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대규모 침공 >
원래는 전투가 끝나고 신도들을 달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전투 장면이 좀 끔찍했거든.
특히 오하넬. 아딜은 칼 들고 있으니까 팔 자르고, 배 자르고 이런 거 다 이해하고, 히르아는 원래 피 좋아하니까 온 몸에 피 뒤집어쓰는 거 다 이해하는데... 오하넬 넌 왜 맨손으로 적을 찢어버리냐. 좀 생긴 거답게 예쁘게 싸우면 안 돼? 손에 좀 짧지만 칼도 들고 있잖아.
좀 나를 본 받아라. 난 전기 쏘고, 생명력 흡수하고 피 하나도 안 튀고 깔끔하게 잘 싸우잖아. 차라리 카일라 데려와서 시체랑 악령 뽑아서 싸우게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여하튼 좀 달래고 이해시키는 시간도 갖고 했어야 했는데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동시에 이종족이 나타났습니다. 제게 보고가 들어온 것만 해도 76곳입니다.
바로 들어온 벤센의 보고 때문이다. 적의 수가 3,000이나 되니 이곳에만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 세계적인 동시 침공이었다니. 대부분 비슷한 수가 왔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20만이다. 내가 봤던 저 세계의 전투 규모 중 가장 큰 게 10만 단위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다.
“최우선적으로 영상 촬영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절대 근접하지는 말라고 하세요. 거리는 무조건 최소한 2km 밖, 은신 필수입니다. 이종족의 시력은 좋으니까요.”
이종족의 시력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일단 오크는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몽골사람 뺨치게 눈이 좋다. 시력만이 아니다. 청력, 후각 등 감각은 모두 뛰어나서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발견된다.
“네. 전달하겠습니다.”
2km이상 떨어져도 얼마든지 영상 촬영할 수 있다. 요즘 장비가 워낙 좋아서 말이야. 다만 조금 더 좋은 화질을 찍겠다고 가까이 가는 건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화질 필요 없으니까.
“영상이 들어온 순서대로 틀겠습니다.”
거실에 모니터가 수두룩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저거 다 신품이다. 호텔로 이동하는 중 벤센이 성전사들 시켜서 사왔다. 돌발 상황인데도 참 대처를 잘한단 말이야.
“먼저 뉴욕입니다.”
“뉴욕이요?”
살짝 놀랐다. 잘은 모르지만 거기 사람 엄청 살지 않나? 실시간 영상이 연결되고 가장 먼저 보인 장면은,
투두두두두두두.
콰콰쾅!
퍼퍼퍼퍼!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인, 경찰 할 거 없이 다 나와서 총 쏘고 있고...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이다.
“그런데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요?”
영상은 줌인으로 확대할 수 있다지만 소리까지는 못 담지 않나? 그리고 앵글이 위에서 아래를 찍는 모양인데.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는 이상 멀리서 저렇게 찍을 순 없지.
“마침 요원이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고층에 있고 근처 전부가 전장으로 변했기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 더 위험할 것 같아 그곳에서 대기하라고 한 후 헬기를 보냈습니다.”
“아. 잘하셨어요.”
알아서 잘 하네.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브라질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더하다. 한 만정도 되나?
미군도 시간이 없었을 텐데 빠르게 반응한 모양이다. 공격헬기와 탱크도 몇 대 보일 정도다. 그런데 아직 근처 군이 전부 모인 게 아닌 모양인지 숫자가 오히려 이종족보다 부족하다.
아무리 공격헬기와 탱크라고 해도 수가 적으면 이종족에게 상대가 안 될 텐데...
아니나 다를까.
-크아아아아!
거대한 덩치의 카티쉬 하나가 건물을 기어오르더니 헬기를 향해 뛰었다. 저 정도면 족장급이려나. 헬기가 처음부터 저놈만 봤으면 헬기의 대구경 기관총에 당해 점프 같은 건 꿈도 못 꿨을 거 같지만... 적이 너무 많아 헬기는 다른 곳에 신경 쓰느라 자신을 향해 뛰는 카티쉬를 보지 못했다.
