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179화 (179/228)

< 179 대규모 침공 >

마르린 빈민가.

“포위해라.”

지휘관의 명령에 병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빈민가를 포위했다.

“나서라.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의무복무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지휘관이 외치자 병사들이 따라서 복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빈민가에서 남자들이 하나, 둘 나와 병사들 앞으로 왔다.

토린은 인간 제국과 왕국에 등록 안 된 사람의 수가 정식등록인구의 두 배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욱 많았다. 토린이 말한 2배는 가장 적은 곳의 이야기고 나라에 따라 3배, 4배까지도 가는 경우가 있다.

비등록인구가 생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세금. 각 나라의 세금에 따라 비등록인구의 수가 달라졌다.

등록세라는 것이 있다. 국가가 인정하는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해선 그 세금을 내고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몰란에게 바치는 헌금, 방위세, 거래세, 가구세 등등. 세금의 종류는 수십 가지였고, 돈이 없는 빈민은 당연히 그 세금을 낼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식을 낳아도 국가에 등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등록 된 백성들은 도시 내에서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국가도 비등록인구의 존재를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빈민가를 건들지 않았다. 병사를 충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배자들은 빈민가와 비등록인구를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 언제든 병사를 충원할 수 있는 농장으로서 바라봤다.

“축하한다. 몰란님의 땅에 가기 위한 첫 여정에 발을 들이민 것을 말이다.”

곳곳에서 군인들은 자진해서 나온 비등록인구를 병사로 등록하기 시작했다.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르린만이 아니라 그먼 제국 전체에서, 그먼 제국만이 아니라 인간들의 땅 전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충원된 병사들은 11년간 의무복무를 하게 된다. 의무복무를 마치면 등록하지 않았던 죄를 사해주고 정식으로 등록받게 된다. 그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전부 말이다.

“가족의 이름과 성별, 나이를 적어라.”

가족까지 등록대상에 집어넣으면 탈영을 하지 않는다.

병사가 된 비등록인들은 군에서 몰란에 대한 거의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게 된다. 그렇게 3~4년이 지나면 몰란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신병이 탄생한다. 몰란에 빠진 이들은 11년의 의무복무기간이 지나도 직업군인으로서 군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은 11년이 되기 전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지만.

“오늘 지원자는 적군.”

빈민가의 사람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들이 사는 빈민가는 마르린의 가장 외곽에 위치해 있다. 그들 바로 옆에 3차 성벽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미 수차례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쳐들어와 병사들을 학살하고 죽인 것을 보고 들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 군대에 끌려가면 죽을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순순히 나와 지원할까.

“마지막 기회다.”

지휘관이 말했고 병사들이 복창했다. 그 말에 나와서 지원하는 자들이 몇 있기는 했으나 많지 않았다.

“징병 시작해라.”

지휘관이 지시를 내렸고, 병사들이 빈민가에 진입했다. 그보다 먼저 군에 지원했던 자들이 빠르게 달려가 자신들의 집 앞에 섰다. 병사들은 지원자들이 선 곳을 지나쳐 다른 집에 들이닥쳤다.

콰지직.

병사들의 발길질 한 번에 허약한 빈민가집의 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아악! 여긴 남자가 없어요!

-우리 아인 이제 10살이에요!

-우리 집엔 군에 간 아이가 한 명 있어요!

난리가 시작된다. 빈민들이 변명을 하지만 그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징병된 가족이 있다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다. 이 빈민가 출신의 병사들은 이미 이곳에서 징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와 있었고, 강제 징병이 시작됨과 동시에 자신들의 집 앞에 가 서 있었으니까.

이미 예전에 징병됐지만 죽은 이들의 집은... 다시 한 번 더 징병이 이루어진다. 가족들이 여전히 빈민가에 남아 있다는 뜻은 그 병사가 11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1년을 채우지 못하면 그 전에 했던 계약은 무효다. 당연히 죽은 병사의 가족도 정식등록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매일 빈민가를 쓸어 병사를 징병했고, 마르린에서만 수천의 병사를 징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먼 제국 전체와 그 외의 다른 국가에서 보내주는 병사들이 속속 도착했고, 마르린의 3차 성벽엔 이전 전투 때보다 많은 병사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

다섯 번째 침공 이후 한 달이 지났고,

‘죽지 않는 자’들의 여섯 번째 침공이 시작되었다.

