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비텔교 vs 오크 >
“결국 오크까지 참전했군.”
-저들만은 안 오길 바랐는데...
아베네고와 이올라의 시야에 끊임없이 나타나 시체들을 공격하는 오크들의 모습이 담겼다.
오크는 1,000년 전 그들을 가장 많이 괴롭힌 종족이다. 물론 아베네고가 다른 종족을 피해 오크들의 영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오크들에게는 비텔교 외의 다른 자들과의 전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크들이 필사적으로 비텔교를 찾아다녔었다.
그럼에도 아베네고는 복수의 1순위로 오크를 뽑지 않았다. 그저 보이면 싸웠을 뿐 따로 찾아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오크들의 본능이었으니까. 오크의 설계자체가 싸움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비텔교와 싸운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능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베네고가 복수해야 할 대상에서 오크는 가장 밑에 있었다.
그렇다고 오크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복수의 대상은 대상인데 우선순위가 낮을 뿐이다. 이번 전쟁에서 아베네고의 전략은 우선 인간을 멸망시켜 군세의 재원을 확보하고 그것들을 활용해 다른 종족을 멸망시킨 후 가장 마지막으로 오크를 치는 것이었으니까.
“아쉽군. 반년만 늦게 참전했어도 쉽게 이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베네고는 아쉬웠다. 그가 오크를 마지막에 둔 것은 우선순위가 낮아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경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베네고만큼 오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도 없다. 그를 따르는 수천 신도들의 생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오크에 대해 공부해야 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종족. 그게 오크에 대한 아베네고의 생각이었다.
모든 종족이 싸울수록 강해지지만 오크는 특히 그게 더 심하다. 다른 종족은 축복을 받기 위한 루트가 싸움 외에도 다양하게 있다. 그렇기에 전투가 아닌 일반 사제들도 축복을 받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오크는 모든 축복의 루트가 전쟁, 싸움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쟁이 커지고 길어질수록 오크는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더욱 강해지고 위협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따로 빼놓고 마지막에 온힘을 다해 단시일에 멸망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계획 중간에 참전해버리고 말했다.
세상을 지워버리는 일이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져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크게 마음을 쓰진 않았다. 지난 1,000년 간 그의 뜻대로 된 일이 거의 없었기에 계획이 뒤틀리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저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올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종족 연합 지도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 전쟁의 목표 중 하나가 저들이었다. 저들 중 최소 반, 잘 되면 전부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쩔 수 없지. 저런 괴물이 나타난 이상.”
그락카르 때문에 포기해야했다. 아드리오와 벤 자칸의 발이 묶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아베네고와 이올라 둘이서 지도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아베네고가 그락카르에게 시선을 던졌다. 정말 괴물이었다. 벤 자칸과 아드리오를 동시에 상대하는데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두 신의 힘을 몸에 담고 있어서인가?’
비텔과 카록의 힘을 동시에 쓰는 오크. 두 신의 힘을 동시에 받았다고 생각하면 어째서 저렇게 강한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도대체 왜 비텔님께서 오크에게 힘을...’
그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비텔이 오크에게 힘을 준 것일까.
‘새로운 신도의 개척? 카록에 의한 강제?’
여러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비텔과의 대화가 단절된 그에게 정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새로운 신도의 개척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면 저 오크가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 카록에 의한 강제 혹은 그 외의 다른 좋지 않은 사정때문이겠군.’
비텔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리 없다고 아베네고는 확신했다. 비텔만큼 신도를 아끼는 신도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들을 해할 저 오크에게 비텔이 자진해서 힘을 줬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감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분노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저 오크를 죽이고 비텔의 힘을 회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소서. 당신의 종이 그들의 힘의 원천을 전부 없애버리겠나이다.”
1,000년 간 전쟁을 이어오며 아베네고는 참는 법을 배웠다. 그의 적과 절망적일 정도의 전력 차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그가 공들여 키운 모든 군세가 날아갔으니까.
