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디멘션 워 >
비텔과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비텔교의 절대권력 교주 1명, 비텔교의 각 지부를 책임지는 주교 16명, 각 지부의 사제를 대표하는 대사제 16명, 각 지부의 성전사를 대표하는 성전사장 16명.
다른 모든 종교와의 전쟁을 벌이기 직전의 비텔교 편제다.
교주는 딱히 머무는 곳이 없이 16개의 지부를 떠돌아다녔다. 비텔교 교주의 전통이다. 신인 비텔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즐거워 할 수 있도록 항상 돌아다니는 것. 그게 교주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다.
지부를 총괄하여 다스리는 주교 중 가장 젊은 자가 바로 아베네고였다.
‘비텔교 vs 세계’의 전쟁이 시작되고 각 지부는 주교의 결정에 따라 멸망하거나 어둠 속에 숨었다. 아베네고는 숨기로 결정했다.
아베네고의 지부는 버텼다. 버티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비텔이, 교황이, 다른 주교들이 적을 물리치고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다. 아베네고는 버텼다. 매일 신도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래도 구원을 믿고 버텨냈다.
하지만 어느 날,
-비텔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이끄는 자’가 되었습니다.
교단스킬 ‘세력 현황판’을 얻었습니다.
교주에게 향해 있어야 할 비텔의 시선이, 교주가 가져야 할 ‘세력 현황판’스킬이 그에게 왔다. 아베네고는 황급히 세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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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아베네고
신도 : 17,394명
교단 기여 포인트 : 24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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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부에 남아 있는 신도가 16,000명 정도였다. 수십 만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16,000명. 즉, 그의 지부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비텔교 신도를 합쳐도 1,000명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그는 깨달았다.
‘모두가... 모두가 죽었구나.’
교주가 죽고, 그의 위에 있던 15명의 주교가 전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비텔의 시선이 그에게 온 것이었다.
구원의 희망은 사라졌다.
‘포기...할까?’
포기하고 다른 모두가 있을 저세상으로 가자. 그게 쉽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이야...
비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힘이 약해 미안하다.
너 밖에 남지 않았구나. 너만은 부디... 부디 살아 남거라.
비텔의 목소리에서 비텔의 강렬한 감정을 함께 느낀 아베네고는... 비텔에게 잡아먹혔다.
‘살아남는다.’
그게 그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처절한 생존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5년을 버텼다.
아베네고가 최선을 다했지만 뭘 해도 세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그의 곁에는 겨우 8명의 신도만이 남았다.
-죽기 전에 몰란의 황제정도는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몰란이 아니라 피언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들이 만든 무기 때문에 우리의 멸망이 10년은 앞당겨진 것일 테니.
-오크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그 피에 미친놈들 때문에 죽은 형제가 몇이던지.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죽기 전에 뭘 해야 적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베네고의 고민은 그들과 달랐다.
‘내가 죽는다면... 비텔께선 다시 외톨이가 되는 것인가?’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비텔뿐이었다.
‘비텔께선 외톨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신다.’
아베네고는 비텔과 대화하며 그녀의 감정을 뚜렷하게 느꼈다. 그녀는 분명 지켜볼 신도가 전부 사라지고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럴 순 없어. 난 남아야 한다. 그분을 홀로 남게 할 수는 없다.’
아베네고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고,
-난 남겠다.
아베네고가 선언했다.
-세상에 비텔님의 이름을 알릴 자 하나는 반드시 남아야 한다.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 ‘후이젠의 낙인’을 받아 ‘죽지 않는 자’가 되겠다.
200년 전, 주교 중 하나인 후이젠이 개발한 능력인 ‘후이젠의 낙인’, 신에게 받는 스킬이 아니라 인간이 개발한 능력으로 시전 방법이 어렵지 않아 신성력만 많다면 비텔교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베네고의 선언에 모두가 놀랐다. ‘후이젠의 낙인’은 확실히 대상을 절대 죽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하지만... 애초에 이 능력은 고문용이었다. 상대에게 극한의 고통을 선사해주고, 그 고통이 지속되도록 생명이 유지되게 만드는 저주다. 이 능력 때문에 비텔교에 포로로 잡히면 자살하는 것이 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것을 스스로에게 걸겠다니.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선 스스로가 ‘후이젠의 낙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했다. ‘후이젠의 낙인’을 다른 사람이 걸어준다면 시전 자가 나이가 들어 죽는 순간 ‘후이젠의 낙인’이 풀릴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살기 위해선 스스로 자신에게 ‘후이젠의 낙인’을 걸어야했다.
-교주님께서 고통을 못 이기는 순간 스스로에게 건 스킬을 푸실 것이고, 그 동안 당한 고통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실 겁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시고 말입니다.
‘후이젠의 낙인’은 대상을 불사로 만들어주는 능력이 아니다. 그저 고통을 먼저 가하고 그 고통으로 인한 충격을 쌓아두는 것이다. 스킬이 풀리는 순간 쌓였던 충격이 한 번에 대상을 덮치게 되고, 당연하게도 대상은 무조건 죽는다.
다들 말렸지만 아베네고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다면 저 성전사장 벤 자칸, 교주님의 위대한 뜻을 같이 하겠습니다.
-대사제 아드리오, 교주님의 숭고한 희생을 본받겠습니다.
-사제 이올라. 저 역시 같이 하겠어요.
