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비텔교 vs 오크 >
아베네고가 수호자로서 불러낸 네크로맨서 고번은 힘이 약했다. 오랜 시간 수련했지만 아는 것에 비해 가진 힘이 적었고 그 부족한 힘을 메우기 위해 그의 가치보다 적은 포인트에도 수호자 계약을 받아들여 아베네고의 곁에 온 것이다.
다만 ‘늙었다.’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네크로맨서로서 수련을 거듭했기에 아는 것이 많았다. 지식만큼은 마스터 네크로맨서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그런 고번의 지식을 활용해 벤 자칸, 이올라, 아드리오 등을 부활시켜 수호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많은 수의 시체를 움직일 수 없기에 효율이 떨어지지만 시체들을 뭉쳐 거대한 하나의 시체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생겼다. 거대괴물이라 불리는 시체덩어리의 수조차 많아져 더 이상 고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른 종족을 상대하기 위해 병력 생산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베네고, 이올라, 아드리오가 고번에게서 네크로맨시에 대해 배웠다.
다루는 힘이 다르기에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수십 년의 수련 끝에 비텔교 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렸던 아드리오가 비텔의 힘을 네크로맨시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아드리오는 곧바로 아베네고와 이올라에게 그 방법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벤 자칸에게까지 전수했다.
벤 자칸은 아무리 수련해도 초급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많은 수의 시체를 다루지 못했지만 아베네고와 이올라는 훌륭하게 그 방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고 타종족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체가 대륙 서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맨 앞에, 마치 평평한 땅처럼 뭉친 거대한 시체덩어리가 위치해 있었고, 그 위에 만들어진 제단 같은 건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제단 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의자에 아베네고가 앉아 있었고 그 주변에 다섯 수호자가 서 있었다.
“인간들의 땅에 남겨둔 시체의 수는?”
-30만입니다.
대사제 아드리오가 대답했다.
“네 시체더냐.”
-그렇습니다. 산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킨 후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풀어뒀습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증폭된 시체들은 사방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다가 살아있는 인간을 만나는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할 것이다.
30만이면 아드리오가 다룰 수 있는 시체의 거의 대부분이다. 아마도 그의 곁을 지킬 친위대격의 강력한 시체만 남기고 전부 인간들의 땅에 남겨둔 모양이었다.
“알지 않느냐. 작정하고 숨은 인간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란 것을 말이다. 30만은 낭비다.”
-알지요. 우리가 직접 처절하게 경험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비텔님을 배신한 그 자들이 하루라도 더 빨리 심판 받는 것을 원했습니다.
“... 알았다.”
인간들의 땅에 30만이나 되는 시체를 남기는 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재기할 힘이 없으니 천천히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여 낭비라고 생각한 아베네고다. 하지만 아드리오의 마음도 이해했다. 한 때 인간이 믿었던 신은 비텔 하나뿐. 지금 남아 있는 인간들은 비텔을 배신하고 몰란을 믿음으로서 살아난 자들의 후손이다.
그저 몰란을 믿기만 했다면 아드리오도 이렇게 증오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텔을 버리고 몰란의 곁에 선 그자들은 비텔의 자식들을 죽이는 데 그 어떤 종족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이라고 하던가. 한때 같은 편이었던 그들의 배신은 비텔교에 큰 타격을 안겼다. 그 중에는 역시나 천재로 소문났던 아드리오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배신으로 비텔교는 큰 피해를 입었고 누구도 그 죄를 아드리오에게 묻지 않았지만 그 스스로 엄청난 심적 고통을 겪었었지. 그래서인지 그 누구보다도 몰란을 믿는 자들을 증오하는 아드리오였고 그런 그를 아베네고는 이해했다.
내가 느끼는 이 고통처럼 깊숙이 괴롭겠지.
“크으..”
고통에 대해 생각하자 새삼 더 크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괜찮으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최근 신음을 자꾸 흘리시는 걸 보면 고통도 더욱 심해지신 것 같고... 조금이라도 쉬셔야 합니다.
