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149화 (149/228)

< 149 신의 아들 >

“구인 병원으로 절 데려가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한상과 오하넬이 사라졌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정말 아예 사라졌다. 그 순간 응급요원 박창서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신?’

하지만 머리를 흔들며 그 단어를 지웠다. 그는 비텔교 신자였다. 기적을 직접 체험한 ‘진실한’ 신도는 아니어도 나름 매일 5번 이상의 기도를 하는 신도였다. 당연히 신은 비텔이고, 다른 이를 신으로 봐서는 안 된다.

‘예전에 어디선가 교주님을 비텔님의 첫 번째 아들이라 부르는 걸 보긴 했지만...’

그저 상징적인 의미라고 생각했다. 비텔교에서 가장 높은 교주의 자리에 있으니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분의 아들이셨구나.’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병원으로 옮겨봐야 죽을 것이 뻔 하기에 이를 악물고 응급차에 태우지 않은 환자들이었다. 그들을 남기면서 얼마나 절망스런 심정이었는지. 죽을 사람과 죽지 않을 사람을 자신이 골라야 한다는 사실이 그 자신을 살인마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가 직접 골라낸 사람만 여섯 명.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라고 사형 선고를 내릴 때 느끼는 감정은... 형언할 수 없다.

물론 베테랑인 박창서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딱 한 번 있었다. 그것도 두 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람을 직접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다.

이번에는 여섯 명에게 동시에 그런 판결을 내려야했다.

그들의 고통이라도 덜어주려고 진통제를 놔 주었지만, 진통제를 놓을 때마다 안락사용 독극물을 주입하는 느낌이 들었다. 슬프다는 정도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참담함.

그게 그나마 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단어였다.

참담함에 이은 자괴감이 극에 달할 때, 더 이상 응급요원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무도 없던 광장 중앙에 한상이 나타났다.

주변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진한 수증기를 뿜어내며 등장한 그는 곧장 박창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때 박창서는 한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 가기 힘들 정도로 강한 열기를 뿜어내는 인간. 그때는 미처 한상이 비텔교 교주임을 못 알아 본 상태였는데도 그에게 압도당했다.

그래서 원래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환자를 내주는 것.

원래대로라면 의사나 병원 직원이 아니면 절대 자신의 환자를 건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상에게서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감히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신의 아들이시니 그런 아우라는 당연한 거였겠지.’

지금 생각하면 당연했다. 어찌 평범한 인간이 신의 아들을 막을 수 있을까. 박창서는 그 뜨거운 열기도 신의 아들로서 발하는 자연스러운 열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상은 곧바로 손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내며 환자에게 가져갔고, 그 후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비텔이시여..’

그 순간을 떠올리니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어 눈을 감고 기도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상의 손이 닿자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환자의 몸에 박혀 있던 파편들이 스스로 빠져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뽑혀 나왔고, 상처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맨들맨들한 피부가 드러났다. 거칠었던 환자의 숨이 점점 안정을 찾아갔고, 고통에 일그러졌던 환자들의 표정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잠시 후 비텔의 첫 번째 딸이자 사제장의 자리에 있는 유나가 도착했고, 한상과 같은 기적을 선보이긴 했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박창서가 보기에 유나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였다. 치료도 느리고 힘겨워 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옆의 한상에게서 손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뭔가 힘을 빌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어리셔서 그렇겠지. 그분도 충분한 기적을 보여주셨어.’

물론 힘겨워했더라도 사람을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려놓은 것은 충분한 기적이었다.

그 기적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 한상이 부탁한 ‘위급한 환자를 이곳으로.’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도 쳐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너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해한다. 자신이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살 수 있을 것 같아 응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내긴 했지만 한시가 급한 위급한 환자들인 건 매한가지다.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무조건 살 수 있다는 건 아니었고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들이었다.

