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세상에 이는 비텔교 폭풍 >
“저보고 임시전당에, 그것도 교주님과 성녀님께서 사시는 숙소에 들어오라고요?”
현일이 크게 놀란다. 놀랄 일이긴 하지. 어떻게 보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곳에 와서 살라는 거다. 내가 사는 곳은 정말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내가 믿는 사람들은 그곳에 대해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지.
숙소 곳곳에 외부촬영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 정보부의 최신기술이 접목되어 있기까지 하다. 외부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하얀 빈 공간으로 나온다고 하던가? 난 딱히 찍혀도 상관없지만 유나는 한창 비밀이 많을 나이니까. 지켜줄 건 지켜줘야지.
여하튼 세계 최대의 비밀장소. 일반인이었던 현일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곳일 수도 있다.
알고 보면 그냥 산속 깊은 곳에 지어진 작은 별장에 불과한데 말이야. 나랑 유나도 그냥 평범한 아저씨랑 중학생 정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유나가 공식석상에서는 근엄한 사제 느낌을 내지만 평상시에는 그냥 어린 중학생 정도의 느낌이니까. 상당히 활발한 성격인지라 보고 있으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
“네. 아시다시피 비텔교는 자유를 권장하고 강조하기에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전 그냥 평범한... 회사도 가야하고, 정연이도 만나야 하고...”
“하시고 싶다면 임시전당에 오셔도 그 모든 걸 할 수 있습니다. 정연님도 숙소로 들이실 수 있고요. 헬기가 있으니 회사 출근도 가능합니다.”
“헬기 타고 회사 출근이라니... 제 월급보다 헬기연료 값이 더 들 거 같네요.”
“돈 걱정은 하실 필요 없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종교집단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셨는데요.”
“지도자......”
현일이 입을 벌린 채 다물질 못한다. 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단어였나. 그래도 처음에 이렇게 도장 꽝 찍어둬야 한다. 그러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김현일을 비텔님께 직접 축복받은 아들로 만든 거니까.
현일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제가 어떻게 감히 비텔교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어요.”
“‘될 수 있겠어요.’가 아닙니다. 이미 됐어요.”
“....”
“비텔님께 축복받은 순간 현일씨는 세상에 단 네 명밖에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거예요.”
“전...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요.”
“안 평범합니다. 현일씨가 저를 포함해 이미 비텔님께 축복을 받았던 세 명보다 더 나아요.”
“네? 저 같은 게 어떻게 세 분보다 낫습니까.”
“저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무임승차한 겁니다. 딱히 공을 세운 것이 없는데 운 좋게 비텔님께 선택을 받았죠. 해역이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아이 역시 개인적인 믿음이 강했을 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일씨는 달라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셨죠.”
나와 유나, 해역이가 비텔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알지만 어떻게 선택받게 된 것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나는 나조차도 내가 왜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락카르와 연결된 건지도 말이다.
거기에 나와 유나, 해역은 너무 초기에 비텔님께 축복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비텔교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우리는 이미 교주였고, 사제였으며, 성전사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냥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성자, 성녀로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다. 경외의 대상이긴 하나 친근함을 느끼기 힘든 존재. 처음부터 높은 곳에 있었던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
반면 현일은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일반인이었다.
“현일씨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셨습니다. 우리와 달리 비텔님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빼도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리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냥 1등이 아니라 온갖 역경을 헤치고 올라온 1등을 좋아한다.
지금 세계의 방송, 인터넷 모든 곳에 현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평범한 사람이 위기에 닥쳐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고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살아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의 축복까지 받아 인간을 뛰어넘는 힘까지 손에 넣었다.
완벽한 영웅소설의 도입부분 아닌가.
사람들은 현일에게 스스로를 투영할 것이고 평범한 인간에서 영웅이 된 김현일의 이야기에 격한 공감을 하며 열광할 것이다.
목숨 바쳐 사람들을 구한 영웅 김현일과 그를 구한 여신 비텔. 이 둘의 조합은 사람들의 인식속의 비텔교를 선악 중 선의 위치에 서게 할 것이며 다른 종교가 우리를 공격하려 할 때 명분을 만들기 어렵게 할 것이다.
“전.. 영웅이 아니에요. 지도자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아이를 구하는 것도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움직인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죠.”
상당히 혼란스러워한다. 이해한다. 나도 1년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1년에 걸쳐 이 자리에 올라왔는데도 머릿속이 항상 복잡한 상태인데 하루아침에 그 자리에 오르라고 하니 혼란스러워 하는 건 당연하지.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임시전당으로 와서 휴식을 취하세요. 그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집... 집에 가서 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미지의 장소를 두려워한다. 그 미지의 장소가 자신의 집보다 좋은 곳일지라도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곳을 선호하지. 지금처럼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거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일단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자.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현일은 비텔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퇴원은... 내일쯤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집에 사람을 보내 안전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안전이요?”
“그제 절 저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저격...”
“비텔교는... 적이 많으니까요. 우린 그저 신을 믿을 뿐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현일씨도 비텔교를 적대하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을 겁니다.”
100%다. 무조건 표적이 됐겠지.
“제가 왜...”
“비텔님의 축복을 받아 살아났으니까요.”
현일은 이제 비텔교를 상징하는 4명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상태다. 비텔교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가장 쉽게 노릴 수 있으면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표적일 것이다.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비텔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은 우리 교의 기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성전사가 24시간 함께하며 현일씨의 안전을 책임질 것입니다.”
