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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55화 (155/228)

< 155 비텔의 철퇴 >

[11개월 전]

푸화화확!

언제나 그렇듯 수호자를 부르자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회오리가 발생했다. 좀 조용히 나오면 안 되나. 이 짓도 네 번째기에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서 옷이 찢어지거나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검은색의 거대한 무언가가  회오리 속에서 부풀듯 튀어나오며 사방을 위협했다.

지직.

번개를 쏘아 보낼 준비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언제 나타났는지 아딜이 그 검은 무언가와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아딜은 나타남과 동시에 그 거대한 무언가를 향해 양손검을 휘둘렀다.

“그만.”

쇠를 긁는 듯한 탁한 음성이 그 무언가의 뒤쪽에서 들려왔고, 바람 빠진 풍선이 쪼그라들 듯 그 무언가도 빠르게 줄어들더니 사라졌다. 그 무언가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두건 달린 검은 로브로 온 몸을 가리고 있는 누군가였다.

척.

검은 로브를 입은 자의 머리가 있는 부분에 아딜의 양손검이 겨누어졌다.

-사도께 불복하는 것이냐.

“검 치워라. 데스 킹. 그 아이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놀란 것뿐이다. 내가 부탁하지 않으면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착한 아이야.”

착한 아이? 그게? 정확한 형체 없이 검은색 안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그건 절대 아이 같은 게 아니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흉폭함을 강하게 느꼈는데 착한 아이라고 말하다니. 이상한 수호자가 나타났군.

“안녕하십니까. 사도님. 장의사 빈예츠라고 합니다.”

그는 로브의 두건을 벗으며 내게 인사했다. 모습이 끔찍하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몇 가닥밖에 없고 피부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도께 제대로 스스로를 밝혀라. 스피릿 마스터.

“난 장의사다. 스피릿 마스터는 너희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지.”

아딜이 강한 기세를 뿜어내며 쏘아붙였지만 빈예츠는 그 기세를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딜의 기세가 강력하긴 하지만 빈예츠도 수호자니까. 아딜 못지않게 강하겠지.

-스피릿 마스터는 몸에 영혼을 받아들여 다룹니다. 영혼의 특성상 생기가 있는 것을 부식시키기에 스피릿 마스터의 몸은 대부분 썩어 문드러집니다.

옆에 서 있던 카일라가 스피릿 마스터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렇군. 저건 지금 살이 썩은 상태인거군. 살이 썩는데 살아있다니. 빈예츠도 인간의 한계는 아득히 뛰어넘은 모양이다.

“난 마스터 같은 게 아니다. 더러운 입으로 나에 대해 말하지 마라. 네크로맨서. 난 마스터가 되어 영혼을 다루는 게 아니라 친구로서 부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검을 겨눈 아딜에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빈예츠가 갑자기 카일라에게 사나운 기세를 뿌렸다. 왜 저러지?

그에 대한 설명을 머리 위에 떠 있던 오하넬이 했다.

-스피릿 마스터는 네크로맨서를 좋아하지 않아요. 둘 다 똑같이 죽음과 영혼을 다루지만 다루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네크로맨서 놈들은 모든 것을 강제로 해결합니다. 사도님. 시체를 능욕하고 영혼을 가두죠. 조심하십시오. 강한 영혼을 좋아하는 놈들이니 사도님의 사후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들 스피릿 유저도 영혼을 이용해 힘을 기르잖습니까.

카일라가 반박했다.

“힘을 길러? 헛소리하지마라. 네크로맨서. 나는 죽은 자의 장례를 지내주고 윤회로 가기 싫어하는 영혼들에게 쉴 곳을 빌려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영혼들이 다른 영혼을 잡아먹죠. 아까 본 영혼은 적어도 1만의 영혼은 먹은 거 같던데요. 너무 많은 영혼을 잡아먹어 원래의 형체를 잃었더군요.

“... 장례를 지내봐야 윤회로 가지 못할 더러운 영혼만 흡수했다. 깨끗한 영혼은 전부 장례를 지내 윤회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말은 잘하네요.

-그르르르르르르르.

