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탈환작전 >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그냥 넘어갔다. 얘네 고압적인 거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매번 태클 걸면 일이 진행 안 될 거다.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만이 몸에 배어있어서 말이야.
그런데 기밀을 지켜 달라하기에는 여기 모인 사람이 너무 많지 않냐. 우리만 해도 나랑 해역이 포함해서 20명쯤 와 있고 너네도 한 30명 있잖아. 우리가 아니라도 너희 쪽에서 새어나갈 거 같은데.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보려는 영상은 저번에 했던 디트로이트 탈환 작전을 찍은 영상이다. 전부 보는 건 아니고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린 영상을 볼 거다. 적의 수나 구성원, 사용능력의 종류 등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빌어먹을! 갈겨! 갈기라고!
-탄 다 떨어질 때까지 총 내리지마!
-아아악!
-이 괴물들아!
1인칭 시점의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군인들이 적을 죽이기 위해, 살기 위해 별의별 발악을 다하지만 결론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도 미군은 잘 싸웠다. 철갑탄을 썼는지 리자드맨을 상대로도 분전했다. 하지만 장소와 상대가 나빴다. 지상에서 싸우는 거라면 온갖 지원화기의 도움을 받으며 싸울 수 있었겠지만 지하철 안의 좁은 장소에서 족장급, 대족장급을 상대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부터 주의해야할 이종족이 재생될 겁니다. 자료를 참고하며 봐주십시오. 먼저 리틀 드래곤입니다.”
리틀 드래곤이 뭐야. 리자드맨잖아. 하긴 이 인간들이 진짜 이름을 알리는 없으니 별수 없겠지.
“진입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이종족입니다.”
리자드맨은 일반 병사들에겐 거의 재앙과 같은 존재다. 미군이 사용하던 총기로는 피부를 뚫을 수 없기에 총의 구경을 올려서 재보급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구경이 높더라도 조금이라도 빗겨 맞히면 총알이 튕겨나갈 정도다.
“특이개체 오베시 드래곤은 공처럼 둥글고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염동력과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확인된 능력으로는 몸 주변에 방어막을 만드는 것과 에너지탄을 쏘는 것이며 둘 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대처가 어렵습니다. 야외에서는 덩치가 크고 굼뜨기에 드론, 헬기, 탱크, 포격 등 잡을 방법이 많지만 개인화기로 제압해야하는 지하에서는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입니다.”
제대로 분석했네. 리자드맨 로드의 방어막은 빈틈이 없기에 힘으로 뚫어내야 하는데 그락카르가 족장급의 힘을 가지고 있을 시절에 수십 번을 두드려서 겨우 깼을 정도로 방어막의 내구력이 상당하다. 당연히 개인화기로는 그걸 뚫어내는 것이 쉽지 않겠지.
그리고 방어막을 뚫어도 문제다. 리자드맨 로드는 덩치 때문에 행동이 굼뜨긴 하지만 비늘의 강도는 리자드맨 전사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방어막을 없애도 비늘을 뚫고 피해를 입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리자드맨 로드는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다. 절대 앞장서지도 않고 말이야. 리자드맨 로드를 공격하기 전에 수백의 리자드맨 전사를 상대해야 하니 더 힘든거지.
“오베시 드래곤은 총 4개체가 확인되었습니다.”
발견했다는 말만하고 처치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로드를 발견한 군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겠군.
리자드맨은 오크와 가장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리자드맨 로드 정도 되면 적어도 1,500의 전사는 거느리고 있지. 이곳에서도 적어도 하나당 1,000의 전사는 거느리고 있을 거다. 그래도 미군이 꽤 많은 리자드맨을 쓰러뜨리는 걸 봤으니 2,000~3,000정도 남아있으려나.
아니지. 미군이 확인하지 못한 리자드맨 로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 수를 어림짐작하는 건 소용없겠다.
“다음은 자이언트. 특이개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자이언트 자체가 특이개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롤이다. 내가 트롤을 확인하고 나서 그락카르가 트롤이랑 싸우고 싶어서 노르쓰 우르드에게 물어봤었다. 그락카르놈. 트롤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엄청 실망했었지.
