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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94화 (194/228)

< 194 지도자 vs 지도자 >

백악관 지하 깊숙한 곳에는 전시를 대비한 특수사령부가 존재한다. 핵폭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개발된 이곳에는 군을 지휘하기 위한 모든 장비가 갖춰져 있기에 보안이 중요한 일을 진행할 때 간혹 사용된다.

가장 최근에 사용된 때는 ‘미군, 비텔교 연합 도시탈환 작전’ 때이다.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이 실시간으로 작전을 지켜봤다.

그런 곳에 다시 지휘관들이 모여들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제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시오.”

미 대통령, 체이닝이 좌중을 보며 말했지만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각하. 방금 본 영상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지휘관 중 하나가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런 영상을 보고나서 어떻게 바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핵미사일 한 방이면...”

“제정신이오? 모든 무슬림을 적으로 만들고 싶은 거요?”

“하루에 한 번씩 테러 당하겠군.”

누군가 용기를 내 한 마디 했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진 포화에 바로 말을 접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하긴 했지만 그가 생각해도 멍청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방금 본 영상의 배경이 바로 메카다. 메카에 핵미사일을 쐈다간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무슬림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후... 답답하군요. 이계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런 괴물이 존재할 수 있는 건지. 8개월을 버틴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단해보이는군요.”

영상을 본 모든 이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영상에 나온 이종족은 그들의 상식을 벗어났으니까.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종족때문이었다. 원래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세상 모든 곳이 이종족의 침공을 받고 있고 그건 자국도 마찬가지였기에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신경 써야 할 곳이 되었다.

‘국가를 되찾아주는 이에게 영토 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지분 30%를 주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 국왕이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파탄에 이른 국가를 구해주는 것 치고 낮은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2위, 생산량도 2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국가의 원유 지분의 20%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하는 원유를 돈으로 따지면 이종족의 침략 직전 최하로 떨어진 배럴당 35달러로 계산해도 약 1,500억 달러, 환율 1,200이라고 가정하고 원화로 계산하면 약 180조원. 그 중 30%라면 54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생산원가는 약 9달러. 지금처럼 원유의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도 순이익이 60%에 달한다. 즉,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종족으로부터 해방되어 정상적으로 석유 생산이 이루어진다면 받을 수 있는 순수하게 32조 4,000억 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이종족의 침략으로 석유 생산이 원활하지 못해 천정부지로 오른 배럴당 110달러일 경우로 계산한다면 약 1,100억 달러, 한화로 약 130조 원을 받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종족에게서 탈환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매년 30조 원에서 130조 원 사이를 벌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미국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여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떻게 해야 탈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자신 있었다. 비텔교와 함께 한 다섯 번의 작전을 통해 이종족을 상대하는 여러 노하우가 생겼고 그 노하우를 총동원해 대(對)이종족 전략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텔교 성전사가 그랬던 것처럼 저격총 위주로 병사들의 장비를 맞췄고, 좁은 구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대구경 무기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다.

물론 대물저격총을 권총 다루듯 하는 성전사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비텔교 신도가 되면서 증가한 신체능력으로 어느 정도 구경이 높은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기에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영상을 보니 그 자신이 싹 사라졌다.

“그 비스트팩션. 웨어바이슨 이었던가요.”

“그 포탄을 손으로 잡아 던지고 탱크를 숄더차징으로 뒤집어버리던 괴물을 말하는 거라면 웨어바이슨 맞소.”

머리에 들소의 동그랗게 말린 뿔을 달고 몸 전체에 검은색 뻣뻣한 털이 나있던 거대한 덩치의 카티쉬족. 미군은 그를 웨어바이슨이라 명명했다.

영상 속 웨어바이슨은 탱크가 쏜 포탄을 손으로 잡아 던지고 어깨치기로 탱크를 뒤집어버리는 괴력을 보여줬다.

“웨어바이슨만이 아니지. 오베시드래곤 주변의 병사와 장갑차가 공중으로 떠오른 것 봤소? 그대로 전부 집어던졌지. 간혹 염력을 쓰는 개체가 발견되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강한 개체는 본 적이 없소.”

“불을 몸에 두른 채 싸우던 드워프는 또 어떻고, 그 이종족이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모든 게 녹아버리더군.”

“엘프는 어떻고. 엘프 봤소? 공격형 엘프는 또 첨이군. 녹색 빛이 화살비처럼 쏟아져서 탱크고 장갑차고 다 뚫어버렸소.”

“하나하나 말해서 끝이 있겠소? 짧은 영상이었는데 내가 본 특이개체만 열이 넘었소. 영상에 나오지 않는 특이개체가 몇일지 짐작도 되지 않더군.”

한 번 터지니 여기저기서 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물밀 듯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영상은 충격적이었으니까.

