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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24화 (224/228)

< 224 한상 vs 그락카르 >

내 고향은 아니다. 그락카르의 고향이다. 처음 그락카르로서 이곳의 삶을 시작했을 때 맡은 냄새다. 오크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상쾌한, 자연 그대로의 냄새.

오크가 깔끔하고 청결한 놈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을 아예 건드리지 않는 놈들이라서 그런 거지만 말이야.

7년간 외지에 나가 있다가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이 근처에 오크의 부락이 있을 듯싶은데... 차원문을 돌아보니 차원문 너머에서 성전사와 연구원들이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데 전혀 들리지 않는다.

보이긴 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 건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대기가 차단되어 있다는 뜻이다. 대기에 인간에게 해로운 물질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쪽에 어떤 해로운 물질이 있든 차원문을 통과해 가지는 못하겠어.

난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서 방호복을 입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계속 권유했지만 내가 싫다는데 자기들이 어쩔 거야. 내가 벗으니 해역이도 벗었다. 해역이가 벗으니 성전사들도 벗으려 했지만 그건 막았다.

해역이는 비텔님께서 넘어오신 이후 3번의 축복을 더 받았다. 원래 받았던 축복에 내가 준 것까지 합해 7번의 축복을 받은 몸. 대기에 무슨 안 좋은 성분이 있든 해역이라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성전사들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는 법이라서 말이야.

근처에 있을 오크 부락을 찾아보고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군. 내가 가면 해역이와 성전사들도 따라올 테니까. 나 혼자라면 이곳에 고립되어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지만 해역이나 성전사들은 위험하다.

“절차 시행하세요.”

차원문 너머의 연구 책임자에게 말했다. 알아듣지 못해 ‘네?’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서 입을 크게 벌려 두 번 더 반복하자 알아듣곤 일을 시작했다.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 몇이 넘어와 대기와 흙 등의 성분을 채취하기 시작하고, 5분 만에 차원문 앞에 우리 세계와 차단된 방 하나가 만들어졌다. 넘어온 연구원들이 일을 끝내길 기다렸다가 그들이 넘어가고 성전사들을 돌려보낸 후 내가 끝에서 두 번째, 해역이가 마지막으로 넘어왔다.

해역이 놈이 내가 뭔 짓을 할지 모르니 무조건 먼저 넘어가라고 해서 말이다.

연구원들이 채취해온 샘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난 물어볼 것이 있어 책임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차원문이 얼마나 유지 됩니까.”

“아? 아. 정확하진 않지만 안정화를 시켰기에 이론상으론 전력이 충분히 공급되는 한 계속해서 유지됩니다.”

오. 계속 유지된다고? 대단하네.

“다만 일정 질량이 차원문을 통과할시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방금 전 교주님과 성전사들이 넘어갈 때 위험했습니다. 전력을 과공급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순간 차원문 유지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할 뻔 했습니다.”

“부족해지면요?”

“바로 닫힙니다. 이론상으로는요.”

그건 위험하네. 다시 차원문을 연다고 해서 똑같은 장소에 열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다른 세계에서 미아가 될 뻔 했군.

그런데 나를 비롯해 겨우 57명이 넘어갔을 뿐인데, 그것도 한 번에 전부 넘어간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넘어갔는데 전력이 부족할 뻔 했다니.

주변을 가득 매운 기계장치를 봤다. 저것들의 대부분이 전력 공급 장치다. 실험 한 번 할 때마다 전기세가 수억 원 깨진다고 들었는데 대규모 병력이 넘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거야.

아니지. 지금도 과공급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저것보다 더 키울 순 없을 터. 전력 유지를 위해 조금씩 천천히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1만 명만 넘어간다고 해도 하루 종일 줄 서서 넘어가야겠네.

그건 좀 문제다.

“더 키울 수 있겠죠? 대규모 병력과 장비들이 넘어갈 수 있도록 말이죠.”

“가능할겁니다. 소모 전력을 줄이고 전력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이론이 있습니다. 검증을 위해 실험을 더 해야겠지만요.”

“얼마든지 하세요. 돈은 얼마가 들던 상관없으니까요. 아. 그리고 저와 성전사들이 잠깐 저쪽을 다녀와야겠는데 한 번에 몇 명씩 넘어가야 차원문이 안정적으로 유지될까요.”

“방금 반응을 봐선 5초간 2.5톤 정도는 충분할 겁니다. 그 후엔 5초간 충전 시간이 필요합니다.”

5초간 2.5톤이라.

“해역아. 일단 너랑 1, 2조만 넘어오고 10초 뒤에 3, 4, 5조 넘어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5초면 충전한다고 했지만 안전하게 10초 주는 게 낫겠지.

***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자연은 사람이 걷기에 상당히 불편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숲속이면 더욱 그렇다. 울퉁불퉁한 땅, 발 끝에 걸리는 돌멩이와 바위, 그리고 나무뿌리들.

