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탈환작전 >
-키히힉. 사도님의 피를 마실 수 있다니. 기쁘네요.
야. 그렇게 웃지 마. 미이라가 그렇게 웃으면 막 무서워. 그리고 사도님을 강조하지 마. 너 나도 사도님이라고 부르잖아. 내 피가 마시고 싶은 거냐.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기냐. 오하넬이나 카일라, 아딜이 있는 곳에 나타났으면 좀 좋아? 대족장급 이종족과 싸우는 장면 카메라로 찍어서 홍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히르아가 싸우는 거면... 못 쓴다 이거.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솔직히 이 세상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외모순이다. 똑같은 일도 잘생긴 사람이 하면 더 인정받고, 잘못된 일도 잘생긴 사람이 하면 용서받는다. 반대로 똑같은 일도 못생긴 사람이 하면 천대받고, 잘한 일도 못생긴 사람이 하면 폄하한다.
히르아는... 밤에 마주치면 기절할 정도로 무섭게 생겼다. TV에 나오는 미이라는 붕대라도 감고 있지. 얘는 그냥 얼굴 내놓고 다닌다. 바짝 말라붙은 얼굴은 어떤 공포영화의 특수분장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생겼지.
피로 목욕을 하면 예뻐지긴 하지만... 적의 목을 잘라서 피를 몸에 뿌리는 장면을 사람들이 보면 비텔교를 악마교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도 싸우는 방식이 꽤 멋있으니 멀리서 잡으면 괜찮을 수 있다. 모래를 움직여서 스케일이 크게 싸우니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 나겠지.
어라... 이거 괜찮은데? 앞뒤 다 자르고 멀리서 싸우는 장면만 찍어서 홍보영상으로 쓰면 되겠어. 건물이 모래가 되고 그 모래가 검으로 변해서 적을 치고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멋있겠어.
-키힉. 들어가도 될까요? 빨리 에렌님의 사도님의 피를 맛보고 싶은데.
말 좀 예쁘게 해라. 여기 미군도 있어. 임마.
“혼자 괜찮겠어요? 사도 혼자 있지는 않을 텐데.”
특히 엘프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능력 자체가 보조 쪽에 치중되어 있던데.
-교주가... 하나 있고, 대사제 둘, 사제도 꽤 많네요. 상대할만합니다.
교주는 대족장급이긴 하지만 아직 사도의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자를 말하는 것이고 대사제는 족장급, 사제는 대전사급을 말한다.
한 마디로 저기에 마수드, 오르히, 캅카스가, 미흐로크와 대전사급 다수가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일반 전사들도 수백에서 수천이 있을 거고 말이야. 물론 그락카르의 ‘군주의 위엄’효과가 없으니 좀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강력한 전력이다.
상대할만하기는 개뿔. 완전 호랑이 소굴이구만.
그런 곳에 히르아 홀로 들여보내는 건 좀 무리고, 성전사를 함께 보내는 건 더 무리다. 성전사의 피해가 클 테니까.
히르아랑 나랑 둘이 들어가? 아냐.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일단 포격부터 하고 들어가는 게 낫겠네요. 리디아 소령님. 포격지원 되죠?”
“물론입니다.”
지금 디트로이트 주변엔 포병대가 쫙 깔려있다. 도시이기에 쉽게 포격을 가할 수는 없지만 특이개체의 위치를 확인할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것이다. 특이개체는 백병전으로 죽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존재니까.
포격으로 인한 엄청난 재산피해를 부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저 공장에 포격을 가하면 건물이랑 기간설비 값으로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야하겠지만 어차피 내가 지출할 거 아닌데 뭐. 미국 정부가 물어주겠지.
남의 돈 1조보다 우리 성전사 1명이 더 중요하다.
“괜찮겠죠?”
-사도님의 뜻대로.
의외로 히르아가 고분고분하다. 그락카르의 성격에서 싸움을 피로 바꾸면 딱 히르아의 성격이 나온다. 피를 볼 찬스를 절대 쉽게 포기할 히르아가 아니기에 어떻게든 싸우려고 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쉽게 승낙할 줄이야.
뭔가 수상하지만... 딱히 음모를 꾸밀 성격도 아니니까. 그냥 오늘 기분이 좋아서 내 말을 잘 들어주기로 했나보지 뭐.
