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218화 (218/228)

< 218 비텔교 vs 오크 >

새벽녘,

“크흐..”

그락카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쪽을 보며 똥폼을 잡았다. 이시끼 100% 중2병이다. 행동하나하나에 허세가 가득 껴 있다.

적의 기세가 느껴지면 그냥 일어나서 ‘적이다!’라고 소리치면 될 것을 조용히 일어나 웃으면서 지긋이 서쪽에 시선을 던지는 거 봐라. 고개도 살짝 15도 치켜 올렸다. 저러고 다른 오크들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린다. 나중에 왼손에서 흑염룡 뽑아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똥폼을 유지하면서 뒤지게 맞다가 죽기위해 아베네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겠지.

지금 그락카르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이제 난 반나절을 떠들어도 될 정도로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수천가지 방법을 사용해봤다. 그리고 전부 실패했다. 딱히 특별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다.

곧 아베네고가 모습을 보였다.

“난 명예로운 전사 그락카르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아베네고를 보자마자 그의 강함을 인지한 그락카르는 바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보통은 싸움을 좀 한 후에 제대로 된 전사라고 느끼면 그제야 이름을 밝히는 녀석이지만 그락카르의 개눈깔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베네고의 품격은 깊고 진하다.

내가 아베네고를 몇 번 봤더라. 8,000번쯤 됐나? 3,000번을 넘어간 후로 세는 걸 포기했지만 느낌 상 그 정도 되는 거 같다. 보면 볼수록 아베네고의 진면목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볼수록 매력이 깊어지는 존재 혹은 사물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지만 실제로 본 건 아베네고가 처음이다. 첫 대면에서는 그가 이끌어온 상황에 대해 감탄했을 뿐 아베네고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난 아베네고다.”

자신의 이름 앞에 ‘명예로운 전사’라는 수식을 더해 상대의 존경을 얻어내고자 하는 그락카르와 달리 자신의 이름만 가볍게 내뱉는 아베네고.

1,000년을 살았으며, 비텔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으며, 최강의 힘을 가졌다. 그런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가 얼마나 많을까. 대표적으로는 무식한 오크놈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죽지 않는 자’가 있다. 그럼에도 아베네고는 이름만 말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고고한지. 짧게 뱉은 말이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그의 몸짓, 시선, 음성의 고저, 마음가짐. 그 모든 것에서 벼락출세한 나나 그락카르는 따라가지 못할 품격을 가지고 있다.

모든 행동에서 깊음이 느껴졌다. 그를 보면서 난 하나를 확실히 깨달았다. 저런 사람이 진정한 비텔교의 교주다. 나 같이 운 좋은 가짜가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전투. 나는 아베네고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직접 그에게 설명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그락카르의 몸을 이용해 직접 맞으며 배우고 익혔다.

예를 들면,

퍽. 지지지지지지직!

“크웍!”

으윽. 아프다. 그락카르가 신음을 흘릴 정도다. 정말 미친 듯이 아프다. 신체에 가해진 충격도 컸다. 수실 발의 번개를 몸으로 받아내며 버티던 그락카르가 옆구리에 박힌 주먹에서 뿜어지는 번개 한 방에 신음을 흘리며 무릎 꿇었다.

아까 뿜어내던 번개와 다른 점은 아베네고의 주먹이 그락카르의 옆구리에 닿았다는 것뿐이다. 수백 번을 살피고 경험했지만 뿜어내는 번개의 양은 아까와 별 다를 게 없다. 이 사례에서 몸에 직접 손을 댄 채 번개를 뿜는다면 상대의 저항력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주먹에 담긴 물리 공격력이 강할수록 상대의 저항력도 그만큼 깎인다는 것을 직접 당하면서 배웠다.

내겐 정말 좋은 지식이다. 난 도끼를 이용한 물리 공격과 스킬 공격을 동시에 하니까. 강적을 상대할 때 도끼로 공격한 후 스킬을 사용하면 더욱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도끼질을 시작한 게 헛수고가 아니었던 거다.

그락카르도 보통 놈은 아닌지라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반격을 잊지 않는다. 미로크가 아베네고를 향해 휘둘러졌지만 아베네고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지며 미로크가 허공을 갈랐다. 그락카르의 말도 안 되는 시력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놓친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동원됐다는 뜻이다.

물리적인 움직임만 있었다면 그락카르의 눈이 그를 놓칠 리 없으니까. 그리고 그 특별한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나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기 전에 전신을 비텔님의 기운이 감싸는 걸 직접 봤다. 그락카르는 보지 못하는 기운의 움직임이지만 얼마 전부터 나에게는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을 5,000번 정도 반복했을 때였을 거다. 그락카르는 쓰지 못하는 내 고유의 스킬이 작동하기 시작한 게 말이다.

아쉽게도 수호자를 불러내던가 하는 이 상황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직접적인 스킬 사용은 할 수 없었지만 ‘비텔의 눈’ 같은 영향력이 없는 스킬이 발동하기 시작했고 그가 기운을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아베네고가 어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기운의 움직임을 보고, 당해보고, 현실로 돌아와 연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복한 하루를 시간으로 따지면 10년 정도일까? 난 정말 강해졌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수호자들의 도움 없이 그락카르와 1:1로 싸울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물론 아베네고에게는 안 된다. 그와의 1:1은 자신 없다. 알면 알수록 그의 능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그락카르와 아베네고를 1:1로 싸우게 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다.

