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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17화 (217/228)

< 217 비텔교 vs 오크 >

카록은 다른 신과 비교해 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그락카르가 있는 곳으로 가라.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라고 대족장, 대군주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이례적인 행동은 오크들에게 거대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신이 직접 점지해준 싸움이다. 어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락카르 또한 그런 기대감을 가진 이 중 하나였다.

그 역시 종족 연합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카록의 음성을 들었다. 그가 들은 말은 다른 대족장, 대군주와는 달랐다.

-그 자리에서 기다려라. 큰 싸움이 널 찾아올 것이다.

“크흐..”

굳센 정신은 물론이고 강철보다 단단한 그의 신체까지 뒤흔드는 카록의 강렬한 음성. 오랜만에 들었지만 그 어떤 쾌락보다도 고차원적인 기쁨을 그에게 안겨줬다. 거기에 음성의 내용이 한 몫 더했다.

신이 주선하는 싸움이 다가오고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락카르는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 중 공처럼 둥글고 빵빵한 리자드맨 로드의 시체를 가져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씹었다.

지직. 직.

뼈의 단단하기만 따지면 드워프가 한 단계 위지만 고위 리자드맨의 피부는 뼈보다도 더 단단하고 질기다. 강철 보다 더 단단하고, 그 어떤 것보다도 질기기에 그락카르가 좋아하는 큰 뿔 누의 앞다리와 비슷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더 한 전사의 음식이었다.

“크흐.. 최고의 음식이다.”

만족스러웠다.

몇몇 대족장과 대군주가 그락카르의 옆으로 왔다. 그들은 그락카르가 맛있게 먹고 있는 리자드맨 로드의 시체를 주워 몇 번 씹어보다가 집어 던지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시체를 찾아 입에 물었다.

그들 주위로 대전사가 모여들었고, 그 주위로 일반 전사들이 모여들었다. 오크들은 끝없이 몰려왔다. 사방에 종족 연합의 시체 100만구와 형제인 오크의 시체 수만 구가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락카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둘러앉아 주변의 시체를 주워 먹으며 카록이 약속한 큰 싸움을 기다렸다.

***

“50만... 정도인가.”

인간의 땅에서 이곳에 오는데 한 달 정도 걸렸다. 그 사이 오크는 엄청나게 늘어나 거의 50만은 되는 듯 했다. 주변 가득했던 종족 연합의 시체는 이미 오크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싹 사라진 상태였고 썩어가는 오크의 시체만 보였다.

먼저 보낸 이올라의 눈을 통해 확인한 오크들의 모습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천막도 없이 그냥 뭉쳐있기만 했다. 정돈된 모습도 없고, 싸움을 준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대낮인데도 잠에 빠져있는 자들이 있었고 곳곳에서 서로 죽일 듯 싸우는 오크들이 보였다. 몇몇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맞아 시체처럼 뻗어버렸다.

“과연... 전쟁에 대비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군.”

그런 모습을 봤음에도 아베네고는 오크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와 달리 오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베네고에게는 오크의 무질서한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식량이 떨어진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굶주림으로 인해 날카로워져 본능이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고, 생사를 건 전투를 하거나 지켜봄으로써 전투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좀 더 기다리면 굶어 죽을 거 같은 모습이지만 오크는 전투를 좋아할 뿐 바보가 아니다. 아베네고가 전투를 시작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도 사냥을 하거나 다른 종족을 침략해 식량을 마련해 굶어죽지 않을 정도를 유지할 것이다.

“마지막에 어울리는 전투구나.”

1,000만 vs 50만의 싸움. 누가 봐도 1,000만이 유리한 싸움이지만 병력의 질을 따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크 개개인의 전투력이 말이 안 될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그리고 절대 강자의 수가 부족했다. 이쪽의 절대강자라고 할 수 있는 아베네고와 다섯 수호자가 그락카르 하나와 싸워야 했다.

거대괴물이 있기는 하지만 대족장이나 대군주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크들은 대족장, 대군주도 다른 종족에 비해 훨씬 강력했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아베네고가 유리하긴 했다. 1,000만이라는 숫자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끝없이 몰려드는 오크도 생각해야 했다. 50만이나 모여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닌 듯 사방에서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진 감당할 수 있지만 어느 한계를 넘어가는 순간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모여들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내야 했다. 즉, 시간제한이 있는 싸움이었다.

그 시간제한의 핵심은 그락카르였다. 아베네고와 다섯 수호자가 그락카르를 빠르게 무너뜨리면 이길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질 것이다. 종족 연합은 그걸 하지 못해 졌다.

“1,000년의 끝이구나.”

길고 길었던 여정의 목적지가 드디어 눈에 보였다. 50만 오크의 한가운데 있는 붉은색 피부의 거대한 오크. 그가 바로 목적지였다.

아베네고는 그락카르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강하게 쥐었다.

***

해가 떠오르기 시작해 어슴푸레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 그락카르가 몸을 일으켰다.

수많은 오크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곧 그를 따라 일어났다. 싸움이 다가온 것을 안 것이다. 그들이 적의 기세를 느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크흐..”

그락카르가 진한 웃음을 띠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온 것인가. 형제.”

캅카스가가 옆에 서며 물었다. 그락카르가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직 다른 오크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서쪽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힘의 덩어리를 말이다.

그락카르가 그 힘의 덩어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이라도 빨리 달려가고 싶지만 인내했다. 이번 싸움은 그들의 신인 카록이 그들 모두를 위해 준비해준 것이다. 그런 것을 먼저 가서 혼자 즐겨선 안 된다.

물론 전장까지만 같이 이동할 뿐 싸움이 시작되면 선봉은 무조건 자신의 것이었다.

-너 죽는다.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그락카르의 머릿속을 울렸다.

“왜 그러나 형제.”

