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미지와의 조우 >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억!”
내 고함이 천지를 울렸다. 역시 내 고함은 언제 들어도 최고다.
구워어어어어억!
구오오오오오오!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
형제들도 지지 않고 함성을 질러댔다. 처음 출발했을 때에 비해 수는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형제들의 무형의 기세가 유형의 무언가로 바뀌어 날 밀어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크워억!”
가볍게 찢어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달려들었다.
1 vs 1,000의 결투.
길을 떠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시작한 오락거리다.
처음에는 캅카스가나 미흐로크 같은 족장급 강자들이 결투를 신청해왔고 기쁘게 상대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강해졌다. 족장급 강자들이 상대였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부 주먹 한두 방이면 기절하거나 전투불능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상대에게나 나에게나 조금의 득도 없는 결투였다.
그래서 수를 늘려갔다.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함께 덤비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족장급도 합류했고, 대전사급, 일반 형제들까지 합류했다.
많이 때리고 많이 맞았다. 그럼에도 재미가 없었다. 형제들의 주먹은 더 이상 내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강해져도 너무 강해졌다.
거기에 난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이동만 하고 있는데도 강해졌다. 다른 세계의 인간 때문에 말이다. 인간이 비텔이란 신에게 받는 축복은 상당히 강력해서 그 일부만 영향을 받았음에도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신체능력이 눈에 띌 정도로 강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크게 능력이 강해졌다. ‘착취하는 손’이나 ‘불굴의 의지’, ‘불가사의한 힘’등이 더 강력해진 것이 느껴졌다.
1년을 가야 하는 여정 중 겨우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지만, 형제들은 지쳐가고 있었고 나 역시 지치고 있었다. 각오하고 나선 길이지만 전투 없이 무작정 이동만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무기를 들어라.’
형제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형제들은 거부했다. 무기가 없는 자를 상대로 무기를 쓰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압도적인 무력을 갖고 있다면 깨질 수 있는 법칙이었다.
1 vs 2,000의 결투를 일주일 연속으로 벌여 형제들에게 내 힘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결투는 내가 이겼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중간에 낙오할 것이다. 다들 무기를 들어라. 우리를 위해서.’
몇몇은 무기를 들었지만 역시나 반발하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무기를 들지 않을 거면 떠나라고 했다. 첫 날 500의 형제가 무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날 1 vs 1,500의 전투가 벌어졌다.
더 이상 결투가 아니었다. 전투였다. 난 여전히 맨손이었지만 무기보다도 강력한 위력의 맨손이었고, 형제들 전원이 무기를 들었다.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기감이었다. 맨손의 형제들과 무기를 든 형제들의 강력함은 차원이 달랐다. 목, 허벅지 안쪽, 옆구리 같은 피부가 얇은 곳을 향해 무기가 날아올 때마다 쭈뼛 서는 서늘함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즐겁게 싸웠다. 상처도 수십 개나 생겼다. 비록 ‘불굴의 의지’에 의해 바로 나았지만 새어나온 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라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내 피 냄새. 날 흥분시켰다.
형제들도 대부분 만족했다. 주먹으로 싸울 때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 아니라 주고받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맨손의 날 상대로 무기를 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나는 형제들이 있었다. 다음날 200의 형제가 추가로 떠났다.
그리고 계속 전투, 형제의 떠남이 반복되었다. 남은 형제의 수가 1,000이 될 때까지.
5개월 전부턴 전투 중 죽은 형제는 있어도 떠나는 형제가 없었다.
우리의 전투는 매일매일 치열해져갔다. 형제들은 날 상대하는 법을 익혔고, 나 역시 형제들을 상대하는 법을 익혔다. 몇 번은 치명상을 입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특히 캅카스가의 도끼가 목에 박혔을 때 아찔했지. 물론 날 상대하던 형제들은 더욱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을 거다. 내 주먹은 많이 아프니까.