비텔교에 의해 ‘대족장급’이라고 명명된 인류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개체만 해도 다섯은 되어보였다. 거기에 전략병기급인 ‘족장급’이 수십. 괜히 핵미사일을 쏘자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전 절대로 반대합니다. 저런 곳에 군을 투입하는 건 자살 임무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돈 몇 푼 벌자고 내 새끼들을 저곳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돈 몇 푼이 아니라 1,000억 달러요. 국방비의 20%에 달하는 돈이오. 군에 더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거요.”

“돈을 더 투자하든 뭘 하든 내 새끼들 피 값인 거 아니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피 값 치른다고 이길 거 같은 상대도 아니오.”

“그걸 해내라고 우리가 5,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국방에 쏟아 붓는 거 아니오. 요즘 이종족을 상대로 한 전략을 준비한다고 돈 더 가져가더니 저런 것도 못하면 어쩌자는 거요. 저 이종족이 우리나라로 와도 못 싸운다고 할 거요?”

“우리나라로 온 게 아니잖소! 미군이 용병도 아니고 돈 준다고 가서 싸워주는 게 말이 되오!”

“세계의 경찰 아니오! 세계의 경찰! 이종족은 깡패고! 경찰이 되어갖고 깡패도 못잡고 뭐하는 거요!”

“그딴 세계의 경찰 안 하면 되지!”

순식간에 양쪽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적이 너무 강하고, 보상이 너무 크다. 상대하기엔 너무 세고, 포기하기엔 너무 탐난다. 그러다보니 대화가 과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체이닝이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비텔교와 공동작전을 펼친다면 어떻겠소.”

미군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이종족을 상대함에 있어선 미군보다 비텔교가 뛰어나다. 이종족을 상대하기 위해선 전력의 정예화가 중요한데 비텔교에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대족장급을 1:1로 이길 수 있는 존재까지 있는 것이다.

수호자.

절대적인 강자의 유무는 이종족을 상대함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했다.

“비텔교가 함께 한다면 일이 훨씬 편해지긴 하겠지만 역시나 정면대결은 무리입니다. 수호자의 수는 다섯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상 속 대족장급이 다섯이기에 수가 맞지만 영상에 나오지 않은 대족장급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텔교에는 족장급 특이개체를 상대할 중간 전력이 없습니다. 고위성전사도 다섯에서 열은 모여야 족장급을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진 바, 저 곳의 이종족은 족장급이 너무 많습니다. 비텔교가 함께 한다고 해도 위험한 작전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비텔교가 함께 한다면 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타격한다면...”

“전 반대합니다. 비텔교가 함께 한다면 원유수입을 나눠줘야 합니다.”

“그건 당신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해서 비텔교의 보상을 따로 준비하면 될 것 아니오.”

“사우디아라비아가 비텔교의 합류를 좋아하지도 않을 거요. 그들은 국가 사멸 위기에서도 비텔교의 파병을 거부했지 않소.”

체이닝이 비텔교 이야기를 꺼내자 과열됐던 분위기가 식긴 했지만 여전히 찬반이 나뉘어 대립했다.

“그래도 비텔교가 합류한다면 작전이 현실성 있어진다는 것이군.”

체이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취합해 결론을 만들어내는 역할. 체이닝은 자신의 그 역할을 잘 알고 잘 해내는 대통령이었다.

“비텔교가 합류하는 것을 가정하고 다시 의견을 나눠 봅시다.”

“비텔교가 합류할 경우 수단에 캠프를 차린 후 제다를 탈환해 메카로 진격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하는 작전을 펼치기 용이해집니다.”

“먼저 왕자를 찾아가 비텔교 합류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슬림 사회의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비텔교가 참여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가 약속한 30%에서 5~10%를...”

회의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렇게 백악관 지하에서 회의가 한창일 때, 완공되어 얼마 전 이사를 마친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비텔교 성전 ‘아이들의 쉼터’에서도 교주인 한상과 교의 간부들이 모여 메카를 점령한 이종족과의 전투영상을 보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바이가 직접 보낸 것은 아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각국에 보낸 영상을 중간에 빼온 것이다.

“어때요?”

영상을 다 본 한상이 좌중에 물었다.

-키힉. 사도님 다섯의 피를 마실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가장 먼저 히르아가 대답했지만 한상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다른 네 수호자를 바라봤다.

-할만 해 보이네요.

-명령만 내리시면 제 검이 그들을 굴복시킬 것입니다.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어렵진 않습니다.

“영혼의 힘은 무한합니다. 보아하니 저곳에 가면 많은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군요.”

오하넬, 아딜, 카일라, 빈예츠 순으로 대답이 들려왔고 전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애초에 수호자들에게 물은 거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그와 수호자들만 가기로 결정된 상태였으니까.

“그럼. 시간 끌 것 없이 내일 바로 가죠.”

백악관 지하에서 비텔교의 합류를 전제조건으로 회의하고 있을 때, 비텔교의 메카탈환작전은 시작되었다.

< 194 지도자 vs 지도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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