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탈환작전 >
“수고하셨습니다. 교주님.”
축복식을 끝내고 나오니 누구보다도 먼저 벤센이 인사해왔다. 저건 나한테 용무가 있다는 뜻이다. 보통 평범하게 인사할 때는 다른 사람들 뒤에서 가장 늦게 하던 사람이니까.
“무슨 일이죠?”
“미국에서 이번 주 금요일 오후 두 시경 민간군사기업 국내 활동 동의안이 발의될 거라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4일 남았다. 그런데 민간군사기업?
“저희 민간군사기업 아니잖아요.”
성전사가 활동하기 쉽게 민간군사기업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난 ‘그런가?’하는 생각에 하나 만들까도 싶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민간군사기업을 만들면 성전사가 공식적으로 군인이 되어버린다고 반대했다.
군단체가 되면 활동의 편리함보다는 제약이 더 많아질 거고 비텔교에서 성전사단을 분리해라 어째라하는 주장에 힘이 실릴 거라고... 그 말도 맞는 거 같아서 민간군사기업으로 만드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나 귀가 너무 얇은 거 같다.
“동의안에 ‘또는 적법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 단체’라는 것이 추가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성전사단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글렘이 힘 좀 썼겠네요.”
“글렘이 아니었으면 두세 달은 더 걸렸을 겁니다.”
유나를 납치하고 나를 찾아내 비텔교를 손에 넣으려고 했던 글렘. 지금은 ‘진실한’신도가 되어 미국 내 비텔교 로비스트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였던만큼 로비스트로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주고 있다.
거의 모든 재산을 쓸 각오로 그가 벌였던 일의 피해자를 찾고, 보상하고 있지만 사업이 너무 잘 풀려서 재산은 거의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기적 - 행운의 아이들’때문인 거 같다. 주변에서 욕할수록 운이 좋아지는 능력이니까. 그만큼 글렘이 욕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글렘에게 주변에 더 베풀라고 말해야겠어.
“글렘에게 수고했다고 전해주세요.”
“꼭 전하겠습니다. 기뻐할 겁니다.”
직접 전화할 수도 있겠지만 글렘에 대해선 아직 거부감이 좀 남아있어서 그러기 싫다. 지금은 비텔님의 힘으로 잠시 교화된 것뿐이고 원래 본성은 악인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언제 다시 악인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자니까.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할 것 같아 그러고 있다.
“내일 발의라면 아직 오래 기다려야겠네요?”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거라고 하니 다음 주안에 성전사단의 공식파견 요청이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2~3일 안으로 미국 측에서 일정 조율 및 협상을 위한 접촉이 들어올 겁니다. 발의는 형식적으로 하는 거고 이미 내부적으로 성전사단 파병 요청이 결정되었으니까요.”
“그렇군요.”
한국을 제외한 정식 성전사단 협조 요청이 되겠네. 3개월이나 걸렸다. 자기들 힘만으로 해결해보겠다고 싸워대더니 이제 자기들만으론 힘들다는 걸 깨달은 건가.
미국이 이종족에게 지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힘만 따지면 압도적으로 미국이 강하지. 하지만 그 압도적인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든 싸움만 이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이종족도 처음엔 정면 대결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전부 도심 혹은 산, 숲 등의 지형지물을 적극 활용하여 게릴라전 비슷한 형태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놈들도 머리가 있으니까 화력으로는 인간이 우위란 걸 깨달은 거겠지.
이종족은 하수구, 지하철 등 쉽게 갈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곳에 숨어든 이상 탱크를 보내거나, 미사일이 폭격할 수도 없다. 특수부대원이 투입되어 이종족을 찾은 후 좌표를 보내 정밀 폭격을 하는 방법도 사용했지만 듣기론 그 방법으로 잡은 이종족의 수보다 죽은 특수부대원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하수구나 지하철에서라면 아무리 특수부대원과 기술력 높은 장비라고 해도 이종족의 감각이 한 수 위일 테니까. 전투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여하튼 그러다보니 미국 내 전원 대피령이 내린 도시만 해도 다섯 곳이고 민간인, 군인 모두 포함해 1만 명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미국이 그 정돈데 다른 지역은 얼마나 심할까.
