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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90화 (190/228)

< 190 본격화되는 전쟁 >

시간의 빠르기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트자릭과 트자딕을 받아 들인지 5달이 흘렀다. 트자릭, 트자딕과 싸웠을 때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대군주와 싸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5달이 흘렀는데도 대군주와의 싸움은 한 번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새로 받아들인 형제의 땅을 정비하고, 그 주변의 작은 부락을 우리 부락에 합류시키는 등.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넓다.

마수드의 부락인 마홀에서 가장 가까운 트자딕, 트자릭의 부락인 구트락이 카바크를 타고 8일 거리에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까웠던 대군주 마렉의 부락 마쿠스는 보름이 넘게 걸렸다. 다른 대군주 형제의 땅은 그보다 더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쉽게 갈 수가 없다. 그런 거리를 생각없이 갔다가는 정말 굶어 죽을 테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다음 출정은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 출정을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지.

부락과 땅을 다스리는 대부분의 일은 노르쓰 우르드가 알아서하기에 그만 힘들고 난 편해야 했지만,

“가르혼에서 매년 수확한 곡식의 30%를 다른 부락에 팔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마홀에서 카바크 고기가 보내질 예정이니 여분의 곡식이 더 늘어날 거다. 약 50%정도 되겠지. 이제 이걸 이곳 마홀과 구트락 등 다른 부락에 분배하는 거다. 특히 라쿠스에는 많이 보내야겠지. 마렉이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환경상 식량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군.”

자기는 축복 받은 자들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며 내가 부락을 운영해야한다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려는 노르쓰 우르드 때문에 나도 힘들다.

처음에 비하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

“크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천천히 익혀나가면 된다.”

“... 알았다. 수고했다. 노르쓰 우르드. 넌 정말 대단하다.”

“대단한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밖에 없는 것뿐이다.”

진심이다. 노르쓰 우르드는 정말 대단하다. 카록께 단 한 번의 축복도 받지 못했으면서 거의 대족장급에 근접하는 강자, 그리고 그 강함보다도 훨씬 대단한 현명함을 갖추고 있다. 명석함도 급을 나눌 수 있다면 노르쓰 우르드는 대족장을 아득히 넘어선 경지에 있을 것이다.

어느 날 ‘형제도 부락의 운영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북쪽에 있을 때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살짝 머리 아프긴 했지만 곧 완벽히 터득했었지. 그런데 이번엔... 너무 복잡하고 너무 머리가 아프다.

북쪽에서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단 한가지였다.

‘전쟁’

싸울 적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됐었다. 식량, 재료 등등. 그런데 이곳에선 그럴 수 없었다. 적이라고 해봐야 전부 형제, 자매들이기에 먹을 수 없다. 아니. 먹을 수 있는 적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진 않을 거다.

형제들이 너무 많으니까.

형제, 자매의 수가 너무 많다. 부락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다가 너무 머리가 아파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 있는 거냐. 그냥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새로운 부락을 만들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노르쓰 우르드에게 물었다. 그게 자연스런 흐름이니까.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형제가 모든 부락을 정복하고 흩어버리면 해결되긴 할 거다. 모든 부락이 잘게 쪼개져 흩어진 날에서 20년, 아니 15년 정도면 안정될 거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그리고 그 15년 사이에 수백만의 형제, 자매가 죽음을 맞이할 거다. 굶어죽겠지. 이 땅에는 사냥만으로 먹고 살기엔 너무 많은 형제, 자매가 존재하니까.

-흩어진 각각의 부락이 알아서 농사인가 뭔가를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게 문제다. 소수의 인원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오크가 전쟁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가능하지.

-잘게 쪼개진 부락들도 서로 전쟁을 할 거다. 그러니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만 농사를 지어야 할 거다. 농지가 줄어들지. 거기에 전쟁이 일어나면 마을 근처에 만들어진 농지가 폐허가 될 거고, 멀쩡하더라도 전쟁 중 농사를 멈춰야 할 테니 수확량이 줄어들겠지. 다른 문제도 있다. 부락이 작아지면 전사와 농사를 짓는 자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모든 이가 전쟁, 농사를 함께 해야 할 테지. 즉, 농사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된다는 거다. 당연히 역시나 수확량이 줄어들 거다. 그리고 철과 같은 자원 역시 직접 채굴하기에 또 농사를 지을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부족..

