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메카 탈환 >
빠가각.
‘마비시키는 번개’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리자드맨의 머리에 미로크 투를 박아 넣었다. 그락카르의 미로크는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버리던데 내 미로크 투는 가르기보단 부쉈다는 게 더 어울리는 모습으로 리자드맨의 머리에 박혔다.
“허억. 허억.”
힘들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직접 몸을 움직여 온힘을 다해 싸워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다. 아. 없나? 그락카르로선 매번 모든 힘을 끌어내 싸우지만 이 몸으로 그렇게 싸워 본 적은 없는 거 같다.
이종족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특히 조금은 얕봤던 드워프.
정말 무서웠다.
빠르게 드워프와 카티쉬를 죽인 후 카일라와 함께 리자드맨, 엘프 페어를 잡으려고 했는데 드워프가 갑자기 붉은 화염을 몸에 두르더니 가공할 신체능력으로 발악을 해왔다. 빨리 죽이려고 갔다가 빨리 죽을 뻔 했다.
1:1로 싸워서 밀릴 거 같지는 않지만 리자드맨과 엘프가 자꾸 귀찮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카일라의 시체를 방패삼아 도망쳤다. 그리고 대상을 바꿔 카티쉬를 먼저 잡자고 달려들었는데... 카티쉬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비통의 비명’으로 약화시켰다고 해도 전부 대족장급인데 내가 너무 얕본듯했다. 절대 쉽게 볼 자들이 아닌데 말이다. 카티쉬를 처리하지 못하고 드잡이 질을 하는 사이 날 쫓아온 드워프 그리고 리자드맨, 엘프의 공격에 상당한 위험에 쳐했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말이야.
번개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착취하는 손’도 최대 출력으로 사용하면서 겨우 곡예 같은 움직임을 연이어 선보이며 발악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었을 거다.
다행히도 정말 죽겠다싶은 순간 오하넬이 나타나 엘프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엘프가 사라진 덕분에 여유가 생겼고 리자드맨을 무시하고 드워프, 카티쉬와 싸워 겨우 이긴 후 리자드맨의 머리에 미로크 투를 박아 넣은 것이다.
아프다. 도살장에 들어가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전신에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고 있다. 그락카르의 몸으로는 이런 적이 많아도 내 몸으로 이렇게 많이 다쳐본 것도 처음이다. 싸우는 중에 ‘착취하는 손’으로 회복해서 이 정도다. ‘착취하는 손’ 없었으면 위험했을지도.
오늘 첫 경험하는 게 많네.
당장이라도 미로크 투를 던져버리고 누워서 쉬고 싶지만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럴 순 없다. 다행히도 상처는 서서히 낫고 있다. 그락카르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나도 꽤 재생력이 뛰어나니까.
여유가 생겨서 수호자들이 싸우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수호자들이 각각 따로 떨어진 위치에서 싸웠지만 지금은 히르아만 제외하고 한데 어우러져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종족 셋과 싸우던 오하넬이 어떻게 날 지원 왔나 했더니 저렇게 다른 수호자들한테 다 맡겨놓고 왔었군. 지금은 다시 합류해서 싸우고 있다.
저쪽은... 별세계구만. 잠깐이지만 지금 나 정도면 수호자나 그락카르 정도는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
-강해졌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대단하군요. 스피릿마스터.
내 옆에 선 카일라가 빈예츠를 보며 감탄했다. 그런가. 수호자가 감탄할 정도로 잘 싸우고 있는 건가? 지금 빈예츠는 어떤 거대한 영혼의 안에 들어가 있었다. 빈예츠를 몸에 집어넣은 거인 영혼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빈예츠의 모습은 한 수백 미터는 떨어진 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빈예츠가 다루는 영혼은 그만이 아니라 처음 꺼냈던 괴물 녀석과 창을 다루는 목 없이 몸체만 있는 영혼까지 해서 두 개가 더 있었다. 난전이 벌어지고 있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빈예츠는 홀로 이종족 셋을 감당하고 있었다.
-빈예츠와 싸우는 자 중 하나가 사도입니다. 사도 하나와 주교급 둘. 거기에 도시에 들어간 수만의 영혼까지. 아무리 사도님의 지원으로 약해진 자들이라고 해도... 원래의 빈예츠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신위입니다. 역시나 이 세계에 온 후 강해졌군요. 그것도 많이.
예전에 듣긴 했었다. 영혼이 부족한 세상에서 넘쳐나는 세상으로 왔으니 빈예츠는 정말 강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 실체를 지금 확인한 모양이다.