정보부에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현재까지 지구를 침략해온 이종족의 총 수는 80만~100만 정도이며 그 중 20만~50만 정도가 살아남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집계 오차가 심한 이유는 제대로 통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전투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오지에서의 싸움이나 싸우다가 인간 쪽이 패퇴한 경우는 이종족의 사망자 수를 알 수 없기에 짐작할 수 밖에 없어 오차가 심하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백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며 죽고, 소환되고 있을 텐데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
여하튼 20만~50만의 이종족이 도심과 오지에 숨어들어 각국을 괴롭히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인적 피해는 물론이고 도시 전체를 마비시켜 각국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히고 있다.
그런 손실을 계속 입을 수는 없으니 각국은 곧 결정을 내릴 거다. 우리 성전사단의 힘을 빌리든, 큰 피해를 각오하고 병력을 대대적으로 병력을 투입하든지 말이다.
국가의 자존심이란 게 참... 효율적인 일처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 같다. 그 사라들도 알 거다. 우리한테 요청해서 성전사를 지원받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걸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종교단체고 성전사단이 비공식단체란 게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국가의 위신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종교단체의 힘을 빌린 국가.’라는 타이틀을 달기 싫은 걸까. 비공식으로 몰래 성전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은 엄청 많았다. 당연히 거절했다.
성전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비텔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같이 싸우려는 건데 몰래 해달라니. 그렇게는 절대 못하지.
그 외에 종교적 이유로 협조 요청을 못하는 곳도 많다. 한 나라를 하나의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곳은 꽤 많으니까.
여하튼 지난 3개월간 미국의 공식적인 협조 요청을 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꽃을 피운 것 같아 다행이다. 미국이 첫 발을 내딛어 주면 다른 국가도 우리에게 협조 요청을 하는 심리적 장벽이 약해지겠지.
***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당연히 작전권은 우리가 가져야지요!
-전체적은 작전권은 당연히 미국에서 가질 겁니다. 하지만 성전사가 투입되는 작전과 함께 투입되는 부대의 작전권은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그게 모든 작전권을 가져가겠다는 말이잖소!
벤센의 말대로 파병 동의안이 발의되기 이틀 전 미국 정부에서 접촉해왔고 일이 급했는지 동의안이 발의된 그 날 협상이 시작되었다. 첫 협상은 서로의 주장을 확인하는 자리다.
난 교단에서 영상을 통해 협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처음엔 조용하게 시작했던 협상이 점점 열기가 더해지더니 결국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미군은 절대 작전권을 다른 국가나 단체에 넘기지 않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사단의 작전권은 비텔님께 축복받은 교주님께 있습니다. 그 권한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신성한 것입니다.
양쪽 다 자기들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으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이미 우리 대표로 나간 데니스에게 절대 주장을 굽히지 말라고 말해뒀다. 성전사와 성전사가 포함된 부대의 작전권은 중요하다. 혹시나 저들이 자기들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사를 방패로서 앞세우면 어쩌나.
신도 전부가 가족이지만 사실 가족 중에도 중요한 사람이 있고 덜 중요한 사람이 있는 법이잖나. 성전사의 수는 아직 5,000명밖에 안 된다. 한 명, 한 명이 너무 중요하다. 그런 이들의 생사를 모르는 사람의 손에 맡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비텔교 교주는 군인이 아니잖소. 전략, 전술의 문외한일 텐데 어찌 그런 사람한테 미군의 작전권을 맡길 수 있겠소.
-교주님께선 전능에 가까우십니다.
-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군. 대통령이 미친 게 분명해. 저런 광신도들의 힘을 빌리라고? 내 돌아가서 이 협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겠소.