“그럼 정확한 위치를 말해주세요.”
-네. 저 건물의...
히르아가 리디아에게 건물 어디에 적이 몰려있는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포격은 정확성이 생명이다. 포격 한 방이 주변 100m 초토화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의외로 피격폭이 좁다. 그러니 정확한 위치를 말해서 한 번에 많은 양의 포탄을 쏟아 부어야 효과가 좋다.
“여기는 릴리 원. 릴리 원. 다수의 특이개체를 발견. 포격 요청합니다. 좌표는...”
지도를 꺼내 공장의 좌표를 계산한 리디아가 본부에 무전을 쳐 포격을 요청했다.
“포격 허가 떨어졌습니다.”
피이이이이. 쾅!
한 발의 포격이 공장 옆에 떨어졌다. 떨어진 위치를 본 리디아가 바로 조준점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곧,
피이이. 피이이이. 피이이이. 피이이이. 피이이이이이.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수십, 수백 발의 포탄이 공장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워. 무섭네. 저런 포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맨몸으로 포격당하면 무조건 죽겠지만 수호자들이 나를 지키려고 할 테니까. 수호자들이 포격의 충격이 나에게 가해지지 않도록 잘 막느냐 못 막느냐가 관건일 거 같다.
그락카르라면 무조건 살아남을 거 같은데 말이야. 포탄을 도끼로 튕겨내고 막 그럴 거 같다.
한동안 포격이 이어졌다. 알려준 좌표만이 아니라 주변을 전부 때려 부술 것처럼 끝없이 포탄을 퍼부었다. 미군이 이종족에 쌓인 게 많나보다. 포격은 공장을 완전 쑥대밭으로 만든 후에나 멈췄다.
저런 상태인데도 살아남은 자가 있을까?
“히아아아아아아악! 이 하등한 것들이 감히!”
있네.
공장 잔해를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자가 있었다. 엘프다. 녹색 빛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영혼을 보니 저자가 대족장급 엘프인 모양이다.
-키히힉! 분노한 사도님이다. 분노한 사도님의 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히르아가 신나서 이야기했다. 완전 좋아하는군. 설마 대족장급 엘프가 죽지 않고 살아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사도님. 이제 가도 될까요? 에렌님의 사도님의 피가 아주 잘 익은 것 같아요.
말하는 걸 보니 살아날 걸 확신하고 있었나보다. 어쩐지 고분고분하다했다. 메인디쉬가 죽지 않을 걸. 아니지. 더 맛있게 익을 걸 알고 있었으니 별 말 안했던 거다.
-키하학!
좋다고 땅을 모래로 만들어 타고 나간다.
“리디아 소령님. 지금부터는 사전에 협의한데로 미군은 촬영을 멈춰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전에 성전사들의 싸움은 얼마든지 촬영해도 되지만 수호자의 싸움은 촬영금지라고 협의를 해뒀다. 전투장면이 부적절한 수호자가 셋이나 있어서 말이야.
-키하하하하학! 피! 피를 주세요!
특히 쟤.
대족장급 엘프가 히르아를 맞아 수십 개의 녹색 막을 만들어냈다. 방어 성향이 강한 능력이겠지만 어떤 능력이든 극에 달하면 방어, 공격을 따지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수십 개의 녹색막이 히르아를 향해 날아갔다.
그에 맞서 히르아도 검을 꺼내들었고 허공에 거대한 모래 검이 만들어졌다.
저쪽은 이제 신경끄자. 우리쪽에서 녹화하고 있으니 나중에 봐도 되겠지. 지금은 다른 쪽을 신경써야 한다.
“성전사는 저격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396명의 성전사가 BFG-50A를 들어 공장 쪽을 겨눴다. 다 죽은 건 아닐 거다.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겠지.
성전사는 근접거리의 백병전에도 강하지만 개활지에서의 장거리 전투엔 더 강하다. 애초에 보조무기가 저격총이니까.
“크어어어어어어어!”
역시.
카티쉬 하나가 잔해를 사방으로 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웨어타이거인가. 덩치로 봐서는 최소 족장급, 어쩌면 히르아가 하나 있다고 한 주교, 사도 스킬이 없는 대족장급이 저 녀석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리 대족장급 카티쉬라고 해도 이쪽엔 396정의 .50BMG탄을 사용하는 저격총이 있다.
