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197화 (197/228)

< 197 지도자 vs 지도자 >

“이이이이익. 언제까지 이딴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성질 급한 엘프가 소리쳤다. 신기한 건 짜증 섞인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도 겉모습은 차분해 보인다는 것이다.

‘에렌이 추한 것을 싫어한다던가.’

그래서 엘프는 화가 나도 얼굴을 찡그릴 수 없고 슬퍼도 울 수 없다. 언제나 고고한 표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성질은 모든 종족 중 가장 더러운 편에 속한다는 게 아이

러니한 일이다.

“참아라. 답답하겠지만 참아야 한다. 전력이 더 모여야 한다. 생각보다 인간이 강력해서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 이곳 밖으로 나갔다간 피해가 클 거다.”

그리고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가진 또 다른 종족. 트롤. 누가 봐도 폭급한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모든 종족 중 가장 현명한 종족이다.

“알지만 짜증납니다.”

치아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트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엘프 종족이 유일하게 존중하는 것이 트롤 종족이니까. 트롤이 없었다면 저 엘프 장

로는 카티쉬의 족장이자 이번 침공의 총책임자인 치아야의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했을 것이다.

저 엘프 장로는 다른 엘프 모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을 거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종족도 나서야 했을 터. 결국 피해는 커지고 전력은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치아야. 당신은 덩치도 산만하면서 이런 좁은 곳에서 잘도 버티는군.”

얼마 전에는 리자드맨 로드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 부었던 엘프 장로의 화살이 이번엔 치아야에게 향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은 자신 있으니까.”

정말 자신 있다. 그는 초식동물이니까.

카티쉬의 형질은 부모의 겉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다. 부가 호랑이, 모가 하이에나의 형질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사슴, 토끼의 형질을 갖고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들소의 형질을 가진 치아야의 부모는 둘 다 사자의 형질을 가진 부족 최고의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자식이 들소의 형질을 가진 채 태어나자 실망했다. 하지만 부

모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진 않았다. 오히려 치아야를 부족 최고의 전사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한 카티쉬라고 해도 어린 카티쉬가 받기엔 고문에 가까운 단련이 매일 이어졌다. 그리고 들소인 치아야는 묵묵히 그 단련을 받아들였다.

지독한 수련이 이어졌고 치아야가 성인이 되기 얼마 전, 그동안 묵묵히 쌓아왔던 화가 터졌다. 치아야는 날뛰었고 부모가 치아야를 막기 위해 나섰지만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나중에 정신 차린 치아야는 당황했지만 부모 둘은 오히려 훌륭한 전사가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 날 이후, 치아야는 최강의 전사로서 부족을 이끌었고, 세월이 흘러 부족장을 맡고, 곧 수많은 부족을 통일해 대부족장의 위치까지,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모든 카티쉬 중 정점

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직접 말한 것처럼 치아야는 참는 것을 잘했다. 어릴 때 지독했던 부모의 수련을 견뎌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잘했다.

‘휘몰아치는’ 치아야.

치아야의 이름 앞에 붙는 ‘휘몰아치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하는 것. 참고 참아 모은 전력으로 한 번에 적을 쓸어버리는 전격전에 자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아라. 진짜 싸움은 파르펨이 넘어오는 날부터 시작이다.”

지금은 이종족을 지구로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마법종족 파르펨. 1년이 지난 후부터는 파르펨도 조금씩 넘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넘어온다면 지구 내에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하면 전력을 뭉치기 쉬워질 것이고 서로간의 연락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 더욱 전략적으로 인간의 도시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며, 이곳에 사는 인간의 무기와 전략에 대해 공유해 더욱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최대한 이 지구라는 세상의 인간들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

이미 인간 몇을 잡아 고문해서 인간들의 무기와 사회에 대해 토해내게 하고 있다. 비텔교 신도가 있기에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알아낸 정보를 분석한 결과

자신들만으론 비텔교를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단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전력을 보존한 채로 추가로 투입되는 전력을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이곳 메카에 온 것이다.

메카에 대해서도 들어뒀기에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 무기를 쓰지 못할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맞아들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죽는 한이 있어도 메카에 핵미사일 등의 전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반년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세계 곳곳에 퍼진 형제들과 힘을 합쳐 인간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랬다. 시련이 클수록 그 결과는 달콤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치아야는 믿었다.

하지만... 그의 바로 앞에 너무나도 큰 시련이 다가와 있었다.

***

제다를 점령한 후 지체하지 않고 메카로 향했다.

-이번엔 다른 방식의 능력을 보여드리...

“그만. 내 앞에서 그건 하지마라. 아무리 사도님 앞이라고 해도 널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빈예츠가 낮은 음색으로 카일라에게 경고했다.

-저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영혼들에게 그들의 손으로 직접 복수할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너에게 예속되겠지. 누누이 말했을 텐데. 영혼은 너희 네크로맨서의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군. 카일라는 내게 영혼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고 그래서 빈예츠가 경고를 한 거군. 이해한다.

“그렇다고 영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저 많은 적을 상대할 수도 없을 터. 사도님이시여. 이곳에서는 제게 선봉을 맡겨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엔 카일라가 양보해주세요.”

-사도님의 뜻대로..

카일라가 뒤로 물러났다. 카일라가 영혼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빈예츠가 나한테 크게 실망하겠지. 영원히 함께 해야 할 수호자를 그렇게 대할 순 없지.

