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비텔교 vs 오크 >
드디어 그락카르 놈이 다른 종족과 조우한 덕분에 저 세계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다. 저쪽 세계의 비텔교도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 가공할만한 수의 시체라니.
“카일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시체의 수는 몇이나 되죠?”
-시체에 남겨진 감정의 크기가 평균이라고 생각했을 때 약 20만 정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20만. 사실 20만도 엄청난 수다. 그런데 내가 본 저쪽 세계에서의 시체는 20만은 아득히 넘어선 수였다. 전장을 대충 한 번 훑어본 것이 전부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500만, 많으면 1,000만을 넘을 지도...
그러면 카일라급의 네크로맨서가 50명이나 있다는 건가?
“카일라가 있던 세계의 마스터급 네크로맨서는 몇이나 되나요.”
-네크로맨서 마스터 말씀이십니까? 흐음...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자만 열일곱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열일곱. 택도 없는 수다. 카일라가 모르는 마스터까지 합쳐 50이 넘는다고 해도 그들 모두가 저쪽 세계에 소환되어 비텔교에 봉사하고 있을 리가 없다. 도대체 누가 저 많은 수의 시체를 일으켜 세운 걸까.
... 나라면, 그래. 내가 카일라의 능력을 익힌다면 가능하다.
내가 가진 기운의 원천은 포인트.
완벽하게 내 것인 기운과 별개로 포인트를 기운으로 치환하여 보충할 수 있다 한 번 사용하면 영원히 사라지긴 하지만... 내가 가진 포인트의 단위가 조 단위로 진입한지 오래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리 펑펑 써대도 수십억 신도로부터 훨씬 많은 포인트를 지원받는다. 그런 내가 카일라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내가 원래 가진 기운을 다 쓴 후에도 포인트를 기운으로 치환해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런 방식을 반복하면 500만이 아니라 5,000만이라도 가볍게 일으킬 수 있다.
그래. 카일라가 거대 괴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네크로맨서로서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했지 않은가. 실력은 낮으나 기운은 넘쳐나는 네크로맨서가 저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번에 봤던 성전사가 따르는 존재가 있다면, 그 성전사의 실력으로 보아 따르는 존재도 보통이 아닐 터, 저쪽 세계의 교주일 가능성이 높다.
힘들었겠군. 비텔교를 제외한 세상 모두가 적인 세계에서, 전력의 차를 메우기 위해 네크로맨서의 비술을 익혀가며 수백 년간 싸워왔구나.
나도 까딱하면 저렇게 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비텔교를 이단으로 지정하고 적대시 했다면... 정말 힘든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물론 세상이 세상인만큼 종교의 힘이 예전보다는 약하기에 저쪽 세계처럼 멸망당하는 극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말이야.
나도 쓸 수 있을까? 가능할 거다. 저쪽 세계의 비텔교 신도가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쓸 수 있다면 나도 쓸 수 있겠지. 연습해봐야겠어. 능력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락카르의 전투를 보면서 경각심을 가졌다.
역시 우리를 가장 위협할 적은 지금의 오크다. 예전의 오크라면 그리 무섭지 않을지도 모른다. 1,000~20,000정도의 규모로 뭉쳐다니며 싸우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오크는... 무섭다.
그락카르가 모든 오크의 대족장이 됨으로써 모든 오크가 기존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남부라는 거대한 터전을 얻었고 계급이 철폐되고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모든 오크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걸 주술사들이 조정하고 있다.
주술사. 오크들의 현자. 150년 전 남부에서 쫓겨났던 그들은 이번에 각자가 따르는 대족장과 함께 남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락카르의 밑으로 들어가게 됐지. 그들은 대부분 남부에 남아 남부의 발전을 돕기로 했다.
현명한 그들이 있는 이상 남부는 빠르게 발전할 거다. 그리고 발전한 만큼 오크의 수도 늘어나겠지. 식량과 환경만 받쳐준다면 오크의 팽창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어날 거다.
태어나 2년 만에 성체가 된다. 튼튼한 몸이 있고 단순하기에 그락카르라는 대족장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다. 그리고 그들을 주술사가 효율적으로 사회발전에 이용한다.
정말 남부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고 인구는 순식간에 불어날 것이다. 매일 전쟁을 하며 죽어나갈 테지만 죽는 수보다 태어나는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즉, 지금의 오크는 병력이 무한 생산되는 본거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무한으로 생산되는 병력을 그락카르가 이끌고 지구로 쳐들어온다면...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그락카르 놈이 대포에 맞은 후 ‘크흐..’하고 한 번 웃은 후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하면... 200%의 힘을 가진 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오크 대부대를 만나게 되겠지.
