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비텔교의 힘 >
신도림 자살폭탄테러 사건으로부터 5일, 김현일에게 성전사를 경호원으로 붙여준 지 이틀이 지났다.
-우리 목사님이 악마의 종교라고 믿지 말라던데. 이번에 영상보고 한 번 기도해봤더니 진짜 몸에 힘이 넘친다.
-그 사이비 종교가 사이비가 아니라 진짜였다고?
-진짜니까 사이비가 아닌 거지.
-너희들 미쳤구나. 그거 악마의 힘이야.
-교회가 신도 빼앗기기 싫어서 퍼뜨린 헛소문이겠지. 어느 악마가 사람을 구하러다니냐.
-기독교에서만 그런 이야기를 하닌 게 아니야.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등 모든 종교에서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두 군데도 아니고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뭔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왜 그러겠어. 다 밥그릇 싸움이야. 신도 안 뺏기려고 그러는 거지. 돈만 밝히는 것들.
-나 비텔굔데 그런 말 하지 마라. 비텔교는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아. 교주님께서 매주 하는 설교에서도 다른 종교를 깎아내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악마교도가 나타났네. 비텔은 악마야.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너 용감하구나.
-악마교도에게 악마교도라고 하는데 용감한 거라 무슨 상관?
-비텔님은 분명 신이시지만 만약 악마라고 해도 실제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고 계신분인데 겨우 인터넷 익명이 널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 신께서 지켜주실 거다. 악마 따위 내게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어느 사이트를 들어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비텔교 반응 중 하나다.
rohanahj89. 아이디 적어 놨다. 비텔님은 몰라도 내가 용서 안한다. 벤센한테 누군지 찾아보라고 해야지. 영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녀석이니까 외국인이겠지만 벤센이라면 찾아내겠지.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번 일의 반응을 살폈다. 5일이 지났음에도 어디든 게시판이 있는 곳이라면 전부 이번 사건이 화제였다.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 사이트는 김현일과 ‘생명력 전이’ 화제가 반반정도지만 외국에서는 김현일보다는 ‘생명력 전이’에 대한 반응이 훨씬 더 컸다.
적어도 김현일의 화제성이 ‘생명력 전이’와 반반정도는 해주길 바랐는데 좀 약했나. 하긴 아무리 김현일이 ‘의인’, ‘영웅’이 된다고 해도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이 일어난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약하지.
상관없다. 김현일은 이제 시작이니까. 앞으로 키우면 된다. 우리 비텔교의 간판으로 말이다.
“또 댓글 보시는 겁니까. 후..”
맹연 저것이. 감히 교주님 방에 들어오는데 노크도 없이 들어와? 그리고 한숨은 왜 쉬는 거냐. 설마 날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노크는 좀 해. 남자 방에 여자가 그렇게 막 들어오는 거 아냐.”
“문 활짝 열려 있는데 무슨 노크 입니까.”
“....”
문 안 닫았었나.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왜 왔어.”
“유나님이 부루마블 하자고 하십니다.”
“나 바쁜데.”
“댓글 보실 거잖습니까.”
“민심 파악하는 거야.”
댓글은 마약이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다. 지난 1년 동안 틈날 때마다 해서 지겹기만 한 부루마블보다는 댓글 보는 게 훨씬 낫지.
그리고 실제로 민심파악중이기도 했다. 그제 빈예츠가 뭘 한다고 해서 허락해주긴 했는데 내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컸다. 중동 내에서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까지 일이 일어났다.
혹시 그걸 비텔교와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까 해서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 사이트까지 뒤지고 있었다. 결론은 전혀 찾지 못했다. 아직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거나 나와 김현일 때문에 묻힌 듯싶었다.
“해역이, 너 그리고 밖에 있는 성전사 중 한 명 불러서 하면 되겠네.”
“성전사장님은 출장 가셨고 유나님이 다른 성전사분들을 좀 어려워하십니다.”