싸움이 조금은 길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아베네고가 이길 거다. 그렇기에 오늘 그락카르에게 어떤 말도 걸지 않은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그락카르는 아베네고에게 질 테니까.

하루의 반복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벌써 수십 년의 하루를 반복했지만... 이것도 크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베네고를 볼 수 있으니까.

내가 이 하루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락카르가 아베네고를 이긴다는 것.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큰 상실감도 동반할 것이다. 아베네고를 잃게 될 테니까.

그렇다. 난 아베네고에게 반했다.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한다. 내가 그걸 깨달은 게 ‘오늘’을 4,500번 쯤 반복했을 때던가. 어느 새 난 아베네고라는 존재에게 푹 빠져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처럼 위대한 이를 수천 번 봤는데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오늘’이 언제까지 반복될지는 모른다. 영원히 반복될 수도 있고, 언젠가 갑자기 끝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두 가지 경우 다 내게 좋지 않은 일이다. 영원한 ‘오늘’을 사는 것도, 내일을 맞이하며 아베네고를 잃는 것도.

“크후어억!”

아베네고의 강력한 공격이 그락카르의 몸에 작렬했다. 이제 죽을 때가 됐다. 다다음번 공격에 그락카르의 목숨이 끊어진다.

아베네고의 마지막 공격이 가해질 때 난 ‘오늘’이 끝날 때 항상 하는 말을 했다.

오늘도 가르침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다음 순간, 난 현실에서 깨어났다. 내 옆에는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오래 전 겪었던 ‘어제’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비서가 누워있었다.

비서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볍게 씻고 있으니 언제나 그렇듯 깬 비서가 들어와 함께 씻었다. 트레이닝복을 주워 입고 1층으로 내려가 부엌으로 갔다.

“오늘 제 거는 부대찌개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교주님.”

이제 아침을 준비하는 아주머니한테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말 안하면 미역국에 계란프라이가 나온다. 그것들도 맛이 괜찮지만 수천 번 먹다보면 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에 있는 재료로 가능한 음식을 20가지 알아낸 후 매일 바꿔가며 부탁하고 있다.

아침이 준비되는 동안 산책을 나갔다. 딱히 산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방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낫다. 다람쥐, 청설모, 새, 들개 등 수천 번은 본 녀석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모양새로 나타났다.

“안녕.”

난 친숙하지만 그 놈들은 아무래도 내가 낯설어서 금방 도망간다. 들개 녀석은 내일이 찾아온다면 데려다가 키워야겠다. 매일 봤더니 내 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말이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유나, 해역이, 맹연, 비서 몇 명과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분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매번 똑같은 대화 듣기가 지겨워서 여러 가지 묻다보니 함께 아침 식사하는 사람들에 모르는 게 없게 됐다. 저 사람들 집안사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침식사 후 정보부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벤센.”

“오셨습니까. 교주님. 구트라시 토벌 준비 완료됐습니다.”

아득히 먼 ‘어제’, 난 벤센에게 비텔교를 테러하려는 단체에 대한 세 번째 토벌작전을 준비하라고 했다.

“토벌은 중지합니다.”

“알겠... 네?”

“토벌은 중지하고 감시만 해주세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교주님께서 신도들을 아끼는 것은 잘 알지만 상대는 민간인입니다. 교주님께서 나서시지 않아도 다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압니다. 그래도 제가 갈 테니까. 이동 준비해주세요. 오후 일찍 도착했으면 좋겠네요.”

“... 알겠습니다.”

벤센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고 난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구트라시의 본부가 위치한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벤센은 내가 직접 토벌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난 저들을 구원하러 가는 거다. 비텔님과 나에 대해 오해해서 과격한 행동을 하려는 저들이 실수하기 전에 바로 잡아주려는 것이다.

‘살기 위한’의 범위? 세상을 위한 죽음? ‘어제’만 해도 진리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개병신 같은 생각이었다.

그냥 내가 멍청하고 능력이 없는 것을 숨기기 위한 자기합리화였을 뿐이다. 주제에 맞지 않는 큰 힘을 손에 넣은 애송이의 개똥철학이었을 뿐이다.

토벌은 무능력한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했던 ‘어제’의 내가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다. 세상을 위해 죽인다고? 그게 잘못된 생각이란 건 ‘오늘’을 1,000번 반복하기도 전에 깨달았다. 그만큼 빈약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으니까.

과격단체 구트라시가 위치한 곳은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외곽에 위치한 빈민가였다. 파견 나가 있는 사제단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그곳에 도착해 내가 모습을 보였을 때, 내 모습을 본 빈민가 사람들의 거대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의 대부분이 구트라시에 속했거나 속한 사람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나를 타도해야 할 악마라 생각하며, 사제와 성전사를 타락한 악의 주구라 생각했다. 그런 그들 앞에 갑자가 악마 그 자체인 내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지.

