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대족장 VS 대군주 2 >
“지금 당장 죽어도 카록의 바로 옆에 설 최고의 전사들이다.”
노르쓰 우르드 근처에 있던 오크 중 하나가 말했다. 그락카르와 듀키츠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오크 전사들이 지금 당장 그 둘이 죽는다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노르쓰 우르드로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안 된다. 죽어서 내가 갈 수도 없는 카록의 곁으로 가면 내 꿈은, 모든 주술사들이 가졌던 꿈은 어떻게 하라고.’
죽은 후 카록의 곁에 갈 거라는 오크들의 사후관은 노르쓰 우르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그를 비롯해 그가 갖고 있는 1,000년의 기억 속에서 어떤 주술사도 카록의 축복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카록에게 버림받은, 카록을 버린. 둘 중 어떤 경우든 노르쓰 우르드에게 죽음 이후의 세상은 절대 좋은 세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를 비롯한 모든 주술사들이 현세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노력해왔다.
150년 전에 있었던 주술사들의 봉기도 비슷한 이유로 일어난 일로서 카록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노예로 취급받는 현실을 타파해 더욱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다.
노르쓰 우르드는 150년전의 봉기가 실패한 이유를 전사를 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전사를 적으로 봤기에 모든 전사를 상대로 싸웠고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술사와 전사의 싸움이라면 누가 이길지는 명확하니까.
힘에서도 밀리지만 다시 천 년이 지나 주술사의 힘이 지금보다 두 배로 강해진다고 해도 실패할 거다. 수에서 아예 비교가 안 되니까.
그래서 노르쓰 우르드가 자신은 보조적인 역할로 물러나고 전사를 앞세워 혁명을 일으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대상이 처음엔 오르히였고, 지금은 그락카르다. 그리고 성장속도로 봤을 때 앞으로도 그락카르다. 그락카르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앞으로 세상에서 못하는 게 없을 것이라고 노르쓰 우르드는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죽어도 된다니.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상황이... 안 좋아.’
그락카르는 필수다. 지금은 듀키츠도 그락카르 못지않은 무력을 갖고 있지만 미래 기대치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무조건 그락카르다.
‘듀키츠의 군대도 왔고... 우리 병력과 싸움을 붙인다고 그 누구도 그락카르와 마수드가 싸우는 곳으로 가려하지 않겠지.’
단 하나의 희망이었던 마수드는 오르히에게 얻어터져 기절해있다. 그락카르가 그냥 이겨준다면 문제없겠지만...
쾅! 쾅! 콰쾅!
도끼는 놓친 채, 박치기, 주먹질, 발차기, 어깨치기 등 모든 수단을 다해 싸우는 그락카르와 듀키츠 둘 다 찢어지고 부서지고 깨진 상처로 엉망진창이었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을 여러 개 입었는데도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는 둘이지만,
‘밀리고 있어.’
확실히 미세하게 그락카르가 밀리고 있다. 노르쓰 우르드는 조금씩이지만 그락카르에게 더 데미지가 축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르쓰 우르드가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그락카르가 아주 조금이지만 밀리고 있었다. 이유는 회복능력의 차이에 있었다.
그락카르의 회복력은 뛰어나다. 재생관련 스킬을 하나 갖고 있고, ‘착취하는 손’으로 상대의 생명력까지 빼앗을 수 있다. 그런데 듀키츠를 두르고 있는 붉은 빛 때문에 ‘착취하는 손’이 생명력을 빼앗지 못했고, 재생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듀키츠는 일정 시간마다 몇 초 동안 급격히 치유되었다. 그 재생력이 그락카르의 재생력보다 조금 앞선 모양이다.
‘차라리 내가 나서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널 죽이겠다. 노르쓰 우르드. 형제.”
노르쓰 우르드가 그락카르를 도우는 게 어떨까하고 생각한 순간 캅카스가의 경고가 들려왔다. 캅카스가는 노르쓰 우르드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기세가 변화하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경고한 것이다.
