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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63화 (163/228)

< 163 사라지는 경계 >

“와... 어떻게 공이 사라지는 걸까요. 정말 신기해요.”

유나가 축제 3일째에 이어진 프랑스 한 마술사의 공연을 보며 감탄했다.

넌 전기 뿜어내고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갈취할 수 있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니.

그런데 놀랄 만하다. 마술사가 농구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가 나타나게 만들었다가 하면서 엄청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그저 테크닉 혹은 눈속임이 아니라 진짜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공은 정말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있었다. 현장에서 보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니 TV로 보는 사람을 속이기 위한 그래픽, 동영상 편집 같은 것도 아닐 텐데 내 눈에도 정말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다.

“축복을 받지 않은 자가 저 정도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을 얻을 수 있어요?”

오하넬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일은 오하넬에게 묻는 게 가장 빠르다. 그녀는 오래 살았고 견문 넓히는 것을 좋아한 만큼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오하넬은 자신의 목소리를 나에게만 들리게 할 수도 있으니 유나가 공연 관람하는 걸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능하지만... 이 세계 인간의 가능성이 열린지 1년이 채 안 됐다는 것과 기술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해요.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술은 당장 생각나는 것이 다섯 가지 정도 있는데 그것들 전부 고등 기술이거든요.

“그렇군요.”

-아마 물건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능력인 것 같네요.

그런가? 그러고 보니 저 마술사 아까부터 보여주는 공연이 대부분 물건을 사라지게 했다가 나타나게 하는 거다. 전부 잠깐 안보이게 만들었다가 다시 보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비텔님께서 기적 ‘날 믿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로 인간들의 가능성을 열어주신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이들을 중심으로 아주 약간씩은 자신의 가능성을 손에 쥔 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공연에서도 서커스를 하는 사람 중 하나가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을 보여줬었다. 트럼프 카드를 던져 유리병을 잘라냈었지. 신기해서 현지 요원에게 확인해보게 하니 진짜 카드였고 진짜 유리병이었다. 원래는 절대 자를 수 없는 것을 잘라낸 것이다.

축제 공연에 나와 내 눈에 띈 자만 두 명. 그 외에도 뛰어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으로 가능성을 손에 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찾아봐야겠어. 그들에게 축복을 내린다면 더욱 뛰어난 모습을 보이겠지. 일단은 그 사람들 중 ‘진실한’ 신도를 중심으로 축복을 내릴 생각이다. ‘진실한’ 신도가 아닌 이들은 아무래도 믿는 게 힘드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비텔님에 대한 신앙심을 검증한 후에나 축복을 내려야하겠지.

부르르.

진동. 전화가 왔다. 보니 벤센이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빨리 갔다 오세요. 저거 보셔야죠.”

“그래.”

유나는 공연에 푹 빠진 모양이다. 확실히 수준이 높긴 하다. 지금 하는 마술사만이 아니라 모든 공연이 전부 수준 높았다. 아무래도 비텔교 신도들은 신체능력이 뛰어나니까. 대부분의 공연이 신체능력이 뛰어나면 그만큼 높은 완성도를 가질 수 있다.

춤을 더 쉽고 현란하게 출 수 있고, 악기를 더욱 세심하게 다룰 수 있다. 더욱 고난이도의 서커스를 할 수 있으며, 더욱 높게 뛰고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예전에 체육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부분 비텔교 신도가 되었듯, 공연계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비텔님을 믿지 않아도 일단은 비텔교 신도가 되어야 한다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다.

그 덕에 비텔교 신도이기에 뛰어난 예술인이 되었는지, 뛰어난 예술인이 비텔교 신도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텔교에는 뛰어난 예술가가 많다.

각 분야 최고들이 몇 달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고 그 준비에 우리가 무한대로 돈을 투자해줬으니 당연히 뛰어난 공연이 펼쳐질 수밖에.

아마 이번 축제는 비텔교 신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 대부분이 지켜 볼 것이다.

흠... 정기적으로 공연을 여는 것도 고려해봐야겠어.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4년에 한 번이면 될까?

돈이 많이 들겠지만... 솔직히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으니까.