뭐. 내 수호자가 강해지면 난 좋은 일이지.
-저도 노력해야겠습니다.
이게 라이벌 효과인가. 잘 됐다. 카일라가 강해지는 것도 좋지.
오하넬은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채 아딜의 옆에서 싸우고 있다. 기습이 주특기라고는 하지만 근접전투도 엄청나다. 아딜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건 아니네. 진심으로 싸우는 아딜은 처음 보는데... 정말 엄청나다.
거대한 양손검과 타워실드를 양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은 마치 잘 정돈된 전투기술을 가진 그락카르를 보는 느낌이다. 강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내가 아딜이랑 싸운다면... 어우. 무섭다.
저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아직 팽팽하긴 하지만 이미 이종족 몇이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바닥에 누워있고 남아 있는 자들도 지쳐 보인다. 그에 반해 수호자들은 처음보다 더 힘이 넘쳐 보인다. 꽤 정도 승기를 가져온 듯하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없는 수호자, 히르아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웨어바이슨과 싸우고 있었다.
“히르아가 밀리네요.”
-상대가 강합니다.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도입니다.
히르아가 사고 칠까봐 데리고 다니면서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는데 고전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항상 압도적인 모습으로 이기던 히르아인데 무기를 전부 꺼내고도 밀리다니.
히르아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개의 모래 칼날이 일어나 웨어바이슨을 공격했지만,
-구우우우우우우우!
웨어바이슨이 한 번 울어버리니 근처에 가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한 번 땅을 박찰 때마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 공격을 해오니 히르아가 피하는데 급급했다.
어깨를 들이밀고 돌격해오는 공격이 특히 무섭다. 모래가 일어나 웨어바이슨의 앞을 막았지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두께의 모래벽을 가볍게 뚫어내고 그 뒤에 있는 히르아를 공격해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르아가 상대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히르아는 이곳에 와서 처음 봤기에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강한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문제다. 누가 봐도 질 상황이면 질 거 같아서 끼어들었다고 하면 히르아도 어느 정도 수긍하겠지만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끼어드는 건 좀...
별 수 없지.
“오하넬과 아딜을 돕죠.”
-알겠습니다.
저쪽은 적의 수가 많으니까 끼어들 명분이 있지.
그렇지 않아도 유리했던 전황은 나와 카일라가 합류하자 우리 쪽으로 확 기울었다. 사도급, 대족장급답게 불리한 가운데에서도 분전했지만 전력차이를 뒤집진 못했다.
도시에 있던 이종족들이 자기 우두머리들이 밀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는지 약 3천정도 되는 수가 달려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오는 속도가 느리다. 난 초반에 자기 우두머리들이 밀리는 모습을 보면 바로 튀어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반수가 죽은 후에나 나오다니. 덕분에 전투가 많이 편해지겠다.
대족장급 이상의 강자들은 수호자들에게 맡기고 홀로 수천의 이종족을 향해 달렸다. 사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강자와 싸우는 건 내 전문이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은 강자를 상대로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이 여러 개 있으니까.
반면 나보다 약한 자들 다수를 상대로는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지. 다수의 약자를 상대로는 그락카르나 다른 수호자들 부럽지 않게 싸울 자신이 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잘 싸울지도.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워낙에 다수를 상대하기에 좋으니까.
예를 들어 ‘마비시키는 번개’
혹시 몰라 ‘비통의 비명’을 질러 저주를 건 후 양손에서 번개를 뿜어냈다. 뻗어나간 번개가 수십의 이종족을 휘감았고 잘 피해내던 강자들과 달리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고, 어느 정도 저항하던 강자들과 달리 그대로 맞고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곧바로 날 향해 수십 개의 공격이 쏟아졌다. 내 주변의 이종족이 다 쓰러지긴 했지만 원거리 공격을 하는 이종족도 꽤 있으니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하며 이종족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근접공격을 하는 이종족들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그들의 공격이 내 몸에 닿기 전에 내 번개가 먼저 뿜어졌다.
이종족들이 번개에 닿는 족족 쓰러졌다. 몇몇 족장급으로 보이는 자들이 버티긴 했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그들도 잠깐 버티긴 했지만 대족장급 이상의 강자들처럼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마비된 상태로 있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착취하는 손’이 둘러진 미로크 투. 휘두를 때마다 휘두르기 위해 쓴 체력보다 더 많은 생명력이 흡수되었다. 내 ‘착취하는 손’은 그락카르보다 최소 10배는 효율이 좋다. 덕분에 ‘마비시키는 번개’를 쓰느라 소모되었던 체력까지 보충되었고 체력소모가 큰 마비시키는 번개를 끊지 않고 뿜어냈다.