마지막 형제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고 살기까지 내뿜는 캅카스가의 경고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캅카스가만이 아니었다. 그의 단짝인 미흐로크까지 함께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쏘아지는 살기에 노르쓰 우르드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노르쓰 우르드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죽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네가 그락카르를 아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사간의 싸움에 끼어들면 전사는 카록의 곁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걸 두고 볼 순 없다.”
‘왜 죽어본 적도 없으면서 죽으면 카록의 곁에 간다고 확신하는 거냐!’라고 소리치고 싶은 노르쓰 우르드였지만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결국 조용히 그락카르의 싸움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오랜만이네.”
“그제도 함께 했는데요.”
“아. 너 말고.”
일어나자마자 내뱉은 말에 옆에서 자고 있던 맹연이 대답했다.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안 모양이다.
“저 아님 누군데요.”
“그냥 꿈 꾼 게 오랜만이라는 거야.”
맹연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달라붙어 밀착해왔다. 내가 최대한 많이 접촉한 상태에서 체온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걸 알기에 하는 행동이다.
맹연에게 내려준 축복은 나에게도 축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드러운 맹연의 살결을 아기피부 못지않게 부드럽게 만들어줬으니까. 안고 있으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락카르가 하루를 넘겨가며 싸운 게 참 오랜만이다. 강적이랑 싸울 때 몇 번 그랬던 거 같은데.
듀키츠... 확실히 강하다. 그락카르와 수호자가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싸우는 걸 보니 수호자보다 그락카르가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그락카르와 막상막하, 아니 오히려 우세한 싸움을 이어간 듀키츠는 더욱 강할 거고 말이다.
저런 것들 다섯, 아니 셋이나 넷만 넘어와서 이종족 1만쯤 이끌고 다니기라도 하면 정말 끔찍한 재앙이 될 거다. 오크가 넘어오진 않겠지만 오크족에만 저런 강자가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히르아와 막상막하로 싸운 웨어바이슨도 있고 다른 종족에도 그런 강자들이 있다는 가정 하에 한 번에 넘어온다면... 절대 근처에 가지 말고 열강들 부추겨서 핵미사일이라도 쏘는 수밖에. 핵미사일 맞고 죽길 바라야지. 안 죽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도망 다녀야...
물론 핵미사일을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강해도 죽을 거다. 그락카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순 없... 으려나? 그 놈은 모르겠다. 워낙 바퀴 같은 놈이라서.
하지만 나만해도 핵미사일에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오하넬이 있으니까. 오하넬에게 부탁해서 차원의 틈으로 들어간다면 핵미사일 백발을 퍼부어도 나한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할 거다.
내가 그런데 이종족이라고 비슷한 능력이 없으란 법은 없지 않나. 그러니 위력이 강하다고 핵미사일만 믿고 있을 순 없다.
정면 대결로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 말고 다른 강자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나라는 아직 성전사를 모방하는 정도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각 나라가 성전사를 모방해서 저격총을 든 특수부대를 창설하고 있다. 성전사만큼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지만 일단 비텔교 신도이기에 ‘군주의 위엄’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는 흉내 낼 정도는 된다. 덕분에 이종족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는 나라가 많아졌다.
하지만 강자는 없지. 그래도 여러 특수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언젠가는 내가 아닌 다른 나라들도 이종족 강자를 상대할 수 있는 때가...
아. 이 문제는 나중에 더 생각해야지. 어차피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니니까. 또 생각이 삼천포로 빠졌네. 그락카르와 듀키츠의 싸움을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야.
내가 그락카르로서 확실하게 느꼈다. 저녁 무렵부터 듀키츠의 주먹, 발, 머리가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착취하는 손’도 안 먹히고, 그락카르의 공격도 제대로 안 먹히는 것 같았다.
그락카르 VS 그락카르의 싸움인데 상대 그락카르가 아주 조금 더 강한 느낌이랄까.
비슷한 전투방식을 가진 자끼리 싸우니까 그 우열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별다른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일이나 모레쯤 그락카르가 쓰러지겠지. 물론 그락카르가 이기든 지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죽는 건 문제다.
