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한상 vs 그락카르 >
“크훅?”
최고의 암컷 셋과 동시에 즐기던 그락카르가 당황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락카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함께 즐기던 암컷 셋도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고들 있었다.
그락카르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지금 그의 신체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피부가 더 두꺼워지고 질겨지기 시작했고, 근육에 탄력이 생기고 힘이 더욱 강해졌다. 눈이 밝아지고 귀가 뚫렸으며, 머리가 맑아졌다.
가슴 깊은 곳에 작은 불꽃과 씨앗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고, 머릿속에 수많은 형제, 자매들의 위치가 그려졌다.
본능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부수면 불꽃이 자랄 것이고, 무언가를 키우고 거두면 씨앗이 자랄 것이다.
초원을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이고 손발톱이 도끼날처럼 날카롭고 강해질 것이다.
형제, 자매들에게 체력을 소모해 원하는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을 집중하면 작은 충격파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 다른 신들이 우리를...”
어째서 카록이 아닌 다른 신이 오크에게 가호를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이유를 생각하는 걸 접었다. 강해졌으면 된 거다. 방금 받은 가호로 자신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강해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락카르가 나름의 이유로 이 상황을 납득했을 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게 된 자가 있었다.
-몰란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몰란의 가호가 깃듭니다.
-몰란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피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피언의 가호가 깃듭니다.
-피언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에렌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에렌의 가호가 깃듭니다.
-에렌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바틱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바틱의 가호가 깃듭니다.
-바틱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마우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마우의 가호가 깃듭니다.
-마우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파뮴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에게 파뮴의 가호가 깃듭니다.
-파뮴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가호만 받은 그락카르와 달리 노르쓰 우르드는 각 신의 축복까지 받았다. 그만이 아니었다. 주술사라는 이름을 받은 이들은 전부 각 신에게서 축복을 받았다.
“이게... 축복의 힘이군.”
노르쓰 우르드는 전신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힘에 놀랐다. 한순간에 몇 배는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불꽃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렸다. 이전보다 더 뜨겁고 거대한 불꽃이 추진력을 잃지 않고 끝없이 날아갔다.
“사기군. 사기였어.”
1,000년간 그와 전대 주술사들이 쌓아온 힘이 보잘 것 없어 보일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하찮아 보일 수가 없었다. 순간 주술사로서 가졌던 자존감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만들어라!
카록의 음성이 그를 강타했다. 음성에 담긴 강렬함과 그것이 주는 끝 모를 쾌감에 몸이 덜덜 떨렸다. 무릎이 절로 구부러지려 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다.
-나의 힘을 이용해라! 그리하면 공간의 제약이 사라질 것이니.
이번엔 파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록의 목소리에 간신히 저항하고 있던 노르쓰 우르드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두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큰 감정의 파도를 몰고 왔다.
노르쓰 우르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씨앗을 개화해라. 너의 힘을 증폭 시켜줄 것이다.
-불꽃을 키워라. 너를 강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에렌과 피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푸왁!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이 빨갛게 충혈 되었고, 코피가 터져 줄줄 흘러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칠공 모든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시간은 너의 편이다. 흐를수록 내 힘이 공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너의 육감을 믿어라. 그것은 나의 계시이리니.
바틱과 마우의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노르쓰 우르드의 땀과 눈물조차 피가 대신 흘러내렸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노르쓰 우르드가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때,
-카록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카록의 축복이 내려지며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던 노르쓰 우르드의 신체가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너는 내게 버려진 자가 아닐지니. 나는 언제나 널 지켜보고 있었다.
노르쓰 우르드는 더 이상 신의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고,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신의 음성이 주는 쾌감에 몸을 맡겼다.
-네게 힘을 내리니, 그 힘을 이용해 대족장을 보좌해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가라. 그리고 그곳을 내게 바쳐라.
노르쓰 우르드는 생애 처음 겪는 극도의 쾌감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 모든 것을 바쳐 신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
오크에게 여섯 신의 가호가 내려질 거라니. 그런데 가호?
“가호는 내가 너희들에게 기적이란 이름으로 내린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가호구나. 그런 것을 여섯 신이 어떠한 혜택도 없이 오크에게 자신의 가호를 내리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기까지 했다는 겁니까?
“그렇단다.”
이 정도면 서운해 하는 정도는 한참 넘어섰다. 저쪽 세계의 비텔교를 멸망시킨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우리까지 멸망시키려 하다니.
“친구들이 좀 질투가 강하단다. 나를 너희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은 모양이야.”
신의 질투는 정말 무섭군.
이제 오크는 카록을 포함해 총 일곱 신에게 가호를 받게 되었다. 비텔님을 통해 인간들이 받게 된 가호를 생각하면 일곱 신에게 받는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비텔님께 받은 기적 중 가능성을 개화해 초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된 것만 생각해도 오크가 그런 비슷한 기적을 일곱 개나 받았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도대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생각했을 때 다른 모든 종족의 특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 끔찍하다. 드워프처럼 생명을 태워 신체능력을 강화한 채 덤벼오기라도 하면 그걸 어떻게 막지? 녹색막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충격파를 사방에 날리며 덤벼오는 오크는?