이올라가 미끄러지듯 날아서 다가왔다.
“괜찮다. 내가 비텔님의 은총을 받은 이래 이렇게 힘이 넘쳤던 적이 없다.”
실제로 그랬다. 비텔과 연결은 되지 않지만 비텔에게서 많은 힘을 받았다. 그의 1,000년이 넘는 인생 전부를 따져 봐도 최대. 그렇기에 고번과 이올라가 10만, 대사제인 아드리오조차도 온 힘을 다할 때 겨우 30만 움직일 수 있는 시체를 그 혼자서 거의 1,000만에 가깝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힘은 넘칠지 몰라도...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 고통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러냐.”
힘들긴 했다. 참고 견디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버티고 참기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지금 아베네고가 참고 견디고 있는 고통은 비텔교 최고의 인재들이었던 벤 자칸, 이올라, 아드리오도 버티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을 정도의 고통이다.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건 비텔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포기하면 비텔님께서 홀로 남겨지신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못했다. 지옥 같은 고통도 비텔을 홀로 남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버텨냈다. 적에게 당해 해골만 남은 상태에서도 고통이 끊이지 않았지만 버텨냈다. 그렇게 1,000년을 버텨왔다.
그런데 비텔에게 그 외에 다른 신도가 생겼다. 이제 그가 아닌 다른 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게 되자 서운함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이제 쉴 수 있겠구나. 이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줄 이가 나타났구나.’
약간의 질투도 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안도감이 컸다. 더 이상 인내하고 버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지금껏 그를 괴롭혔던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이걸 어떻게 버텨왔나 싶을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아직은 버텨낼 수 있었다. 쉬기 전에 마지막으로 비텔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주변에서 계속 쉬라고 권유해도 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쉬면 그만큼 고통을 견뎌야 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빨리 움직여 일을 완수하는 것이 진실로 쉬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켄게리안.”
-네. 사도시여.
바짝 마른 피부를 가진 큰 덩치의 와이트가 아베네고의 말에 대답했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모든 기여도를 투자해 불러낸 마지막 수호자지만 가진 힘은 다섯 수호자 중 가장 약했다.
“네가 선봉이다. 100만이 따를 것이다. 동쪽으로 이동하며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해라.”
-크흐흐흐. 명을 따르겠습니다.
약하지만 잔인했다. 아베네고는 켄게리안이라면 적들에게 비텔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1,000만의 시체가 제자리에 멈춰 섰고 아베네고가 켄게리안을 따르게 할 시체들을 조작했다. 그들의 최우선 순위를 ‘켄게리안을 따르고 그을 공격하는 자를 공격해라.’로 정했다.
그 외에도 1,000년간 쌓인 노하우로 빈틈이 없도록 공격용 행동명령을 박아 넣었다. 켄게리안이 동쪽으로 뛰쳐나가 섰고 그의 주위로 시체들이 모여들었다.
거의 1,000년간 연습하고 사용한 능력이지만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작업은 언제나 힘들었다. 100만의 시체가 켄게리안의 곁에 서는데 1시간이 걸렸다.
-저들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주겠습니다.
켄게리안과 100만의 시체가 빠른 걸음으로 떠나고 그 뒤를 아베네고와 900만의 시체가 뒤따랐다.
***
강자에게는 강한 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 한 몸만 챙기면 됐다. 그냥 이곳저곳 떠돌며 싸움이 있을 것 같은 곳만 찾아다니면 됐다.
조금씩, 아니지. 빠르게 많이 강해지면서 날 따르는 형제들이 늘어나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강자로서 그 형제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지금 최고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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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락카르의 무리
우두머리 : 그락카르
무리 구성원 : 6,820,58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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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크들의 대족장. 그게 나다.
첫 싸움 후, 승복할 수 없다며 몸이 나은 후 다시 덤빈 듀키츠를 가볍게 기절시켰다. 정말 쉬웠다. 나와 같은 스타일의 전투 감각을 갖고 있기에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듀키츠가 내 부락에 들어왔다.
