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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95화 (195/228)

< 195 지도자 vs 지도자 >

덥구나.

우리나라완 비교도 되지 않는 햇빛이 강한 이곳은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한 국가 수단의 항구도시 포트수단이다.

메카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수많은 각국 정보요원과 군인, 용병, 심지어 마피아까지 몰려 있었다. 하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내건 보수가 워낙 짭짤해야지. 힘 좀 있는 녀석들은 다 혹할만한 조건이니까.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김해역이 강하게 말했다. 그의 옆에는 벤센, 김진서, 데니스 등 비텔교 간부가 총출동해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수천의 성전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우릴 구경하는 각국의 요원, 군인, 용병, 마피아와 우리의 모습을 취재하고 있는 취재진이 진치고 있었다.

유나와 맹연은 여기 없다. 정 없는 애들이라서 안 나온 게 아니라 유나는 어제 내내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말리다가 내가 뜻을 굽히지 않으니 삐져서 호텔방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고 맹연은 그런 유나를 돌보고 있었다.

“이미 정한 거잖아. 여러분도 그래요. 여기 오기 전에 다들 모였을 때 정한 건데 왜 또 그러세요. 다들.”

“그리고 저희 모두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반대하고 있죠.”

그러긴 했지. 이 사람들은 내가 혼자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겠다고 결정한 이후 단 한순간도 반대를 멈추지 않았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 나지만... 이번엔 나도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아시겠지만 이미 교주로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절대 따라와서는 안 됩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주님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6,000 성전사가 있는데 어째서 혼자 가시는 겁니까.”

“그래서 가는 겁니다. 성전사들이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듯이, 저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하니까.”

진심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결정하고 매일 어떻게 할지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벤센이 열심히 들고 오는 정보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상을 배포하기 전에 이미 그곳에 있는 이종족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한 상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은 시작부터 최악이었다.

최초 3곳을 이종족이 침략해왔고 각각의 전력은 2,000, 4,000 그리고 3만. 3만이면 한 곳을 침략한 이종족의 수로는 최대치였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막지 못했고 순식간에 3곳의 도시가 이종족에게 점령당했다.

그래도 중동의 강자답게 최대한 다른 도시로의 진출을 저지하며 버텼지만 이종족이 계속해서 침공해오며 수가 늘어나자 국가 존속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내에 있는 이종족의 수는 7만~10만으로 추정된다. 거기에 사도급으로 보이는 이종족의 수만 다섯, 그 외의 대족장의 수도 꽤 많다. 가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종족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당연히 혼자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성전사의 피해가 크겠지만... 어쩔 수 없지. 비텔교의 발전을 위해서니까.’라고 생각했으니까. 홀로 가서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성전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가족의 생명보다도 중요한 것이 내 목숨이니까.

‘내가 죽으면 비텔님과의 연결도 끊어지고 ‘군주의 위엄’ 효과도 사라지고 비텔교 자체의 존속이 위험해져.’라는 생각도 있었다. 자기 위안을 위한 변명 같은 건 아니었다. 사실이니까. 비텔교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선 내가 꼭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도 나름 성전사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플 때까지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한 마디 말을 듣는 순간 그것들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전사들의 피해를 피할 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그냥 진행하십시오. 교주님과 비텔교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우리 성전사들은 언제든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회의에 참여했던 어느 고위성전사의 말. 비장하거나 의지가 담겨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대화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걸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심장에 총알이라도 박힌 듯 큰 충격이 찾아왔다.

‘나는?’, ‘나는 저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나?’, ‘난 왜 저들의 희생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살아야 비텔교가 산다는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맞다. 성전사가 모두 죽어도 나만 살아있다면 비텔교는 건재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성전사를 앞세우고 내가 안전한 곳에서 보조하는 게 맞다. 그래. 그게 확실히 맞다. 하지만 가끔은 감성적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생각한 난 반사적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저와 수호자만 가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성만 가득 담긴 멍청한 생각인 거 같지만... 믿는 구석도 있다.

사실 난 불사신이잖아. 안 그래. 그락카르? 지금 내가 자살행위를 하는 거라면 빨리 말려줘. 지금이라도 성전사들이랑 같이 가게 말이야.

.... 대답이 없는 걸 보면 내가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지.

믿는다. 그락카르. 난 네가 나 혼자 싸우는 게 보고 싶어서 일부러 가만있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그 동안 꽤 사이좋아졌잖아. 그렇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재고를 해주십시오!”

“교주님만 보내고 저희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희의 참여를 재고해주십시오!”

재고해주십시오!

수천의 성전사가 하나의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저들을 데려가면 든든할 것이다. 내가 위험할 일은 없겠지. 하지만... 수백, 수천이 죽을 것이다. 나와 수호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 모두를 지킬 수 없다. 그만큼 메카에 있는 이종족의 전력은 막강하니까.

그러니 나 혼자 가야한다. 내가 매번 외치듯 우리 비텔교가 정말 가족이라면 가족이 죽을 걸 알면서도 사지에 보내서는 안 되는 거잖아?

“걱정 마세요. 그렇게 일하고 싶다고 보채지 않아도 제가 메카를 탈환 후에는 아주 바빠질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메카만 이종족에게 점령당한 것이 아니다. 메카외에도 많은 도시가 이종족에게 점령당해있다. 메카 정도로 강력한 것은 아니기에 내가 메카만 탈환하고 나머지는 성전사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음... 이제 마지막 말을 하고 출발해야 하는데...

....

......

........

..........

진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아니지? 나 죽는 거 아니지? 나 죽는 거 보고 싶어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 아니지?

불안하다. 돌이킬 수 없는 적진 한가운데에서 리셋이 시작될까봐 말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그것만은 정말 하기 싫다.