그나마 나나 해역이는 괜찮지만 방호복을 입고 있는 성전사들은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특히 방호복이 시야를 가리는 게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벗으라고 할 수는 없다. 아직 이곳의 대기 성분이 완벽하게 분석된 게 아니니까.

이종족이 지구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그게 지구인이 이곳의 대기에서 괜찮을 거라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이들이니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철저히 증명해야지.

그래도 이미 방호복을 입고 전투 훈련까지 마친 이들이라 생각보다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5분 지났나?”

“네. 25분 남았습니다.”

성전사들이 매고 있는 산소통은 특별히 제작한 제품임에도 활동시간이 2시간을 넘지 못한다. 특히 지금처럼 험지를 걸어갈 때는 더욱 빨리 소비 돼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서 40분가량만 이동한 후 돌아가기로 했다.

전투시간도 생각해야하니 앞으로 10분 안에 오크 부락을 발견하지 못하면 돌아갈 생각이다. 오늘은 급히 온 거라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가서 제대로 예비 산소통까지 준비해서 오면 4~5시간은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10분 뒤까지 발견 못하면 돌아간... 찾았다.”

사방으로 넓게 퍼뜨렸던 기운에 생물체 하나가 감지됐다. 정확히 어떤 종족인지 알기 힘들지만 보나마나 오크다. 오크가 자기들 말고 다른 종족을 살려두었을 리 없으니까. 다른 곳에 퍼져있는 기운을 그쪽으로 기운을 집중했다. 감지되는 오크가 하나 둘 더 늘어났다.

“속도를 올린다.”

빠르게 걷는 정도였던 속도를 두 배 정도 올렸다. 그리고 5분 뒤 오크의 부락, 아니. 마을을 발견했다.

낯설군. 엄청 낯설어.

내가 알던 오크 부락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아는 오크의 부락은 나무나 동물, 이종족의 가죽으로 얼기설기 지은 천막이 무질서하게 지어져 있는 모습인데 꽤 집다운 집이 수십 채 지어져 있다.

아니. 집은 그렇다 쳐도 주변에 밭이 왜 이리 많아. 더 웃긴 건 오크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오크가 불을 쓴다고? 오크가? 난 그락카르가 싸우다가 불 지른 거 말고 불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여기 혹시 남부인가? 아냐. 남부는 공기의 맛이 다른데? 그리고 마을에 울타리나 성벽이 없고, 돌이 아닌 나무로 지어진 집도 더러 있는 걸 보면 남부와도 다르다.

그락카르가 가본 적 없는 지역의 오크들인가? 아니면 그락카르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일 수도... 모르겠다. 몇 놈 잡아서 말해보면 알겠지.

“전투준비해라.”

“네. 전투준비.”

성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수컷 오크의 수가 1,000이 넘는데 이상하게도 족장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혹시 사냥을 나갔을 수도 있으니까. 주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싸워라.”

“네.”

성전사들에게 말한 대로 오크 마을에 있는 수컷 오크의 수는 1,000이 넘어 보인다. 그런데 족장급의 덩치를 가진 녀석이 없다. 대전사도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통 성인 수컷의 수가 1,000이 넘으면 대전사급은 두셋, 족장급은 하나가 존재해야 하는데 말이야.

어쩌면 오크의 수가 너무 빨리 늘어나서 인구수 대비 강자의 비율이 떨어진 걸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러면 좋겠군. 인구수는 늘어난 주제에 강자 비율이 예전과 비슷하면... 족장급만 수만이 넘는다는 말이잖아. 일곱 신의 가호를 받는 족장급이 수만이라니. 그런 건 좋지 않다.

해역이와 55명의 성전사가 전투 시작을 기다리며 나만 바라보고 있다. 오크 1,000과 인간 56명의 싸움. 숫자는 저쪽이 훨씬 많지만 전력상 이쪽이 압도해야하는 싸움이다.

무려 성전사장인 해역이가 이끄는 55명의 최정예 성전사인데 말이야. 지금 함께 온 성전사 중 가장 적은 축복을 받은 성전사도 네 번의 축복을 받았다. 내가 내린 3번의 축복 외에도 비텔님께 한 번의 축복을 더 받았다는 뜻이다.

족장급 오크가 평균적으로 4~6번의 축복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여기 온 성전사들은 적어도 대전사급 끝에 걸쳤거나 거의 족장급에 다다른 녀석들이란 뜻이다.

대전사급 하나가 이끄는 1,000의 오크와 평균적으로 족장급의 힘을 가진 56명의 인간. 누가 봐도 이쪽이 월등하지 않나. 이쪽이 당연히 학살을 해야 하는 전력 차이다.

예전이라면 말이다.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여섯 신의 가호가 무슨 효과를 미쳤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

“대전사급은 놔둬라. 내가 잡을 테니까.”