“탄종은 철갑탄. 준비 되는대로 쏘세요.”
파괴력이 강한 철갑소이탄이 아닌 관통력이 강한 철갑탄을 준비시켰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피부가 엄청 단단할 거 같아서 말이야.
396명의 성전사는 일제히 장전되어 있던 철갑소이탄 탄창을 빼고 철갑탄 탄창을 결합했다. 그 동작을 396명의 성전사 전부가 거의 동시에 완료했고 396정의 저격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장관이군.
“카학!”
카티쉬의 머리가 팍하고 뒤로 젖혀졌다. 396발의 .50BMG탄이 전부 머리에 박혔다. 성전사에게 이 정도 거리에서 카티쉬의 머리를 맞추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절대 빗나갈 수가 없다.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대족장급 맞는 것 같다. 족장급이었으면 죽지는 않았어도 무조건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얼굴이 피로 물들긴 했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다. 분명 성전사들은 미리 교육받은 대로 눈이나 입을 노렸을 텐데 그 사이에 활짝 벌리고 있던 입과 눈을 닫은 모양이다. 역시 대족장급은 괴물들이야.
하지만 피를 흘리고 있잖아? 그건 저격이 통하긴 한다는 말이고, 너와 우리의 거리는 충분해. 네가 달려오기 전에 성전사들은 수십 발은 쏠 수 있을 걸?
“크어어어어!”
카티쉬가 맹렬하게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성전사들의 저격총도 불을 뿜었다. 성전사들은 저격총을 마치 권총처럼 쏴댔다. 탄창을 바꿔가며 10발을 쏘고, 등에 메고 있던 두 번째 BFG-50A를 꺼내 다시 10발을 쏘고, 그 사이 총열이 식었을 처음의 BFG-50A로 다시 바꿔서 쏘고.
꾸준한 공격에 카티쉬는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원래는 몇 십 초면 주파했을 거리를 몇 분을 걸려 달려왔다. 온 몸이 스스로 흘린 피에 절었고 숨도 거칠어졌지만...
안 되는군.
이곳에 도달했다. 겨우 50m 전방에 카티쉬가 도달했다. 396명의 성전사가 저격총 두 개를 활용해 쉴 새 없이 사격을 했는데도 죽이지 못했다.
문제는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는 거다. 탄이 보이기라도 하는지 급소로 날아오는 탄은 대부분 손으로 쳐냈다. 급소가 아닌 몸 곳곳에 뚫린 상처 수십 개가 생겼지만 그 어떤 상처도 카티쉬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아쉽네. 손을 뻗었다.
지지지지직.
“크하아아아악!”
내 손에서 뻗어나간 보라색 전기에 맞은 카티쉬가 비명을 지르며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쏘아내는 전기의 이름은 ‘마비시키는 번개’ 보통 터프한 자가 아니고선 이 번개에 맞고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없다.
저 카티쉬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몰라도 수천 발의 .50BMG탄을 맞아 지치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내 번개를 버티진 못한다.
카티쉬는 고정된 표적판이 됐다. 카티쉬는 손이 움직이지 않아 더 이상 급소를 보호하지 못했고 50m 거리에서 성전사는 바늘구멍도 맞출 수 있다. 급소에 총알이 박히기 시작했고 곧 카티쉬는 숨을 거뒀다.
이거 문제네. 급소를 공격하지 못하면 성전사가 몇 명이 있든 대족장급 카티쉬가 나타나면 위험하다는 말이잖아. 급소를 공격할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대족장급 리자드맨이나 오크가 나타난다면 나나 수호자가 없는 이상 무조건 도망가라고 해야겠다. 카티쉬의 피부도 겨우 뚫는 정도론 그 둘의 피부는 절대 뚫을 수 없다.
.50BMG보다 관통력이 강한 탄과 그걸 사용할 무기가 필요하다. 탄의 구경을 더 올리면 방동이 훨씬 심해지겠지만 성전사라면 버틸 수 있을 거다.
-키하하하하하학!
고개를 들어 대족장급 엘프와 히르아가 싸우던 곳을 바라봤다. 히르아가 엘프의 목을 따서 흘러나오는 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 좀...
제발 조금이라도 홍보에 쓸 만한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 188 탈환작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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