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메카 탈환 >
-우리 비텔교는 금일 제다와 메카를 이종족에게서 탈환해냈습니다.
한상을 비추고 있던 영상이 클로즈업되며 주변 전체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한상의 뒤로 큰 시계탑 하나와 무슬림 사원이 비춰졌다. 군데군데 무너지고 더럽혀지긴 했지만 확실히 알베이트 타워와 카바신전이었다.
카바신전 앞에서 이종족의 공격을 받지 않고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건 메카를 탈환했다는 증거로서 충분했다.
영상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세상에 빠르게 알려졌고 언론에 의해 해석이 붙어 알려졌다.
-뉴스에서 메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종족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위권을 포기하고 다른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라잖아.
-그런 곳을 비텔교 단독으로 탈환했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비텔교도 돈을 밝히네. 가만있다가 사우디가 현상금을 거니까 도와주겠다고 간 거 아냐.
-이 바보 영상 끝까지 안 봤네. 교주님께서 사우디에서 뭘 받겠다고 온 게 아니고 혹시 받게 되더라도 전액을 이종족의 공격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쓴다고 했잖아. 일단 사우디 돈이니 사우디 복구에 투입한 후 남으면 다른 국가를 도와주겠다고 말이야.
-내가 바보가 아니라 니가 바보네. 멍청아. 그걸 진짜 믿냐. 다 그렇게 말하고 혼자 갖는 거지.
-우리 교주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거든. 그리고 비텔교는 사우디 돈이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곳 중 하나야. 신도가 몇인지 알기나 하냐?
-돈은 많아도 갖고 싶어지는 법이지. 그런데 비텔을 안 믿어도 되고 헌금을 안 내도 되니 일단 기도 한 번 해서 힘을 가지라고? 그건 좀 땡기는데?
-너 같은 불신자는 오지 마라.
-이미 했다. 오. 엄청 좋은데? 전신 가득한 힘이 느껴져.
한상은 영상에서,
-비텔님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헌금, 기도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믿는 신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비텔님의 은총을 받아 사용만 하십시오. 이종족의 침략이라는 세계적인 재난에 맞서기 위해선 힘이 필요합니다.
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곧이어 다른 내용으로 말을 이었지만 실은 이 말이 한상이 이번에 한 모든 행동의 핵심이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메카까지 온 것이다.
메카 탈환을 함으로서 세상은 한상을 주목했다.
한상의 영상을 평소 비텔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보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한상의 저 말을 듣게 되었다. 한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믿을 필요 없고, 헌금 낼 필요도 없으면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무신론자만이 아니다. 가톨릭, 불교, 이슬람 등의 독실한 신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마음속에 ‘비텔을 믿지 않고 기존의 믿음을 유지해도 된다면 한 번..’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 세상엔 이종족이라는 체감되는 위협이 있으니 힘을 가져야 한다는 한상의 말이 더욱 가슴속에 와 닿았다.
힘을 얻는데 대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번, 한 번만 비텔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만 하면 온 몸에 넘쳐나는 힘을 느낄 수 있게 되니 그동안 비텔을 외면했던 사람들 마음속에 더욱 비텔에게 기도를 해볼까란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언제든 사제들에게 말씀하시면 비텔님과의 연결을 끊을 수 있습니다.
한상은 언제든 조건을 걸어 파면할 수 있다. 그것을 ‘사제에게 비텔님과의 연결을 끊고 싶다고 말한 모두’라고 조건을 건다면 쉽게 그들을 파면시킬 수 있으니 자신 있게 그런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 말이 흔들리던 사람들의 마음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지금의 위기에 도움이 되는 힘을 어떤 대가도 없이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언제든 중간에 그만둘 수 있다.’
언제든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둘 수 있다는 말은 강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텔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남은 도시는 성전사들에게 맡길게.”
“온 힘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온 힘을 다하진 말고 안전하게 해. 안전하게.”
“네.”
의욕 넘치는 해역이의 대답을 들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났다.