대답해라. 이 썩을 놈아! 겁쟁이! 불명예만 가득한 전사! 카록 나쁜 놈! 미로크... 미로크 욕은 차마 못하겠다. 여하튼 지금 말 안하면 정말 멍청한 겁쟁이인 거다.

....

.....

.......

좋아. 이정도 했는데도 말 안하는 거 보면 정말 나 안 죽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성전사들은 절대 따라오지 말고 대기하세요. 곧 연락하겠습니다. 가죠. 오하넬.”

오하넬이 날 안아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비텔교의 수상한 포트수단 집결은 취재진과 일반인들에 의해 처음부터 촬영되어 인터넷방송으로 세계에 동시 중계되고 있었다. 예고 없는 갑작스런 방송이었지만 교주인 한상이 나오는 만큼 신도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시청했다.

곧 그들은 왜 한상과 성전사들이 왜 포트수단에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들에 의해 한상이 홀로 메카탈환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각국 방송은 속보로 한상의 메카탈환 소식을 다뤘고, 생방송으로 한상이 떠나는 장면을 방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은 세상 모든 곳에 알려졌다.

-아니 교주님은 왜 비텔교 배척하는 이슬람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러 가시는 거야. 너무 이타적인 분이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하셔도 될 텐데.

-지금 방송에 교주님 나오심. 메카탈환 하러 가신다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사우디아라비아 거기 위험한 곳 아님? 거길 교주님이 왜 가시지?

-저거 위험한 거 아니냐.

-내가 들었는데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한다. 왕은 이미 죽었고 왕자들도 많이 죽어서 계승권 없던 하위서열 왕자가 최고 수장이 될 정도래.

한상이 홀로 메카탈환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은 신도들은 가장 먼저 한상에 대한 걱정을 했고, 그 걱정은 곧 성전사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다.

-야이. 빌어먹을 성전사놈들아! 교주님이 오지 말라고 했다고 정말 교주님 혼자 가게 놔두냐!

-니들이 왜 있는 건데! 싸우라고 있는 거 아니냐! 그런데 왜 교주님 혼자 싸우시게 해!

-교주님 몸에 스친 상처라도 하나 나는 날엔 총 들고 성전사 찾아간다.

-김해역 너는 성전사장이란 놈이 교주님 싸우러 가는데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냐!

실시간 방송의 채팅창, 인터넷 게시판, 댓글은 순식간에 성전사들에 대한 욕으로 도배되었다.

-포트수단? 나 지금 거기 간다. 성전사놈들이 제 일을 안 하니 나라도 가서 교주님을 지켜야겠다.

-나도 간다.

-나도.

-아무리 교주님이 명령했어도 항명해서라도 교주님을 지켜야지. 세상에서 교주님만큼 중요한 분이 어디 있다고.

-나 지금 휴가신청 했고 비행기표도 바로 끊었다. 비록 늦을지라도 가야겠다. 가서 교주님께서 성공하셨다면 축하해드리고 다치셨다면 성전사 놈들 다 죽여 버릴 거다.

점점 채팅과 댓글이 과격해져가는 가운데,

-야. 잠깐 봐봐. 성전사들 행동이 이상한데?

누군가가 방송 속 성전사들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발견했다. 일부 성전사들이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가 무언가를 쥐고 잡아 뜯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거 성정사단 문장 뜯는 거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성전사단 문장은 저쯤 달리잖아.

-뭐하는 거지? 정말 문장을 뜯는 건가? 그거 성전사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거잖아.

날개달린 방패. 자유를 수호하는 방패라는 의미가 담긴 성전사단의 문장이다. 성전사가 되면서 교주인 한상에게 직접 하사받기에 목숨처럼 귀하게 아낀다.

성전사들은 싸우고 훈련하는 중 찌그러지고, 구멍 뚫리고, 파손 나더라도 다른 새로운 문장을 받지 않는다. 한상이 직접 중 세상에서 하나뿐인 문장이니까. 신도들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성전사들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문장을 뜯어내는 행동은 점점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성전사가 문장을 뜯어냈다.

그것은 한 고위성전사가 문장을 뜯어내 김해역에게 반납하며 한 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성전사에서 일반 신도로 돌아가겠습니다. 교주님께서는 성전사들에게 오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일반 신도가 된다면 가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성전사들이 잠깐 망설였다가 문장을 뜯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김해역에게 문장을 내밀었다.

“어서 받아주십시오. 교주님을 따라가려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성전사들은 한상이 직접 준 것이기에 문장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김해역이 받아주기만 기다렸다.

김해역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도 손을 들어 왼쪽 심장에 달린 성전사단 문장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뜯어냈다.

***

제다.

메카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메카에서 가까운 도시인만큼 당연하게도 이종족에게 점령당해있었다.

그곳의 탈환을 위해 내가 왔고 선봉으로 카일라가 나섰다.

-마음껏 힘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카일라가 기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능력이 시체를 다루는 것이기에 수호자 중 가장 힘을 억제해야 했던 카일라다.

그 고충을 알기에 나도 선봉으로 카일라를 내세운 거다. 그동안 억눌렀던 것을 전부 토해내라고 말이다.

항구 끄트머리에 올라선 카일라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 올렸다.

예전에 카일라에게 그락카르의 세상에서 봤던 거대괴물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카일라는 ‘정말 투박하고 저급한 방식이네요. 힘만 넘쳐나는 바보나 그런 식으로 시체를 이용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힘은 몰라도 기술이라면 ‘죽지 않는 자’보다도 카일라가 훨씬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고 자신한다는 뜻. 그동안 여러 제약 때문에 그걸 확인하지 못했는데 오늘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겠구나.

카일라가 높이 치켜들었던 지팡이를 강하게 내리쳐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후와아아아아악!

힘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제다를 파고들었다.

< 195 지도자 vs 지도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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