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지도자 vs 지도자 >
-제 기운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지켜보세요. 나중에 사도님께서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내실 때 도움될 겁니다.
기운의 움직임이라. 확실히 다른 수호자들과 달리 카일라의 기운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거다. 특수한 성질이 필요한 능력을 쓰는 다른 수호자들과 달리 카일라는 몸 안의 기운을 움직여 능력을 발휘하니 나와 가장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시체를 움직여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배워둬서 나쁠 건 없겠지.
-제 능력의 시작은 죽은 이가 품고 있는 생각, 사념(死念)을 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사념이라. 죽은 생각이 아니라 죽은 이의 생각인 건가.
-죽은 자가 죽기 직전 품었던 생각은 죽은 몸에 잔류합니다. 저희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그러한 생각, 사념을 다루는 것입니다.
시체를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시체가 아닌 시체에 담긴 생각, 사념을 다루는 거였나.
-예를 들어 가장 흔하며 대부분의 시체가 품고 있는 사념인 ‘살고 싶다.’ 그것에 제 기운을 얹어 강화해 시체를 일으킵니다.
보인다. 제다 시내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사념의 크기는 중요합니다. 그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기운의 양이 한정되니까요.
“즉, 혼자서는 좋은 시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들이란 뜻입니다.”
빈예츠가 지방방송을 켰지만 무시하고 카일라가 뿜어낸 기운을 보는 것에 집중했다. 아직 기운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다른 이의 기운을 보려면 상당히 집중해야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시체의 수는 28구. 그것들 전부를 카일라의 기운이 일으켰는데 담겨있는 기운의 양이 다르다. 사념의 크기라. 덩치가 작고, 결손이 많은 시체에 더 많은 기운이 담겨 있는 것으로 봐선 사념의 크기는 시체의 상태와는 관계없는 모양이다.
-사념과 시체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념을 통해 시체에 제 기운을 주입하면.
카일라가 뭔가를 했는지 각각 시체들의 한 부위에 뭉쳐 있던 기운이 물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몸 전체에 스며들었다.
시체는 곧 카일라의 기운의 색인 어지러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느낌이... 달라졌다. 땅을 딛고 선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몸은 단단한 철이라도 된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시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기운을 주입하는 거에 비해 효율이 아주 뛰어나죠. 그래서 더욱 많은 시체를 더욱 강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렇군. 일단 사념에 기운을 주입한 후 사념을 매개체로 시체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이군.
-사념은 혼탁한 기운입니다. 한 가지 의지만 담은 순수한 생각이 아니라 죽기 전 시체가 남겼던 다양한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저희 네크로맨서는 그걸 이용합니다. 편안함, 집, 안전한 곳, 적이 없는 곳을 원했던 마음을 자극하면...
시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이쪽이군.
-제 앞의 지역을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느끼게 자극했습니다.
“시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념의 여러 가지 생각을 자극해 극대화 해 그 생각이 시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상당히 귀찮은 기술이네. 사념을 분석하고 원하는 내용을 골라내고 그걸 자극하고 방향성을 설정해주고... 그걸 시체마다 전부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 사념의 크기와 형태는 전부 다를 테니 제대로 하려면 머리 터지겠군.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죽인 자들에 대한 원망을 자극하면...
“끼아아아아악!”
“구어어어어어!”
“크리에에에엑!”
쾅! 와그극! 그드득!
시체들이 사방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했다.
강하다. 평범한 사람이었을 시체들이 맨손으로 건물 벽을 뜯어내고 자동차를 해체한다. 그리고,
끼락! 끼락! 끼락! 끼락!
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
제다를 점령한 이종족과 싸우기 시작했다. 강하다. 이종족도 강하지만 카일라가 일으킨 시체들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숫자가 많았다. 이종족 하나당 두셋의 시체가 달라붙으니 이종족도 답 없이 당하기만 했다.
“업보가 돌아가는군.”
빈예츠가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저들이 인간을 학살했으니 시체가 저렇게 많은 거니까.
-네크로맨서는 시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시체들이 가진 마음을 조금 자극해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거죠.