내 부락에 들어오자 ‘군주의 위엄’덕분에 강해진 듀키츠가 다시 덤볐지만 역시나 가볍게 이겼다. 듀키츠와의 싸움 이후 대족장, 대군주들과 연이어 싸웠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 전부를 이겼다. 두 번째 각성을 한 나는 너무 강했으니까.
그렇게 난 카록께서 인정한 진정한 대족장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오크가 내 무리에 들어왔다. 남부, 대족장이 되기 위해 남부로 찾아온 자들, 상관없이 그냥 북부에 남은 자들, 그 외에 세계에 퍼져있는 자들. 그들 모두가 내 무리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내 책임이 되었다.
그대로 아무 일이 없었다면 난 예전 남부로 내려오기 전에 겪었던 무기력한 삶에 빠져야 했을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카록께서는 날 버리지 않았다.
-이 세상을 내게 바쳐라.
내게 삶의 목적을 심어주셨다.
바로 모든 대족장, 대군주, 북부 대족장들과 함께 합류한 주술사들을 불러들여 카록께서 말한 바를 전했다. 그리고 회의를 했다.
세상을 바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해야 세상을 카록께 바칠 수 있을까.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쉽게 대족장, 대군주, 주술사들의 의견이 일치했으니까.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카록께서 즐겁게 볼 수 있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대족장들의 의견, 이 세상을 지배해 군림하자는 것이 대군주들의 의견, 모든 오크가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낙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술사들의 의견이었다.
그 모든 의견이 말은 다르지만 내가 보기엔 하나나 다름없었다. 오크가 지배하는 세상, 모든 오크들의 낙원. 둘 다 전쟁을 해야 이룰 수 있는 것들 아니던가. 그리고 분명 진정한 대족장을 뽑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카록께서 다가올 거대한 전쟁을 대비하라고 하셨다.
난 바로 형제들에게 선언했다.
-이 세상 모든 것들과 전쟁을 시작한다.
그것으로 회의는 끝났고 거대한 전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이젠 부락의 형제, 자매가 너무 많기에 그런 짓은 불가능했다. 이동하는 동안에 먹을 것도 준비해야한다. 남부에서 다른 종족이 있는 곳까지는 너무 머니까.
그렇기에 일단 급한대로 나와 대족장들이 1~2만 정도의 형제들을 이끌고 북부로 이동했다. 대군주와 주술사들은 남부를 정리한 후 제대로 많은 형제, 자매들을 이끌고 북부로 올라올 것이다.
나와 다른 대족장들은 서로 흩어져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지만 각개격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모든 대족장은 ‘집결의 외침’을 쓸 수 있었으니까. 자기들만으로는 힘든 적을 만나면 ‘집결의 외침’을 써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다른 형제들과 힘을 합치면 된다.
그리고 오늘. 이제껏 만났던 5,000도 되지 않는 소규모의 적이 아니라 대규모의 드워프 부락을 발견했다.
실제 발견한 것은 3,000~4,000정도가 살 것 같은 부락이지만 드워프의 특성상 한 산에 흩어져서 살기에 3,000~4,000짜리 부락 하나를 발견하면 그 부락이 있는 산에 최소한 10배는 더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저 산에 있는 드워프의 수는 최소 3만~4만. 전사의 수는 2만 정도 될 것이다. 내가 이끌고 온 형제들의 수가 1만. 좋은 싸움이 될 것 같다.
너무 많이 이끌고 오면 싸움이 재미없을 것 같아 1만으로 제한했는데 잘 한 것 같다.
“형제들. 드워프들에게 우리가 왔음을 알려줘라.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구오오오오오오!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부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으니 이미 우리를 발견했겠지만 혹시 몰라 소리를 질러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알렸다.
이대로 저 부락을 치는 것은 너무 쉽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를 알려서 드워프가 뭉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재미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되려나? 벌써 조급해지는군. 어서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 206 비텔교 vs 오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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