전투는 날로 치열해졌고, 카록께서도 만족하셨는지 형제 중에 축복을 받는 자까지 나타났다. 첫 축복받은 자가 나온 그날 형제들의 눈빛이 바뀌었고 다음 날부터는 정말로 날 죽일 듯 온 힘을 다해 덤벼들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안 죽으려면 전투를 할 때마다 잔뜩 긴장해야했으니까.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오늘.
쉬아악.
“크웍.”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도끼를 겨우 피해냈다. 도끼가 날아올 때 느낀 서늘함을 생각하면 내 피부를 뚫고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런 도끼를 휘두른 형제가 족장도 대전사도 아닌 평범한 형제였다.
지난 7개월간 이어진 쉴 새 없는 전투로 축복을 받지 않았음에도 신체능력이 강해졌고, 도끼를 사용하는 방법도 세련되어져 보다 더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만큼 내 격투 실력도 발전했기에,
퍽.
피함과 동시에 반격해서 형제를 쓰러뜨렸지만.
여하튼 1,000명의 형제, 처음 전투를 시작했을 땐 대전사 이하의 형제들 공격은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였지만 이젠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 단 하나도 없었다.
“크흐..”
즐겁다. 형제들과의 싸움이지만 즐겁다. 지금껏 싸워 온 어떤 종족보다도 형제들은 강력했다. 이래서 우리가 향하는 지역의 형제들이 서로 싸우는 것일까. 형제끼리 싸우는 재미를 알기 때문에?
“크워어어어어억!”
즐거움에 못 이겨 다시 한 번 더 고함을 쳤다.
***
“오늘도 화려하게 저질렀군.”
노르쓰 우르드가 다가와 말했다.
“크흐.. 이 정도는 해야 전투 없이 기나긴 여정을 즐길 수 있는 거다.”
형제들에게 무기를 들게 한 덕에 7개월간 즐겁게 이동했다.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싸우면서 말인가? 나도 싸우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형제는 정말...”
노르쓰 우르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노르쓰 우르드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은 특히 더 지치고, 특히 더 많이 다쳤으니까. 내가 이렇게 누워서 쉬어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물론 나만 이런 상태는 아니다. 형제들도 대부분 바닥에 뻗어있지.
미흐로크가 의외의 강력함을 보여줘서 말이다. 전투 시작 전에 ‘어제 전투에서 능력 하나를 얻었다. 오늘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형제.’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게 강력해질 줄은 몰랐다.
전체적인 능력이 올라 간 것을 보면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좋은 능력을 얻은 것 같다. 크흐.. 덕분에 정말 즐겁게 싸웠다.
“불굴의 의지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동감이다. 형제들은 몸이 좋지 않으면 몇 십 명 쉬어도 900의 형제가 결투에 나설 수 있지만 난 하나뿐이니까.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상처 회복에 일주일은 걸렸을 거고 싸움도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을 것 아닌가. 지금처럼 2~3일에 한 번씩 싸우지 못하고 말이다.
얻었을 당시에는 별로 좋지 않은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 인 거 같다.
“뭐. 그래도 허구한 날 이렇게 싸운 덕분에 형제도 그렇고 다른 형제들도 그렇고. 다들 강해졌다.”
동감이다. 형제들은 정말 강해졌다. 매일 치열하게 싸웠더니 새로이 축복을 받은 형제도 50이상이고, 축복을 받지 못했어도 강해졌다. 아마도 예전보다 2배는 강해진 게 아닐까.
그리고 나도 혜택을 받았다. 몰랐는데 난 갑자기 강해진 신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 싸워대니 적응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지. 이젠 내가 가진 힘을 100%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시 1년 전의 그 비텔의 힘을 쓰는 전사와 싸워도 무조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때 그 전사가 어느 정도 싸워서 지친 상태였고 난 모든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한 후에 싸웠는데도 겨우 이겼었으니까. 둘 다 만전의 상태에서 싸우면 비슷할 거 같다.
확실한 건 오르히는 이긴다는 거다. 노르쓰 우르드가 확인해줬다. 수십 년간 오르히를 지켜본 노르쓰 우르드이고 똑똑한 자니까 믿을 만하다.
“형제도 함께 싸우는 건 어떤가. 더 강해질 거다.”
