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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46화 (146/228)

< 146 지하철 테러 >

현일은 공사장 함바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지하철 역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현장에 나와 있는 본사 사람은 현일 혼자인지라 공사장에 안온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아니, 공사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좋아할 거다.

커피를 마시며 유리 밖 풍경을 구경했다.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현일인지라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관찰할 때도 상당히 조심하는 성격이지만 앞에 유리창이 있으니 투명하지만 그래도 벽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지 아무 거리낌 없이 남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시간이나 때우자.’

어차피 공사장에 가봐야 받을 건 따가운 눈초리밖에 없다.

천천히 커피를 홀짝이며 연극 관람하듯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꽤 많았다. 수많은 사람 중 현일의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저 사람들은 중국인이네.’

생김새는 한국인과 비슷하지만 외국인과 한국인의 행동은 쉽게 구분이 된다. 그 외에 백인도 보이고 흑인도 보이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동남아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유난히 외국인이 많이 보였다. 비텔교에서 무슨 축제 한다더니 그거 때문에 들어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현일도 비텔교 신도다. 하지만 그냥 호기심에 비텔에게 기도와 헌금 몇 번 해봤을 뿐 열성적인 신도는 아니었다.

이번 대화합의 날에도 찾아갈 생각은 없고 집에서 TV로 지켜볼 생각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네.’

자기는 한국에 있는데도 안 가는 곳을 외국에서 찾아와서 가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들 대단해보였다.

외국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을지 유추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한두 시간은 더 카페에 있을 생각인 현일에게는 꽤 괜찮은 놀이였다.

“응?”

현일이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동남아? 아니면 아랍계일까? 둘은 분명 다르겠지만 현일은 구분하기엔 힘든 문제였다. 눈에 띈 남자 외에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가 현일의 눈에 띈 이유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지하철 한 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러고 있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입을 움직여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블루투스로 전화 중인가?’

현일이 그런 의문을 떠올린 순간.

“알라흐 아크바르!”

남자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크게 소리쳤다. 이제 현일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그 남자에게 집중했다. 남자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있었고 남자가 엄지손가락을 뭔가를 누르듯 움직였다. 그리고....

콰콰콱!

그를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제법 멀리 떨어진 현일이 있는 카페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쩌쩡!

유리벽이 터져나갔다. 현일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유리조각이 폭발 충격파와 함께 현일을 덮쳤고 그 충격에 현일은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그래도 폭발 진원지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넘어지는 정도에 그쳤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귀가 울렸다.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약하고 약한 것이 귀인지라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현일은 몸을 살폈다. 다행히도 현장에 나간다고 튼튼한 옷을 입은 덕인지 옷을 뚫고 들어온 유리는 없었다. 유리 조각 몇 개가 손등에 박혀 있었지만 깊게 박혀있지는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훑었다. 얼굴에 박혀 있는 유리 몇 개가 손끝에 걸렸다. 잡히는 유리 조각 모두를 빼냈다.

주르륵.

피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유리 조각이 온 몸을 덮친 것 치고는 상태가 괜찮다.’

몸 상태가 괜찮음을 확인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긴 현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현일처럼 유리조각을 잘 막아내지 못해 얼굴에 유리조각이 박힌 사람도 있었고 쓰러져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카페 내부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카페 바깥은 난리가 났다. 폭발 중심부에 가까이 갈수록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이야... 한국에서 자살 폭탄 테러라니. 세상에 한국에서 폭탄 테러라니.’

현일은 도저히 이 상황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자신이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있는 사람의 0.01%도 안 되는 수인데 왜 자신이 거기에 끼어있는 걸까. 억울했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까...는 개뿔. 짜증난다. 왜 하필 나야. 귀는 괜찮겠지?’

여전히 이명이 들리고 있었다. 혹시 귀가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보험이 이런 상황에도 보장이 되던가? 아...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현일은 머리는 끝없이 여기 있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토해냈지만 몸은 그 동안 학습해온 도덕률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품에서 폰을 꺼낸 현일이 119를 눌렀다.