메카 탈환 후 2주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그동안 메카를 중심으로 이종족에게 장악당한 주변 도시를 전부 탈환했다. 아직 잔당이 지하 깊숙이 남아있겠지만 그리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2주 동안 사우디와의 협상도 완전히 끝냈다.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메카를 탈환해놓으니 비텔교는 국가가 아니라며 보상 조건을 깎으려들었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난 그쪽이 원하는바 모두를 아무 이견 없이 수용했다. 애초에 돈 받으려고 사우디에 간 게 아니었으니까. 돈은 썩어난다. 내겐 헌금을 꼬박꼬박 내는 수십억 신도가 있다.
무리한 요구를 너무 쉽게 수용하니 사우디 측이 오히려 당황한 듯 했다. 나중에는 알아서 조건을 올려줬다. 혹시라도 사우디에서 손을 뗄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지금은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되어 사우디 군과 성전사의 협조체계가 어느 정도 잡혔다. 미군처럼 첨단장비를 동원해 성전사를 서포트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성전사는 수가 적어서 그들만으로 도시 전체를 수색하는 것은 무리다.
성전사단도 거의 반수가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머지 반은 남아서 해역이의 지휘 하에 메카 주변 도시의 잔당 색출과 아직 점령당한 상태인 3개 도시의 탈환 작전을 이어갈 것이다.
사우디에서의 작전이 완료된 후에도 해역이와 성전사들 대부분은 중동에 남아서 다른 이슬람 국가를 도울 예정이다. 이슬람 국가를 돕는 것은 중요하다. 비텔교 가입률이 가장 낮은 것이 무슬림이니까. 지구 전체를 비텔교 천하로 만들려는 내 입장에서 무슬림과 친분을 쌓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지.
그리고 그 노력은 이미 상당히 큰 효과를 봤다.
메카 탈환을 세상에 알린 날을 기점으로 신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신도가 됐지만 ‘비텔의 귀’의 능력 중 하나인 기도를 하는 사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능력으로 확인한 결과 예전에 비해 중동에 사는 이들의 비율이 꽤 높았다.
그리고 이미 말했다시피 신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내가 바랐던 전 지구인의 비텔교 신도화가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새로이 신도가 되는 이들은 대부분 비텔님을 믿을 필요 없고 언제든 연결을 끊어주겠다고 한 내 말 때문에 들어온 이들이겠지만 그들이 비텔교에서 빠져나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인간은 힘에 대한 욕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렇기에 슈퍼히어로 같은 가상의 인물들의 이야기에 즐거워하고 동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주의 위엄’으로 얻는 힘은 그들에게 마치 슈퍼히어로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로 인한 중독성은... 웬만한 인간이 아니고선 한 번 얻은 힘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힘을 포기하지 못해 계속해서 비텔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내다보면 언젠간 대부분이 비텔교의 품안에 완전하게 들어오게 될 것이다.
뭐. 안 들어와도 상관은 없다. 그저 비텔교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 가져준다면 말이다. 그들이 비텔교를 적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다.
메카 탈환이 긍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었다.
이번에 사우디에서 활동을 한 일로 몇 개 국가에서 비텔교의 군사행동을 제지해야한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자기네 나라를 도울 때는 아무 말 없었으면서 말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보기엔 사우디에서 얻을 수 있었을 천문학적인 이득을 비텔교가 빼앗아 간 거로 보일 테니까. 손안에 들어온 돈을 강탈당한 느낌이겠지. 그래서 우리 비텔교를 제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고 말이다.
그 움직임의 대부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사그라졌다. 세상에 우리 비텔교 신도가 몇 명인데 말이야. 정치인 중에도 많은 수가 비텔교 신도다. 그런데 비텔교에 제재를 가하려하다니. 바보 같은 짓이다.
