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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70화 (170/228)

< 170 사라지는 경계 >

-돌아왔어요. 사도님. 적은 모래 속에 가라 앉혔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히르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 속에 있겠지. 저번에도 땅 속으로 귀환했었다. 그녀는 땅을 모래로 바꿔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으니까.

그녀가 팔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수호자가 팔에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약간이지만 차이가 있다. 팔에 무언가 들어오는 느낌과 함께 살짝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 무게를 재어 본 적은 없어서 진짜 무거워지는 건지는 모르겠다.

“일곱 전부 꺼냈습니다.”

이쪽 상황은 예전에 끝났다. 19명 생포, 14명 사망.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생포가 더 많았다. 사망자 중 반이 아딜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성전사들의 생포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 같다.

팔다리를 감고 있는 쇠사슬 외에는 전라에 가까웠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는지 몸은 꽤 깨끗했다. 한쪽 바닥에 천인지 뭔지를 깔고 그 위에 카티쉬와 엘프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크흡. 크흡.”

카티쉬나 엘프나 딱히 수치를 느끼진 않는지 몸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면 포기한 건가. 카티쉬 중 하나가 쇠사슬을 부수려고 몸부림을 쳤다. IS에 갇혀 있는 동안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포기를 모르는 성격이네.

입에 재갈물리고 테이프로 몇 겹을 감겨있다. 카티쉬는 몰라도 엘프들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카탈로그에도 저런 상태였으니까. 며칠 동안 저렇게 묶여 있었을지도. 몸의 부상도 꽤 심한데 숨까지 쉬기 힘들었으면 꽤 체력이 빠졌을 것이다.

“입을 막고 있는 건 제거해주세요.”

말은 들어야 하니까.

그런데 입이 자유롭게 되자마자,

“그대 바람이여. 날카롭게 불..”

“모든 것을 불사르는..”

엘프 중 둘이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녹색 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능력을 쓰려는 건가? 대상이 가진 신의 힘을 볼 수 있다는 게 이런 효능도 있구나. 이젠 누구도 내 앞에서 몰래 능력을 쓰지 못하겠군.

“쏘세요.”

탕! 탕!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성전사들은 알아서 웅얼거리던 엘프 둘의 어깨를 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참 유능해.

“아.. 아아악!”

“으으으윽!”

능력을 쓰려던 엘프 둘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일렁이던 빛이 잠잠해졌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죽을 겁니다.”

“그르르... 너희 악신의 종자들이구나. 당장 포박을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어떻게 알아봤는지 모르겠지만 카티쉬 중 하나가 짐승이 경고하듯 낮게 울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죽이려고 왔으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풀어주면 안 죽이기라도 할 건가?”

“고통 없이 죽여주마.”

헛소리도 어떻게 저렇게 식상하게 하는지... 그래도 거짓말은 안하네.

“다른 곳에 잡힌 네 동족은 없나? 가능하면 그들도 구해주고 싶은데.”

“헛소리도 정말 식상하게 하는구나. 네놈들에게 잡히면 더 큰 고통을 당할 텐데 동족의 위치를 말할 것 같으냐.”

윽. 내가 생각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다니. 그래도,

“너희 외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는 말이군.”

“윽.”

이 정도면 됐다. 본격적인 심문은 돌아가서 해도 된다.

이젠 돌아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지만... 성전사들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다. 이종족과의 싸움이 아니라면 나보다 성전사들이 더 잘 싸울 거 같다. 나와 수호자들의 보호가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추가로 성전사 다섯 조 이상이 들어올 예정이니까. 남은 이종족은 벤센과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

“어. 해역아. 너도 왔어?”

“네. 그렇게 됐습니다.”

추가로 도착한 성전사 무리에 김해역도 끼어 있었다.

이것이 또 말 안하고 왔네. 내가 말릴 거라 생각한 건가. 유나 지켜달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흠... 사실 내가 없을 때는 해역이가 유나 곁에 있어야 든든하긴 했는데 이젠 성전사들에게 맡겨도 괜찮을 거 같다.