“빌..어먹을...”

페가수스를 타고 3차 성벽 위를 날던 페가수스 나이트는 마르린의 어떤 인간보다도 가장 먼저 ‘죽지 않는 자’의 군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보이는 모든 곳에 거대괴물이 있었다. 그 수는 약 500. 수는 적지만 하나하나의 덩치가 거의 성벽에 달할 정도로 큰 거대괴물이기에 500만 나타났어도 전장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페가수스 나이트는 거대괴물 때문에 절망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괴물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개미떼 같은 작은 괴물들 때문에 절망한 것이었다. 땅을 까맣게 매울 정도로 가득했다. 적어도 10만 이상. 저 작은 괴물들은 그다지 무섭지 않지만 거대괴물과 함께 할 때는 가공할 위력을 발한다.

페가수스 나이트는 곧바로 내려가 자신이 본 것을 보고 했다. 그 보고는 빠르게 황제 블라즈의 귀에 들어갔다.

“애매하군.”

정말 애매했다. 3차 성벽에 있는 병력만으로는 이기기 힘들어 보이지만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예비대에서 축복받은 자를 500정도 빼서 3차로 보내라. 이번까지는 3차를 지켜야겠다.”

“네. 예비대의 축복받은 자 500을 3차 성벽으로 보내겠습니다.”

블라즈는 결국 2차 성벽에 있던 예비대의 정예들을 3차 성벽으로 돌려 3차 성벽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절했다. 아니, 예전보다 더 처절했다. 징병 된지 얼마 안 되어 훈련양이 떨어지는 병사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일반 병사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작은 괴물들을 쓰러뜨리는 데 집중했고, 축복을 받은 자들은 거대괴물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페가수스를 타고 싸우는 자, 거대괴물의 몸에 올라타 싸우는 자, 지상에서 작은 괴물들과 싸우며 거대괴물에게 데미지를 주는 자 등. 거대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발리스타와 투석기도 불을 뿜었다.

전투는 치열하게 막상막하로 이어졌다.

“흠...”

블라즈는 고민에 빠졌다. 병력을 더 투입한다면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차 성벽의 예비대가 너무 부족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이번만 막아낸다면 예비대는 곧 다시 채워지겠지.’

각지에서 보내오는 병력엔 정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라면 2차 성벽의 예비대는 금방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3차 성벽은 꽤 중요해.’

3차 성벽을 한 번이라도 빼앗긴다면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철저하게 성벽을 파괴할 터. 그렇게 되면 각지에서 보내오는 일반 병사들을 세울 공간이 없어진다. 일반 병사들은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지만 축복받은 자는 쉽지 않다.

성벽 아래에서 싸우게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또 효율이 너무 낮아지니 문제다.

‘그래. 이번까지만 지키자.’

“3차에 예비대 페가수스 나이트 1,000을 더 투입하도록.”

“알겠습니다.”

이왕 투입하는 거 많은 수를 투입해서 피해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페가수스 나이트 1,000이면 거대 괴물을 100이상 상대할 수 있을 터. 3차 성벽의 전투가 훨씬 여유로워질 것이다.

블라즈의 생각대로 전투는 인간 측에 유리해졌지만 ‘죽지 않는 자’의 군세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공성전이 하루 동안 더 이어졌다.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소규모로 계속해서 나타나 공성전에 합류했다. 그러자 인간 측에 유리하던 전세가 어느새 다시 비등하게 맞춰져 있었다.

“병력을 2,000 추가해라.”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2,000의 축복받은 자를 투입했다. 먼저 간 것까지 합쳐 3,000. 3,000이면 2차 성벽에 있는 인원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당연히 이쪽이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전투가 어느 새 다시 비등하게 맞춰져 있었다. 블라즈는 2차 성벽의 축복받은 자 전부를 투입하고 10년 이상 복무한 정예병들로 이루어져있던 일반 병사들까지 전원 투입했다.