대화를 나눌 상대는 가장 강한 자가 적당하겠지.

“시작하자.”

“네. 구령에 맞춰 일제 사격한다. 하나.”

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해역이의 신호와 함께 소음장치가 되어 있음에도 옆에서 들으면 충분히 큰 소리와 함께 저격총들이 불을 뿜었다.

날아가는 총알에 집중했다. 그리고... ‘과연 여섯 신의 힘을 받은 오크들은 얼마나 강해졌을까. 저격총이 과연 통할까?’라는 내 생각이 허무할 정도로 총알이 가볍게 오크들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아니 뚫고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관통해버렸다.

약하다. 농사를 짓던 오크, 집을 짓던 오크, 불을 피우던 오크, 음식을 만들던 오크 할 것 없이 모두가 쓰러졌다.

여섯 신의 가호가 내려졌으니 엄청난 괴물이 탄생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렇게 강하진 않다. 아무리 여섯 신의 가호가 내렸어도 괴물이 되기에 7년은 너무 짧았던 걸까?

“구아아아아악!”

대전사급 오크가 전사들을 이끌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적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보일 리 없지. 우린 2,000m 떨어진 숲속에 있는데 말이다.

“가장 덩치가 큰 오크를 제외한 전사들을 노려라. 둘.”

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다시 저격총이 불을 뿜었고 살벌한 눈빛으로 적을 찾던 오크들이 쓰러졌다. 이 녀석들은 꽤 괜찮군. 몇몇을 제외하곤 총알이 신체를 관통하지 못했다. 확실히 이 녀석들은 예전의 오크보다 확실히 강하다.

과연. 바깥에서 일하고 있던 오크들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충분히 약할 수 있다. 아무리 여섯 신의 가호가 내렸다고 해도 직접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만 심어주는 것인 만큼 시간이 짧아 가능성을 개화하지 못한 녀석들은 많을 테니까.

비텔님께서 인간들의 가능성을 개화시켜줬음에도 극히 일부만 능력을 개화한 것처럼 말이야.

두 번째 사격에 우리들이 있는 곳을 알았는지 일부 오크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전보다 강해졌어도 축복을 받은 적 없는 일반 전사급 오크는 성전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오크 전사 대부분이 반도 접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1,000의 오크가 일제히 달려왔다면 그 중 반은 우리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시의 기습으로 인해 오크들은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왔고 대부분이 우리의 위치도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당연히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구아아아아악!”

대전사급 오크는 주변 모든 오크 전사가 쓰러졌음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홀로 돌진해왔다. 역시 오크답다. 두려움을 몰라.

“해역아. 팔다리만 잘라.”

“알겠습니다.”

해역이가 등에 맨 양손검을 꺼내 들었다. 방패는 놔둔 걸 보면 저 오크 대전사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뭐. 해역이 정도면 그럴만하지. 쟤도 상당히 강해졌으니까.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한 10초 걸렸나? 두 번의 칼질에 팔 두 짝이 떨어져나갔고, 한 번의 칼질에 양다리가 잘려나갔다. 내가 다가가 피를 콸콸 쏟아내고 있는 오크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팔다리 잘린 부분이 아물었다.

“가자. 이 정도면 된 거 같다.”

이쪽으로 달려오던 오크 전사는 전부 죽었다. 나머지는 아직도 우리 위치를 못 찾은 전사나 암컷과 아이뿐이었다. 암컷과 아이는... 그락카르에 대한 첫 인사의 예의로 이번만은 죽이지 않는 거로 하지.

사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더 싸웠다간 돌아갈 시간이 부족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성전사들이 팔다리가 잘린 채 쓰러진 오크 대전사의 몸에 밧줄을 연결했다. 팔다리가 없긴 하지만 들고 가기엔 귀찮고 힘들다. 쉬지 않고 몸부림치고 있는데다가 아직 이빨은 건재해서 위험하다.

그대로 오크 대전사를 질질 끌며 귀환길에 올랐다.

***

그락카르가 있는 북부에서 제법 떨어진 중부 작은 부락의 전투 소식은 예전 파르펨이 가졌던 종족 통신 능력에 의해 순식간에 그락카르의 귀에 들어갔다. 꽤 먼 거리였지만 잠시 후 그락카르는 그 부락에 위치해 있을 수 있었다.

이 역시 파르펨의 능력이다. 아직 미숙하고 효율이 좋지 않아 그락카르 하나만 이동시켰음에도 20의 오크가 쓰러져 앓아누웠지만.

빠르게 왔지만 이미 전투는 끝나있었고 주변에서 적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락카르는 죽은 형제들의 시체를 살폈다. 베이거나 찔린 상처가 아니라 원형의 구멍이 나 있는 상처. 낯설지만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크흐.. 드디어 왔구나. 반갑다. 한상.”

< 224 한상 vs 그락카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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