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비텔교 vs 오크 >
‘가까운 인간들의 도시를 장악해라.’
산맥 두 개를 책임지는 사도급 드워프 아다모가 지구에 도착해 파르펨을 통해 처음 들은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그게 다였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자리 잡은 연합에게서 메시지가 쏟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 당황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가까운 도시를 공격했다.
인간들이 발전된 핸드캐넌을 쓰고 있어서 놀라긴 했지만 핸드캐넌의 위력이 약하고, 수에 비해 전사의 수가 적고 수준이 떨어져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굉장히 크고 발전한 도시였다. 물을 뿜어내는 장치와 음식을 보관하는 시원한 상자, 말이 필요 없는 마차 등.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아다모로서는 사방에 조사하고 연구해야 할 물건들이 가득했다.
아다모는 같이 온 드워프 몇과 함께 인간들의 장치를 분해해보며 연구했다. 그렇게 약 일주일이 지났다.
“연락이 왔다.”
“늦군.”
500 파르펨을 이끄는 키리가 찾아왔다. 처음 도착해 50의 파르펨이 사방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뿌린 후 쓰러졌다. 그때 반나절을 기다려 겨우 수신한 메시지가 ‘가까운 인간들의 도시를 장악해라.’라는 것 하나였다.
그리고 도시를 장악한 후 50의 파르펨이 돌아가며 신호를 발산했다. 한 번 신호를 보낸 파르펨은 기력이 다해 일주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에 매일 50씩 번갈아가면서 신호를 쏘았지만 응답이 없어 며칠 전부터는 무리해서 100씩 신호를 쏘고 있었다.
“뭐라고 하던가. 우리가 외진 곳에 떨어졌다던가?”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그쪽 파르펨들과 말을 주고받은 것 아닌가?”
“연락을 보낸 동포가 저번에 우리에게 연락을 보냈던 그 동포다. 다른 동포의 연락은 없었다.”
“같은 파르펨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일주일, 저번에 연락을 줬던 파르펨이 기력을 회복해 두 번째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다모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각 부대엔 최소 100이상의 파르펨이 동행하도록 했을 텐데 왜... 설마 파르펨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분해해 만지고 있던 냉장고 부품을 저리 던졌다. 이런 걸 만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뭔가 문제가 있군.”
“그럴 가능성이 높다. 동포에게 받은 연락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뭐라고 했지?”
“지하로 숨어들어라. 살아남아라.”
“또 다른 말은?”
“없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지구로 오기 전 아다모는 선발대가 승승장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세계의 비텔교를 처단하기 위한 부대’는 총 400만으로 계획되었고 2년간 순차적으로 투입되었으며 자신이 거의 막바지 병력이었다.
이미 380만이상의 부대가 넘어와 있었다. 그것도 각 종족의 엘리트만 뽑아서 보냈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단일 세력으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력이다. 그러니 아다모는 선발대가 인간들을 밀어내 많은 지역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건 아다모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종족 연합의 지도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기에 아다모가 이끄는 2만의 병력 중 반인 1만을 드워프로 구성한 것이다. 선발대가 점령한 지역에 기지를 세우고 기반시설을 만들라고 말이다.
“살아남으라니.”
넘어오면 당연히 이미 선발대에 의해 점령된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줄 알았다. 그들에게서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전쟁은 아다모나 지도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으라.’라는 말을 할리 없으니까.
“아무래도 정찰대를 꾸려야...”
구우우우웅.
상황 파악을 위해 정찰대를 꾸려야겠다는 말을 하려던 아다모가 말을 멈췄다.
“느꼈나?”
아다모의 질문에 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신이 가진 기운을 뿜어내야 한다. 그리고 공기 중엔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무속성의 기운이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기운을 소비하는 능력을 사용하면 당연히 대기에 가득 차 있는 기운이 뿜어져 나온 그 기운에 밀려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기운에 민감한 이들은 그 파동을 느낄 수 있는데 사도급인 아다모와 대족장급인 키리는 당연히 그것들을 느낄 수 있다.
일어나는 파동의 세기에 따라 어느 정도 위력의 능력이 사용되었는지 짐작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살아남으란 말이 이 파동과 관련 있을 것 같군.”
방금 일어난 파동은 아다모나 키리가 살면서 느낀 어떤 파동보다도 거대하고 강력했다.
아다모가 도끼를 집어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은 소란스러웠다. 파동이 너무 강하다보니 아다모와 키리 외에도 그것을 느낀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적이 온다! 전투를 준비해라!”
아다모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동포는 숨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기운의 크기를 생각하면 동포의 말이 옳다. 이 정도 기운을 가진 자를 상대할 자는 여기에 없다.”
키리가 아다모를 쫓아와 말했다.
