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탈환작전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손을 뻗어 조용히 일어나던 맹연을 잡았다. 침대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려 한 모양이지만 내 감각을 속일 순 없지.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그대로 끌어안았다. 여성의 몸은 불가사의하다. 어떻게 온 몸이 이렇게 부드럽고 기분 좋을까.
“매일 아침 왜 이러십니까. 저 일하러 가야 합니다. 게으름피워도 되는 교주님과 달리 할 일이 많습니다.”
말투를 보니 비서 모드다. 벌써 머릿속은 일하기 시작했군.
알지. 맹연이 일 많은 거. 내 옷 준비하고, 나 씻길 준비하고, 나 먹일 준비하고, 그 날의 일정을 확인해서 변경사항 있는지 체크하고, 일정 내보낼 준비하고... 전부 나에 관련된 일이다. 그러니 내가 좀 미루면 되지.
“5분만.”
더욱 꼭 끌어안았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게으름피울 때는 부드러운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것도 좋지만 부드러운 여자 몸을 끌어안는 게 더 좋지.
“5분 지났습니다.”
냉정한 여자 같으니. 시간 재고 있었나.
“5분만 더.”
“안 됩니다. 오늘 축복식이 있어서 준비할 게 많습니다.”
맹연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얘도 육체계열이라서 꽤 힘이 세지만 나에 비할 바는 아니지. 맹연을 껴안은 내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축복식 5분 미루지 뭐.”
“아. 매일 이러시면 어떡해요.”
비서 모드는 버린 건가. 맹연은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일반 모드와 비서 모드. 두 모드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미가 ‘다, 나, 까.’로 끝나면 비서 모드고 아니면 일반 모드다.
“너도 매일 이렇게 잡혀 있을 거 알면서 왜 계속 반항해.”
“정말... 마지막이에요.”
역시 내가 이겼다. 훗. 항상 내가 이기지.
“이제 놔주세요. 더 이러고 있으면 저 곤란해집니다.”
벌써 5분 지났나. 시간 너무 빨리 가네. 어쩔 수 없이 풀어줬다. 손을 풀자마자 쏙 빠져나가는 맹연. 아. 아쉽다.
알몸에서 한 꺼풀씩 옷을 입어가는 맹연을 구경했다. 원래도 몸매가 좋았던 맹연이지만 축복을 받은 후 더욱 좋아졌다. 크. 완벽하다.
“오늘 저녁에는 유인이가 들어올 겁니다.”
“왜?”
“그 아이 차례에요. 그리고 며칠 교주님이랑 있느라 일이 밀렸단 말이에요.”
“일벌레 같으니.”
“누구 때문에 일하는 건데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그러네. 나 때문에 일하는 건데 내가 뭐라고 했네.
유인이라는 여자도 비서진 중 한 명이다. 아. 그렇다고 비서진 전부가 나랑 자는 건 아니고 정기적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5명, 그 외에 마음 내킬 때 찾아오는 여자들이 몇 명 있다.
내가 교주란 직위를 이용해서 그 여자들을 착취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다. 애초에 비서진에 있는 여자들 중 반 이상은 내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데려온 맹연의 옛 동료들이니까. 그러다가 일 배우고 축복받고 해서 유능한 비서들이 됐지만 말이야.
비텔님을 만나고 여러 가지 능력을 얻고, 많은 것을 얻었지만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다. 점점 성욕이 강해진다는 부작용 말이다. 이게 비텔님의 힘을 받아들여서인지, 매일 그락카르가 암컷이랑 자는 걸 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점점 성욕이 강해졌다. 별거 아닌 거 같이 보였지만 의외로 큰 문제였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텔교 교주가 여자를 꼬시러 다닐 수도 없으니까. 그게 티가 많이 났었나보다. 어느 날 맹연이 자신을 ‘사용’하라고 말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나. 그때 이미 맹연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자 맹연이 그녀의 예전 동료들을 불러들였다. 그녀들은 비서로서 고용됐지만 실은 나와의 잠자리를 위해 고용된 것이었다. 고급 창녀로 일했던 만큼 이 일에 거부감도 없고 입도 무거운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거부하지 못했다. 부풀대로 부풀은 성욕은 거의 고문이라도 하듯 날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들 대신 맹연이 들어왔고 난 그녀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 그녀들과 나의 관계는 자유로워졌다. 여전히 나와 잠자리를 갖고 싶다면 맹연을 통해 시간을 조율해 들어오면 된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이미 그녀들은 훌륭한 비서가 되었고 비텔교가 성장하면서 비서들의 일이 늘어났기에 나와 잠자리를 안 가진다고 해서 쫓겨날 일은 없었다.
그녀들과 난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관계를 가진다. 음... 뭔가 그락카르와 암컷들의 관계와 비슷한 거 같다. 딱히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네.
“교주님도 일어나셔야 합니다. 15분 뒤에 시작할 겁니다.”