“카일라의 기운이 몸 전체에 고루 퍼졌지만 원래 있던 자리에 조금 뭉쳐 있는 게 보이는데. 거기가 사념이 있는 자리인가요?”
-맞습니다. 많이 발전하셨군요. 쉽게 보기 힘들었을 텐데.
칭찬받았네. 실제로 엄청 보기 힘들었다. 엄청 집중해서 겨우 봤지. 눈에 너무 힘을 줘서 아플 정도로 말이야. 지금 눈에 핏발 장난 아니겠는데.
-사념을 자극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운입니다. 사념에 얼마나 작은 기운을 남기고 신체에 많은 기운을 전달하느냐가 네크로맨서의 실력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죠. 그래서 사도님께서 말씀하신 그 거대괴물을 만든 네크로맨서가 멍청하고 실력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어째서요?”
-시체를 한 곳에 뭉쳐 움직이기 위해선 사념과 사념을 이어줘야 하는데 여기에 상당히 많은 기운이 소비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체가 하나의 행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사념에 많은 기운을 쏟아 부어야 하죠. 결국 시체 자체를 강화하는 효율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하나하나 개개의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세 배에서 네 배까지 강한 전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거대괴물을 만들어낸 네크로맨서의 실력이 낮다고 한 거군.
-그건 카일라가 할 경우잖아?
오하넬이 끼어들었다.
-평범한 네크로맨서라면 그냥 뭉치는 게 훨씬 강력할 수 있다고.
-수련을 게을리 해서 그런 겁니다. 자신만의 패턴을 확립하고 그 패턴에 부속되는 부속패턴을 만들어낸다면 거대하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지?
-200년 정도 걸렸군요.
단위가... 200년이라니.
-카일라 같은 천재가 200년을 수련해야 하는 거겠지. 보통 다른 마스터 네크로맨서는 1,000살은 넘어야 마스터에 접어든다고. 카일라처럼 500살도 안 됐는데 마스터가 되는 경우는 살면서 본적이 없어.
단위가 이상하다고 이 수호자들아. 0을 하나 깎아도 이상해.
“끼로로로로로로로로록!”
순간 강렬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리자드맨 로드인가?’하는 생각에 시선을 주니 로드는 아니고 로드에 거의 근접한 날렵한 몸매의 리자드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은 수십의 시체를 상대로 오히려 밀어붙일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리자드맨은 참 신기한 종족이다. 로드급 직전까지는 오크처럼 잘 무기를 다루며 싸운다. 하지만 로드급이 되는 순간 몸이 비대해지고 전투방식이 확 바뀐다. 참 비효율적인 거 같지만... 그놈들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하겠어.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로드급이 되는 순간 살이 확 찌는 걸까? 아니면 로드급이 된 이후 식욕이 갑자기 올라와서 엄청 집어먹어서 살찌는 걸까.
-저자는 현장에서 임시로 일으킨 시체로 상대하는 것은 힘들겠군요.
그래 보인다. 시체들의 주먹질이 건물 벽을 부술 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저 리자드맨의 비늘을 뚫지는 못하는군. 리자드맨의 도는 시체들의 단단한 피부를 가볍게 갈라내고 있고 말이야.
리자드맨은 저게 문제다.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무시를 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위해선 많은 수의 아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저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소수의 정예가 필요하다. 그래서 리자드맨이 일반 보병들의 악몽이라고 불리지.
-가끔 사념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큰 시체들이 있습니다. 그런 물건은 희귀하기에 꼭 수집해둡니다.
“네크로맨서는 저게 문제야. 시체에 대한 공경이 없어.”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는 그냥 살덩어리일 뿐입니다.
“아니다. 시체 또한 영혼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그만해라. 그 주제로 들어가면 끝나지 않잖아. 지금은 시간이 없다.
다행이다.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전에 특급 소방수 오하넬이 진화했다.
말다툼이 멈추고 카일라가 하던 행동을 이었다. 그녀의 오른쪽 바닥에 검은 색의 원이 그려지더니 어딘가와 연결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을 감고 있는 7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쯧쯧. 불쌍한 것.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구나.”