“어릴 적 내 할아버지께서 전장에 나서기 전에 이런 말을 하셨다. ‘전쟁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1만이 넘는 오크와의 싸움에서 돌아가셨지만 오크를 물리치셨다. 덕분에 살아남은 우리들은 산맥에 남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숨는다고? 우리는 2만이다. 어디에 숨지? 이 도시의 주인은 인간이다. 적어도 우리보다 이 도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 숨어봤자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싸우는 것.”
“하지만 그 파동은... 감당할 수 없다.”
키리가 방금 느낀 파동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빠르고 강하게 스쳐지나가던 파동. 속도가 빠르다는 건 상대가 힘을 천천히 끌어올린 것도 아니고 한 번에 뿜어냈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파동을 만들어낼 정도의 기운을 한 번에 뿜어낼 수 있는 강자. 도대체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카하핫! 드워프의 싸움을 본 적 있나? 우리는 항상 3~4배는 더 크고, 힘이 더 센 적을 상대로 싸워야 했지. 우리보다 강한 적과 싸우는 건 이미 익숙하다.”
키리의 두려움을 눈치 챈 아다모는 일부러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마음속도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드론 백여 대가 달랏으로 날아갔다. 달랏에 거의 근접한 드론 대여섯 대가 파괴되었지만,
-정보수집 완료. 1조 브리핑 시작합니다. 300m 지점, 풍향 서북, 풍속 13m/s, 다음 변환점 700m 지점...
이미 드론들은 정보수집을 마쳤고 그 정보가 정보부에 의해 성전사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저격을 주 공격수단으로 사용하는 성전사에게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정말 중요한 정보다. 원래는 저격수를 보조하기 위해 관측수가 따라다녀야 하지만 성전사가 가는 지역은 관측수가 살아남기 힘든 지역이 대부분이다 보니 드론으로 대신 정보 수집을 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부가 관측수역할을 해주고 있다.
정보부는 드론의 정보 전달 외에도 위성, 고고도드론 등을 이용해 전장 정보를 수집해 수시로 전달해준다. 게임과 비교하면 성전사들은 맵핵을 킨 거나 다름없다. 덕분에 정보부의 보조가 시작된 이후 성전사의 전투력과 생존력이 꽤 올라갔다고 한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성전사가 450개조나 되기에 정보부도 수백 명이 지원 나왔다. 그들은 성전사를 10개조로 쪼개 개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좀 더 잘게 쪼개서 지원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성전사가 늘어나는 속도를 정보부의 규모가 못 쫓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달랏에서 1.5km 떨어진 지점. 성전사들의 평균 초탄 명중률은 1.5km에서 80%, 2km에서 50%, 2.5km에서 30%정도 된다. 완벽한 초반 제압을 위해서는 달랏에 1km까지 접근하는 것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대족장급 이상이 있기에 그 정도로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
초탄이 조금 빗나가도 이종족에게 가까이 가서 공격할 기회를 내주는 것보다는 낫다.
이종족들도 점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를 발견하고 전투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드워프가 좀 많군. 이번 이종족은 드워프가 우두머리인건가. 이종족의 병력 구성은 보통 부대의 우두머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우두머리와 같은 종족의 수가 가장 많으며 나머지는 그 우두머리가 선호하는 종족들로 채워진다.
오늘 운이 좋군. 가장 까다로운 엘프의 수가 적다. 엘프의 녹색막은 성전사의 저격을 막아낼 수 있기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적이다.
자리를 잡은 성전사들이 저마다의 자세를 잡으며 저격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종족들이 1만이상 모습을 보였을 때,
“시작하겠습니다.”
“응.”
“준비된 성전사부터 자유사격 시작.”
타타탕!
해역이가 명령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총이 불을 뿜었다. 누가 보면 자유사격이 아니라 일제사격인 줄 알겠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모습을 보이고 있던 이종족 수천이 한 번의 사격으로 쓰러지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종족들은 영문도 모르고 저격에 당했다. 지구에 온지 얼마 안 된 이종족인 저래서 상대하기 쉽다. 총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전투 시작 전에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보인 채 모여들고 몸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적은 살아있는 표적판이나 다름없지. 그리고 말했다시피 우리 성전사의 1.5km 거리에서의 초탄 명중률은 80%를 넘는다. 그리고 이발째부터는 거의 100%지.
타타타타타타타탕!
사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살.
학살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모습을 보였던 이종족 모두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 중에 저격을 버텨낸 이들 몇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대족장급은 아니고 족장급 정도 될까.
하지만 족장급도 이쪽과의 거리를 절반도 줄이지 못하고 쓰러졌다. 리자드맨이든, 녹색막을 쓰고 달려오든 상관없었다.
