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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62화 (162/228)

< 162 비텔 >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다.

다른 신의 신도들이 우리 세계로 넘어왔다고? 비텔교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건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댈 수 있는 라이벌, 그게 없기에 유일하게 증거를 댈 수 있는 비텔교가 빠르게 전파되었던 거다.

그런데 다른 신의 신도가 우리 세계로 왔다면 비텔교 외에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종교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 아닌가.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이쪽을 멸망시키고 싶을 정도로 적대적인 경쟁자가 말이다.

“다른 신의 신도들이면... 몰란의 신도들입니까?”

분명 87일 전에 왔다고 하셨지. 87일 전에 온 존재가 다른 종족이었다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인간이 왔겠지.

인간이라면 와서 좀 이상한 행동을 한다 해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아는 한 인간은 몰란을 섬긴다.

“몰란의 아이들은 아니란다. 몰란의 아이들은 아베네고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다른 종족의 아이들이겠지. 그 중 마우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안단다. 마우가 네 세계에 아이들을 보낸 후 연결이 끊겼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거든.”

몰란의 신도가 아니라고? 그럼 마우라는 신의 신도들도 인간인건가?

“아니다. 마우의 아이들은 인간이 아니란다. 카티쉬족이지.”

카티쉬?

“이렇게 생겼단다.”

비텔님께서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인간과 닮은 벌거벗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더니 거의 500정도 된 후에나 나타나는 것이 멈췄다.

조각? 아니면 시체인가?

겉모습은 생생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실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실체는 여러 가지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체온, 호흡, 움직임, 심장박동 등. 그 모든 것이 종합해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봬도 몇 번인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축복을 받은 몸이다. 내 발달된 감각은 비텔님 같은 신이면 몰라도 저런 존재들의 기척까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았다. 손이 그대로 통과했다.

홀로그램? 잔상?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하긴. 이게 뭐든 무슨 상관이냐. 비텔님께서 가지신 수많은 능력 중 하나겠지. 지금은 카티쉬족에 대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늑대인간? 아냐. 늑대인간이라기엔 생김새가 인간에 가깝다. 팔과 다리의 끝 부분과 꼬리에만 짐승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있고 그 외의 부분은 그냥 털 많은 인간 정도로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늑대계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짐승이 혼합되어 있는지 모르겠는 걸 제외하고 꼬리와 팔다리의 모습을 보고 내가 분별이 가능한 것만 따져도 고양이, 쥐, 곰, 소 등등, 온갖 동물의 모습이 혼합되어 있었다.

“수인족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정확하다. 카티쉬는 마우가 신체능력이 약한 인간과 엘프의 신체능력을 향상시키는 실험을 하다가 탄생한 아이들이니까.”

... 개량종 같은 건가? 아니다. 개량종은 같은 종족 내에서 향상시키는 거고 이건 완전히 다른 종족을 하나로 만든 거니 다른 이야기다.

키메라 같은 거군. 인위적으로 다른 종을 섞어 만들어지는 생명체. 지구의 과학자 중에도 그런 실험을 했던 자들이 있다. 원숭이의 목을 잘라 개의 몸에 붙이는 등의 일을 했던 자들이 있지. 그것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실험의 주재자가 신이고 대상이 인간이었다는 거지. 그리고 신이 주재자였던 만큼 실험에서 성공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지. 인간은 전부 실패했으니까.

여하튼 비텔님께서 심어주신 기억 속 카티쉬족을 보니 우리 세계에 들어왔어도 알려지지 않을만하다. 다리와 팔, 꼬리만 가리면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가 다리와 팔, 꼬리를 내놓고 다닌다 해도 사람들은 분장이라 생각할 것이다. 전혀 이슈가 되지 않겠지.

그리고 보아하니 저쪽 세계의 종족들은 대부분 ‘바벨탑 이전의 세계’ 기적이 일어났던 건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기에 다른 세상의 종족이지만 우리 세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지. 상대가 우리 비텔교 신도라면 대화도 가능할 거다.

“돌아가자마자 찾겠습니다.”

난 우주인이 찾아오면 일단은 환영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비텔님을 가둬두고, 다른 세계의 비텔교를 멸망시켰던 자들의 일부가 찾아온 이상 절대 환영할 순 없지.

“그러는 게 좋을 거 같구나. 내 친구의 아이들이 좋은 뜻으로 그곳에 간 것은 아닐 테니까. 내게 힘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간 것이니...”

비텔님께 힘이 가는 것을 막겠다함은 다른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세계의 비텔교도 멸망시키려 하겠지.

