로 돌아와 오늘 성공한 차원문 연구도 공개하라고 알렸다. 이건 오크 대전사의 신체를 실험하는 것처럼 각국 정부에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에게 공개했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전력을 증강시킨다. 각국 정부만 몰래 실험하는 것은 세상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인간끼리 싸우는 것이라면 상대가 이용할 것을 대비해 숨겨야 하겠지만 차원문 기술을 오크가 알아가서 뭘 어떻게 할까.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 모든 사람이 누리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비텔교에서는 차원문만이 아니라 비텔교에서 개발하는 모든 기술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2년간 이루었던 지구의 발전 중 50% 이상은 비텔교가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스킬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합니다.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합니다.
전달할 내용을 직접 말해주세요.
“오늘 드디어 다른 세상에 가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했습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7,623,935,023이 차감되었습니다.
기여 포인트 7,623,935,023점이 소모되었다. 그만큼 지구의 인구수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인구수의 급격한 증가. 이것 또한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세상이 안정되어 있을 때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안정을 비텔교가 만들어냈지.
실험 결과의 발표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좋다. 광고나 뉴스 같은 것은 아무리 해도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비해 ‘비텔의 목소리’는 그 어떤 홍보 수단보다도 효과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전달하는 거니까.
이제 모든 사람이 오크와의 조우와 차원문 연구의 성공을 알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
그락카르는 북부로 돌아가지 않고 한상이 나타났던 그곳에서 한상을 기다렸다.
북부에서 일어나는 다른 종족과의 전쟁은 사실 전쟁이라기보다는 숨바꼭질에 더 가까웠다. 다른 종족은 최대한 숨어 있고, 오크는 그들을 찾아내어 죽이는 게 북부에서 벌어지는 일의 전부였으니까.
가끔 다른 종족을 찾아내도 학살만 일어나지 전투다운 전투는 거의 없었다. 강자라고 할만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강자를 찾아내는 오크들에 의해 이미 대부분 척살당한 상태기 때문이다. 남은 이들은 북부의 혹독한 환경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삶을 연장하고 있을 뿐 오크와 싸우려는 자들은 없었다.
그락카르도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강자에 대한 희망으로 북부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뿐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취미로 무기를 제작하거나 암컷들과 잠자리를 가졌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깡! 깡! 깡! 깡!
그락카르는 이번에 죽은 형제들의 무기를 모아 두들겼다. 그것들은 수준급에 오른 그락카르의 망치질에 의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상을 떠올렸다. 한상도 그가 쓰는 미로크와 똑같은 도끼를 썼다.
“선물을 하나 해야겠군.”
도끼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인정한 적에게 줄 것이기에 평범한 무기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죽은 형제들의 무기를 전부 한데 뭉친 것에 멈추지 않고, 그가 이제껏 만들어 몸에 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던 무기의 대부분을 그곳에 집어넣었다.
자신이 쓰는 미로크에 뒤지지 않는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싸움이 더욱 재미있어질 테니까. 미로크는 지난 시간동안 그락카르가 강화했기에 더욱 더 강해진 상태, 그락카르는 그런 미로크에 뒤지지 않는 무기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태어나 처음 본 상처였다. 그가 온 건가.”
그락카르가 한상의 도끼를 만들기 시작하고 3일이 지났을 무렵, 노르쓰 우르드가 도착했다. 그는 이미 죽은 오크들의 상처를 살피고 온 듯 했다.
“맞다.”
그락카르가 뒤돌아보지 않고 도끼를 계속해서 두들기며 대답했다.
“형제가 여기 있는 거로 봐선 이미 자기들의 세계로 돌아간 모양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문을 만들었군. 우리가 한 발 늦었어.”
예전 파르펨들이 만들었던 일방통행의 문이라면 오크들도 이미 만들 수 있었다. 파뮴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자가 없긴 하지만 숫자가 많으니까. 수만의 오크가 모여 힘만 보태고 그 힘을 주술사가 움직이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일방통행이라는 거였다. 노르쓰 우르드는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문을 원했다. 이미 그락카르에게서 지구를 침략한 이종족들의 실패담을 들었다. 노르쓰 우르드는 그 실패의 가장 큰 이유를 문이라고 생각했다.