이정도면 순식간에 적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투는 다시 길어졌고 ‘죽지 않는 자’의 군세는 계속해서 조금씩 합류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또 전세가 비등하게 맞춰질 것 같았다.

“내가 나선다.”

“폐하. 위험합니다.”

“괜찮다. 근위대와 함께 갈 것이니.”

블라즈가 황실근위대와 함께 3차 성벽으로 향했다. 황실근위대는 1차 성벽을 지키는 병력이다. 수는 1,000정도로 적지만 구성원 중 가장 약한 자가 두 번의 축복을 받은 자일 정도로 최정예 부대다.

블라즈는 그가 직접 잡아 길들인 비룡에, 황실근위대는 페가수스에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가 왔다!”

블라즈가 전장을 울리는 함성을 질렀고, 그의 등장을 안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블라즈는 황제이면서 제국 최고의 전사. 그가 함께한다면 패배는 있을 수 없다.

거대한 전투망치를 든 블라즈와 황실근위대는 페가수스를 타고 차징 공격을 하여 거대괴물을 하나하나 쓰러뜨려 나갔다.

한 몸이 된 듯 달려드는 블라즈와 황실근위대의 차징공격에 거대괴물들이 쓰러지자 승기는 완벽하게 인간 측으로 넘어간 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드디어 나타났군.”

멀리서 마르린을 관찰하고 있던 자, 아베네고가 입을 열었다. 그의 곁엔 다섯의 수호자와 1,000이상의 거대괴물, 수십만의 괴물이 있었다. 그들 전부를 투입하면 마르린을 확실하게 점령할 수 있음에도 비등하게 싸울 만큼만 투입했던 건 전부 블라즈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다른 인간들을 모두 잡아도 블라즈를 놓치면 앞으로의 전투가 상당히 귀찮아질 테니까.

“가자.”

아베네고와 다섯 수호자가 움직였다.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고통스런 표정을 한 블라즈의 목이 아베네고의 손에 들렸다.

인류 최고의 도시 마르린은 ‘죽지 않는 자’ 아베네고의 손에 넘어갔다.

아베네고는 마르린의 모든 인간을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로 병력을 계속 생산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섯 수호자들은 각각 병력을 이끌고 인간들의 땅을 본격적으로 침공했다.

***

그락카르는 쉽게 가르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가르혼의 군주 임티아즈를 죽인 그락카르가 홀로 성벽에 올라 날뛰었다. 누구도 그락카르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뒤이어 캅카스가, 미흐로크가 뛰어들고 친위대까지 합류하자 가르혼의 오크들은 전의가 완벽하게 꺾여 항복했다.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포기하다니! 정말 오크가 맞는 거냐!

그락카르가 화내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 모습에 더 기죽은 가르혼의 오크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락카르도 반항하지 않는 동족을 죽일 수는 없어 싱겁게 전투가 끝났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가르혼의 방문자들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그락카르에 대해 이야기했고, 빠르게 그락카르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대군주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야만족이 쳐들어왔다.

라는 것이었다.

“야만족 따위가 나보다 강하다고? 웃기는 소리군.”

그 소문을 들은 마수드가 코웃음을 쳤다. 그도 카록의 말을 들은 자 중 하나였다.

“아마도 북에서 내려온 대족장 중 하나겠지만... 야만족의 힘이 통하는 건 북쪽에서만이다.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아.”

그는 그들이 야만족이라 부르는 북쪽의 오크를 철저히 무시했다. 문명이랄 것도 없는 자들이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잘됐군. 야만족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면 다른 대군주들도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

마수드가 병력을 이끌고 가르혼이 있는 서북쪽으로 향했다. 야만족을 치는 것을 시작으로 서북 외곽 지방에 있는 마을 전부를 병합할 생각이었다.

카록이 말한 진정한 대족장이 되기 위해서.

< 179 대규모 침공 > 끝

ⓒ 냉장고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