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탈환작전 >
요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짜증난다. 꿈 때문이다. 한상은 항상 일을 복잡하게 진행한다. 3개월 전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는 것 같아 매일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거 같아 기대했는데 딱 한 번 싸우고 말았다.
답답하다. 시원하게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가 못 보니 더욱 답답하고 짜증난다.
“멍청한 짓이지. 전투는 적에게 이어진 가장 빠른 길을 달려야 하는 것이거늘.”
멍청한 놈. 전사다워지려다가 또 헛짓거리를 하고,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한상은 3개월이나 싸우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적에게 달려갈 수단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 비행기란 것 우리 세상에도 있었으면 난 매일 마음에 드는 적을 찾아가 싸울 수 있을 텐데.
“잘 봐라 인간. 내가 싸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테니까.”
방 밖으로 나갔다. 가르혼에서 살던 건물은 내 덩치에 비해 모든 게 작았다. 문도 작고 천장도 작고해서 살기 불편했는데 마수드의 땅에 지어진 건물은 내가 살기 딱 좋다. 마수드도 나와 덩치가 비슷하니까.
건물 난간으로 나가 섰다. 이 건물은 쓸데없이 크다.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창문과 난간이 여러 개 있다. 그냥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화창한 날씨다. 날이 좋군. 싸우러가기 딱 좋은 날이다.
“후으으읍!”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조용하던 부락에 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쿵.
바닥이 깨졌다. 여긴 쓸데없이 바닥도 돌로 깔아뒀다.
오늘은 어디로 가지. 그제는 동쪽, 어제는 남쪽에 갔던가? 그럼 오늘은 서쪽이다. 서쪽 입구를 향해 걸었다. 이 부락은 너무 크다. 아무리 5만의 형제, 자매가 사는 곳이라고 해도 이렇게 클 필요가 있나.
쿵. 쿵. 쿵.
마수드, 캅카스가, 미흐로크 등이 바닥을 박살내며 내 옆에 떨어져내렸다.
“전투인가. 그락카르 형제.”
“그렇다. 마수드 형제.”
마수드는 처음엔 형제란 말을 하는 걸 어색해하더니 이젠 익숙해졌는지 자연스럽게 잘 한다.
터턱.
노르쓰 우르도도 오고, 형제들이 하나, 둘 합류했다. 날 찾은 형제들이 고함을 쳤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날 찾고 있는 형제들이 부락 사방에 퍼져 있을 테니까.
빨리 찾지 못하면 숫자 제한에 걸리기 때문에 형제들의 움직임은 재빠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쪽으로 나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강한 적은 어디에 있나. 형제.”
오늘은 숫자 제한을 두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적? 일주일 이상 걸려도 괜찮은가?”
“괜찮다.”
“그렇다면 카바크를 타고 8일간 달리면 쌍둥이 대군주 트자릭, 트자딕의 땅에 들어설 수 있다.”
“대군주?”
대군주라면 대족장 아닌가. 최상의 적이다.
“그렇다. 1강 8중 3약 중 3약에 속하는 자들이지만 둘이 함께 있기에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둘. 대족장이 둘이라. 크흐.. 왜 이제야 말하는 거냐. 그런 적이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한상에게 싸움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에 딱 맞는 적이다.
부락 밖으로 나가 형제들이 모이길 기다렸다.
“형제. 트자딕, 트자릭 형제의 부락엔 전사가 몇이나 있나.”
“가장 최근의 정보론 3만이다. 하지만 그들도 카록의 전언을 들었을 테니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을 터. 더 늘었겠지.”
“3만.. 그럼 우린 만 오천으로 하자.”
내가 이끄는 형제들이다. 허약한 남부 형제들이라면 두 배 이상의 수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다.
“알겠다.”
“그렇게 하겠다.”
내 말에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성문으로 달려갔다. 기다렸다가 만 오천 이상의 형제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만 오천의 형제가 모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부락에는 원래 이곳에 있던 마수드의 전사와 날 따라온 전사들을 합쳐 3만이 있으니까.
전사는 다 모였지만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다시 기다렸다.
나와 달리 다른 형제들은 준비가 필요하니까. 카바크도 가져와야하고 개인 식량을 챙기는 형제도 있다. 이곳 남부의 형제들은 전투를 나가면서 식량을 챙겨간다.
굶으며 이동하여 흉폭성을 강화하는 것이 더 강력한 전투력을 낼 수 있겠지만 식량을 챙기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남부 형제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단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
식량을 챙기는 것은 나중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카바크를 타고 이동하는 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카바크가 나보다는 느리지만 다른 형제들보다는 빠르니까. 전투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나도 카바크 한 마리 얻었다. 마수드가 선물로 준 녀석인데 마수드가 타는 녀석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튼튼하고 강한 녀석이다. 눈빛을 보니 나를 주인으로 따르는 것 같지 않아 전투에 쓸 수는 없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전투에서 카바크를 타고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트자딕은 내가 맞지. 형제가 트자릭을 상대해라. 숫자 믿고 귀찮게 굴던 녀석들인데 이번 기회에 쓸어버릴 수 있겠군.”
“아니다. 둘 다 내가 상대할 생각이다. 대군주라면 부락의 우두머리 아닌가. 우두머리는 우두머리가 상대해야 한다.”
“나도 대군주다.”
“하지만 내가 부락의 족장이다.”
“저쪽도 도시의 대표는 트자릭이고, 동생인 트자딕은 두 번째 위치에 있다.”
“아니다. 둘 다 함께 지배할 거다. 둘 다 대군주니까.”
“....”