헌금도 헌금이지만 기업에서 들어오는 후원금도 엄청나다. 기업 오너가 비텔교 신도라서 후원하기도 하고, 18억 비텔교 신도를 노리고 광고성으로 후원하기도 하고.

물론 아직은 후원금보다 헌금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말이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헌금을 쓰는 것도 일이다. 우리 헌금은 전부 현지 화폐로 들어오니까 말이야. 그걸 받아서 축적하기만 하면 시중에 도는 통화가 줄어들고, 통화가 줄어들면 경제 위기가 찾아온다.

그걸 막기 위해 열심히 돈 쓰고 있다. 매일 작은 방이 가득 찰만큼 지폐를 꺼내놓으면 ‘진실한’ 신도들로 구성된 ‘본부’의 직원들이 가져가 현지 지부로 배달한다.

지부는 그 돈을 고아원 운영, 무료급식소 운영, 저소득층 지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사용한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종교 1위로 뽑혔다. 우리가 특별히 돈이 많은 것은 아닐 텐데 말이야. 아무리 헌금이 잘 들어와도 아직 1년 밖에 되지 않은 종교니까. 다만 우리는 종교 건물 같은 것을 지을 필요가 없기에 사회에 더 환원할 수 있는 것뿐이다.

아마 종교 단체에서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곳이 부동산 아닐까. 우리는 설교를 어딘가의 건물에 모여서 하지 않고 집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내가 전 세계의 신도들에게 직접 머릿속에 들리도록 설교하니까.

덕분에 우리 비텔교는 교회, 성당, 절, 모스크와 같은 사원을 지을 필요가 없다.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겠어. 우리는 건물을 사지 않고 돈을 전부 쓴다. 그러다보니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종교 중 하나가 된 거겠지.

일각에선 내가 신도들을 착취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도 났다. 우리 비텔교가 사회에 환원하는 돈이 헌금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이다. 그냥 무시했다. 루머는 루머일 뿐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헌금 인출 수수료 20% 어디에 쓰시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그거 엄청 중요한 건데.

“네. 벤센. 무슨 일인가요.”

방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교주님께서 말한 자들... 찾았습니다.

“벌써요?”

그냥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만 말해주고 겨우 이틀 지났는데 벌써 찾았다고?

***

부락을 점령하고 며칠을 그곳에서 지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쿠훅. 이해할 수가 없군.”

이곳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같은 동족끼리 싸우고 노예로 만든 것이 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외에도 작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오크가 과일을 먹는다. 오크가 광산에 들어가 금속을 캔다. 오크가 건물을 짓는다. 오크가 짐승을 기른다.

그 외에도 다른 것이 많았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냥 생김새 말고는 전부 다르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어째서 이곳의 형제, 자매들은 우리와 이렇게 다른 거지?”

“1,000년 전에는 이곳에 살던 형제들도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었다.”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1,000년 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먼 과거다. 그걸 노르쓰 우르드가 직접 겪었을 리 없지.

“그것도 형제가 전대 주술사에게 받은 기억 속에 있는 내용인가?”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바뀐 거지?”

“기억이 거의 유실되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1,000년 정도 전에 큰 전쟁이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싸운 큰 전쟁이.”

“얼마나 큰 전쟁이지?”

“모른다. 그저 보이는 모든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보이는 모든 곳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니. 적어도 10만은 넘겠군. 크흐.. 그 싸움에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 전쟁에서 수많은 대족장이 탄생했지. 그들 중 반 이상이 카록께 잡아먹혔다.”

멍청한 놈들. 대족장이란 자들이 신의 음성에 잡아먹히다니. 카록께서 우리 오크들에게 실망했겠다.

“적이 있을 때는 괜찮았다. 전부 힘을 합쳐 그 적과 싸웠지. 하지만 문제는 이 지역에서 모든 적이 사라진 후였다.”

“적이 사라져?”

“그렇다. 어떤 종족은 멸망하고, 어떤 자들은 떠났지. 결국 이 광활한 땅에 우리 오크만이 남았다.”

적이 없다니. 그럼 싸움도 없다는 것 아닌가. 내가 10개월간 이동하면서 형제들과의 결투로 버티긴 했지만 이동이 끝나면 싸울 적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버틸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적이 아예 없는 생활이라니. 그건... 끔찍하군.

