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216화 (216/228)

< 216 비텔교 vs 오크 >

다툼, 싸움, 분쟁, 전쟁... 세상에 폭력이 없는 세상이 존재할까?

가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인간은 폭력의 동물이다. 살기위한 사냥을 제외한 폭력을 행사하는 건 인간, 그리고 인간을 닮은 영장류뿐이다.’

나도 잠깐 그런 생각에 감화되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살기위한’의 범위가 살아가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살기위한’은 학창시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범위가 넓었다.

당장 내일 음식을 사먹을, 집값을 낼 돈이 사라진 순간 내 ‘살기위한’은 더 범위가 넓어졌고, 군대 선임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고,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시 한 번 더 넓어졌다.

살기위해 날 죽이려던 청부업자들을 죽였다. 살기위해 사람들이 비텔님의 ‘진실한’ 신도가 되는 것을 방관했다. 살기위해 다른 신의 신도를 빼앗았다. 살기위해 지구를 침략한 이종족을 죽였다.

내 ‘살기위한’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그리고 지금에 와선,

“가이스 파로우에 대한 감시체제를 완벽히 갖췄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 끝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넓어졌다.

-비텔님께선 자유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주, 사제장, 성전사장이란 불공평한 존재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들이 비텔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이스 파로우가 자신의 교회에서 추종자들에게 늘어놓는 설교가 수만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이곳에서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내용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이스 파로우는 나를 반대하는 세력 중 하나다.

잘못 말한 게 아니다. ‘세력 중 하나’가 맞다. 그런 세력은 수십, 아니지. 수백 개가 있으니까.

과거 읽었던 책 중 ‘80-20 법칙’에 대해 다룬 책이 있었다. 그 책에는 어떤 완벽한 세력도 20%의 반대파가 존재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20%의 반대파를 솎아내면 새로운 20%의 반대파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했다.

완벽하게 8:2의 비율은 아니어도 얼추 맞는 말이긴 한 거 같다.

지구를 침략한 이종족에 대한 토벌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적은 줄어들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었다. 내부의 적이 말이다.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말이야. 비텔님의 말씀을 그대로 세상에 전했고, 신도들에게 ‘군주의 위엄’이란 혜택도 주고 있으며, 신도들에게서 받는 것도 대부분 그대로 돌려주고 있다.

그런데도 저런 반대세력이 우후죽순 일어났다. 비텔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 것들이 비텔님의 생각을 안다고 떠들면서 사람들을 선동했다. 그냥 내가 권력을 갖게 된 것이 배 아픈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기도를 들어보면 그들 중 반수 이상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지 이해는 못하겠다. 처음엔 설득을 해보려했지만 곧 설득이 불가능한 자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대부분이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수많은 증거를 무시하고 스스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의 모습이란...

매주 머릿속을 울리는 내 설교는 들리지도 않는 건가? 왜 비텔님을 만난 적도, 축복을 받은 적도 없는 일반인의 말을 듣는 걸까. 비텔교의 정식 인가를 받은 축복받은 사제들이 세계 곳곳에 있어 누구나 만날 수 있을 텐데도 말이야.

이건 정식 자격증을 딴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민간요법을 더 믿는 꼴이잖나. 저렇게 많은 수가 말이다.

-한상은 악마의 화신입니다. 그는 비텔님을 격리하고 그분의 자녀들과의 연결을 막고 있습니다. 저는 비텔님의 화신으로서 그분을 악마의 손에서 구출해야 하는 사명을...

-한상은 비텔님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가 사라져야 우리는 비텔님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비텔님께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한상입니다.

-비텔께서 우리에게 더욱 큰 힘을 내리셨는데 한상이 중간에서 그걸 독차지 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래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했던 힘입니다. 전 한상의 방해를 지나쳐 조금이나마 비텔님과 교감하여 이런 힘을 갖게 되었...

완전한 일반인부터 비텔님의 은총덕분에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여 힘을 갖게 된 초능력자까지 날 적대하는 자들은 다양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양호한 거다. 그냥 감시를 하는 정도에서 그치기만 해도 되는 자들이다.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 자들이니까.

나에 대한 반대의견 표시를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이 있다. 그냥 사제들이 파견된 교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정도라면 무시하고 말겠지만,

-진정한 비텔교를 위한 우리의 성전은 비텔님에 의해 축복받고 있습니다. 이 성전에서 목숨을 잃는 자는 약속 받은 땅으로 가 튼튼한 노예 100명과 마르지 않는 샘, 그리고 매일 곡물이 자라나는 땅을...

-사제는 악마 한상의 수족입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비텔님의 축복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사제를 죽여 한상의 힘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일주일 후 이 시간, 세상은 우리들의 비텔님에 대한 신심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순교는 배교자 한상에 대한 처벌의 시작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

저런 과격분자들이 문제다. 실제로 실행에 옮겨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 저들 대부분은 비텔교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라 토속 종교나 자기들이 믿던 종교와 결합하여 변질시킨 자들이다.

순수하게 받아들였다면 순교니 성전이니 100명의 노예 같은 말은 하지 못했겠지. 노예는 도대체 어따 쓰려고 그렇게 원하는 거야. 죽음 후의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면 노예가 뭔 필요야. 혹시 성노예가 필요한 건가. 성노예는 가져서 뭐해 도대체.

정말 세상은 알면 알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아이안에 대한 토벌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아이안은 과격분자 중에서도 가장 위험 자들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하며 실제 테러도 이미 한 번 저지른 자들이었다. 즉, 날 열 받게 만든 놈들이다.