‘비텔의 방패’에 속한 성전사의 총 수는 수천. 정확한 숫자는 나도 모른다. 성전사 중에 사제가 되는 이가 있고, 사제 중에 성전사가 되는 이는 항상 나오니까. 둘의 숫자는 유동적이다. 대충 2,000~2,500정도 되지 않을까.
그 중에는 세 번의 축복을 받은 고위 성전사가 119명 있다. 그들은 각각 두 번의 축복을 받은 10명의 정식 성전사를 팀원으로 거느린다. 그리고 이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성전사는 한 번의 축복만을 받은 예비 성전사가 된다.
예비 성전사들이 정식 성전사가 될 자격을 갖추면 정식 성전사 중 한 명에게 축복을 내려 고위 성전사로 만들어 팀을 늘릴 것이다.
꾸준히 사제와 성전사의 수를 늘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 1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이 부족하다.
난 119명의 고위 성전사 중 5명을 현일에게 붙일 생각이다. 즉, 총 55명의 성전사가 현일을 호위하게 된다.
성전사는 완전히 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보국 요원, 군 특수부대원 등을 뽑아 내가 축복을 내린 자들이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경험과 무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내가 축복을 내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이다.
애초에 스페셜리스트였던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2~3번의 축복을 내려 오크 대전사에 버금가는 신체능력을 갖추게 했고, 김해역에게 비텔교 특유의 무술도 배우게 했다.
아직 전투기술이 부족하긴 해도 두 번 정도 축복받은 오크 대전사정도라면 지금 당장 싸워도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제대로 발동된 비텔교 산하 정보부의 서포트가 더해진다면... 누군가 미사일이라도 쏘지 않는 이상 현일은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사제와 성전사들은 1,400만 명의 ‘진실한’ 신도들 중에서만 뽑기에 비텔님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도 강한 자들이다. 당분간 그들과 함께 하며 부족한 비텔님에 대한 믿음을 더 기르는 것도 좋겠지.
“앞으로 뭐든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비텔님은 현일씨가 그러는 것을 바랄 겁니다.”
뭐든 해라. 김현일.
“그리고 비텔교가 모든 것을 다해 현일씨를 도울 겁니다.”
비텔교 영향력 아래에서.
***
1년 전, 비텔교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상은 발칵 뒤집혔었다. 처음엔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우스운 해프닝으로서 소개되었지만 곧 실제로 비텔에게 기도를 하고 신체능력이 강해졌다며 체험기, 영상 등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비텔교 돌풍이 일어나 세계를 휩쓸었다.
그 돌풍은 단 1년 만에 17억에 달하는 사람이 비텔교를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에 많은 글이 올라와도 믿지 않는 사람은 많았다.
현실적인 사람,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종교를 굳게 믿는 자 등.
한국에서는 ‘진실한’ 신도가 많았기에 그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해 전체인구의 3분의 2가 비텔교 신도가 되는 일이 일어났으나 외국에서는 그저 호기심에 비텔교 신도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전도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17억에 멈췄다. 만약 1억에서 다시 한 번 더 ‘기적’이 일어나 1억의 ‘진실한’ 신도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쯤 비텔교 신도는 17억이 아니라 20억을 넘어 30억 근처까지도 도달했을지 모른다.
물론 비텔교의 성장세가 17억에서 멈춰버린 것은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돌풍이 불지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비텔교 신도가 되었을 때 건강해지거나, 헌금을 신께 직접 하는 기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진짜였으니까. 항상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인류 앞에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종교가 등장했으니 성장은 당연히 빠를 수밖에 없었다.
비텔교의 빠른 성장에 각 종교가 견제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성장세를 아주 약간 늦추기만 했을 뿐 여전히 비텔교는 빠르게 성장했고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20년이면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비텔교를 믿게 될 터였다.
각 종교는 더욱 적극적으로 비텔교 저지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이 바로 주느드 알파티헌이었고, 그들이 일으킨 것이 신도림 자폭 테러였다.
그들은 신도림 자폭 테러가 일어남과 동시에 미리 찍어둔 성명을 세상에 발표했다.
-신은 알라만이 유일하며, 비텔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교다. 우리는 이 사교를 상대로 성전(지하드)를 선포한다.
테러청정국이었던 한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와 함께 발표될 이 성명은 주느드 알파티헌을 단숨에 유명 단체로 만들어줄 예정이었다.
그것을 완전히 덮어버린 다른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신의 아들’, ‘신의 기적’, ‘부활의 기적’, ‘치유능력을 선보이는 비텔교 교주’
제목이 제각각이고 영상의 내용도 제각각이었지만 주인공은 한 명이었다. 바로 한상.
테러가 일어난 그 날 한상이 신도림역과 각 병원을 돌며 ‘생명력 전이’를 사용한 모습을 찍은 사람들이 영상을 올린 것이다.
신도림역에서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부상자들을 살려내는 장면,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한 쪽 구석에 버려져있던 김현일을 살려내는 장면, 그 외의 위급한 환자들 모두를 손만 댔다하면 단 몇 분만에 살려내는 온갖 영상이 SNS와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왔다.
그리고 세상에 두 번째 비텔교 돌풍, 아니 폭풍이 몰아쳤다.
< 156 세상에 이는 비텔교 폭풍 > 끝
ⓒ 냉장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