카티쉬는 무사히 헬기의 옆면을 잡고 매달렸고, 잠시 후 헬기가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카티쉬가 매달린 순간 저렇게 되는 건 필연이지. 매달리기 전에 처리했어야 했는데 이종족과의 싸움은 처음인지라 우선순위를 잘못 둔 것 같다.
몇 대 나타난 탱크는 더 쉽게 부서졌다. 처음 본 거대한 덩치의 이종족 몇이 달라붙어 때리니 여기저기 우그러들고 난리가 났다. 그 외에도 카티쉬, 엘프, 드워프 등등이 공격을 싹 퍼부었다.
탱크답게 잘 버티긴 했지만 공격도 못하고 때려 맡기만 하니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보병들이 옆에서 지켜줘야 하는데 보병이 이미 이종족에 의해 싹 당해버려서...
그래도 이종족이 탱크를 처음봐서인지 마구잡이로 때리기만 해서 오래 버텼다. 그 사이에 우리측 헬기가 도착해서 요원과 몇 명을 구조해서 빠져나왔다. 엘프가 녹색 빛 구체를 몇 개 쏘는 바람에 꽤 위험했다. 다행히 빗나가긴 했지만 프로펠러라도 맞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그 사이에 모니터 거실에 가득 찬 모니터 수십 대에 영상이 전부 틀어졌다. 벤센이 하나하나 어디인지 설명해줬는데 정말 세계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동시에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장소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었다.
어디도 제대로 이종족을 막은 곳이 없다는 것. 애초에 예견된 일이었다. 약 한 달 전, 영국에서 100정도의 이종족이 쳐들어왔을 때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적게는 1,000에서 많게는 수만까지 온 곳이 있을 정도. 그런 대군을 대비 없이 막는다는 것 불가능이나 다름없지.
이종족 군대는 하나하나가 초인이나 다름없으니까. 특히 이번엔 더욱 그런 거 같다. 내가 알기론 그락카르의 버프를 받는 녀석들을 빼면 오크와 다른 이종족의 전투력은 약 1:1이다. 엘프, 드워프, 리자드맨, 카티쉬 할 거 없이 전부다 말이다.
즉, 하나하나가 전부 괴물이란 뜻. 그런 놈들 수천이 도심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제대로 막을 리가 없지. 특히 리자드맨은... 이놈들 피부 단단한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총알까지 막을 줄이야. 총을 상대로는 리자드맨이 오크보다 강력한 거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지진 않을 거다. 군대를 재정비해서 제대로 싸우면 현대화기의 화력을 당해낼 수 없을 테니까. 각 국의 군대가 정비를 하고 수백, 수천 대의 탱크와 자주포, 전투기 등을 투입하고 최후에는 미사일도 있다. 그 화력을 몸으로 싸우는 이종족이 어떻게 당해낼까.
문제는 시가전이다. 제대로 한 번 꽝 붙은 후 진 이종족은 분명 도시 내에 숨어들 것이다. 도시에 폭격을 가하고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할 순 없을 터. 당연히 보병을 투입해 싸워야 할 텐데 일반 보병으로는 이종족 상대로 힘들 것이다.
“성전사들 준비 시키세요.”
성전사가 필요할 거다. 시가전에서 이종족을 상대로 큰 피해 없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성전사 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각국 정부에 비텔교가 돕겠다고 연락하세요.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에 성전사를 투입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려고 한 달 전 영국에서 성전사를 노출한 거다. 대비는 되어 있다.
이미 이종족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아는 이종족과 해역이가 아는 이종족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훈련시켰다.
“저기가 한국이라고 했죠?”
“네.”