하나하나가 족장급과 비슷한 힘을 가진 강인한 종족이지만 수가 적다고 한다.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가진 괴물입니다. 유럽에서는 왼쪽 상반신이 사라진 상태로 3시간이상 움직이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그거 나도 봤다. 탱크 포에 맞아서 왼쪽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싹 날아갔는데도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싸워댔지. 리자드맨이나 오크에 비해 피부가 좀 약한 느낌이지만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터프한 놈이다.
“주무기는 강철로 만든 거대 무기입니다. 형태는 여러 가지이나 디트로이트에서 확인된 두 개체는 각각 해머와 봉을 사용했습니다. 총이 박히긴 하나 데미지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되며 머리 부분을 노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게 효과적이긴 하지. 하지만 저놈들도 그게 약점이란 걸 알아서 머리만큼은 철저히 보호하며 싸운다. 근접하기 전까지는 양손과 무기로 머리를 가린 채 달려오지.
“다음은 비스트 팩션입니다. 특이개체는 다섯 확인되었으며 각각 웨어랫, 웨어디어, 웨어베어...”
카티쉬는 비트스 팩션이라 부르는군. 족장급 이상은 각각 닮은 동물에 맞춰서 웨어울프, 웨어랫 등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종류마다 대처법이 다르므로 작전에 들어가기 전 자료를 숙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카티쉬는 혼합된 동물의 종류에 따라 특성도 다르다. 전에 IS와 싸웠던 곰이 혼합된 녀석은 로켓포에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의 터프함을 자랑하고, 웨어랫 같은 녀석들은 몸을 잔뜩 낮춘 채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기에 크기가 작아 공격하기 어렵고, 접근을 알아채기 어렵다.
귀찮은 놈들이지. 종류별로 대처법을 외워야 하니까. 물론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난 수호자한테 맡기면 되니까.
“다음은 드워프입니다.”
드워프는 제대로 이름 붙였네. 드워프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워프는 구식 총을 사용한다는 것 말고는 딱히 개성이 없는 녀석들이다. 물론 강함은 다른 이종족 못지않다. 하지만 그냥 평범하게 강해서 존재감이 약하달까.
“마지막으로 엘프입니다.”
엘프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참 애매한 종족이다.
“다른 이종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녹색빛이 나는 에너지막을 사용하며...”
애매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직접 싸워보기도 하고 싸우는 장면을 여러 번 보기도 했는데 능력의 활용방법이 방어와 보조 쪽으로 극대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런 능력으로는 엘프만으로는 전투가 힘들 텐데 말이다.
방어가 뛰어나면 뭐하나. 적을 죽이지 못하는데 말이다. 적을 죽이기 위한 결정력있는 공격형 능력. 그게 있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다.
“단독 활동을 하는 타종족과 달리 반드시 다른 종족과 함께 다니며 주로 리자드맨과 함께 행동합니다. 신체 방어력이 가장 약하기에 저격 1순위, 타격 1순위입니다.”
신체 내구력이 인간과 거의 비슷하기에 가장 총이 잘 통한다.
“확인된 특이개체의 수는 열하나이며 그 중 하나가 특별히 강력한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엘프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카메라의 주인인 병사가 어떤 건물의 주차장인듯한 곳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갑자기 전방에 녹색막이 펼쳐졌다.
-발각됐다! 후퇴해!
보통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간이 이종족을 발견하는 것보다 이종족이 인간을 먼저 발견하면서 말이다.
병사가 뒤로 돌았지만.
-빌어먹을.
뒤에도 녹색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위에도. 모든 곳에 녹색막이 펼쳐져 병사들을 가뒀다.
타타타타타타탕!
병사들이 총을 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녹색막이 빠르게 좁혀왔고,
-으아악!
병사들은 하나로 뭉쳐져 죽음을 맞이했다.
저런 식으로 능력을 사용하려면 족장급이 적어도 다섯 이상 필요하다. 홀로 사용한 능력이라면 대족장급. 대족장급이라면 어쩌면 디트로이트를 침공한 적의 수장이 엘프일지도 모르겠군.
“이종족은 하수도를 통해 각지로 이동하기에 현재 위치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외곽에서부터 대대적으로 병력을 투입해 수색하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통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종족이 다닐 정도로 큰 하수도는 한정적이며...”