그락카르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영원히 죽는다면? 내가 가장 걱정하던 상황이다. 영원히 ‘오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정말 끔찍한 상황이지.
이번 결투 중 그락카르가 죽는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수백, 수천 번 싸움이 이어져서 전투 상황을 내가 완전히 기억하고 어떤 공격이 이어질지 그락카르에게 알려주고 그락카르가 그대로 따른다면 오래 걸리긴 해도 언젠간 ‘오늘’을 벗어날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다시 진정한 전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그락카르가 내 말을 듣겠냐는 거다. 난 아니라고 본다. 절대, 절대 그락카르는 내 조언을 듣지 않을 거다. 억지로 조언한다면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공격을 맞아주고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리고 그락카르에게는 ‘오늘’이 처음일 테니까. ‘오늘’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테고 더욱 내 말을 안 들어먹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그락카르가 내 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그락카르가 죽는 ‘오늘’이 도저히 역전 불가능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은 채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늘’이 시작한 후 30초만에 죽는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수천 번의 ‘오늘’을 보고 조언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을 때 손을 써야 한다. 난 이런 날을 예전부터 걱정했고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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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의 명령 - 축복(3단계) : 신도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다. 신도 1만 명 당 1명에게 내릴 수 있으며 1인당 3번으로 제한된다. 기본적으로 교단 기여 포인트 100만이 소모되며 대상의 상태에 따라 추가 교단 기여 포인트가 소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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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락카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그락카르의 죽음이 수십 번 반복되면 말을 걸 수 있게 되지만 그건 최악의 상황이기에 제외했다. 그러니 남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 나와 그락카르는 서로의 축복을 공유한다. 그러니 그락카르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내게 축복을 내린다면 그락카르에게도 영향을 끼칠 터.
지금처럼 아주 미세하게 밀리는 상황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클 것이다.
-스킬 ‘교주의 명령 - 축복’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선택하세요.
-스킬 ‘교주의 명령 - 축복’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선택하세요.
-스킬 ‘교주의 명령 - 축복’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선택하세요.
망설이지 않고 내게 3번의 축복을 연달아 내렸다. 스킬이 하나 새로 생기고 두 개의 스킬이 다음 단계로 발전했다. 힘도 상당히 강해졌다. 이정도면 아딜이랑 정면대결을 해도 밀리지 않을 거 같은데?
그락카르에게도 꽤 많은 힘이 전해졌겠지.
웬만하면 한 번만 사용하고 두 번을 아끼고 싶지만... 그락카르에게 전해지는 능력은 내게 주어지는 것의 10%정도. 한두 번만 사용해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확실하게 전부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믿는다. 그락카르. 죽지 마라.
“누굴요.”
“아. 꿈속에 나온 사람한테 한 말이야.”
“특이하시네요. 꿈속의 캐릭터와 말을 하시다니.”
오늘 자꾸 실수하네.
***
“신기하군. 형제의 움직임이 갑자기 좋아졌다.”
“맞다. 빨라지고 힘이 세졌다. 힘을 아낀 건가?”
“전사는 힘을 아끼지 않는다. 명예로운 전사인 그락카르가 힘을 아꼈을 리 없다.”
“그렇지. 전사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 그렇다면 방금 새로운 능력을 얻은 거군. 대단하다. 그락카르. 싸우면서 성장하다니. 카록께서 항상 지켜보시는 모양이다.”
오르히, 캅카스가 등 전사들이 갑자기 달라진 그락카르의 움직임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노르쓰 우르드도 전사들에 비해 느리긴 했지만 그락카르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시. 역시 그락카르다. 오크족의 황제가 될 인물답다. 넌 영웅이 될 것이다. 그락카르.’
방금 전까지만해도 밀리던 그락카르가 오히려 반대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밀어붙이던 듀키츠보다 더 큰 차이를 내면서 말이다.
‘이겼다.’
노르쓰 우르드는 그락카르의 승리를 확신했다.
< 204 대족장 VS 대군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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