목포라고 했던가. 시 외곽에서 갑자기 나타난 2,000의 이종족에 의해 목포가 박살나고 있었다. 군이 출동하긴 했지만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군인 수는 많지만 대부분 징병으로 끌려온 전쟁할 의지가 없는 아이들일 뿐이니까. 전쟁에 이골 난 이종족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군과 함께 성전사를 투입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국은 비텔교의 발원지답게 정부까지도 비텔교 신도가 장악하고 있다. 정부의 성전사 투입 동의 같은 건 쉽게 받아낼 수 있다는 뜻. 그리고 성전사도 1,500명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군이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뺄 순 없다. 성전사만 돌격시켰다간 피해가 클 테니까.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총의 위력은 같으니 꽤 도움이 되겠지. 1,500명의 성전사가 군과 함께 싸운다면... 2,000의 이종족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전투 영상도 제대로 찍어두라고 하세요.”
“네.”
목포에서의 전투가 성전사에 대한 광고가 될 거다. 비텔교가 장악하다시피 한 한국과 달리 다른 국가의 정부는 성전사의 투입을 망설일 거다. 성전사를 부른다는 건 자신들이 이 사태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니 목포의 전투를 찍어 인터넷에 올릴 거다.
성전사와 군대가 함께 할 때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두는지 직접 보여준다면 국민들은 성전사의 투입을 정부에 요구할 것이고, 정부는 국민에게 요구받았다는 좋은 명분이 생기기에 우리 성전사의 투입을 망설이지 않겠지.
‘이계의 침략에서 지구를 지키는 비텔교.’
꽤 괜찮은 홍보다. 비텔교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겠지. 성전사를 파견할 때 얼굴 마담으로 김현일을 함께 보내는 것도 좋겠어. 스스로의 힘으로 비텔의 축복을 받은 자가 직접 지휘한다는 건 아주 좋은 그림이 될 거다.
물론 절대 전투에 내보내지 않고, 지휘도 옆에서 참관만 시킬 거다. ‘지금은 배워야 할 때입니다. 나중을 위해 가서 어떻게 전투를 하는지 배우세요.’라고 하면 김현일도 이해할 테지.
***
누군가가 토린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정말 인간 홀로 아베네고를 막을 수 있는 건가?
누구라도 가질 의문이다. 아베네고가 나타날 때마다 일곱 종족이 힘을 합쳐 그를 물리쳤었으니까. 당연히 인간 홀로 막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해 토린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기는 것은 힘들겠지만 막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처음 질문 했던 자는 토린의 대답을 듣고 더한 의문이 생겼다. 이기는 것은 힘들지만 막는 것은 가능하다고? 어째서? 그래서 질문했고 토린은 대답했다.
-대륙의 서쪽을 점령한 인간의 수가 몇인지 아는가?
-다른 종족과 비슷하지 않을까? 500만에서 1,000만 정도 되겠지.
-아니다. 적어도 5,000만이다.
-적어도? 최대한을 잘못 말한 것 아닌가?
-최소한이다. 인간들의 제국과 왕국에 정식 등록된 인간의 수가 그것이니까. 등록 안 된 자들을 포함하면 어쩌면 1억까지 갈지도... 그러니 생각해봐라. 적어도 5,000만, 많으면 1억인 인간을 아베네고가 전부 죽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말이다.
토린은 비정했다. 인간이 아베네고를 이길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하면 시간만 끌어주길 바라며 인간에게 아베네고를 맡긴 것이다. 인간이 전멸하든 말든 그의 알바가 아니니까.
-우리는 그 안에 다른 세계의 비텔교를 말살한 다음 힘을 합쳐 아베네고를 몰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군.
다른 종족의 대표들도 납득했다. 그들도 인간이 전멸하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인간이 아베네고를 막아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을 뿐인데 1억이라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납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국의 황제와 왕들도 인간이 죽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10만이 죽었다고? 위대한 희생이었다. 몰란께서 기뻐하시겠군.
황제와 왕들이 보기에 백성, 병사는 그들의 것. 그들의 것을 희생했으니 몰란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병사가 줄어들어 다음 전투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병사를 모집하도록.
그 한 마디면 병사는 얼마든지 모을 수 있으니까.
< 178 대규모 침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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