그런 환자들을 다시 사고 현장으로 데려오라니. 그것도 신의 아들이 기적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누가 믿을까. 평소 자신보다 더 열성적인 비텔교 신도였던 둘만이 차를 돌려 돌아왔을 뿐이다.

정말 죄송했다. 그분의 아들의 행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말이다.

그래도 한상에게 가장 많은 위급한 환자가 간 병원을 말해주려고 기다렸다. 실려 간 환자들 중 반수는 죽을 터, 한상이 간다면 100%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연락해 어떤 병원으로 향했는지 알아봤다. 한상이 이곳의 중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끝나면 부탁하려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를 떠올렸다.

박창서가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떤 문 앞에 무거운 물건들을 질질 끌어서 가져다 놓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냥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정신이라도 나간 건가 하는 생각에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갔다. 그 때,

콰쾅!

폭탄이 터졌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 안에서 터졌음에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일대를 흔들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엎드려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조금 충격이 가라앉고 고개를 들어 폭탄이 터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뿌옇게 먼지가 일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디인지는 바로 알아봤다. 아까 봤던 문을 막는 이상한 사람이 있던 곳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그 사람이 우릴 살렸구나. 그 사람이 날 살렸어.’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폭탄범에게서 폭탄을 빼앗았든, 폭탄범 자체를 안에 집어넣었든 그 안에서 폭발 시킨 거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그 생각이 떠올랐지만 먼지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쪽 상황을 알 수가 없었고, 또 폭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그곳에 달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먼지가 완전히 걷혔을 때,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철문 옆에 널브러져있었다.

철문에 맞은 것이다. 의식이 없어보였다. 당연히 당장 달려가서 그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겁쟁아. 움직여. 움직이라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겨우 움직이게 만들어 그에게 갔다. 처참했다. 철문을 막으려 했던 팔이 부러진 것은 물론이고 얼굴부터 몸, 다리까지 성한 부분이 없었다.

철문을 막으려고 세워뒀던 무거운 것들이 화가 됐다. 철문과 함께 날아와 그를 친 것이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죽었...’

순간 판단을 내리려다가 멈췄다. 모두를 살리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 폭탄이 지금 터졌으면 적어도 수십 명이 더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그 안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의인인데 감히 어떻게 죽음을 선고할 수 있을까.

결국 하늘에 맡기고 응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지금 생각하니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기적은 이곳에서 일어날 거였는데. 그래서 마지막 환자를 살리고 일어선 한상에게 소리쳤다.

“부탁드립니다. 교주님!”

그가 감히 신의 아들에게 부탁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의인, 그리고 은인만큼은 꼭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한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외모로 보아 천사일 것이 분명한 그녀를 불러 함께 사라졌다.

“하...”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신의 아들이 살리겠다고 했으니 살릴 것이다.

“저...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신의 딸, 유나가 그를 불렀다.

“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박창서는 신입 응급요원시절 그랬던 것처럼 잔뜩 긴장한 채 소리 질렀다.

“별건 아니고, 환자분들을 위급한 순서대로 가르쳐주세요. 그분들도 치료해야 하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그랬다. 아직 이곳의 치료도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 부상자는 많이 있다. 생명이 위급하지 않기에 이송하지 않은 것뿐 충분히 심각한 환자들이 많았다.

“부탁드려요. 아딜.”

“걱정하지 마라. 내 생명력은 사도님께 버금갈 정도니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

박창서가 유나를 위급한 순서대로 환자들에게 이끌었고, 유나는 그들을 치료해나갔다. 어느새 마스터 네크로맨서 카일라는 사라지고 아딜만 남아 있었다.

아딜은 유나에게 생명력을 공급해주고, 그녀를 지킬 겸 해서 남았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인간쯤이야. 카일라만 나서도 된다.

***

-지금 폭탄테러 현장에 비텔교 교주님 나타나셨다.