돌아가면 할 일이 많겠어. 정보력을 총 동원해 카티쉬족과 최대한 비슷한 녀석들을 찾아보고 혹시나 오크, 리자드맨, 드워프, 엘프 같은 녀석들이 오지는 않았는지 찾아봐야겠지. 카티쉬족만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 축복을 받은 만큼 강하고 약한 자가 나눠지겠지만 종족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이 얼마인지도 중요하다.

오크와 인간을 예로 생각해보자. 두 종족의 기본 신체능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끼리 싸울 경우 오크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인간 셋이 덤벼야 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런 만큼 똑같이 한 번의 축복을 받은 자끼리 싸우면 오크가 이긴다. 축복은 추가능력이니까. 비슷한 추가능력을 받아봐야 기본 능력이 강한 자가 이긴다.

내가 이제껏 그락카르의 세상에서 본 이종족은 오크와 리자드, 드워프 셋이다. 그리고 그 셋 다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했다. 특히 오크는 축복을 단 한 번만 받아도 드워프가 만든 총이나 인간의 활, 석궁이 거의 안 통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단단해진다.

만약 카티쉬가 그 정도라면 무작정 찾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마우가 목적했던 대로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한계가 있었지. 네가 아는 아이들 중에는 드워프가 가장 비슷한 것 같구나. 하지만 객체마다 특징이 전부 다르단다. 힘이 특히 강한 아이도 있고 속도가 빠른 아이도 있지.”

드워프와 비슷하다니. 그나마 다행인가? 내가 아는 세 종족 중 가장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종족이 드워프다. 물론 그 차이는 근소하며 인간보다는 훨씬 강력한 충분히 조심해야 할 종족이란 건 확실하다. 드워프도 거대한 큰어금니멧돼지의 돌격을 몸으로 버텨낸 괴물들이니까.

만약 카티쉬와 싸울 일이 생긴다면 무조건 축복을 받은 성전사가 함께하는 상황에서 싸우라고 말해야겠어.

돌아가서 성전사들에게 지금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교육을 해야겠군. 자신보다 신체능력이 우월한 상대와 싸우는 법에 대한 교육 말이다. 그에 대해선 김해역이 잘 알 거다. 김해역은 꿈속에서 오크, 리자드맨 등과 끝없는 싸움을 벌였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김해역에게 꿈속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 들을 때 오크, 리자드맨, 엘프, 드워프 등에 대해선 들었지만 카티쉬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다.

깜빡한 걸까? 돌아가서 물어봐야겠군.

“돌아가겠느냐.”

“가셔야 합니까?”

반대로 물었다.

난 웬만하면 비텔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왠지 모르겠지만 편안한 마음이 든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갈 때 느낄 수 있는 포근함과 비슷한 느낌을 이곳에 와 비텔님을 만난 이후 계속 느끼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기에 이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면 함께 시간을 더 보내자꾸나. 나도 친구들에게 들키기 전까진 남는 것이 시간이니까.”

비텔님께서 손을 뻗자 의자와 탁자가 만들어졌다. 비텔님께서 먼저 가 앉았고 나도 맞은편에 가 앉았다.

“보리차를 좋아했지?”

비텔님의 말과 동시에 탁자 위에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보리차가 머그잔에 가득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난 항상 보리차를 마신다. 커피보다 보리차가 훨씬 맛있다. 커피는 아무리 먹어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더라. 그걸 비텔님께서 기억해주시다니. 기분이 좋다.

“네가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마시기 시작했는데 맛이 괜찮더구나.”

어느 새 비텔님도 작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큰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잠깐 움찔했다. 비텔님의 겉모습은 어린 여자아이시라서 큰 머그잔에 담긴 뜨거운 보리차를 흘릴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비텔님께서 그럴 리 없지.

말없이 보리차만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안 물어보느냐?”

비텔님께서 갑자기 물어보셨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네가 항상 궁금해 하던 것 말이다.”

내가 궁금해 하던 것... 정말 많다. 그락카르가 사는 세상은 우주 어디에 있는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에 사는 생명체는 어디에 있는지, 신은 어디에서 온 존재들인지, 우리 세계에 있는 종교의 신이 정말로 있는지 등등.

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언제나 이거였다.

“어째서 절 선택하셨습니까. 제가 아닌 다른 훌륭한 자들이 많았을 텐데요.”

그게 궁금했다. 비텔님께서 날 선택하기 전의 나는 정말 형편없었다. 운전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엉망이었지.