그렇긴 하지. 유나는 원래 쾌활한 성격이긴 하지만 그 원래 성격을 드러내는 사람이 몇 안 된다. 나, 김해역, 맹연 정도일까. 그 외엔 비텔교의 사제장으로서 위엄을 갖추고 대한다.
“교주님께서 좀 와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부루마블을 저와 유나님, 둘이서만 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어쩔 수 없네.
“알았어.”
해역이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지겹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유나를 위해서 부루마블 한 번 못해줄까. 유나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한다.
한창 학교다니며 친구와 놀고 부모님한테 칭얼대야 할 나이에 한 종교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하물며 유나의 부모님조차 유나를 공경할 정도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많이 외로울 거다.
맹연도 대상이 유나니까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다. 그 외의 일로는 절대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맹연이 유나를 깍듯하게 대하긴 하지만 속으론 막내 동생 정도로 생각할 거다.
“밖은 엄청 바쁘지?”
계단을 내려가며 물었다.
나나 유나는 이렇게 숙소에서 쉬다가 기분 내킬 때 내려가서 신도들을 잠깐 만나보고 올라오면 된다. 너무 얼굴을 많이 보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요즘은 잘 나가지도 않는다.
내가 비텔교를 전체적으로 관장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서 대체로 한가하다.
입헌군주제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와 비슷하다. 물론 내가 군림하는 건 아니지만 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니 왕과 비슷하지. 입헌군주제와 다른 점은 내가 실권을 쥐고 있다는 거다.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아무리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도 직접 일을 하고 다스리지 않으면 금방 실권을 잃겠지만 비텔교는 다르다. 비텔님이라는 절대권력이 존재하는 조직이니까. 교주인 나는 그 절대권력을 위임받은 거지. 그래서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실권이 유지된다.
덕분에 난 이렇게 숙소에서 댓글이나 보고 유나와 부루마블이나 하지만 벤센이나 김진서 같은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바쁘다.
이번에 터진 사건으로 비텔교가 다시 한 번 더 세계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반응이 보통이 아니다. 정말 컸다. 인터넷 세상 모든 곳에서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1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벤센이나 김진서 같은 사람들이 잠도 못자고 일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한테 일한다고 티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맹연에게 물었다. 맹연이라면 실제 어떤 상황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테니까.
“평소보다 바쁘긴 하지만 엄청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맹연은 나와 일선의 실무자 사이에 있는 존재다. 실무자들이 내게 직접 묻기는 뭐하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게 맹연이고, 맹연은 날 보좌하기 위해서 교의 전체적인 흐름을 항상 꿰고 있으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맹연은 벤센, 김진서 같은 실무자와 상당히 가깝고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안 바빠?”
예상이랑 다르네.
“예전과 달리 비텔교도 성장했으니까요. 우리 교가 그동안 쌓아온 기반도 상당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신도가 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그들은 비텔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자들이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아직 일이 많이 늘지는 않았습니다.”
“아. 그렇겠네.”
맹연의 말이 맞다. 우리교가 갑자기 바빠지는 경우는 대부분 ‘기적’을 일으킨 후였다. 지금 비텔교 신도가 되는 사람들은 그냥 호기심인 사람들이 대부분 일 테니 열성적으로 교단에 찾아오거나 하진 않겠구나.
비텔교는 딱히 예배당에 찾아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내 설교를 들을 수 있고 헌금도 할 수 있으니까. 나름 효율이 좋은 종교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바빠지긴 하겠지만 이미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다행이네.”
“아. 데니스님은 좀 바쁘겠네요.”
“데니스?”
데니스는 NSA요원으로서 NSA와 우리 비텔교를 잇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다가 벤센이 그 역할을 직접 맡기 시작하면서 NSA에서 나와 임시전당에서 접객 일을 맡았다.