미국 측 협상단 중 군인으로 보이는 자가 화를 냈다. 그래. 이건 데니스 니가 잘못했어. ‘교주님께선 전능에 가까우십니다.’라니. 누가 봐도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 입에서 나올 말이잖아.
그래도 그거 제외하곤 잘 하고 있다. 이렇게 쭉 밀고 나가라.
이번이 첫 협상이기에 저쪽 담당자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이제껏 미국을 상대로는 모든 국가가 저자세로 나왔기에 저렇게 주장을 굽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상대로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섯 곳의 도시를 빼앗겼다. 정확히 말하면 대피령을 내리고 전투가 진행 중이지만 도시가 아예 마비되었으니 뺏긴 것이나 다름없지. 도시 하나가 마비됨으로서 입는 피해는 얼마나 클까.
수십, 수백만의 피난민이 발생하니 그들을 재우고, 먹여 살려야 한다. 그들이 하던 모든 활동이 중단되어 손실이 발생하고 매일 이어지는 전투는 사용되는 총알, 폭탄 등의 보급품을 생각하면 돈 먹는 기계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망한 시민이나 군인에 대한 보상금도 문제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그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보상금은 그 책임의 형태 중 하나다.
평소라면 상관없지만 이번에 죽은 시민의 수는 거의 만 명에 가깝기에 그들에게 평상시와 같은 보상금을 주면 정부는 파산한다. 당연히 보상금은 적을 수밖에 없고 유족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그 외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터질 것이고, 수천, 수만 건의 고소가 시작될 것이다.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그 혼란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도시 하나의 마비가 가져오는 피해가 이 정도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다섯 곳의 도시가 이종족에게 장악 당했다.
미국이 이런 손실을 입으면서도 가만있었을까? 당연히 대대적인 병력을 움직여 도시탈환작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인적 피해도 엄청났다고 들었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지 않았지만 그 작전으로 만 명 이상의 전사자가 나왔다고 들었다.
그런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다시 자국의 힘만으로 도시 탈환 작전을 시도한다?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적은 피해로 도시를 탈환한 전력이 있는 성전사가 있으니 더.
그 작전의 실패로 미국 정부는 절벽 끝까지 내밀렸고 반등을 위해선 성전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 협상의 주도권은 우리 쪽에게 있다.
-다 모르겠고 무조건 성전사와 성전사와 함께하는 부대의 작전권은 우리가 가져야합니다.
데니스가 ‘아. 몰라.’를 시전 했다. 잘한다. 데니스.
***
-속보입니다. 미국 존 트라이 국방부장관이 비텔교 성전사단과 협동해 디트로이트시의 탈환 작전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겠습니다. 직후 비텔교 역시 공식 채널을 통해 미국에 성전사단 1,650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디트로이트시는 한 달 전 미군의 대대적인 탈환 작전이 시행되었던 곳으로서...
파병 동의안은 금요일에 발의되고 월요일에 통과되었다. 미국이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의안 발의 이틀 전에 시작했던 협상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일주일 만에 끝났다. 협상이 끝난 다음 날, 파병 동의안이 통과된지 이틀 후, 미국과 우리가 동시에 이에 대해 발표했다.
성전사단은 이미 파견 준비를 미리 해뒀기에 내일 미국으로 출발할 것이다.
이번에 파견되는 1,650명이면 견습을 제외하고 현재 공식적으로 활동 중인 성전사의 4분의 3에 달하는 엄청난 전력이다. 거기에 나까지 더해진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성전사에 대한 이런 생각이 박혀들 것이다.
초인, 영웅.
평범한 사람에서 비텔님의 축복을 받아 초인, 영웅이 된 자들. 사람들은 언제나 초인, 영웅을 동경한다. 그렇게 될 수 없기에 동경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인,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이 보인다면? 눈앞에 길이 보이는데 걷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 184 탈환작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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