빈예츠의 몸에서 살짝 삐져나온 영혼이 카일라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설마 싸우진 않겠지? 말려야 하나?

골치 아프다. 수호자 둘이 사이가 나쁘다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카일라는 관심 없고 빈예츠가 일방적으로 적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앞으로 함께 활동해야 할 텐데 문제다.

그런데 특이하다.

가장 사람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빈예츠에게서 가장 사람 냄새가 많이 난다. 특히 목소리가. 다른 수호자들은 말을 해도 딱히 공기의 떨림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입을 벌리긴 하지만 숨을 내뱉어 말하는 게 아닌 의식을 직접 머릿속에 전달하는 것 같달까.

그런데 빈예츠는 숨을 내뱉어 직접 말을 한다.

참 아이러니하군.

***

한상의 말을 전한 뒤 벤센은 빈예츠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잠시 후, 빈예츠가 로브 머리 부분을 뒤로 넘겼다. 흉측한 얼굴이 나왔지만 여기에 있는 벤센과 요원들은 이미 이곳으로 오며 그의 모습을 여러 번 봤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래. 많이 괴로웠겠구나.”

“네?”

갑자기 터져 나온 빈예츠의 뜬금없는 말에 벤센이 반문했다.

“정말 나쁜 놈들이구나. 저런... 그런 짓까지?”

“아..”

벤센은 곧 빈예츠의 말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빈예츠의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벤센이 빈예츠가 보는 곳을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너까지? 죽일 놈들 같으니. 너처럼 어린 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언 듯 보면 미친 사람이 혼잣말을 하는 거 같지만 벤센은 감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빈예츠는 수호자니까. 이미 오하넬, 아딜, 카일라 셋을 본 적이 있는 벤센이다. 그들의 능력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상은 벤센에게 신께서 내려주신 수호자라고 설명했고 벤센은 신의 곁에 있던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항상 수호자들을 극진히 대했다. 감히 마음속으로라도 비웃거나 욕한 적이 없었다.

‘저 곳에 빈예츠님만 보실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구나.’라고 벤센은 생각했고,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벤센.”

허공의 무언가와 대화하던 빈예츠가 갑자기 벤센을 불렀다.

“네. 수호자님.”

“저들이 저지른 악행이 너무 깊구나.”

“그럴 겁니다. 주느드 알파티헌은 가장 과격한 단체 중 하나로서 알려진 것만 해도 프랑스 테러와 이탈리아...”

“윤회로 가지 못한 수천의 영혼이 저들에게 큰 원한을 품은 채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불쌍한 것들.”

“그렇군요.”

빈예츠가 벤센의 말을 끊었지만 벤센은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벤센이 주변을 열심히 살폈다.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그 또한 한상에게 세 번의 축복을 받아 두 개의 능력을 얻었지만 그 중에 영혼을 보는 능력 같은 건 없었다.

“저들을 윤회로 보내기 위해선 이 원한을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난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 사도께서 최대한 네 의견을 따르라 하시더구나.”

“영광입니다. 교주님께선 항상 제가 가진 것에 비해 더 높게 절 봐주셨습니다.”

“한 가지 물어야겠다.”

“능력을 다해 대답하겠습니다.”

“사도께선 이번 일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죄를 물으라 하셨다. 하지만 그 정도론 수천 영혼의 원한이 사라지지 않겠구나. 원한을 풀 더 많은 대상이 필요하다.”

벤센은 빈예츠가 저기에 있는 모두에게 죄를 묻고자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에 있는 모두를 대상으로 하셔도 됩니다. 저들 또한 이 사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빈예츠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당연히 죄를 물을 것이다. 내가 묻는 것은 저들과 관련된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모두라면...”

“이 아이를 노예로 파는데 일조 한 자, 저 아이의 목을 자른 자.”

빈예츠가 영혼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벤센이 보기엔 허공에 삿대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우스워보이진 않았다. 앙상하고 썩어 문드러진 팔로 허공을 가리켰지만 그의 행동에는 진중함이 가득했다.

“이 아이를 강간 살해한 자, 이 아이를 태워 죽인 자, 이 아이를 폭발에 휘말리게 한 자... 여기 있는 모든 영혼이 원한을 가진 모두 말이다.”