-잠깐. 그냥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것 아니냐.

내게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싶어 하는 노르쓰 우르드의 마음은 알지만... 그걸 다 듣기엔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었다. 어차피 노르쓰 우르드가 하는 말이고 그가 하는 말이면 맞겠지.

-맞다. 수십 가지 이유로 형제. 수확량이 줄어들어 굶어 죽는 형제, 자매들이 나올 거다.

이유가 수십 가지나 있다고 한다. 그때 노르쓰 우르드의 말을 끊은 판단은 최고였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들의 수가 줄어들면 수확량이 또 줄어들 거고 또 굶어 죽겠지. 15년 정도 흐르면 수백만의 형제, 자매가 사라지고 균형이 맞춰질 거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수백만의 형제, 자매를 굶어 죽게 만든다니. 그래선 안 된다. 족장이 해야 할 일 중에 전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형제, 자매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걸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의 전문화다. 지금처럼 농사짓는 형제, 자원을 채취하는 형제가 있어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면 더 잘해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전사들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켜 줘야한다.

그렇군. 그때 노르쓰 우르드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맞는 말인 것 같아 인정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부락을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그것도 큰 문제를.

“그런데 노르쓰 우르드. 이상한 점이 있다”

“뭐냐. 형제.”

“농사짓는 형제, 자원을 채취하는 형제들도 싸우고 싶을 것 아니냐.”

싸움은 오크의 본능이자 카록께서 최고로 추구하는 가치. 그걸 할 수 없는데 형제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키칵. 좋은 의문이다. 형제. 형제는 정말 대단하다. 강한 것뿐만 아니라 현명해.”

노르쓰 우르드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저렇게 말해주니 뭔가 잘한 것 같아서 뿌듯하군. 내가 노르쓰 우르드만큼은 아니지만 현명하긴 하지.

“그걸 해결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장인을 생각해라.”

“장인?”

“장인은 전투에 나서지 않아도 자신의 무기가 강한 전사에게 쓰일 때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여기에서도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많은 곡물을 수확했을 때, 좋은 철을 채취했을 때. 그들이 명예로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미 명예롭지 않나. 그들이 없으면 부락이 유지될 수 없다고 했잖나. 부락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이미 그 형제들은 명예로운 거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형제들이 형제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곳의 형제들은 그 명예로운 형제들을 노예로 만들어 더럽혀왔으니까.”

“그 형제들이 잘못 생각한 거다. 스스로 명예롭고 싶다면 다른 형제의 명예도 존중해야 한다.”

“내 명예를 위해 다른 자의 명예를 인정해야 한다... 좋은 말이군.”

옆에서 듣고 있던 마수드가 끼어들었다.

“좋은 말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이곳에서 최소 500년간은 아니었다.”

500년... 긴 시간이군.

“그나저니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었군.”

“아버지의 말?”

“‘링마스터가 있었으면 내 땅이 두 배는 컸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지. 직접 보니 정말 대단하군. 내 밑에도 링마스터가 있었다면 두 배, 아니 세 배는 큰 땅을 차지하고 있었을 거다.”

링마스터? 링마스터가 뭐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마수드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슬레브링은 알지 않나.”

“안다.”

슬레브링은 전사가 아닌 형제들을 노예라며 구속하기 위해 채웠던 쇠로 만든 고리다.

“언제부턴가 노예 중에 제법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링마스터라고 불렀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우르드. 링마스터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노예 중에 강한 자...

“기억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물려주는 것이다. 그락카르 형제. 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카록의 축복을 받지 못한 약자에게 힘을 물려준다.”

노르쓰 우르드가 이어서 설명해줬다. 그 말을 들어본 기억이 난다. 카록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자신이 쌓은 힘을 후대에 물려줘 후대가 축복 없이 강자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주술사라고 했었지.

“주술사는 원래 이곳에서 생활했었다. 그 때 카록의 축복을 받지 못한 약자는 대부분 노예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노예 사이에서 주술사가 나타났고 전사들은 그런 우리를 링마스터라 불렀지. 우리들의 출신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존중의 의미였다고 들었다. 최소한 내 아버지는 출신의 한계를 넘어선 강자들이라고 존중의 의미를 담아 불렀다.”