“실제 전투라면 몰라도 오락거리로 싸우는 취미는 없다.”
아쉽다. 노르쓰 우르드까지 합세하면 더욱 즐겁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형제들도 결투를 자제해야 할 거다.”
“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즐거운 걸 왜 멈춰. 하지만 이어진 노르쓰 우르드의 말에 결투를 멈춰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새로운 열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드디어... 도착했구나.
***
노르쓰 우르드의 그 말이 있고 일주일 후,
“저게... 오크의 부락이라고?”
우리는 한 부락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심했다. 노르쓰 우르드가 오크의 부락이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오크의 부락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인간의 부락이 아니라 우리 오크의 부락이라고?”
미흐로크가 말했다. 그의 말은 내 심정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우리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높게 쌓여 있는 돌로 만든 성벽이 보였다. 성벽은 약한 자의 전유물이다. 공격이 아닌 방어만을 위해 만든 것이니까. 강한 우리 오크는 공격을 한다. 방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오크의 부락이라고 하는데 성벽을 쌓아 올리다니.
“잘못 온 거 아닌가?”
“아니다. 혹시나 변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저걸 보고 안심했다. 내 기억 속 오크의 부락 그대로다. 그리고 형제도 보고 있지 않나. 저 성벽위에 서 있는 형제들의 모습을.”
“....”
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형태지만 갑옷인 게 분명한 것을 전신에 입고 있으며 심지어 투구까지 쓰고 있다.
얼굴은 내놓고 있어서 형제들이란 걸 알아봤지만... 미로크가 암컷 특유의 약한 피부를 보완하기 위해 갑옷을 입긴 했었지만 자매도 아니고 형제들이 전신 갑옷을 입고 있다니.
심지어 손에 창도 들고 있다. 허리춤에 도끼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창도 약한 인간의 무기인데 그걸 쓰다니.
“정말 오크가 맞는 건가?”
“오크다. 다만 우리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온 것뿐이다.”
다른 형태의 삶이라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왔기에 저렇게 불명예의 집성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성문이 열린다.”
캅카스가의 말대로 거대한 나무로 만들어진 성문이 반으로 갈리며 열렸다. 저건 인간의 그것과 다르군. 인간의 성문은 위아래로 열렸었는데.
형제들이 성문 밖으로 나왔다.
“이곳의 환영 방식인가?”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까지 환영하진 않지만 이곳은 너무 이상한 곳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투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전투준비?”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전투준비라니. 저들이 우릴 공격하기라도 한 다는 건가? 오크가 오크를?
“말했지 않나. 여기선 오크끼리 싸운다고 말이다.”
“그래도 서로 뭔가 문제가 있어야 싸우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자마자 아무 이유 없이 싸운다는 건 이해가...”
2,000정도 되는 이상한 무장을 한 형제들이 성문 앞에 도열했다. 그 중에 100정도는 이상한 짐승의 위에 타고 있었다. 멧돼지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금니가 없고 코에 긴 뿔이 나있으며 전체적으로 털이 길다.
그들이 도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간들의 싸우기 전 모습을 보는 것 같군.”
딱 그 짝이다. 전투를 질서를 갖춰서 하는 이상한 족속들. 그런데 그 이상한 족속들의 모습을 형제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노르쓰 우르드의 말이 맞는 거 같군.”
미로크를 꺼내들었다. 내가 무기를 꺼내드는 걸 본 형제들도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억!”
고함을 질러 위협했다. 내 고함을 들으면 내가 얼마나 강한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위협을 듣고 물러나면 좋겠다. 아무리 내가 싸움을 좋아해도 형제들과 진짜 목숨이 걸린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다.
둥. 둥. 둥. 둥. 둥.
좀 이상한 모습이긴 해도 역시나 오크들인지 내 고함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악기를 두드리며 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시작했다.
점점 도열한 이상한 모습의 형제들의 기세가 강렬해졌다. 이 기세는... 확실히 싸우기 위한 기세였다.
저들이 형제들이긴 하지만...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 152 미지와의 조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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