여덟 중 ‘후이젠의 낙인’을 쓸 수 있는 셋이 그와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아홉 번의 축복을 받은 비텔교 최강의 성전사 벤 자칸
여덟 번의 축복을 받은 비텔교에서 가장 많은 스킬을 보유한 천재 대사제 아드리오
다섯 번의 축복을 받은 아베네고의 시중을 담당한 사제 이올라
아베네고외 셋은 누구도 찾을 수 없을 북쪽 깊숙한 곳에 은신처를 만들었다. 사람은 물론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후이젠의 낙인’을 받을 예정이니 상관없었다.
-고통을 완전히 다스린 후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기만 할 것이니... 적들의 노리개만 될 것이다.
미리 준비한 관에 들어가며 아베네고가 말했다. 함께 하기로한 셋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각각 다른 관에 들어갔다.
남은 다섯의 신도가 그들이 들어간 관을 깊숙한 땅에 묻었다. 다들 스스로 그곳에서 나올 능력이 있는 자들이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들을 묻은 다섯의 신도는 더욱 깊은 북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가 죽을 생각이었다. 묻혀있는 넷에 대해 아무도 모르도록 말이다.
그리고...
-끄..끄아아아아아악!
-으..으으으으.
-크허헉. 커허허헉.
-끼야아아아아아아악!
‘후이젠의 낙인’이 시작되었다.
1년이 흘렀다. 1년간 비텔교의 흔적을 찾지 못한 종족 연합이 ‘비텔교 박멸’을 선언했다.
3년이 흘렀다. 오크의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비텔교 박멸을 위해 잠시 멈췄던 종족 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0년이 흘렀다. 비텔교를 대신해 들어온 다섯 개의 종교 간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30년이 흘렀다. 오크에 의해 모든 종족이 남부 지역에서 쫓겨났다.
50년이 흘렀다. 인간의 종교가 몰란교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 100년... 아베네고가 땅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아팠다. 100년이 흘렀음에도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저 익숙해졌을 뿐 여전히 아팠다.
세상에 나온 그는 바로 옆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전부... 죽었군.
그리고 그가 파낸 것은 극한의 추위로 인해 얼어붙은 3구의 시체였다.
아베네고 외엔 누구도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 최강의 성전사장 벤 자칸도, 역대 최고의 천재 대사제 아드리오도, 아베네고에 대한 일편단심 이올라도... 그 누구도 버티지 못했다. 그 정도로 극렬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아베네고는 버텨냈고, 지금도 버티고 있었다. 비텔에 대한 마음이 그 고통보다도 강했기에.
-나와라. 고번.
-100년 만에 뵙겠습니다. 사도시여.
30만의 교단 기여 포인트를 사용해 소환한 수호자 늙은 네크로맨서 고번.
-이들의 영혼이 근방에 있는가.
-있습니다. 사도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군요.
-물어봐다오. 나와 함께 할 생각이 있는지 말이다.
-있다고 합니다.
즉답이 나왔다.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모두 함께 하자꾸나.
아베네고와 고번은 그들의 시체와 영혼을 이용해 언데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10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데스나이트 벤 자칸이, 네크로맨서 아드리오가, 밴시 이올라가 탄생해 아베네고의 수호자가 되었고 남아 있던 20만의 교단 기여 포인트를 전부 사용해 왼손에 자리 잡을 수호자를 하나 더 소환했다.
그리고 또 100년, 비텔교와의 전쟁이 끝나고 300년이 지나 비텔교가 잊힌 세상에,
‘죽지 않는 자’가 세상에 등장했다.
***
-아드리오가.. 돌아.. 왔습니다.
벤 자칸의 목소리에 아베네고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과거를 추억했군.’
그가 세상에 모습을 보인지 약 70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총 세 번의 전투를 치렀고, 이번이 네 번째였다.
‘다섯 번째는 없다.’
이번에 끝을 낼 생각이었다.
지끈.
“크..”
-괜찮으신가요?
이올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후이젠의 낙인’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이 고통은 1,000년 전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다. 그가 패해 해골이 되었을 때도, 강력한 힘으로 적을 몰아붙일 때도... 그 어떤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스스로가 멈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이 진정 마지막이다.’
자신이 죽으면 비텔이 외톨이가 될 거라는 생각 하나로 버텨온 아베네고였다. 그런데 비텔에게 다른 신도들이 생겼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게 된 후 아베네고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서운함이 아닌 기쁨이었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겠구나.
이젠 죽어도 된다. 자신이 죽어도 비텔과 함께 할 자들이 있다. 지긋지긋한, 그리고 끔찍한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냥 죽을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것을 바쳐 이 세상에 비텔교의 뿌리를 내리고 떳떳하게 죽겠다. 내 1,000년의 인내가 헛되지 않도록.’
-돌아왔습니다.
“어서 와라. 아드리오. 어떻게 됐느냐.”
-생각보다 적의 방해가 심하긴 했지만... 충분한 시체를 모아왔습니다.
아베네고가 아닌 아드리오만 나선 반년간의 전투. 그것은 힘을 모아 터뜨려 단 번에 적을 무너뜨리기 위한 준비였다. 그리고 그 준비가 방금 끝났다.
아베네고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자꾸나. 세상에 비텔이란 이름을 각인시키러.”
아베네고가 남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가 걷는 길에는 아드리오가 모아온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아베네고가 시체들 곁을 지날 때 그 시체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아베네고가 혹한의 땅을 벗어나 인간의 땅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 그의 뒤에는 다섯의 수호자가, 그리고 그 뒤에는 수천의 거대 괴물이, 그리고 그 뒤에는 수십만의 군세가 뒤따르고 있었다.
< 173 디멘션 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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