빈예츠. 생긴 건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은데 마음이 참 여리다니까.
그런데 엄청 무섭게 생긴 시체가 나올 줄 알았는데 깜찍하게 생긴 어린 여자아이라니.
-저 시체는 혹시 사도님께서 가지고 계실지 모를 편견을 깨기 위해 꺼냈습니다. 사념은 생전의 강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생전에 사도급으로 강한 자였다고 하더라고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면 남는 사념은 약할 수 있죠. 반대로 저렇게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하게 거부했다면 큰 사념을 남길 수 있습니다. 물론 강자의 정신력이 강하기에 큰 사념을 남길 가능성이 크기에 강자를 죽인다면 반드시 사념을 한 번 살피는 게 좋습니다.
카일라가 내게 자신의 능력을 설명해주는 와중 어린소녀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뛰어난 각력이다. 거의 한 번에 10m는 이동하는 것 같다. 어린소녀의 시체는 공처럼 통통 튀어 리자드맨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난투극이 벌어졌다. 정말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만. 정말... 정말 안 어울린다. 격렬하게 손과 발을 써서 자신보다 10배는 큰 덩치를 가진 리자드맨과 격렬한 격투를 벌이는 소녀라니.
-강제로 강한 사념을 남기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름의 노하우와 시간이 필요한 방법이기에 아직 저는 해보지 못했지만 고문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죽이는 방법이 가장 많이 쓰이죠.
“그래서 너희 네크로맨서들이 욕을 먹는 거다. 사악한 놈들.”
이건 반박 못하겠네. 강한 사념을 가진 시체를 얻겠다고 고문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다니. 완전 악당이잖아.
-저 소녀는 굶어죽었습니다. 숲에서 발견했는데 아마 부모님과 함께 이동하다가 어떤 이유로 부모님이 죽고 혼자 살아남아 헤매다 죽은 듯합니다. 운이 좋았죠. 보통은 굶어죽기 전에 잡아먹히는데 말입니다.
“인정머리 없는 것 같으니.”
-남아있는 가장 강한 사념은 ‘배고프다.’와 ‘춥다.’ 그 사념에 자극을 가하면...
화확!
어린소녀의 주먹과 다리에 불꽃이 서렸다.
퍼버버버벅!
그렇지 않아도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불이 더해지면서 파괴력도 강해졌는지 난타당한 리자드맨이 쓰러졌다. 그 위에 소녀가 올라탔다. 난 그대로 소녀가 난타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장면은,
우직.
소녀가 이빨을 리자드맨의 몸에 박아 넣는 거였다.
“끼로로로로로록!”
리자드맨에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소녀는 리자드맨이 비명을 지르든, 발버둥을 치든 상관하지 않고 리자드맨의 몸에 딱 달라붙어 뜯어먹기 시작했다.
-저렇게 강하게 남은 사념과 연결해 기운을 주입하면 시체가 특수능력을 발휘하게 만들거나 특수한 부위를 더욱 강하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원리는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가진 비텔님의 기운으로도 가능한 일인가요?”
-기운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모든 기운의 기원은 같습니다. 그러니 안 될 건 없습니다. 다만 효율이 조금 떨어질 것 같으니 웬만하면 사도님만의 방법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군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제가 할 일입니다.
카일라는 참 좋은 스승이다. 스스로가 천재이면서도 둔재인 날 잘 가르쳐준다니까. 다른 수호자들은... 지들이 천재인 걸 잊고 지들이 익힌 방법 그대로 가르쳐주려고 해서 뭘 배울 수가 없다.
-그럼. 전부 이해하신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도시의 적을 제거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카일라 근처에 20개의 검은 원이 그려졌고 그 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종족들이 나왔다. 다양한 종족에,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도 있다. 저건 날개를 달고 있네. 조인족이라고 하면 되려나.
처음 나왔던 소녀도 그렇고 너무 멀쩡해서 시체 같지가 않아. 그것들이 제다 시내로 움직였고, 약 30분 후.
-이 도시에 남은 이종족은 더 이상 없습니다.
제다를 탈환했다.
< 196 지도자 vs 지도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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