역시... 예전에 브라질에서 싸운 이후 쭉 생각했던 거지만 내 능력은 약자를 상대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때 수천의 병력을 상대했는데 조금의 위기도 없이 가볍게 이겨냈었지. 사실 아무리 수호자 셋이 함께 싸운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이길 순 없는 거였다.
약자한테 강하다니. 뭔가 얍삽한 느낌이지만 내 능력이 이런 걸 어쩌겠어.
강자들을 돕기 위해 나온 병력이 나에 의해 막히니까 추가로 도시에서 더욱 많은 수의 이종족이 달려 나왔다. 만? 만 오천?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은 확실히 넘는 듯싶다. 괜찮다. 수가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이길 수 있다.
난 약자한테 강하니까.
... 이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절대 입 밖으로 말하지 말아야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 완전 망가지겠어.
그래도 혼자 싸운다면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종족 중에는 원거리 공격을 하는 자들도 꽤 많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정예라서 공격이 꽤 날카롭지. 하지만 날 도울 영혼과 시체들이 이종족을 쫓아 도시에서 나오고 있다. 저들과 함께 싸운다면 위험도가 제로에 수렴할 거다.
“음?”
순간 근처에서 뭔가 날아가는 게 느껴졌고, 도시에서 나오던 이종족들이 갑자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앙~
거리가 멀어서 메아리처럼 울려서 들려오지만 분명 총소리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성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짜증이 더 컸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오다니. 이미 전투가 한창 진행된 상태인데다가 성전사가 있는 곳으로 갈만한 강자들이 죽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기에 완벽한 타이밍이지만... 그래도 내 말을 안 듣고 왔다는 게 짜증난다.
개방된 곳에서 이어지는 저격에 이종족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지만 혹시라도 성전사들이 1~2시간 일찍 왔다면 대족장급 이상의 강자가 성전사들 사이로 난입했거나 족장급으로 이루어진 별동대가 성전사를 공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랬다면 성전사의 피해가 컸겠지.
나중에 벌 줘야겠어.
그런데 역시나 성전사들도 교주를 닮아서 그런지 약자들에게 강하다. 총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게 성전사니까. 총이 안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속수무책이지만 말이야. 덕분에 날 향해 달려오던 이종족이 내개 다다르기 전에 반수 가까이 쓰러졌다.
날 포위하고 있는 이종족들도 하나 둘 저격당해 쓰러졌다. 밤새 싸울 생각도 했는데 생각보다 전투가 빨리 끝나겠는데.
그리고 2시간만에 밖으로 나온 이종족들을 전부 섬멸하고 남은 이종족을 처리하기 위해 수호자들이 성전사들을 이끌고 도시로 들어갔다. 이미 영혼과 시체들이 도시를 장악하다시피 한 상태이기에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어지고 있던 히르아와 웨어바이슨의 싸움에 아딜을 투입했다. 내가 직접 싸우기엔 웨어바이슨이 너무 무서웠다. 스치면 죽을 거 같은 공격을 퍼붓는 적을 직접 상대하는 건 좀...
아딜이나 히르아나 둘 다 함께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어 표현하진 않았다.
웨어바이슨은 히르아와 아딜을 상대로도 상당히 오래 버텼지만 아무리 강해도 수호자 둘을 상대로 이길 순 없다.
결국 웨어바이슨은 쓰러졌다.
“후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종족 강자와의 싸움은 끝나기 전가지 안심할 수 없다. 중간에 어떤 능력을 얻어서 얼마나 강해질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락카르가 죽기 전에 능력을 얻어서 이긴 적이 몇 번 있기에 더 잘 안다.
특히 ‘성난 자의 외침’ 같은 능력을 얻기라도 하면 저 웨어바이슨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도시 내의 이종족들도 강해질 테니 더더욱 방심할 수 없지.
이제 저 웨어바이슨을 끝으로 모든 대족장급 이상의 강자가 죽었으니 이젠 좀 안심할 수 있겠다.
***
-비텔교가 단독으로 메카의 탈환을 성공!
탈환한 메카의 중심지에서 찍은 한상의 발표 영상이 인터넷에 업로드 되었고 이 놀라운 사실은 순식간에 세상 모든 곳에 퍼졌다.
< 200 메카 탈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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