마수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 우겼다. 이건 양보하고 싶지 않다. 대족장 둘과 동시에 싸우는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이다. 얼마나 치열하고 즐거운 전투가 펼쳐질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투를 할 기회다. 다른 형제에게 다소 미안하긴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마수드 외에도 캅카스가, 미흐로크 등의 형제들이 자기들이 싸우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둘 다 상대하겠다고 우겼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싸움이다.
마수드보다 약하다고 하면 오르히 정도를 생각하면 되는 걸까. 두 오르히와 싸운다... 생각 만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원하고 원했던 그런 싸움이다.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위험하다. 나보다 약하다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군. 그래도 내가 싸운다. 그게 족장이자 선두에 서는 자의 권리다.”
“죽을 수도 있다.”
마수드가 말렸지만 계속 우겼다.
죽을 수도 있다고? 크흐.. 바라는 바다.
***
후아악!
트자릭의 도끼가 강렬한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배 바로 앞을 지나갔다. 겨우 피했지만,
지직.
다른 트자릭의 도끼가 왼쪽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도 정통으로 맞는 것은 피했기에 깊은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또 상처가 늘었다. 그리고,
퍼버버버벅.
다섯 개의 바람의 망치가 온 몸을 두들겼다. 꽤 충격이 크다. 망치를 맞을 때마다 몸 내부가 울렸다. 트자릭과 트자딕. 정말 성가신 놈들이다. 마수드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더니 이대로 싸우다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트자릭과 트자딕은 둘이지만 둘 보다 더 많은 느낌을 받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형인 트자릭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만들어 공격해왔고, 동생인 트자딕은 쌍도끼를 휘두르며 공격해오는데 일정 시간마다 바람의 망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트자릭 둘과 트자딕 하나, 그리고 바람의 망치 다섯. 마치 동시에 여덟의 적과 싸우는 것 같... 빌어먹을 망치 하나가 더 늘었군.
아까보다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던 걸 보면 일정 시간마다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무슨 조건으... 젠장.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싸울 때는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데.
“크워억!”
미로크를 크게 휘둘러 두 트자릭과 트자딕을 뒤로 물렸다. 한숨 돌릴 시간을 벌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바람의 망치 때문에 쉴 수가 없다. 정신없이 바람의 망치를 피하고 미로크로 쳐냈다. 그 사이에 물러났던 두 트자릭과 트자딕이 다시 달려든다.
정말... 정말 짜증나는 놈들이다. 화가 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느낌, ‘성난 자의 외침’이다. 이곳에 오기 전 97%였던 분노가 싸우면서 100%에 도달한 모양이다.
망설이지 않고 가득 모아뒀던 분노를 내뱉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
‘성난 자의 외침’ 후에는 전투를 압도했다. 트자릭과 트자딕 둘 다 강했지만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나면 어쩔 수 없는 법.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한 나에겐 미치지 못했다.
힘으로 밀어붙였고 전투의 승기는 순식간에 내게 기울었다. 그리고 트자릭과 트자딕 둘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죽여라.”
“형제들처럼 강한 자를 죽일 순 없지.”
강자는 귀하다. 강한 형제는 더 귀하다. 트자릭과 트자딕 둘 다 강하고 싸울 줄 아는 명예로운 전사다. 명예로운 전사가 적이라면 죽였겠지만 형제라면 웬만하면 살리고 싶다. 난 이곳에 형제들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전사로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온 거니까.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한테 죽을 것이다.”
“크흐.. 그것도 괜찮지. 언제든 덤벼라. 날 죽인다면 내 부락은 형제들의 것이다.”
강자와의 결투는 언제나 환영이지.
“하지만 그 전까지 형제들은 내 부락의 전사가 되어 내 말을 따라야한다.”
내게 진정한 전사로서의 행동을 다 배울 때까지 말이다.
내가 트자릭과 트자딕 형제를 제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우리의 대승이었다. 당연하다. ‘성난 자의 외침’은 두 배의 전력 차이도 극복시켜준다.
“봤나. 한상?”
이게 전투다.
싸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전투는 시작되는 거다. 싸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너처럼 가만히 앉아서 허락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말이다.
***
이게 전투긴 개뿔이. 인간은 단순한 오크와 달리 복잡한 여러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냥 달려들었다간 귀찮은 일이 엄청 생겨.
그런데 요즘은 그락카르한테 단순무식하다는 말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거 같다. 이번에 대군주 둘과 홀로 싸운 것도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게 싸움을 좋아해서 무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론 ‘성난 자의 외침’의 분노가 거의 다 찼다는 걸 알고 싸움이 불리하게 진행되어도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해서 이길 수 있을 거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예전엔 대부분의 행동을 본능에 맞춰 움직였다면 이젠 제법 승패를 자연스럽게 계산할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예전에도 승패여부는 따져가며 싸웠지만 계산했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이길 거 같은데? 질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는 게 전부였다.
덩치에 안 맞게 여우짓을 하다니. 이제 호탕한 척 하지마라. 이 여우 놈아.
그락카르 놈이 8일 동안 달려 싸우러 가는 동안 나도 유나, 해역이, 사제, 성전사와 함께 미국에 들어와 있었다.
사제들은 도착함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유나가 ‘생명력 전이’가 가능한 고위사제 30명과 함께 이종족의 침략으로 부상을 입은 시민과 군인을 치료해주며 돌아다녔다.
일반 사제 200명과 성전사 110명이 함께 갔으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영상은 1급 기밀입니다. 절대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되며 발설했을 경우 제재가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해역이, 고위성전사와 함께 ‘디트로이트 탈환 작전 본부’에 와 있었다.
< 185 탈환작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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