순수한 의도로 찾아오는 비텔교 신도는 내가 만나서 기도도 해주고 하지만 비즈니스 목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상당하다. 데니스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많이 찾아와?”
“이번에 터진 영상이 힘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었잖습니까.”
그렇긴 하다. 스스로 높은 곳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자신의 건강, 목숨이니까. 진시황은 불로불사의 약을 찾기 위해 세상을 뒤졌다고 하지 않나.
아마도 내가 불로불사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데니스 엄청 힘들겠네. 돈, 권력, 무력을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게 불로불사만이 아니다. 개념도 없다.
“불쌍하네. 데니스.”
내가 해줄 건 응원밖에 없네. 파이팅.
***
돈이 많은 자, 권력을 가진 자, 무력을 가진 자, 영향력을 가진 자.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라 별로 따졌을 때 많아봐야 100명? 백분율로 따졌을 때, 0.0001%가 될까 말까 할 것이다.
100만 명 중 하나. 최고라고 말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보자. 각 나라마다 그런 자들이 수십, 수백 명이 있다.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면? 지구의 인구를 70억 명이라 생각했을 때 0.0001%는 70만 명이나 된다.
70만 명이나 된다.
이제 말을 바꾸겠다. 부자는 많다. 권력자도 많다. 거대 조직의 두목도 많다.
70만 명이나 되지만 그 70만 명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하나 같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신이 인류의 정점에 서 있으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
그리고 한숨을 쉬는 데니스의 앞에는 ‘100만분의 1’도 아니고 ‘100만분의 1’의 심부름꾼이 서 있었다. 그는 다른 심부름꾼과 비슷하게 데니스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다.
“한숨을 쉬시다니. 절 어중이떠중이로 생각하시는군요. 한 번만 더 한숨을 쉬시면... 아마 내년 생일을 맞이하기 힘드시지 않을까요?.”
똑같다. ‘100만분의 1’의 심부름꾼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100만분의 1’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날 죽이겠다고?’
“하아....”
다시 한 번 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찾아오는 사람의 셋 중 하나가 데니스에게 저런 말을 한다. 데니스가 비텔교의 접객 담당이 된 이후로 항상 들어온 말이다. 이제 좀 적응될 때도 됐는데 들을 때마다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일이 귀찮아질 징조니까.
물론 그 말을 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했다.
평소라면 이정도 일로 한숨까지는 쉬지 않을 데니스지만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네 번째 만나는 손님이다. 이미 전에 만난 사람들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인데다가 오늘 하루 종일 저런 인간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또 한숨을 쉬는군요. 아무래도 제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요. 아무래도 제 경고가 그쪽 분께 닿지 않았던 것은 제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있으니 일단 제 경고가 진심이란 걸 그쪽분이 느끼게 만들어야겠네요.”
심부름꾼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심부름꾼의 경호원으로 따라온 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까 셋 중 하나가 목숨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그럼 나머지 셋 중 둘은 그냥 예의 있게 행동하다가 갔을까? 아니다. 그들도 다른 방법으로 데니스를 짜증나게 했다.
그 중 하나가 폭력이었다.
데니스는 항상 혼자 손님을 만났다. 그에 반해 손님들은 항상 경호원이나 조직원, 비서 등을 데리고 다녔고 그들 대부분이 격투기, 전투훈련 등을 받았다. 데니스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인텔리로 보였기에 쉽게 보고 폭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데니스도 한상에게 세 번의 축복을 받은 몸. 당연하게도 데니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던 자들은 한 군데 이상이 부러진 채 신도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뒷문으로 실려 나갔다.
경호원이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기를 쓰는 건가?’
무기를 쓰는 자도 꽤 있다. 맨손보다는 무기가 더 위협적이니까. 칼은 기본이고 가끔이지만 총을 꺼내는 자도 있었다.
데니스는 무기를 꺼내는 순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경호원이 품에서 꺼낸 건 스마트폰이었다.
< 157 비텔교의 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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