“... 죄송하지만 영혼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3,792명과 219마리다.”

너무 많다. 수천의 영혼이 원한을 가진 대상이라면 그 대상 또한 수천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교주님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벤센이 위성전화를 다시 들었다. 바로 한상과 연결되었고, 빈예츠가 한 말을 그대로 한상에게 설명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락하셨습니다.”

벤센이 위성전화를 내려놨다. 그리고 바로 빈예츠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그렇다고 한다. 아이들아.”

“헛.”

“어엇.”

벤센을 비롯한 요원들이 놀라며 숨을 삼켰다. 빈예츠의 ‘아이들아.’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에 푸르스름한 색을 가진 영혼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빈예츠의 말대로 그 수는 수천은 되어 보였다.

“가거라. 가서 너희들이 가진 모든 원한을 풀 거라.”

수천의 영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각자 가장 큰 원한을 가진 자들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조용했다. 수천의 영혼이 움직임에도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중 수백의 영혼이 주느드 알파티헌의 건물로 향했다. 그들은 건물의 벽과 창문을 깨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타타탕! 타타타타탕!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무기는 신기하구나. 전혀 단련되지 않은 자들이 사용함에도 몇 년을 단련한 자의 공격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해.”

“총이란 것입니다.”

“알고 있다.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말이다.”

쾅! 콰쾅!

굉음이 들리고 한 쪽 벽이 조금이지만 무너지기까지 했다.

“이게 대전차로켓의 실제 위력이구나. 드라마에서 본 것과는 위력이 조금 다르구나.”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굉음과 벽 한 쪽이 살짝 뚫린 것 정도밖에 보이지 않지만 빈예츠는 안쪽의 상황을 보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안쪽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영혼의 눈을 통해서 말이다.

빈예츠는 흉측한 외모 때문에 밖에 잘 돌아다니지 못하기에 한상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주로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 그가 익힌 세상에 관련된 지식의 대부분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얻은 것이었다.

한동안 이어지던 총소리가 가라앉았다.

“강하구나. 영체가 전부 파괴됐어.”

빈예츠는 영혼들이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영체를 만들어주었다. 영체는 영혼과 신체의 중간 형태지만 어느 정도는 물리력에 영향을 받았다. 총과 폭탄, 로켓 등에 맞은 영체는 부서졌고 영체를 잃은 영혼은 더 이상 물리력을 발휘할 수 없다.

영체가 생전보다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하게 해주긴 하지만 딱히 무기랄 게 없는 영혼들은 총, 폭탄으로 무장한 자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덕분에 주느드 알파티헌은 반 정도가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침입했던 영혼 전부의 영체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너희들의 원한은 가라앉지 않았구나. 다시 가거라.”

그리고...

타타타타탕!

다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빈예츠가 영혼들에게 다시 영체를 부여해준 것이다. 총과 같은 무기들은 영체는 파괴할 수 있어도 영혼에는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영혼이 멀쩡한 이상 빈예츠가 영체만 부여해준다면 다시 싸울 수 있다.

아무리 총이 강력해도 적이 끝없이 몰려온다면 결과는 뻔하다.

대부분의 주느드 알파티헌 멤버가 당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고 건물에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영혼에 따라잡혔다. 영혼들은 그들을 쉽게 죽이지 않았다. 온몸을 할퀴고 때려서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가게 만들었다.

총소리 대신 그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비명소리마저 완전히 가라앉았다. 싸움이 끝난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영혼들은 두 패로 나뉘어졌다. 아직 원한이 풀리지 않아 다른 자에게 원한을 갚으러 가는 영혼과 원한이 풀린 영혼.

원한이 풀린 영혼은 빈예츠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빈예츠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대부분 윤회를 향해 사라졌다. 하지만 일부는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빈예츠는 그들을 몸에 받아들였다.

***

세계 곳곳에서 수백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나 지역은 전부 달랐지만 공통점이 두 가지 있었다. 맞아 죽었다는 것과 목격자들이 봤다는 용의자의 모습.

‘옅은 푸른빛을 내는 영혼’

목격자들이 진술한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 155 비텔의 철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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