물론 계속해서 지기는 했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행동했기에 ‘죽지 않는 자’라 불리며 북방의 공포로 군림할 수 있었다.
아베네고는 냉정하게 계산했다. 그가 직접 나서서 저 오크를 상대할 경우를 말이다. 이길 가능성 90%. 압도적인 확률이었다. 하지만,
“돌아가자.”
-네.
“알겠습니다.”
그의 선택은 후퇴였다. 10%, 그리고 그 후에 포위당할 확률 30%가 무서웠다. 10번 중 1번은 질 것이고, 10번 중 3번은 적에게 포위당해 쫓기게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죽지 않는 자’의 군세는 아베네고 개인의 힘이다. 아베네고가 힘을 잃는 순간 모든 군세가 힘을 잃는다. 과거에 있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쟁에서 그런 식으로 쉽게 적에게 굴복하고 말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베네고 개인의 생존. 그가 살아있는 한 ‘죽지 않는 자’의 군세도 불사니까.
“끝나지 않는 시체들의 행렬이 너희를 집어삼킬 것이다.”
수천만의 시체가 기다리고 있는 아베네고는 인간들의 땅으로 향했다.
***
“크흐. 크흐. 크흐흐흐..”
그락카르가 피를 쏟아내는 상처를 보며 연신 웃었다. 실제 상처를 입어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두 번째 각성을 하고 남부 지역에 있을 때 듀키츠, 오르히, 마수드, 캅카스가, 미흐로크 등과 동시에 결투를 벌였을 때 이후로 1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상처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처를, 그것도 형제들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는 적에게서 얻었다.
“이거다! 이걸 원했어!”
신나게 웃으며 해골들에게 달려들었다. 적의 공격에 데미지를 입기 시작하니 쉽게 해골을 잡아 부술 수 없었다. 아까처럼 적을 쉽게 죽이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흘러갈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아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아까는 해골의 공격이 귀찮을 뿐이었다면 지금은 위협적이란 것. 그것이 똑같이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전투임에도 그락카르가 훨씬 더 즐겁게 전투를 즐길 수 있게 해줬다.
그락카르는 내팽개쳤던 미로크까지 들고 싸웠지만 저주를 거는데 성공한 아드리오까지 합류하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늘어가는 상처와 위협, 점점 강해져 압박해오는 죽음의 느낌.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인지라 너무나도 즐거웠고 감정은 쉽게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성난 자의 외침’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토린이 멈춰 서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만이 아니었다. 힘을 내 싸우던 지도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사방을 바라봤다.
“오크가 저렇게 강했었나?”
“끼라랏. 말도 안 된다. 오크가 저렇게 강했다면 세상엔 오크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앞에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백만의 시체를 학살하다시피 쓸어버리고 있는 수만의 오크.
수백의 병력이 달라붙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거대 괴물에 20~30의 오크들이 올라타 부숴버리고 있고 하나하나가 전사급의 힘을 가진 시체들을 도끼질 한두 방에, 심지어 주먹질, 발길질로 쓰러뜨리고 있었다.
심지어 최소 대족장급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는 거대 괴물을 겨우 두셋이 덤벼서 상대하는 모습이 수십 군데에서 관찰됐고, 심지어 홀로 상대하는 오크도 꽤 있었다.
“저 오크 때문이다. 저 오크에게서 시작된 기운이 모든 오크에게 전해졌다. 그 이후로 저렇게 강해졌다.”
가장 기운에 민감하며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락노르가 그락카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록이 강림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홀로 아드리오와 벤 자칸을 상대하는 무력과 다른 오크들을 순간적으로 축복 몇 개 더 받은 것처럼 강화하는 대단위 버프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모르지. 정말 카록이 강림했을지도. 이번 비텔의 종자들은 정말 강하니까.”
“뭐가 됐든 상관없다. 우리 편이니까. 저런 존재가 함께 한다면 아베네고가 무슨 짓을 하든 걱정할 필요 없겠어.”