일단 오크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바로 힘을 주는 축복과 달리 가호를 받는다고 해서 당장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호는 그저 가능성을 열어주는 정도로 그치겠지. 그게 어떤 가능성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저녁이 되면 알 수 있겠지. 그락카르가 가호를 받는다면 나도 받게 될 터.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한다면 오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오늘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겠구나.”
“일이 있긴 할 겁니다. 비텔님께서 지구에 오셨는데 교주인 제가 할 일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하지만 꼭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제게는 그 어떤 일보다도 비텔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나도 그렇단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비텔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그 미소에 스물스물 올라오던 불안감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럼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네 이야기를 들려주렴.”
“네.”
***
비텔님은 좋은 청자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정말 즐거워하며 들어주셨다. 듣는 사람이 좋아하니 나도 상당히 신나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음에 또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돌아오니 내 사무실을 컨트롤 타워로 쓴 건지 유나, 맹연, 벤센 등과 정보부 요원, 비서진으로 가득했다. 내 사무실이 좀 넓긴 하지.
“오셨습니까. 교주님.”
맹연이 가장 먼저 날 발견하고 인사했다. 쟤는 날 추적하는 스킬이 있어서 내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알았을 거다. 쟤 때문에 내가 도망치질 못한다. 어디로 가든 지구에 있다면 꼭 찾아내니까.
맹연이 인사하자 내가 온 것을 안 모두가 내게 인사했다. 대충 답례해주고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세계 각자의 축제 관리인가.. 축제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일어나는 사건들을 살펴보니 난장판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거 수습하느라 지금까지 일하고 있었던 거군
“그럼. 수고들 하세요.”
누가 잡기 전에 바로 인사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맹연이 눈을 부라렸지만 걔도 단 둘이 있을 때나 날 갈구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는 자제한다. 잡고 싶은 마음이 잔뜩이었겠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날 막을 순 없었겠지.
나도 웬만하면 남아서 일을 도와주겠지만 지금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자는 거다.
꿈을 통해 그락카르를 봐야 한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그 변화를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오크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첫 걸음이다.
***
“빌어먹을. 썩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한상은 욕을 퍼부었다.
“꿈꿨잖아.”
한상은 꿈을 꿨다. 그게 문제였다. 꿈속에서 그락카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공인 진짜 꿈을 꿨으니까.
한상은 침대위에서 바로 기도를 했다.
‘비텔님. 그락카르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답은 바로 왔다.
-모르겠구나.
“빌...어먹을.”
한상은 비텔의 음성이 주는 극상의 쾌락 속에서 다시 한 번 욕을 내뱉었다.
***
씻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후 비텔님께 날 불러달라고 기도드렸다. 그 다음 순간 난 비텔님께서 만드신 신계에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니 내 마음대로 신도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 좋구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신도를 불렀다간 죽을 수도 있어서 그러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렇습니까. 저 또한 이렇게 비텔님을 뵐 수 있어 기쁩니다.”
비텔님을 뵙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기쁨이 가득해지지만 지금은 가슴 속에 불안이 가득했다.
“그락카르와 연결이 끊어진 것 때문에 그러느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락카르와의 연결이 제발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락카르 덕분이라고 봐도 될 정도니까.
꿈속에서 그락카르를 보지 못했다면 난 지금도 누군가의 운전기사 한상이었을 거다. 아니면 운전기사에서 잘려서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그 일도 운전관련 일이겠지.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운전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꿈에서 그락카르를 보지 못하니 너무나도 불안하다. 비텔님을 보고도 진정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가까이 와 보거라.”
가까이 가자 비텔님께서 손을 내 머리위로 올리셨다. 그리고 거룩한 힘이 내 몸 전체를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완전히 끊어졌구나. 더 이상 그락카르와의 연결이 느껴지지 않아.”
“그럼 더 이상 꿈속에서 그락카르를 볼 수 없는 것입니까.”
“그럴 것이다. 내가 이곳으로 오면서 뭔가 변화가 일었거나 카록이 너와 그락카르의 연결을 끊는 방법을 알아낸 듯하다.”
“어떻게 다시 연결할 수는 없겠습니까.”
“할 수 없다.”
비텔님께서 단호하게 이제 다시는 꿈속에서 그락카르를 볼 수 없음을 선고하셨다. 왜 오늘이지. 적어도 그락카르가 받은 여섯 신의 가호가 어떤 건지 확인한 후에 끊겼으면 이 불안이 조금은 덜했을 텐데.
“네 생각대로 시기가 공교로운 것을 생각하면 정말 카록이 방법을 발견한 걸 수도 있겠구나.”
“그 자가 끊었다면 다시 연결할 수도 있지 않겠... 아 죄송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말을 하다가 내 실수를 깨달았다. 비텔님께서 이미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걸 다시 묻다니. 불경도 이런 불경이 없다.
“후후. 괜찮다. 그래. 네 일이니 너도 알아야겠구나. 앉거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어느 새 아무 것도 없던 곳에 의자와 식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 비텔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222 한상 vs 그락카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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