어우. 무섭다. 공포영환가. 꿈속에서 간접체험 했더니 더 무섭다.
‘성난 자의 외침’을 쓰고 달려드는 그락카르와 숲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오크들. ‘군주의 위엄’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오크들이 ‘성난 자의 외침’으로 한 번 더 강화되니 일반 전사가 대전사급의 무력을 보였고 족장은 대족장급, 대족장...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그락카르 놈. 말도 안 되게 강했다.
처음에 싸웠던 비텔교의 강자 둘을 상대로 이긴 것은 물론이고 이종족의 강자들을 무더기로 상대하기까지 했다. 여섯을 동시에 상대했었지.
그들 하나하나가 사도급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여섯의 사도를 상대로 싸우다니. 정말 미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도 안 되게 잘 싸우기까지 했다.
밀리긴 했다. 아무리 그락카르라고 해도 상대가 여섯이니까. 치명상도 여러 개 입었고,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상황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겼다.
이종족 사도들이 도망간 것이다. 멍청한 겁쟁이 놈들. 그냥 싸우면 그락카르를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계속 나타나는 오크들로 인해 병력들이 학살당하다시피 하니까 결국 후퇴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이 그락카르에게 죽었고 말이다. 트롤과 리자드맨이었지.
트롤은 느렸고, 리자드맨은 익숙해서 금방 잡아 죽였다. 그락카르 놈은 리자드맨의 스페셜리스트니까. 왜 자길 따라 오냐고 다른 놈들 쫓아가라고 리자드맨이 소리쳤지만, 그락카르가 그런 걸 신경 쓸 놈은 아니지.
여하튼 어제 진행된 삼파전의 승리자는 오크.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삼파전의 승리자도 오크가 될 거다. 말했다시피 곧 남부를 정리한 대군주들이 병력을 이끌고 북으로 올라올 것이고, 주술사들은 남부를 효율적으로 다스려 병력을 생산해 끊임없이 북으로 보낼 것이다.
지금 600만에 근접한 오크의 수도 몇 년 안에 1,000만을 가볍게 찍을 거고, 더 시간이 지나면 억 단위도 가능할 거다.
제발 세계정복하고 행복하게 니들끼리 치고 박으며 살아라. 우리 세계로 넘어오지 말고 말이야.
내가 아는 한 오크 놈들에게 우리 세계로 넘어올 능력은 없지만 주술사가 무슨 짓을 할지 걱정스럽다. 일단 저쪽 세계에 우리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증명되었으니까. 전사들은 몰라도 주술사들이라면 그런 비슷한 능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그 세계에 살아. 절대 우리 세계로 넘어오지 말고.
“도착했습니다. 교주님.”
벤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 정지했다. 누군가 달려와 내가 앉은 자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옛날 생각나네. 나도 다른 사람의 문을 열심히 열어줬었는데 말이야.
“저곳입니다.”
벤센이 가리킨 방향으로 약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제법 큰 도시가 위치해 있었다.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은 베트남의 달랏이라는 도시다. 강을 끼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휴양도시였는데 얼마 전 나타난 이종족들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이종족 놈들. 저쪽 세계에서도 죽어라 싸우고 있으면서 여기에까지 병력을 보내다니. 너희 세계에서의 싸움에나 집중해라. 우리 세계는 신경 쓰지 말고 말이야.
“사전 정찰에 의하면 대족장급 2~3, 족장급 5~7, 전체 병력 15,000~20,000입니다.”
정보부의 정찰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아직 사도급과 대족장급을 구별할 능력은 없어서 그냥 사도급, 대족장급 나누지 않고 전부 대족장급으로 부르고 있다. 즉 두셋의 대족장급 중에 사도급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강력한 병력 구성이다. 저런 병력을 여기에 보낼 여유가 아직도 있다니. 물론 그 여유는 이제 없어질 거다. 비텔교와 이종족의 싸움에 오크가 참전했으니까. 오크를 상대하면서 우리 세계에까지 병력을 보냈다간 순식간에 멸망당할걸?
“성전사 하차 완료했습니다.”
“그래. 해역아.”
김해역이 보고해왔다. 뒤돌아봤다. 수백 대의 갖가지 차량에서 내려 무기를 점검하고 있는 5,000 성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듬직하네. 그냥. 개인화기만 있는 게 아니라 90mm무반동포, 80mm박격포 등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화기는 웬만하면 다 있다. 우리가 정해준 건 아니고 각각의 부대를 이끄는 고위 성전사의 특성에 따라 구한 무기들이다.
내가 무기에 대해 잘 모르니까 무기의 선택은 개인에게 맡기는 편이라서 말이야. 성전사들이 요구하면 최대한 들어주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지. 그리고 우리 비텔교가 노력하면 웬만하면 다 이루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달랏 탈환 작전. 투입 450조, 대기 5조, 지휘 성전사장 김해역. 준비 완료됐습니다.”