이쪽은 5,000명이었고 그들 모두가 이번에 개발된 저격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존 50구경 탄을 사용하던 것에서 한 단계 치수를 올려 파괴력과 관통력을 강화했다. 총신 또한 더욱 두껍고 무거워졌기에 기존 저격총보다 무게가 두 배 이상 무거워졌지만 그럼에도 금방 총신이 과열되기에 식혀가며 쓰기 위해 모든 성전사가 두 정씩 휴대하고 있다.
그런 총의 연발을 얼마 전에 도착해 이쪽 무기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종족이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확실히 현대화기는 수가 많아질수록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성전사의 수가 5,000이나 되니 2만이나 되는 이종족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겨우 상황을 파악한 이종족들이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이종족이 쓰러진 뒤였다. 숨어 있는 녀석들도 가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
타타타탕!
성전사들이 놓치지 않고 저격했다.
이종족들이 몸을 숨기자 성전사들이 무기를 바꿔들었다. 정보부가 하늘위에서 찍은 영상으로 숨어있는 이종족들의 위치를 확인해 성전사들에게 알렸고 90mm무반동포나 80mm박격포 등이 이종족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종족들은 벽 뒤에서 혹은 건물 안에서 죽어나갔다.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다연장로켓포 달고 다니는 차량도 동원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크아아아아아아아앗!”
내게 들릴 정도로 크게 고함치며 달려 나오는 드워프가 보였다. 여전히 저격 대기를 하고 있던 성전사들이 그 드워프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드워프를 감싸고 있던 녹색막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엘프는 강한 녀석이 없는 모양이다.
녹색막이 전부 깨지고 총알이 드워프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그런데 별 영향이 없는지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대족장급 이상의 적이다.
-대족장급으로 추정되는 드워프 출현. 성전사 사격 금지. 드래곤킬러팀 사격 준비.
벤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도 직접적으로 들렸다는 건 개별 회선이 아니라 모든 성전사와 연결되어 있는 회선이란 뜻이다.
드래곤킬러.
무기의 위력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전사들의 팀을 말한다.
그락카르가 붉은 빛을 도끼에 씌워 파괴력을 강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성전사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총알도 강화할 수 있는 이들을 모아 만든 팀이다.
강화율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내가 강화시켜줬을 때는 꽤 강한 능력을 발휘했다. 걔 중에는 한 방으로 인형 상체를 아예 폭파시켜버리는 이도 있었다.
-드래곤킬러팀 사격 개시.
벤센의 지시와 함께 성전사 5개조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이건 미리 약속해둔 사항이기에 나나 해역이의 지시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타타탕!
-사격 중지. 표적상태 확인. 표적 생존 확인시 자율 사격.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대족장급 이상으로 보이는 드워프가 드래곤킬러 5개조의 첫 사격으로 걸음을 멈춘 것이다. 집중해서 봤더니 55개의 총알 중 30발 정도가 드워프의 몸에 박혀 들어갔고, 그 중 20발 정도가 박힌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폭발하거나 드워프의 몸에 불을 붙이거나 얼리고, 전기를 흘리는 총알 등 다양한 공격이 가해졌다. 충격이 상당한지 드워프가 비틀거렸다. 그걸 본 드래곤킬러팀이 다시 사격을 가했다.
이번엔 멈추지 않고 공격이 계속 이어졌고, 드워프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다가 땅에 쓰러졌다. 그 드워프를 구하기 위해서인지 숨어있던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왔지만 성전사들의 사격에 의해 전부 사살 당했다.
-압도적이군요. 이정도 위력이라니... 이 세계의 인간은 정말 무섭군요.
카일라가 감탄했다. 무섭지. 인간은 정말 무섭지.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쓰러졌던 대족장급의 드워프가 다시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달려왔다.
-생명을 불사르고 있군요.
‘생명을 불사른다.’ 죽음을 각오하고 힘을 쥐어짜내는 드워프를 말한다. 평소보다 상당히 강력해지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에선 ‘지랄발광’이라고 불린다던가. 저것 때문에 큰 피해를 보는 곳이 많다.
‘지랄발광’을 시작하면 이종족 중 최강이 되는 게 드워프라서 말이야.
“전 성전사 집중사격.”
-전 성전사 집중사격 실시.
내 말을 들은 벤센이 바로 전체 회선으로 지시를 내렸고,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드워프는 ‘생명을 불사른’ 대가로 우리에게 약 500m를 더 접근 한 후 쓰러졌다.
다음에는 내 강화 없이 싸우게 해봐야겠어. 그런데 다음이 있으려나? 지구에 넘어온 이종족은 대부분 토벌됐고, 저쪽 세계가 어지러워져서 새로 넘어올 녀석들이 없을 텐데 말이야.
이종족들이 힘내서 한두 번만 더 보내줬으면 좋겠네.
< 213 비텔교 vs 오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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