“그런 형제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링마스터보다는 노예장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했었다. 물론 내가 겪은 건 아니다. 내 전대가 겪은 일이지.”

“그런 자들도 있었겠지. 여하튼 아버지는 링마스터에 대해 ‘힘은 그럭저럭이지만 머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다.’라고 평가했었다. 바보같이 반란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지금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을 텐데.”

“반란? 그건 반란이 아니라 살기 위한 투쟁이었고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 당시를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멍청한 소리는 하지마라.”

“비록 내가 당시를 겪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지.”

둘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결투는 괜찮은 일이지만...

“둘 다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일로 무조건 자신이 옮다며 감정 상한 채 싸우는 건 멍청한 일이다.”

판단은 직접 겪어보고 내려야 한다.

“둘 다 싸우고 싶다면 나와 싸워라. 형제들이 쓸데없는 이유로 다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결투 중 다치거나 죽어도 상관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그냥 심심해서 싸운 것이라고 해도 스스로 싸우고 싶어 싸웠다면 말이다. 하지만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겪은 것도 아니고 남이 해준 말의 정당성,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싸움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형제도 사정을 알면 나를 이해해줄 거다. 내 머리는 뚜렷하게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이곳에 살던 아홉의 주술사들은 살기 위해, 그리고 노예라 불리던 형제들의 명예를 위해 들고 일어나 싸웠다. 결국 져서 다섯만 살아남아 북으로 도망쳤지만 그때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잘 생각해라 형제. ‘우리의’가 아니다. 형제는 형제다. 전대의 기억을 형제의 것이라 착각하지마라.”

“.....”

노르쓰 우르드가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멍청한 행동을 할 때도 있군.

“형제의 기억이 아니다. 다른 형제의 기억을 받은 것뿐이다. 그 형제가 겪은 일이며, 그 형제의 사사로운 생각이 들어간 기억이다.”

“하지만 감정은 배제하고 기억만 훑어봐도 누가 잘못했는지는 명백...”

“다시 생각해라. 형제. 그 형제는 신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보지 못해.”

“....”

노르쓰 우르드의 표정을 보니 납득한 것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난 이정도 했으면 충분히 한 거다. 이후로도 싸우겠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싸우게 놔두는 수밖에.

***

며칠이 흘렀지만 노르쓰 우르드와 마수드가 싸우는 일은 없었다. 잘한 일이다. 그런 쓸데없는 일로 싸울 필요는 없지.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았다.

-왜 노르쓰 우르드를 우르드라고만 부르는 거냐. 마수드.

궁금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링마스터는 자신의 이름 앞에 전대 링마스터의 이름을 붙인다고 들었다. 그러니 전대 링마스터의 이름은 노르쓰, 우르드의 이름은 우르드지.

라는 말을 들었다. 노르쓰 우르드, 아니 우르드에게 물으니 정말이라고 한다.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을까. 충격이었다. 나도 앞으로 우르드라고 부를 거다.

***

북쪽에 사는 형제들이 이 땅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서북쪽으로 향했다. 아직도 이곳의 형제들은 북쪽의 형제들을 야만오크라고 부른다. ‘야만오크가 침략해왔다!’라니.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야만오크잖냐. 한 대 쳐줄까 하다가 참았다.

진정한 대족장을 뽑으라는 카록의 전언은 이곳에 있는 대족장들에게만 전해진 것은 아닐 터. 아마도 이번에 온 형제들은 그 말을 듣고 온 대족장 가운데 하나일 터였다. 그래서 기대했다. 대족장과 싸울 수 있다니.

그렇게 마홀에서 6일을 달려 북쪽에서 온 형제들이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배고플 테니 식량으로 쓸 카바크도 잔뜩 끌고 말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뜻밖의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오르히?”

“오랜만이다. 그락카르. 예전에 남쪽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만날 거라 생각은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만날 줄은 몰랐다.”

내 오크생에서 처음 만났던 대족장이자 거대한 벽이었던 오르히. 그가 거기 있었다.

< 190 본격화되는 전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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