순수한 전투력으로는 네 번의 축복을 받고 오크, 리자드맨과 10여년을 싸운 해역이가 더 강하겠지만 현대 전술에 대한 대처 등을 생각하면 경호는 성전사들이 더 잘할 거 같다. 그들은 현역에서 수십 년간 활동하던 사람들이니까.

“그래. 그럼 남은 일 부탁한다.”

“아. 예!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굳어있던 표정이 확 핀다. 긴장했구나. 앞으로는 정말 팍팍 밀어줄게. 이종족과의 싸움만 아니라면 말이야.

인간 vs 인간의 싸움이라면 나보다 성전사들이 더 프로겠지만... 이종족과의 싸움은 내가 더 프로지. 혹시나 그락카르 같은 놈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무조건 피해가 생길 거다. 피해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해역이와 성전사들이 타고 온 보트에 나와 함께 온 벤센과 성전사들이 일곱의 이종족을 이고 올라탔다.

축제는 대충 3일 정도 남았나? 여기에서도 틈날 때마다 보긴 했는데 못 본 공연이 있어서 말이야. 대단한 공연이 몇 개 있었다고 하던데. 가서 하이라이트라도 찾아서 봐야겠다.

***

“다른 신의 신도들이 언제 들어오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어차피 올 거 날짜는 알려줘도 되잖아요. 그것만 말해주겠다고 약속해주시면 더 이상의 고문은 없을 거예요.”

“.....”

대답이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요원 중 하나가 다가와 칼로 허벅지를 찔렀다.

“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방안을 울렸다. 깊게 찌르진 않았지만 고통을 극대화하는 주사를 놨기에 칼로 난자당하는 듯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거 하나만 말하고 그게 진실임을 저와 약속하기만 하시면 되요. 그러면 더 이상 이런 고통은 없을 거예요.”

거짓말이다. 약속을 해도 고통은 지속될 거다. 그 때부턴 칼로 찌르거나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질문을 하면 대답할 때까지 고통을 당하겠지.

사실 고문만 할 거라면 약속을 할 필요도 없다. ‘약속의 무게’를 사용해서 가하는 것과 비슷한 고통을 약속 없이도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답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문제다. 고문을 한다고 해서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약속의 무게’를 사용하면 진실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약속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런데,

“꺼져라. 약속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걸 봐선 분명 약속과 관련된 어떤 능력이 있겠지. 내 입에서 너희가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거다.”

상대가 눈치 채고 약속을 하지 않으려한다는 게 문제다.

우리 세계의 사람들은 ‘스킬’에 대해 모르니까 약속을 받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스킬에 대해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그냥 사실을 말하겠다고 약속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약속하면 고통을 멈추겠다는데 거짓말로라도 하겠지.

하지만 ‘스킬’에 대해 잘 아는 자와 약속하려니 이렇게 어렵다. 저쪽 세계는 항시 전쟁상태라서 스킬에 대한 경계심도 상당히 강하다.

일곱의 이종족을 각각 다른 방에 집어넣고 4일 동안 여러 방법으로 약속을 종용했는데 일곱 모두에게 실패했다. 아무래도 약속하는 건 포기해야 할 거 같다. 그냥 정통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벤센이 비텔교 정보부에 끌어들인 요원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전부 고문을 할 줄 안다는 거다. 고문이 사라졌다고 하는 국가는 많지만 진짜 사라진 국가는 없는 거다.

그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고문은 하는 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고문을 하라고 시키는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방법으로 우리 세계에 오는지, 다음 침략은 언제인지, 몇 명이 올 건지. 어떤 능력을 가진 자들이 올 건지.

우리를, 비텔교를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요원들에게 뒤를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기자회견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빨리 준비하셔야 해요.”

맹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응. 부탁할게.”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서 목욕부터 해주세요.”

2시간이나 남았지만 맹연은 시간이 없다며 재촉했다. 할 일이 많긴 하다. 씻고, 머리하고 하려면 한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축제 마지막 날이었던 이틀 전, IS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비텔교가 이슬람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많은 무슬림이 비텔교의 공격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제부터 비텔교는 우리의 주적이며, 비텔교의 본거지인 한국은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파괴된 마을과 죽은 사람들의 시체, 죽은 IS 대원들과 부서진 차량과 건물 그리고 터키와 시리아에서 IS에 잡혀있는 이종족을 찾기 위해 활동 중인 성전사들의 사진을 증거라며 보여줬다.