디트로이트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렇기에 미군은 이종족이 하수도와 건물 지하에 조금씩 뭉쳐서 흩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종족은 건물 지하와 하수도 사이의 땅을 파서 연결했다.
그 결과 이종족들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한곳이 습격당하면 곧바로 다른 곳에 있던 이종족이 지원을 왔다. 이게 미군의 저번 작전 실패의 요인 중 하나다.
그런데 하수도라니.
미국이나 다른 국가가 이종족 때문에 골치 썩고 있기는 하지만 이종족도 지금 상당히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침략해올 때 하수도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종족도 더럽고 어두운 지하, 하수도에서 살기 싫겠지. 살기 위해서 들어간 거다. 당연히 자신들이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정면으로 붙으면 일방적으로 밀리니까 어쩔 수 없이 고생스런 게릴라전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얼마나 황당할까. 비텔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자신 있게 넘어왔는데 굴에 갇힌 쥐새끼 신세가 되어버렸네. 조금은 귀찮고 짜증나는 쥐새끼 말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전 협의에 들어가겠습니다.”
귀찮게 하는 쥐새끼는 잡아줘야지.
***
“장비 점검!”
해역이가 큰 소리로 외치자 성기사들이 자신의 무기를 손으로 만져가며 확인했다. 주무기는 다양하다. 권총을 쓰는 자도 있고, 돌격소총, 기관단총, 저격총, 경기관총, 칼, 도끼 등. 온갖 무기의 전시장이라도 되는 듯 하다.
하지만 부무장은 하나로 통일됐다. BFG-50A. 파이어암사에서 나온 .50BMG를 쓰는 대물저격총으로 이종족의 침략이 시작된 후 성전사들에게 보급해 익히게 한 무기다. .50BMG를 쓰는 저격총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한 종류만 쓰는 것이 보급, 수리, 관리에 용이해서 그냥 통일 시켰지.
그리고 대량으로 사면 싸잖아.
.50BMG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총알 중 하나다. 이것보다 더 크면 사람이 다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는데다가 차라리 로켓포 같은 걸 쏘는 게 훨씬 낫다.
실험해본 결과 철갑탄계통의 .50BMG는 리자드맨의 강철 같은 피부도 가볍게 뚫어낸 것은 물론 IS에 죽었던 족장급 워베어의 피부도 정통으로 맞추면 뚫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탄이 크기에 개조를 하는 것도 용이해 철갑소이탄 같은 변종탄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철갑소이탄이면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안에 꺼지지 않는 불을 붙인다. 리자드맨이나 생명력이 강한 트롤, 족장급 카티쉬 등을 잡기에 용이한 무기다.
반동이 너무 강하기에 절대 휴대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지만 성전사라면 사용할 수 있다.
이 무기 덕분에 성전사들도 족장급 이상의 이종족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게 되었지. 물론 아무리 .50BMG탄을 사용하는 저격총을 가지고 있어도 1:1로 족장급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무조건 한개 조 11명 이상일 때만 덤비라고 단단히 말해뒀다.
그리고 족장급이나 대족장급은 성전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무리다. 성전사 중 가장 강한 해역이도 겨우 축복을 4번 받은 정도니까. 대족장이나 그에 근접한 녀석들은 대부분 다섯 번 이상의 축복을 받은 녀석들이니 상대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이게 문제다. 성전사는 수도 많고 강하지만 무기가 통하지 않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적에게는 속수무책이다. 내가 내릴 수 있는 축복은 3번이 한계니까. 빌어먹을 신들이 비텔님만 잡고 있지 않았어도 비텔님께서 축복을 내려 네 번, 다섯 번 이상 축복을 받은 성전사도 있었을 텐데.
물론 수로 밀어붙여서 잡아낼 수는 있을 거다. 아무리 강해도 수의 폭력에는 이길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싸우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거다. 그래서,
“점검이 끝났으면 미리 정해둔 대로 5팀으로 나뉘어 각각의 수호자님 뒤에가 서라!”
무조건 수호자들을 함께 움직일 거다. 수호자라면 대족장급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 186 탈환작전 > 끝
ⓒ 냉장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