SNS에 한상의 사진과 함께 누군가 글을 올렸다. 한상이 환자를 치료하고 다른 환자에게 넘어가는 순간에 찍은 사진이었기에 보라색 빛은 없었다.

-왜 저기 가셨지.

-다른 사람들이 욕할 수도 있을 텐데.

-아. 저건 좀...

-왜 교주님께서 가서 기도해주시면 좋지.

-저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욕먹을 수도 있는데.

-왜 욕먹어. 무려 교주님께서 기도해주시는 건데. 당연히 영광이지. 난 평생의 소원이 교주님 직접 만나서 기도 받는 거다.

-멍청아. 생각해봐. 그래도 일단 치료는 하고 나서 기도를 해야지 사고 현장에서 응급요원들한테 방해되게 들어가서 저렇게 기도하면 비텔교 아는 사람들한테 욕먹잖아.

-너희들이 오히려 잘 모르네. 교주님께는 신통력이 있어. 너희 맨날 텔레파시로 설교 들으면서 그것도 모르냐? 교주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

-아. 멍청아... 나도 교주님께서 신통력이 있는 건 아닌데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아니야....

-니가 더 멍청이야. 난 교주님께서 사람을 살리시는 걸 직접 봤다고.

-너 같은 놈 때문에 비텔교가 욕먹는 거다.

-경찰도 문제야. 비텔교 신도라서 안 막고 교주님 들어가시게 놔둔 거 같은데 아무리 비텔교 신도라고 해도, 아니지. 신도면 더 교주님 욕 안 먹도록 자제하게 해야지. 저렇게 들어가게 놔두면 어떡해.

-아마 밑에 사람들이 지금 가야 한다고 강요했을 거야. 교주님은 얼마나 측은지심이 강한 분인데. 너희들도 설교 매주 들어서 알잖아.

-보좌하는 놈들 뭐하는 거냐. 도대체. 영광스럽게도 교주님 곁에 있으면 알아서 잘해야지.

-사이비 놈들. 저런 상황에서도 나와서 얼씨구나 하고 기도나 하고 있는 거 봐라.

-아직도 비텔교를 사이비라고 하는 놈이 있네. 너 한 마디만 더 해봐라. 한국 떠나야 할 걸.

인터넷은 거의 비텔교의 세상이었다. 비텔교가 세상에 퍼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인터넷이었으며 가장 먼저 비텔교의 진실성을 검증한 곳도 인터넷이었다. 1,400만 명의 ‘진실한’ 신도들도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비텔교를 접했을 정도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의 90%가 비텔교 신도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 중에는 ‘진실한’ 신도도 많았고 말이다. 덕분에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사진이 올라왔음에도 SNS의 댓글은 대부분 한상을 옹호하는 글이었다.

하지만 악플도 달렸다. 비텔교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로 비텔교가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비텔교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은 두 종류다. 아예 귀를 닫고 살아서 비텔교를 모르거나 비텔교에 악감정이 있는 사람들. 인터넷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비텔교를 모를 리는 없었고 인터넷을 함에도 비텔교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비텔교에 악감정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다른 종교인이거나 그냥 비텔교가 싫은 사람들이었는데 지난 1년간 비텔교가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비주류가 되어 갔고 그에 따라 비텔교에 대한 악감정은 더더욱 깊어진 상태였다.

이 사진을 발견한 비텔교 반대파 중 하나가 그들의 모임에 이 사진에 대해 알렸고 그들은 빠르게 모여들어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SNS는 순식간에 한상을 공격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로 인해 전쟁터가 되었다.

그러던 중 SNS를 올렸던 사람이 새로운 글을 올렸다.

-이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네. 교주님께서 기적 일으키시는 거 동영상을 찍느라 SNS 확인 못해서 늦었다. 동영상 찍던 거 중간에 멈추고 올린다. 이거 보고 비텔교 욕한 놈들은 아가리 싸 물고 사라져라.

그 글에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 149 신의 아들 > 끝

ⓒ 냉장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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