“나라면 적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은 대족장들이 형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이곳을 떠났다. 남쪽은 막혀 있기에 북쪽, 동쪽, 서쪽으로 떠났지. 그 중 북으로 간 자들이 형제들의 조상이다.”

어느새 다가와 같이 듣고 있던 캅카스가, 미흐로크, 나를 뭉뚱그리며 말했다. 우리의 조상이 이곳에서 살았었던 거군.

“그렇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군.”

캅카스가는 알았다고 끄덕였지만 미흐로크는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인 듯하다. 사실 나도 관심 없다. 내 조상이 어디에 살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게 싸움을 만들어주지도 않는데.

“그리고 이곳에는 잡아먹힌 대족장들만이 남았다. 그들은 적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싸움만 할 수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지. 그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죽이고 죽이다가 어느 날 한 가지를 깨달았지. 배고프다는 것을. 싸우기만 하다 보니 먹을 것이 없었다. 같은 오크는 만만치 않았고, 다른 종족은 전부 사라졌지. 사냥을 하자니 먹고 살기 위해선 전투를 그만하고 사냥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것이 싫어서 계급을 만들었다. 다른 부락의 형제들을 죽이고 사로잡은 그 부락의 아이들을 사냥만 하는 노예로 삼은 거지. 그게 시작이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눠지고 세분화되기 시작했지.”

그렇군.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 이곳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와 왜 다른지에 대해 의아해 했지 않나.”

“의아해 하긴 했지만 알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안다고 해서 싸움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그런 걸 알아서 뭐할까.

“난 이곳의 형제들이 왜 다른지에 대해 알 필요 없다. 그들의 방식은 무조건 잘못 된 것이고, 우리의 것으로 고쳐주면 된다.”

“최고다. 그락카르. 내가 살면서 본 오크 중 가장 똑똑하다.”

크흐. 내가 똑똑하긴 하지만 노르쓰 우르드가 있잖나. 미흐로크. 물론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일 뿐 나이가 들면 노르쓰 우르드보다도 더 현명해질 자신이 있긴 하지.

“형제의 말이 맞긴 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선 공들여서 가르쳐야 할 테니까.”

“가르치긴 가르쳐야지. 그런데 그게 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노르쓰 우르드는 현명한 오크이긴 하지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지금 형제가 이곳의 형제들에게 우리의 방식을 알려주겠다고 했지 않나.”

“그렇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선 시간이...”

“형제는 가끔 바보 같을 때가 있다.”

노르쓰 우르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

“바보.. 같다고?”

“우리 오크가 어떻게 전사와 장인으로 나눠지는지 잊었나?”

“... 기억한다.”

기억해야지. 오크로서 그건 절대 잊을 수 없으니까.

“설마 그 방법을 이곳의 형제들에게 쓰겠다는 말인가?”

“이곳의 형제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아이와 같지.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면 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형제.”

캅카스가도 동의했다.

“카흐.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 교육 내게 맡겨다오. 형제. 암컷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걸 보면서 항상 해보고 싶었다.”

미흐로크도 엄청 좋아하는군. 잘 됐다. 미흐로크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지.

“... 이곳의 형제들이 불쌍하군.”

노르쓰 우르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가 불쌍하다는 거지. 당연한 교육인데 말이야.

오크의 아이들이 암컷에게 받는 교육.

그건 매일 암컷과 결투를 하는 것이다.

암컷도 오크는 오크다. 비록 전사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훌륭한 전투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당연히 아이들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매일 암컷에게 맞다가 기절한다. 그리고 몸이 나으면 다시 맞다가 기절하고, 또 결투하고 기절하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암컷을 이기는 날 성인으로 인정받아 독립한다.

난 2년째에 그걸 해냈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그 어떤 형제보다도 빠른 기록이었다.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지.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든 전투기술은 그 당시 대부분 익힌 것 같다. 아주 좋은 추억이지.

여하튼 우리 오크들의 교육 방법은 아주 훌륭하다.

“맞다보면 알아서 우리의 방식을 익히게 되겠지.”

미흐로크의 말대로다. 맞다보면 뭐든 배우게 되어 있다.

죽기 싫어서라도.

< 163 사라지는 경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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