IS대원을 죽이고 그들의 기지를 파괴한 것은 확실히 우리가 한 일이 맞다. 그런데 파괴된 마을과 죽은 마을 사람은 이종족의 짓인데 우리한테까지 덮어 씌웠다. 그 인간들도 직접 이종족과 싸우고 사로잡기까지 했기에 잘 알 텐데 말이야.

2시간 뒤에 있을 기자회견은 IS의 성명에 대한 해명과 앞으로 우리 비텔교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말하기 위해 잡은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기자회견이다. 오늘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수동적이던 비텔교 활동이 능동적으로 바뀐 것이니까.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특히 노예와 관련된 문제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생각이다.

기자회견으로 여러 가지를 밝힐 예정이지만 이종족에 대해선 아직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종족은 현실성이 떨어지니까.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믿기 힘든 일이니까.

침략이 본격화 될 때 그에 대해 공표할 생각이다. 물론 각국 정보부에는 미리 이종족에 대한 정보를 보내놓을 생각이다. 이미 IS의 노예 매매로 대부분의 정보부가 알고 있는 일이니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 알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목적이 비텔교 말살이긴 하지만 비텔교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으니 비텔교를 뿌리 뽑겠다는 이야기는 지구를 침략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니까.

각국에 알려서 그들에게도 싸울 준비는 하게 해야지. 아무래도 족장급 강자들과는 사전 정보 없이 싸우면 피해가 크지 않겠어? 그런 피해는 최대한 줄여야지.

***

기자회견 최대 논점은 당연하게도 정말 우리가 시리아의 마을을 부수고 주민을 학살했느냐 아니냐였다.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그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그건 아닙니다. 저희가 터키와 시리아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시리아 마을의 학살 사건은 우리가 도착하기 최소 2주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벤센님께서 해주실 겁니다.”

벤센이 나서 화면 자료와 우리가 어떻게 터키와 시리아에 갔는지 등에 대해 모든 걸 알려주며 IS의 주장이 잘못 된 것임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터키에 불법으로 입국한 것이고 허가 없이 무력을 사용했기에 그 사실에 대해선 큰 논란이 될 것이다. 당분간 우릴 처벌해야하느니 어쩌니 하며 시끄럽겠지. 하지만 이미 다른 세상에서의 침략이 시작된 이상 논쟁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세계에서의 침략만큼 거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을까.

사실 무력단체가 있다는 걸 밝힌 것도 그때를 대비한 것이다. 미리 무력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려둬야 우리가 이종족에 맞서 싸울 때 덜 논란이 될 테니까.

갑자기 짠하고 성전사들에 대해 밝히면 이제껏 무슨 목적으로 무력단체를 몰래 육성한 건지, 혹시 이종족의 침략을 미리 알고 준비한 거라면 왜 세상에 알리지 않았는지 등, 여러 가지 큰 문제가 많이 터질 테니까.

미리 작은 걸 터뜨려서 충격을 완화하는 게 좋을 거라고 보고 내린 결정이다.

-세상에 지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비텔님?

-살려주세요. 비텔님. 이상하게 생긴 자들이 사람들을 막 죽이고 있어요.

-신이시여...

갑자기 격정적인 기도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기에 그와 관련된 긴장된 기도는 항상 들려오지만... 지금 들려오는 기도는 느낌이 달랐다.

벤센이 갑자기 설명을 멈추고 이어폰의 소리에 집중했다. 기자들이 이상한 벤센의 모습에 웅성웅성댔지만 곧 그들도 어딘가에서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일 터졌군. 아직 어느 정도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벤센이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내게 알려주기 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전에 기자 중 하나가 급하게 손을 들었고 허락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입을 열어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괴상한 모습을 한 자들이 영국 런던에 나타나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는데 혹시 이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십니까!”

빌어먹을. 하필 나타나도 거기에 나타나냐...

< 170 사라지는 경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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