“대신이라고 하기는 그렇겠지만 영혼과 교류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영혼과 교류하는 법. 이것도 꽤 흥미가 돋는다.

-후후.

오하넬이 갑자기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영혼과의 교류는 어렵지 않습니다. 영혼마다 고유의 파장을 가집니다. 그 파장에 제 파장을 맞춰준다면 그들은 제게서 동질감을 느껴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

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오하넬이 왜 웃었는지 이제 알겠군. 설명은 간단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 그리고 이해해도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후후. 스피릿마스터. 아. 미안해요. 장의사죠.

스피릿마스터라는 대목에서 빈예츠가 눈을 부라리자 오하넬이 바로 사과한 후 호칭을 장의사로 바꿨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의사보다는 스피릿마스터가 더 멋있는데 왜 저러는

거야.

-장의사의 능력은 천부적은 자질이 필요해요. 그들은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혼과 교류하죠. 후천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따라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일부 비슷한 파장을 가진 영

혼을 만났을 경우에만 가능해요. 장의사들처럼 모든 영혼에 자신의 파장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답니다.

“그렇군요.”

-아마 장의사에게서 영혼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제게서 차원의 틈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더 쉬울걸요?

차원의 틈은 종족 고유의 능력이다. 인간인 나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즉, 오하넬은 스피릿마스터의 능력을 배우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다.

“아니. 익힐 수 있다. 파장을 하나하나 맞춰 나가다보면...”

-수천 년이 걸리겠죠. 장의사의 능력은 모든 영혼과 파장을 맞출 수 있을 때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던가요? 수천 년이 걸려 장의사의 기본을 쌓고 응용 능력을 얻는데 다시 수천

년이 걸리겠죠. 우리 사도님께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지 않아요.

“그래도 익혀두면...”

-자. 어서 시작하죠. 사도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오하넬이 빈예츠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역시 오하넬. 단호하다니까. 저러니까 다른 수호자들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거지.

“... 시작하겠습니다. 사도님.”

“네. 부탁드립니다.”

빈예츠가 눈을 감았다. 메카에 있는 영혼들과 연결되는 중이겠지. 예전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저걸 하기 위해선 영혼의 파장을 읽고 그 파장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고? 수천, 수만

의 영혼 전부에게?

“너희들은 얼마나 많은 원한을 가졌기에 이렇게 지상에 남아있는 것이더냐. 실로 불쌍한 아이들이구나.”

혼잣말을 시작했다. 저번에 본 적 있는데 저렇게 혼잣말을 시작하면 이미 영혼들과 연결을 마쳤다는 뜻이다. 벌써... 그 수많은 영혼들과 파장을 맞췄다는 뜻이다. 정말 오하넬 말

대로 스피릿마스터의 능력을 익히는 건 포기해야겠군.

사아아아아아아.

힘찬 파도처럼 퍼졌던 카일라의 기운과 달리 빈예츠의 기운이 스산한 바람처럼 고요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영혼들이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내 눈에 보이는 영혼들의 모습을 보면 일반인도 많지만 군인이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메카 시내로 가면 군인보다 일반

인이 더 많을 것이다.

“내 힘을 가져가 써라. 내 힘을 이용해 모든 원한을 풀고 문을 넘어 윤회를 향해 나아가거라.”

다시 빈예츠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번엔 바람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한 무더기씩 사방으로 날아가 영혼들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가거라. 아이들아. 내가 있는 한 너희는 무적이다.”

수만의 영혼이 도시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가기 시작했다. 영혼 중에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빈예츠에게는 그들도 ‘아이’겠지.

-저도 시작하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카일라.”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뭐가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수만의 시체. 제다에서 일으킨 인간의 시체만이 아니라 방금 죽인 이종족의 시체들까

지 전부 일으켜 세워서 데려왔다.

그들이 우리들을 스치고 지나 메카로 달려갔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이종족 무리와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우당탕!

치아야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건물 내에서 밖이 보일 리 없건만 서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그가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방에 있던 사도급 이종족들이 전부 경악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들 모두가 빈예츠의 힘을 느낀 것이다.

“미친... 이런 힘의 크기라니. 도대체 누구지?”

“분명 포로들의 말에 의하면 지구에서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아. 비텔교가 있군.”

“비텔교? 비텔교따위에 이런 강대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자가 있다고?”

“있지. 죽지 않는 자.”

“죽지 않는 자는 이곳에 없다.”

“죽지 않는 자는 비텔교 최고위 사도다. 그런 존재가 이런 곳에 또 있을 리 없지 않나!”

“없을 이유는 없지. 비텔이 최고위 사도를 다른 자로 바꿨다면 말이다.”

“설마 그럴 리가. 아베네고는 1,000년 넘게 그 자리에 있었는데.”

“최고위 사도는 아니다. 아베네고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능력은 이것보다 더 강력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베네고에게 거의 근접한 것임을 틀림없다.”

“그렇다면 최고위 사도는 아니어도 고위급 비텔교 사도 정도는 되겠군.”

“비텔교에선 그런 존재를 주교라 부른다.”

사도급 이종족 여섯, 대족장급 이종족 아홉이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의견을 종합한 치아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비텔교의 주교가 이곳을 공격해왔다. 우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상당한 전력을 이끌고 왔겠지.”

그리고 바로 이 말을 이으며 짙게 웃었다.

“잘됐군.”

< 197 지도자 vs 지도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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