“대충 하고 나가면 안 돼?”
“그게 25억 신도가 우러러보는 교주께서 하실 말씀이십니까.”
25억이 아니라 30억이야.
이종족이 우리 세계를 대대적으로 침략하고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신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틀 전 30억에 도달했다. 맹연이 말하는 25억은 한 달 전에 공식 집계한 수다.
그러고 보니 그락카르 녀석도 상당히 세력이 커졌다. 마수드가 점령한 지역을 합병한 후 큰 싸움은 없었지만 자잘한 싸움을 이어가며 그 주변의 마을 여럿을 합병했다. 그 결과 무리의 수가 20만이 넘었었지.
그락카르가 그렇게 계속 커서 오크를 통일 한 후에 다른 이종족을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이상 우리 세계에 공격해오는 이종족이 없을 거 아냐.
가장 위험한 놈들이 오크지만 싸움질 밖에 못하는 놈들이 차원을 어떻게 넘어오겠어.
“제1회 축복식인데 후줄근하게 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너무 차릴 필요도 없잖아?”
“10분 뒤에 비서진을 보내겠습니다.”
맹연이 통보하듯 말했다. 저러면 끝이다. ‘더 이상의 앙탈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기에 무슨 말을 해도 안 먹힌다. 결국 일어나야겠군.
아 귀찮은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귀찮은 건 아니다. 축복받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아침이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정신이 또릿또릿했다. 내가 싫은 건 나설 준비를 하는 거다.
씻고, 입고, 머리 자르고, 털 다듬고, 화장하고... 비서들이 몰려와서 막 준비시켜주는데 그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내가 뭐라도 하면 좋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있는 것 밖에 없으니 그 시간이 더 싫다.
어쩔 수 없지. 난 새나라의 어른이니까. 참아야지.
그리고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니까.
축복식.
이번이 1회인 축복식은 이름 그대로 축복을 하는 날이다. 비텔교 신도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만든 의식으로서 신도 중 김현일과 비슷하게 자신을 바쳐 사람들을 구하거나, 이종족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100명을 뽑아 내가 축복을 내리는 날이다.
3개월간 이종족과의 전쟁은 격화되었다.
본격적으로 침공해온 이종족은 IS에게 사로잡힐 정도로 허접했던 모습이 아닌 선진국의 군대와도 일진일퇴의 싸움을 보여줄 정도로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이 차라리 한 곳에 전부 나타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모습을 보였다.
혹시 농지나 산간에 나타나면 운이 좋은 경우다. 가진 화력을 마음껏 퍼부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외진 곳에 나타났어도 바로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도심지로 움직여 공격해왔다.
결국 운 좋게 발견해 박멸한 몇몇 무리를 제외하곤 대부분 시가전으로 이어졌다.
한 곳에 모습을 보이는 이종족의 수는 적게는 1,000에서 많게는 30,000까지, 가장 적은 1,000의 이종족이라고 해도 적어도 하나 이상의 족장급과 100이상의 축복받은 자가 끼어 있을 정도의 정예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시가전이라니. 초기에 투입된 병력은 대부분 괴멸당했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아무리 잘 싸워도 최소한 무기가 통해야 할 것 아닌가. 족장급정도 되면 휴대용 무기로는 잡을 수 없다.
IS처럼 운 좋게 박격포와 로켓포를 정타로 먹일 수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리고 일반 이종족 전사도 쉽지 않다. 대부분 신체능력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고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어 총을 갖고 있어도 상대하기 쉽지 않고 리자드맨에겐 철갑탄이 아니면 아예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트롤. 트롤은 수는 적지만 가장 약한 놈도 총이 안 통하는 건 기본이고 탱크를 박살 낼 정도의 괴력을 발휘했다. 덩치가 커서 로켓포 같은 걸 맞추기 쉽지만 보병들이 탱크를 지키듯 트롤 주변의 이종족들이 트롤을 지키기에 쉽게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이종족의 공격을 물리친 지역은 많지 않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이 이종족에게 시달리는 것은 물론 이종족에게 완전히 빼앗긴 지역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빼앗긴 지역에는 미사일이 쏟아졌다.
미사일을 사용하면 이종족은 박멸할 수 있지만 도시도 함께 날아가기에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쓰였다.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그 중 하나가 해당 지역에 인간 생존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다.
그런데 미사일을 쓴다고 해서 이종족을 박멸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핵폭탄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미사일의 폭발범위는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미사일을 퍼붓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도시는 넓고 숨을 곳은 많았다. 하수도, 지하철 등.
운 좋게 또는 실력으로 이종족을 완전히 박멸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다. 이종족은 계속해서 우리 세계로 병력을 보냈으니까. 추가로 공격받는 지역은 계속해서 생겨갔고, 이종족과의 전쟁에서 안전지대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두 차원의 모든 종족이 전쟁에 휩싸였네. 세계대전도 아니고 차원대전이라고 해야 하나.