“다행이군. 이제 더 이상 동포들의 희생을 강요할 필요 없겠어. 싸우지 못해 안달난 것들이 왔으니 저 녀석들을 전면에 내세우면 되겠지.”
“좋은 생각이다. 이제부터 모두 전력을 아껴라. 1,000년 전을 생각하면 이 전투가 끝난 후 오크들의 도끼가 우리를 향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베네고와 오크들이 싸우게 놔둔 후 살아남은 놈들을 우리가 정리한다.”
“함께 멸망해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카카카카카칵. 그거 정말 괜찮군 그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던 종족 연합의 전사들과 지도자들. 그들은 오크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시체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자 안심했고, 웃으며 농담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르륵. 이렇게 지원 와줘서 고맙다.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전방에서 시체들과 싸우던 카티쉬 전사가 시체를 뚫고 자신의 앞에 도달한 오크 전사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평소엔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던 녀석들이지만 이렇게 위기 속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콰직.
오크 전사는 시체들에게 휘두르던 도끼를 멈추지 않고 카티쉬에게도 그대로 휘둘렀다. 그리고 종족 연합 병력 속으로 파고들며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당황하던 종족 연합이 힘을 합쳐 그 오크 전사를 죽였다.
그런 광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이 빌어먹을 오크놈들! 전투에 취해서 아군도 못 알아보는 거냐! 빠져라! 뒤로 빠져!”
“오크와 싸우지 말고 뒤로 빠져라!”
지도자들은 오크들이 흥분해 아군을 못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하고 병력을 뒤로 물렸다. 종족 연합이 뒤로 쭉 빠지자 오크들은 멀리 떨어진 종족 연합에게 덤벼드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시체들과 싸웠다.
“전투에 미친놈들 같으니. 전투가 끝난 후에 따져야겠어.”
“차라리 잘 됐다. 적군 아군 못 가리고 싸우니 혼자 싸우라고 하기 편하겠어.”
“그거 괜찮군. 뒤에서 도와준다고 하고 오크 놈들만 보내서 싸우게 하면 되겠어.”
종족 연합 지도자들은 여전히 오크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신이 그랬듯 카록 또한 비텔을 먼저 공격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1,000년 전에 그랬듯 말이다.
“역시 내가 직접 싸우는 것만 아니면 싸움 구경은 재밌군.”
“오크 놈들 정말 잘 싸우는구만.”
종족 연합은 병력을 뒤로 물린 채 후방의 시체들만을 상대했다. 전선이 반으로 줄어드니 전투에 여유가 생겼고 지도자들은 오크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수적으로 크게 밀리는 오크였지만 실력이 뛰어나고 끊임없이 새로운 오크들이 도착해서 전투에 참가했다. 점점 오크들 쪽으로 승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억!”
“저쪽은 끝났군.”
“엄청나다. 정말 아드리오와 벤 자칸을 이길 줄이야.”
“어쩌면 아베네고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쪽으로 온다. 오크를 조롱하지 마라. 오크는 참는 걸 모른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아베네고와의 싸움에 내몰기 전까지는 잘해줘야지.”
아드리오와 벤 자칸을 쓰러뜨리고 강렬한 승리의 함성을 지른 그락카르가 곧바로 종족 연합의 지도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종족 연합의 지도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콰쾅!
종족 연합의 병력이 몰린 지역으로 도달한 그락카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미로크를 크게 휘둘러 수십의 전사들을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락카르는 아드리오와 벤 자칸을 이긴 후 아베네고가 사라진 것을 알고 가장 강력한 적인 종족 연합의 지도자들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향하는데 방해가 되는 병력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저 자도 아직 흥분이 식지 않은 것인가!”
아직도 종족 연합의 지도자들은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 오해가 풀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크들이 시체들을 뚫고 나와 종족 연합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니까.
“빌어먹을! 적이다! 오크도 적이야! 아군이 아니다!”
그제야 알아챈 종족 연합은 오크들과 맞서 싸웠다.
< 211 비텔교 vs 오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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