“가세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가서 기다리세요.”

망설이던 이들이 내 거듭된 부탁에 빈민가를 떠났다. 이제 이 빈민가에는 나 홀로 남았다. 물론 벤센이 나 몰래 빈민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전사를 대기시켜두긴 했다. 혹시라도 내가 위험하다 판단되면 그들의 저격총이 불을 뿜겠지. 과거에 몇 번 그들에 의해 빈민가 사람들이 학살당했었다.

벤센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다섯 번 말했다. 네 번 말하면 사고 쳐서 다섯 번은 말해줘야 한다.

곧 정적이었던 빈민가 곳곳에서 여러 기척이 느껴졌다. 구트라시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각각 무기를 들고 날 공격하기 좋은 장소로 이동했다.

건물 모퉁이에서 고개만 내놓고 보던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마!”

그는 내가 다가가자 총을 겨누었다. 날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었다. 그는 급기야,

타타타타탕!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게 신호였다. 사방에서 자리 잡고 있던 구트라시의 사람들이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백 발의 총알이 날 향해 쏟아졌다. 난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몇 분 동안 이어지던 총격은 총알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서서히 멈추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멈췄다.

총격이 멈춘 것을 확인한 나는,

후두두두두두두둑.

기운으로 잡고 있던 총알을 땅에 떨궜다. 기운 자체가 물리력을 갖게 하는 것도 아베네고를 통해 배운 것이다. 짙은 농도의 기운은 내 주변에 펼쳐져 끈끈이처럼 날아오는 모든 총알을 잡아두고 있었다.

그냥 맞아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겠지만 옷이 찢어지고 튕겨나가거나 빗나간 총알에 다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기에 전부 잡아뒀다. 내 바로 앞에서 총을 갈겼던 남자도 원래는 빗나간 총알에 맞아 죽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공포 때문인지 그는 도망갈 생각도, 내게서 시선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의 떨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가 뭔가 각오를 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비텔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머물기를.”

“어..어어?”

내 행동이 그의 예상과는 달랐나보다.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생명력에 그를 좀먹던 병과 고통을 지워나갔다. ‘생명력 전이’를 통해 그를 건강하게 만든 나는 다른 이를 찾아 움직였다. 이미 수백 번 왔던 곳이기에 누가 아픈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효율적으로 움직여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빈민가의 모두를 치료할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날 때쯤에는 숨어있던 빈민가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와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서 폰을 꺼내들었다.

“들여보내세요.”

곧 열 대의 트럭이 마을에 들어왔다. 트럭과 함께 들어온 신도들이 빈민가 사람들에게 생필품과 식량 등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나눠주며 사람들에게 이 지역 지부의 위치를 알려줬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오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럭 앞에 줄 서 생필품과 식량을 받아가는 중에도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은 내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저들이 구트라시의 핵심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시키니까 하는 것 일뿐 여기에 남아있는 이들이 진정으로 날 증오하고 공격하려는 자들이었다.

“다... 당신은.”

누군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악마임을 매일 설파하던 구트라시의 우두머리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다. 이미 수백 번 들었으니까.

“악마 아닙니다. 비텔님과 여러분의 사이를 막고 있지도 않고, 숨어있지도 않습니다.”

“....”

“제게 용무가 있다면 언제든 이 지역 사제를 찾아가세요. 제가 있는 곳으로 보내줄 겁니다. 저를 욕하셔도 좋고, 저를 공격하셔도 좋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세요. 하지만 다른 신도를 공격하지 마세요. 그분들 또한 비텔님의 아이이며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난 멍청했다. 저들의 소중함을 몰랐다. 신도가 수십억이나 되니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베네고를 보며 깨달았다. 저들 하나하나가 비텔님의 소중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무능력하고 게으른 나는 저들을 포기하고 죽였던 것이다. 잘못된 길을 걷는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그래도 교화가 되지 않는 자들은 있을 거다. 몇몇은 끝까지 바뀌지 않아 포기해야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비텔님을 만나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정도는 되어야 하잖나. 아베네고처럼 말이다.

“바뀌신 거 같습니다.”

벤센이 말했다. 그가 내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지. 항상 내 곁에 있는 이니까.

“맞아요.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존경하는 누군가의 발끝이라도 닮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차피 ‘오늘’ 한 일은 곧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오늘’이 시작되겠지만 쓸데없는 일은 아니다. 이건 연습이다. 아베네고를 닮기 위한, 그처럼 되기 위한 연습.

‘오늘’도 나는 그에게 한걸음 가까워졌다.

***

몇 번째 ‘오늘’일까. 1만 번은 넘은 거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크후어억!”

오늘도 끝이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스승님.

비록 내 말이 아베네고에게 닿지는 않겠...

“스승님?”

어.. 어어어? 분명 아베네고가 말했다. 아베네고가 의아함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까지 절대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지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락카르의 목숨이 끊어졌고 언제나 그렇듯 침대에서 깨어났다.

< 218 비텔교 vs 오크 > 끝

ⓒ 냉장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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