비텔교의 특징은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더욱 열렬하게 믿는다는 거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지금의 삶에 대한 걱정이 없기에 내세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법이다. 아니면 지금의 삶을 더욱 오래 누리기 위한 수명 연장에 관심이 있던지 말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아무리 돈이 많고 큰 권력을 갖고 있어도 인간으로선 이룰 수 없는 것들이므로 당연히 신에게 의지하게 되고 존재가 확인된 비텔님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을 특별하게 관리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사제를 보내 건강을 관리해주고, 몇 가지 혜택을 주었다. 그 결과 그들의 비텔님에 대한 신앙심은 더욱 깊어졌지.
안다.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특혜를 주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란 걸. 하지만 아주 잠시일 뿐이다. 비텔교가 세상 그 누구도 감히 건들지 못할 위치에 오른다면... 비텔님 앞에선 모든 이가 평등해질 거다.
특권층에게 혜택을 주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비텔교를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도 그들을 통해 얻었고, 그 움직임을 좌절시킨 것도 그들을 통해서였다.
고위층에 비텔교 신도가 적은 나라는 돈을 퍼부어 로비를 하고, 신도들 통해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지만 무난하게 모든 비텔교에 피해를 끼치려는 움직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 사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텔교를 믿고 있다. 결국 세상은 다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 다수는 우리 비텔교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믿음이 있었지만 이번 메카 탈환을 통해 일부 무슬림까지 비텔교에 끌어안으면서 확신을 가졌다.
지구를 최단시간 내에 비텔교 일색으로 물들이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내가 생각하고 준비했던 모든 일이 완벽하게 시행됐다.
세계 각국의 정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미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텔교 신도이고, 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은 힘을 더욱 필요로 하기에 그들 대부분이 비텔교 신도가 된 상태다.
벤센이 이끄는 정보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취급하고, 나 또한 기도를 통해 세상의 움직임을 앉은자리에서 모두 알 수 있으며, 기도를 하는 모든 이의 신분, 위치 등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인 성전사단을 완성했고 앞으로 계속해서 규모를 늘려갈 예정이며,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수호자 다섯이 내 곁에 있다.
이렇게 비텔교가,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다보니 마치 지구의 신이라도 된 느낌이네.
여하튼 지구는 비텔교, 아니.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거의.
***
“크흐.. 드디어 전사다워졌다.”
꿈속의 인간이 벌인 짓이 마음에 들었다. 전사답게 도끼를 들고 적과 싸웠고, 할 일을 함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하는 포부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이든 할 때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위축되는 감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뒤쳐진 것 같군.”
꿈속의 인간이 전사다워지고 있는데 내가 오히려 인간 같아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르히와 싸워 그와 그의 전사들을 내 부락에 받아들였고, 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안정화시키고 아직 내 부락에 들어오지 않은 형제들을 부락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장의 크기가 달랐다. 꿈속의 인간은 열이 넘는 대족장급 이상의 존재들과 싸워대는데 난 족장급도 겨우 되는 형제와 싸우기 위해 며칠씩 이동했다.
“인간에게 뒤쳐질 수는 없지.”
마수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가장 강한 대군주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가장 강한 대군주? 듀키츠를 말하는 모양이군. 250년을 산 괴물이 하나있지.”
“그래. 그 형제 어디 있지?”
“듀키츠의 도시는 여러 개라서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쪽으로 25일 정도를 달리면 듀키츠의 영지에 도착할 것이다.”
저쪽으로 25일. 그렇군.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억!”
출진의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마수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었다.
“설마 듀키츠에게 가는 건가? 그는 너무 강하다! 듀키츠를 따르는 전사의 수만 20만이 넘는다!”
“크흐.. 잘 됐군.”
“... 그럼 좀 기다려라. 트자릭 형제와 마렉을 부르고 전사들을 소집한 다음 식량을 챙기면 일주일이면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일주일? 그렇게나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다.
“전사는 싸우기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이곳에 내려와 잠시 잊고 살았다. 전사는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다. 따로 준비를 하지 않는 존재란 말이다.
싸우고자 마음먹었으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진정한 전사다.
“따라올 수 있는 자만 따라와라. 전사라면 따라올 수 있겠지.”
< 201 메카 탈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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