성전사들의 화기점검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온 상태이기에 혹시 빠진 거 없나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래. 그럼 작전 시작 전 최종 신체능력 점검하자.”
“네. 부탁드립니다.”
김해역을 비롯한 5,000 성전사. 정확히는 5,006명의 성전사가 날 주시했다.
“후..”
잠깐 숨을 가다듬고 집중해 몸속 깊은 곳에 있는 비텔님의 기운을 움직였다. 내 의사에 따라 바로 움직이는 기운, 예전에는 저거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10분은 땀 뻘뻘 흘려가며 시동 걸어야 했다.
온 몸의 모공을 통해 기운이 빠져나오는 상상을 했다. 순식간에 기운이 밖으로 나와 온 사방을 점거했다.
“역시 엄청납니다. 사도님께서 뿜어낸 기운의 밀도 때문에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기운에 민감한 카일라가 말했다. 카일라만큼은 아니어도 해역이나 성전사들도 내 기운을 느끼고 움찔움찔 한다.
들어가라.
내 기운이 성전사들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상상을 했다.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더니 곧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기운들은 성전사들의 몸속에 파고들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텔님의 기운이 만들어놓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간은 포화되어 더 이상 내 기운이 들어가지 못했다.
각각의 성전사의 몸에 자리 잡은 내 기운의 양은 각자가 이미 갖고 있던 기운의 양과 비슷했다. 저게 최선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한 번에 여러 명에게 기운을 넣을 수 있게는 됐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한 명에게 집어넣는 양을 더 늘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것만 해도 제법 괜찮은 효과라고 자부하고 있다. 성전사 각자가 갖고 있던 기운의 2배를 소유하게 되었으니까. 각자의 능력이 두 배 강해지고나 두 배 더 길게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성전사들의 실력은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2배 강해진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카일라가 시체를 움직일 때 기운을 움직이는 방법과 ‘성난 자의 외침’의 효과를 참고해서 만들어낸 오리지날 기술이다.
아마 지금도, 앞으로도 나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카일라의 말에 의하면 엄청 비효율적인, 기운의 낭비가 심한 능력이었으니까.
저렇게 주입된 기운은 1회용이다. 안 쓴 기운을 회수하는 건 가능하지만 성전사가 다 써버리면 아예 사라진다. 하지만 상관없다. 얼마를 집어넣든 넣는 동안에 그보다 많은 포인트를 신도들을 통해 받을 수 있으니까.
나처럼 포인트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능력이지.
“시전 완료.”
“네. 모두 신체능력점검을 시작해라!”
성전사들이 각자 자신의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폈다 접었다 하는 사람도 있고 제자리 점프나, 멀리뛰기, 바위나 나무를 손으로 치는 사람도 있었다.
효율이 좋은 건 아니지만 축복 없이 기운을 우겨넣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신체능력이 강해지기에 변화한 자신의 몸에 적응하는 거다. 오기 전에 몇 번 기운을 집어넣고 훈련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면서 적응하는 게 좋겠지.
비슷한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몸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기운의 양이 상대하기에 그만큼 우겨넣을 수 있는 기운의 양도 더 많지. 한 번 강화하는데 포인트를 2,000만쯤 사용하던가.
즉, 내 몸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기운의 양이 2,000만쯤 된다는 거다. 그래. 내가 축복을 몇 번을 받았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담겨 있어야지.
“점검 완료했습니다.”
“그래. 난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는 거 다들 알고 있지?”
“네. 전부에게 확실히 주지시켜뒀습니다.”
“그래...”
한국에서 움직이지 않고 수호자들만 움직여 이종족을 토벌해왔던 내가 여기에 직접 온 이유. 간단하다. 이번에 새롭게 익힌 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능력으로 강화된 성전사들이 얼마나 강한 적과 싸울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게 이번 외유의 목적이다.
그렇기에 나나 수호자는 이번 싸움에 절대 나서지 않을 거라고 말해뒀다. 물론 거짓말이다. 괜히 실험 한 번 해보자고 성전사들을 희생시킬 순 없기에 위험하다싶으면 나설 거지만 그래도 다들 위기감을 가지고 최선을 대해 싸워줬으면 해서 그렇게 말했다.
성공했으면 좋겠다. 성전사들만으로 족장급까지 잡아본 적은 있지만 대족장급은 상대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나나 수호자들 없이 대족장까지 잡을 수 있다면... 그러면 나도 어느 정도는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30분 후 시작하자. 준비해.”
“알겠습니다.”
< 212 비텔교 vs 오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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