열 받은 나는 벤센에게 아이안에게 벌을 내릴 준비를 하라고 했고, 그런 벤센이 말하는 ‘토벌 준비’는 아이안의 모든 것을 뿌리 뽑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시작한 이상 한 명도 빠져나가서는 안 됩니다.”

“아이안에 소속된 자는 단 하나도 우리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벤센이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저들에 의한 피해는 점점 커질 것이다. 죄 없는 비텔님의 아이들이 상처 입을 것이다. 난 교주로서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

“시작하세요.”

“네.”

벤센이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요원들에 의해 세상에 퍼져 있는 성전사들에게 작전 시작 명령이 동시에 하달되었다. 그리고,

“1차 목표 완료!”

단 1분 만에 1차 목표가 달성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연이어서 ‘2차 목표 완료’와 ‘3차 목표 완료’라는 요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분 만에 작전이 완료되었다. 상대는 일반인이다. 축복을 받고 훈련을 받은 성전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토벌 작전 완료되었습니다. 토벌 대상 179명 암살 완료, 우리 측 피해는 0명입니다. 철수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네.”

암살, 우리가 행한 것은 테러 용의자를 체포해 감옥에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암살이었다. 내 ‘살기위한’의 범위는 여기까지 넓혀져 있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에 대한 암살을 가벼운 고민만 하고 지시할 정도로.

이게 최선이다.

저들을 체포해 감옥에 보내봐야 반성하고 생각을 고치기는커녕 더욱 완성되어 더 큰 적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감옥 안의 다른 자들까지 동지로 받아들이겠지.

그러기 전에 뿌리 뽑아야 했다. 처음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고 뿌리를 뽑아버린다면... 그러면 암세포는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세상을 위한 것이다. 비텔님을 위한 세상, 그분의 아이들을 위한 세상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분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다른 테러집단에 대한 토벌을 이어가 주세요.”

“네. 철저히 하겠습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위한’ 것이 아니다. 세상, 세상을 위한 것이다. 세상이 ‘살기위한’ 것이다.

***

언제부터, 누가, 왜 그렇게 붙였는지 모르지만 대륙은 모든 종족에게 ‘킨데아’라 불렸다. 신에 의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전에는 종족마다, 혹은 지역마다 언어가 전부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대륙을 지칭하는 단어만큼은 킨데아였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대륙의 이름을 ‘비텔리아’로 바꾸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비텔님의 땅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테니까.”

-승리할 것입니다. 모든 종족이 가짜신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신, 비텔님을 받아들일 것이고 대륙은 비텔리아라 불릴 것입니다.

-비텔리아... 좋은 이름입니다. 그분의 은총이 가득한 이름입니다. 드디어 대륙이 진정한 이름을 얻게 되는군요.

아드리오와 벤 자칸은 이미 대륙의 이름이 비텔리아로 바뀐 것처럼 말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일곱 종족 중 여섯 종족을 쓰러뜨렸다. 이제 하나의 종족만 남았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베네고의 생각은 달랐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오크 하나만 남았지만 그 오크가 다른 여섯 종족보다 강해보였다.

‘그래... 끝으로 향하는 길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1,000년의 삶에서 아베네고는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항살 가시밭길이었고, 그 가시도 강철로 만든 가시였으며, 그는 항상 맨발이었다.

발바닥은 항상 피투성이였고, 고통 없는 휴식은 잠시도 없었으며, 성공은 잠시였고, 실패는 영원했다. 좌절과 무력감이 항상 그를 짓밟았다.

그런 아베네고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강적을 만나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락카르와 그가 이끄는 오크를 상대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쉬운 상황이며 쉬운 길이기도 했다. 과거 그가 걸었던 길은 항상 넘거나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벽에 막혀 있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그락카르와 오크는 힘들지만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앞으로 정화될 세상을 생각하면 가슴에 기쁨만이 가득합니다.

아드리오가 ‘정화된 세상’세상을 언급했다. ‘정화된 세상’이란 간단했다. 모든 신이 사라지고 비텔만이 가득한 세상.

아베네고의 지난 1,000년은 그저 복수심만 가지고 모든 생명을 말살하겠다며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당했던 것처럼 한 번 망한 후 신을 바꾸게 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다.

한 때 세상의 모든 인간은 비텔만을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베네고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몰란을 믿고 있다.

아베네고와 다섯 수호자는 자신들이 당했던 그대로 세상을 정화하기로 계획했다. 자신들이 당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로 말이다.

모든 종족을 완전히 망하게 한 후 자신들처럼 극한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원래의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비텔을 받아들인 자만을 살릴 것이다. 그리고 종국엔 모든 종족이 비텔을 믿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아베네고가 지난 1,000년간 품어왔던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길에 들어섰다. 과거에 걸었던 절망만 가득했던 길이 아니라 너머의 목표가 보이는 길에.

“하핫. 마지막으로서 나쁘지 않군.”

-비텔님의 세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마지막.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아베네고는 흙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욱신.

아베네고가 살짝 몸을 떨었다. 1,000년이 흘러 익숙해진 고통이지만 끝이 다가온다고 생각해서인지 점점 고통이 심해지고 버티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항상 아베네고를 지켜보는 이올라가 그의 작은 변화를 눈치 채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어봤다.

‘아프구나. 지금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프고 아프다.’

“괜찮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생각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이 보이는데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버티고 버텨서 비텔님께 마지막 선물을 주고 휴식을 취하는 거다.’라는 생각. 비텔을 외톨이로 둘 수 없다는 동기가 사라진 아베네고는 그 생각 하나로 극통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마지막 선물. 그것을 위해서 말이다.

‘비텔이시여. 큰 선물을 안고 당신께 찾아가겠습니다.’

< 216 비텔교 vs 오크 > 끝

ⓒ 냉장고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