갔다가 돌아올 수 없으니 정보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고 한 번에 넘어갈 수 있는 병력의 수가 적으니 각개격파 당한다. 오크도 그렇게 넘어간다면 예전의 이종족의 전철을 밟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구로의 침략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몇이나 넘어왔는지 확인했나?”
“55에서 60사이였다.”
이미 한상과 성전사들의 흔적을 확인하고 추적도 해본 그락카르였다. 그 흔적을 통해 수도 파악해뒀다.
“그쪽도 아직은 문이 작은 모양이군. 난 돌아가야겠다. 가서 문을 여는 것에 온 힘을 쏟아야겠다. 그래야 카록께서 명령하신 일을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군.”
카록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던 노르쓰 우르드는 카록과의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그의 열렬한 신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그는 스스로를 위한, 종족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카록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카록이 내렸던 명령인 ‘다른 세계를 내게 바쳐라.’이었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하고 있었다.
“형제는 어떻게 할 거냐.”
“난 한상을 기다릴 거다. 잡혀간 형제가 내 말을 전했을 테니까.”
“그가 올 거라 생각하나?”
“모르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형제가 말했지. 한상은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이다.”
“그랬다.”
예전에 그락카르가 한상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락카르는 한상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모르겠다.”
한상과의 연결이 끊어진 지난 7년. 그락카르는 또 한 번의 발전이 있었다.
-각성(3단계)
아베네고와 싸울 당시 2단계였던 각성이 3단계에 오른 것이다. 3단계에 오를 때 그락카르는 최고친 100만 포인트를 사용했고, 그만큼 강해졌다. 그리고 무기를 만들고, 성관계를 맺고,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고, 채광을 하는 등. 강해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이용해 강해졌다.
그락카르는 스스로도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만약 형제가 죽는다면 오르히나 듀키츠 둘 중 하나가 형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가.”
“그리고 둘 중 하나는 죽을 거다.”
“그렇군.”
노르쓰 우르드로서는 전력의 저하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그락카르가 둘 중 하나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해주길 바라며 한 말이었지만 그락카르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기를 두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노르쓰 우르드는 잠시 기다리다가 돌아섰다. 여기서 더 이야기했다간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이겨라.”
“질 생각은 없다.”
노르쓰 우르드는 거대한 그락카르의 등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기면 3년, 지면 30년.’
그락카르가 이긴다면 3년 뒤 인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진다면 최대한 방어적으로 움직이며 힘을 키워 30년 후에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
“오크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오크 대전사를 잡아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오크 대전사로부터 내게 할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말일지 궁금해하며 찾아갔다.
오크 대전사는 예전보다 신체의 부분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처음에 잡아올 때도 양팔, 양다리가 없는 상태였지만 다리 쪽은 허벅지가 반 정도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그것도 없고, 귀나 코도 사라진 상태였다.
우리 능력이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없어진 부위를 재생시켜주지는 못하니까.
“구훅. 구훅. 구훅.”
숨쉬기가 힘든지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내장 쪽도 건드린 건가? 건드렸다면 최근 일이다. 아직 내장 쪽 실험에 대한 결과는 받지 못했으니까.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한상. 한상에게 할 말이 있다.”
“내가 한상이다.”
“한상 맞나? 인간은 다 똑같이 생겨서 못 알아보겠다.”
이 인종차별, 아니. 종족차별주의자 같으니. 내가 보기엔 오크가 다 똑같이 생겼어. 임마.
“맞다.”
“그렇군. 그러면 그락카르의 말을 전하겠다.”
“그락카르?”
그락카르가 내게 전한 말이 있다고?
“그락카르가 만약 한상을 만나게 되면 ‘기다리겠다. 만나자.’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락카르도 내가 언젠가는 넘어올 것을 예상했던 모양이군.
“그런데 왜 이제 말해주지?”
벌서 2주나 지났잖아. 처음 만났을 때 말해줬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까먹었다.”
“.....”
이 멍청한 오크 시끼.
< 225 한상 vs 그락카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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