갑자기 멈춘 그락카르를 보며 누군가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락카르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매일 꿈속에서 듣는 한상의 목소리지만 그락카르로서는 오랜만에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이상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렇군. 오늘 난 죽는군.’

그 자신이 오늘 죽을 것이란 사실이 말이다. 아마 이미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 그도 한상이 죽는 것을 경험한 적 있기에 한두 번 죽어서는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상이 두 마디 말했으니 40~50번 정도 죽은 것일까?

“크흐..”

그래서 기뻤다. 자신이 죽을 정도의 강자가 저기에 있다는 거니까.

***

그럴 줄 알았다. 이 싸움에 미친 오크놈. 47번의 죽음을 지켜보고 겨우 오늘 말을 전할 수 있었는데 죽는다는 거 알고 더 좋아하면서 날뛰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더 빨리 죽었다.

역시 미친놈은 정상적인 말로는 설득할 수 없다. 그래도 그 동안 많이 똑똑해진 모습을 보였기에 한 번 믿어봤는데 역시나 미친놈은 똑똑해져도 미친놈이다.

내일은 다른 말로 시도해봐야겠다.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워낙 미친놈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제대로 된 행동을 할지 상상이 안 된다.

‘적의 우두머리랑 1:1로 싸우면 더 재밌다.’정도의 내용이 좋을 거 같다. 그락카르는 여섯에게 다구리 당해서 죽으니까. 아직은 그렇게 긴 말을 전하지 못하니 어떻게든 줄이든가, 더 길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그런데 그 괴물을 1:1로 싸운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

‘난 아베네고다.’

그락카르에게 스스로를 아베네고라 소개한 비텔교 신도. 그는 정말 강했다. 수호자가 함께 하기에 강한 것이 아니라 그 하나의 힘만 따져도 강했다. 그락카르가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 싸움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장에 나타난 모두를 아무리 살펴봐도 산자는 그 하나밖에 없었다. 비텔교 신도는 소수가 살아있던 것이 아니라 단 하나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홀로 살아남아 ‘자유를 수호하는 자’로 수호자를 불러내고, 그 중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공부해 시체를 일으킨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홀로 남아 그 긴 싸움을 이어왔다니.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유나, 맹연, 해역이 전부 죽고, 모든 인간이 죽은 세상을 홀로 버텨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런데 아베네고는 그걸 해냈다.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오랜 시간을 버텨냈고, 홀로 세상과 싸워 이겨냈다.

이겼다. 그는 분명 이겼다. 종족 연합이 사라진 지금 이번 전투를 이기고 그락카르를 죽인다면 세상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예 사라지는 거니까.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문제는 그락카르 놈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거다.

분명 아베네고가 이겼는데 이긴 그 하루가 사라지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하루는 그락카르가 죽지 않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오랜 시간 인내하고 전진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도착 후의 달콤한 과실을 취하지 못하고 도착하는 순간을 영원히 반복한다니.

하루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나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아베네고의 처지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불쌍하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미안하다. 지금부터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죽이려 할 거니까. 그락카르가 그를 죽여야 이 하루가 끝나니까.

똑같이 비텔님을 모시는 처지니 같은 편인데 그 같은 편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그지 같다.

***

-전사다운 1:1을 위해 다른 형제들에게 도와달라고 해라. 저쪽 우두머리는 너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 그와의 1:1 싸움은 정말 즐거울 거다.

“크흐.. 정말이냐?”

-그래. 정말이다. 비텔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을 걸었으니 진실이겠지. 캅카스가, 미흐로크. 함께 가자.”

“알았다. 형제.”

“알겠다.”

여기까지는 좋다. 여기까지 설득해내는 건 여러번 성공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베네고와 그락카르의 1:1 싸움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수호자. 인간 네가 가진 수호자라는 힘 아닌가.”

이게 문제였다. 수년 간 나를 지켜봤기에 보자마자 수호자를 알아봤다. 그리고 수호자는 아베네고가 가진 능력이니 수호자 다섯이 모두 아베네고의 힘이며 그들이 함께 싸워야 1:1이라고 주장하는 게 문제였다.

“저들은 하나다.”

수백 가지 방법으로 그락카르를 설득해봤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아베네고를 만나는 순간 수호자를 알아봐버리니까. 그걸 알아 본 순간 내가 한 어떤 설득도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오늘도 그락카르 놈은 아베네고와 다섯 수호자 전부에게 덤벼들었다. 또 죽겠군. 이게 649번째 죽음이던가.

이제 싸우다가 실력이 처지는 미이라와 네크로맨서가 빠지고 4:1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나절 동안 치열하게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겠지.

차라리 미이라와 네크로맨서가 빠지기 전에 죽여서 아베네고에게 데미지를 준다면 조금이나마 이길 가능성이 생기겠지만 그 전법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왜냐고?

-왼쪽에서 공격이 날아온다.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돌진하면 네크로맨서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라고 해봐야,

“크워어어어억!”

지금처럼 무시하며 직접 왼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싸움에 대해 내가 훈수하는 순간 그락카르는 청개구리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훈수해서 움직여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이 미친놈은 그런 것도 기가 막히게 알아채서 절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이제 곧 죽겠군.

아베네고가 강렬한 번개를 뿌리며 근접해왔다. 아베네고가 근접공격을 해온다는 것 이 싸움을 곧 끝내겠다는 뜻이다. 멀리서 공격하는 원거리타입 같지만 근접전투도 괴물처럼 잘하는 녀석이다.

차라리 아베네고와 대화가 가능했으면 좋겠다. 설득해서 다른데 보내버리던가 하게 말이야. 그락카르와 달리 쟤는 말이 통할 거 아냐.

< 217 비텔교 vs 오크 > 끝

ⓒ 냉장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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