괜찮네. 차원대전.
여하튼 차원대전으로 세상이 위험해지다보니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 교의 신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왜 신도가 늘어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비텔교는 신도가 되기만 해도 신체능력이 강해지니까. 피난 갈 때도 유용하고 전투할 때도 좋다. 그리고 사는 게 힘들어질수록 신에게 의지하고 싶어지지 않겠어? 아무래도 무신론자가 보기에는 비텔교가 가장 믿을만 하겠지. 믿었을 때 실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종교니까.
“어제 드린 축복 대상자 목록은 읽어보셨습니까?”
“응. 읽어봤지.”
명단은 이미 외우고 있다. 내가 워낙 머리고 좋아서 한 번 읽고 전부 외워버렸지. 군인이 가장 많았었다. 아무래도 지금 시국이 좀 그러다보니까 축복 대상자 100명 중에 80명이 전쟁관련 공을 세운 자들이었다. 그 외에는 20명. 일부러 8:2로 맞춰서 뽑은 모양이다.
대부분 현역으로서 한창 이종족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지만 전부 어렵지 않게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당연하다. 비텔교 성전사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는 다들 알고 있으니까. 자기들 소속의 군인이 축복을 받는다면 전쟁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왜 안 보내주겠어.
성전사가 강하다는 것은 한국에 이종족이 씨가 말랐다는 것으로 세상에 증명했다. 3개월 전 우리는 성전사를 투입해 국군과 함께 이종족과 싸웠다.
한국은 3곳에 각각 1,000, 1,000, 2,000의 이종족이 침략해왔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운이 없는 편이었다. 세계적으로 40만의 이종족이 침략해왔는데 한국이라는 좁은 땅에 4,000이나 되는 이종족이 쳐들어 왔으니까.
설상가상 국군은 이종족의 도심 진입을 저지하는 것에 실패했고 결국 전투는 시가전으로 이어졌다. 그곳에 성전사가 투입되었다.
시가전 특성상 소규모 전투가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기에 한 개 중대 당 성전사 한 조가 함께 했다. 이종족의 초인을 상대로 백병전이 가능한 성전사가 함께하는 것은 국군의 전투 효율을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우리는 세 곳에서 대승을 거뒀고, 이종족은 흩어져서 도망쳤다. 그리고 한 달 후 한국을 침략한 모든 이종족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 뒤에 한 번 더 3,000의 이종족이 침략해왔지만 역시나 성전사와 국군이 함께 움직여 쉽게 박멸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의 전투에 비해 쉬웠다는 말이지 국군과 민간인의 피해도 제법 컸고 전투는 말도 못하게 치열했다.
그렇게 한국은 추가적인 침략이 있을 수 있기에 완벽한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현재는 적이 없는 안전지대 중 하나가 되었다. 이종족을 물리친 유일한 나라는 아니지만 가장 적은 피해로 물리친 곳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군인+성전사의 조합을 실전을 통해 세계에 홍보했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네 나라 소속의 군인이 축복받는 것을 방해할리 없지. 오히려 한 명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각 지부에 로비가 들어왔다고 한다.
당연히 그 로비는 안 통했다. 지부 책임자는 무조건 ‘진실한’ 신도다. ‘진실한’ 신도가 물질적인 로비에 넘어갈리 없지.
그런데 그렇게 로비를 해서까지 축복받은 자를 보유하고 싶으면 그냥 우리한테 협력 요청해도 될 텐데 말이야. 도대체 왜 협력 요청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자존심들은 세서 말이야.
이제부터 축복식은 매달 한 번씩 진행할 거다. 한 번에 겨우 100명밖에 안되지만 어쩔 수 없다. 축복식으로 축복을 받는 사람에는 ‘진실한’ 신도가 아닌 자들이 많았다. 뛰어난 전사가 ‘진실한’ 신도였으면 성전사로 만들었지 축복식을 진행하진 않는다.
축복식의 대상은 대부분 일반 신도. ‘진실한’ 신도가 아닌 만큼 교단에 반하는 짓을 할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면 나중에 우리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100명으로 정했다. 적어도 성전사의 수보다는 적게, 언제든 제압할 수 있는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 그리고 성전사의 수는 빠르게 늘리고 있다. 보통은 특수부대나 정보부 요원을 했던 최정예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조금 조건을 완화해서 정예정도만 돼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2,500명 정도였던 성전사의 수가 3개월 만에 5,000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아직은 대부분이 한 번의 축복을 받은 견습 성전사로서 비텔교 고유의 전투기술 훈련을 하고 있지만 곧 훈련을 수료하고 제 몫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성전사의 수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려갈 예정이다. 이종족과의 전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남의 눈치 안 보고 병력을 늘릴 찬스는 흔하지 않으니까.
“교주님. 씻을 준비 다 됐습니다.”
비서들이 방에 들어왔다. 지금부터 지겨움과의 싸움 시작이군.
< 183 탈환작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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