분명 비텔교를 전파할 최적의 인재가 갖춰야 할 조건이 운전은 아니었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나은 인재가 수두룩했다. 한국만 따져도 수십, 아니 수백만 명은 될 것이고 세계까지 생각하면 셀 수도 없겠지.

“수백 만 명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너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하. 좋다고 해주시진 않으시는군요.

“친구들은 내가 솔직해서 좋다고 했지.”

“그락카르가 선택된 것은 이해갔습니다.”

그락카르도 비텔님께서 선택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선택했다면 왜 그락카르를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간다. 그락카르가 되어 그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오크를 봤지만 그락카르만큼 뛰어난 오크는 본 적 없으니까.

천재.

머리가 똑똑한 천재가 아니라 오크로서, 가장 오크다운 천재. 그게 그락카르다.

초기에는 내가 종족이 다른 그락카르에게 열등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에 비해 나는... 도대체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 그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륵.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비텔님께서 머그잔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입을 여셨다.

“난 선택한 적 없단다.”

“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네가 날 선택했지.”

내가 비텔님을 선택했다고? 그게 말이 되나?

비텔님께서 날 선택했으니 제가 비텔님의 사제가 된 거잖습니까.

“어느 날 카록이 재밌는 녀석을 발견했다며 한 오크를 보여주더구나.”

설마 그 오크가...

“그락카르였다. 그락카르는 이제껏 발견된 적 없는 세상의 인간과 연결되어 있었지. 그 세계는 신기했다.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볼 수가 없더구나. 마치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는 힘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그러면 저와 그락카르가 연결된 이유는...”

“그것도 모른단다. 카록도 모른다더구나. 아마 내게 말해주기 싫거나 진짜 모르거나 한 거겠지. 신경 쓰지 않았다. 둘 중 어느 거라도 상관없었으니까. 난 이미 네게 매료된 상태였거든.”

“제게요?”

“처음 보는 세상, 처음 보는 삶. 당시 난 지켜볼 수 있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지. 전부 죽거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거든. 그러던 차에 볼 수 있게 된 너는 아주 큰 선물이었다.”

혼란스럽다. 난 무조건 비텔님께서 내게 찾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그리고 그건 저한테 매료된 게 아니라 우리 세상에 매료된 게 아닌가요?

“순서는 상관없단다. 난 지금껏 봐온 것과 다른 인간의 새로운 삶에 매료되었고 그로 인해 네게 빠져들었지. 너밖에 볼 수 없으니 네게 빠져든 것이긴 하지만 지금 넌 내게 가장 중요한 아이란다. 그건 분명하지.”

‘중요한 아이’라는 대목에서 비텔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이 내 안을 따뜻하게 채웠다. 해답을 들었음에도 의문이 가중되는 이 상황에서도 기분은 좋구나.

“네가 불량배들에게 맞았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고 넌 내 손을 잡아주었지. 그 전엔 내가 네 세계에 힘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시도하지 못했었단다.”

내가 처음 전언을 듣고 사제가 되었을 때구나. 그것도 의도하신 게 아니었다는 거군.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내 생각과 달라 혼란만 가중된다.

“무심코 내민 손을 네가 잡아줬을 때... 난 정말 행복했단다.”

비텔님이 의자에서 떠올라 내게 날아왔다.

“넌 나의 보물이다.”

비텔님께서 날 꼭 안아주셨다.

***

“아저씨. 저분들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음? 아. 그렇구나.”

유나가 말을 걸어준 덕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비텔님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현실에서의 시간은 단 1초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이후로 계속 멍한 상태다. 다행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난 상태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방송사고가 났을 것이다.

지금은 축제의 첫 무대인 한국 팀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TV속에서는 국악팀과 비보잉팀이 신나는 협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눈은 공연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엔 방금 비텔님을 만나고 왔던 것이 계속 맴돌았다. 비텔님께서 날 안았을 때, 분명 비텔님의 몸은 작았지만 순간 내가 작은 아기가 되어 어머니 품속에 안긴 듯한 착각이 들었었다. 그만큼 포근하고 따뜻했다.

비텔님을 직접 만난 것은 정말 좋았지만... 좋았던 만큼 혼란도 가중됐다. 내가 지금껏 상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을 들었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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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비텔님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었든 무슨 상관이냐. 비텔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내가 가장 중요한 아이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비텔님이다. 그리고 비텔님께서 내 삶을 구원해주셨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폰을 꺼내들었다.

“벤센.”

-네. 교주님.

이젠 내가 비텔님을 구해드릴 차례다.

< 162 비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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