-네. 119 종합상황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여기 신도림역지하철 내부인데요.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어요. 다친 사람들이 많으니 어서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혹시 지하철 내부에 계신가요?

“네. 지하철 내부에 있는 카페에 있습니다.

-아. 지하철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는 많이 들어왔는데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상황을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황실 직원이 차분하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현일은 본 그대로 설명했다. 아랍계, 혹은 동남아계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이상한 구호를 외치며 폭탄을 터뜨렸다는 말 등.

침착한 상황실 직원의 말소리를 들으니 현일의 마음도 진정되었다. 꽤 괜찮은 상황실 직원의 대처에 현일은 ‘우리나라 119 상황실 대처가 거지같다고 하더니 꽤 괜찮은데?’ 같은 잡생각을 하며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몸이 괜찮으시다면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왜요. 나도 피해잡니다.’라는 생각이 든 현일이지만 대답은 다르게 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다시 전화드릴 수도 있으니 전화는 언제든 받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전화를 끊은 현일이 나지막하게 ‘후... 젠장...’이라고 작게 중얼거리곤 도움이 필요할만한 사람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괜찮으세요?”

근처 의자에 앉아있던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폭발의 충격으로 넘어진 상태에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현일과 다르게 몸이 많이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고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비롯해 몸 곳곳에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슬슬 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아아. 얼굴. 내 얼굴 괜찮아요? 내 얼굴.”

완전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느끼기 보단 얼굴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얼굴 곳곳에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으니까.

“네. 괜찮아요. 고통은 별로 느껴지지 않죠? 조각이 작아서 그래요. 병원에서 잘 제거하면 흉터도 안 남을 거예요.”

“그..그래요?”

현일도 고통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절대 유리 조각이 작기 때문이 아니었다. 유리에 베인 상처는 얕더라도 꽤 아프다. 지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 갑작스런 상황에 흥분했기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여자의 얼굴은 박혀든 유리조각과 베인 상처 때문에 엉망이었지만 당장 여자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거짓말을 섞어 이야기했다.

“잠시만요.”

여성의 얼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피범벅이 될 것이다.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여자가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냅킨을 가져와 여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유리조각은 손대지 못했다. 응급처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현일은 자신이 섣불리 손댔다가는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피가 좀 흐르네요. 원래 유리조각에 베인 상처에선 피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여기 제 상처 보세요. 상처가 작은데도 피가 많이 나오죠?”

“아. 네. 그러네요.”

“구급차가 오고 있다고 하니까. 피만 닦고 계세요. 응급대원들이 오면 알아서 처리해주겠죠.”

폭발로 인해 현일도 많이 놀랐고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있었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과거 어디에선가 위급한 상황일수록 덤덤하게 이야기해서 상대를 안심시켜줘야 한다고 들은 것이 생각났다.

“그럼 전 저기 다른 분한테 좀 가볼게요.”

“아. 네. 그러세요.”

여자가 안정된 듯 보이자 현일은 다른 사람에게 갔다. 다치고 얼이 빠진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을 돕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일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피를 닦아주고 말을 걸어주는 것이 다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은 될 터였다. 현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한 명, 한 명 도왔다.

“걱정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시면 응급대원이 올 거예요. 여기서 쉬고 계세요. 음?”

다시 한 명을 도운 후 다른 사람에게 가려고 몸을 일으킨 현일의 시선을 잡아끄는 남자가 있었다. 잠시 동안 자신이 왜 그 사람에게 주목하는지 이해 못했던 현일이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슷해.’

복장이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자살폭탄테러를 했던 남자와 말이다. 역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아랍 혹은 동남아계 남자고 하체에 비해 상체가 이상하게 뚱뚱했다. 폭탄조끼 같은거라도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까 그 남자처럼 오른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마치 스위치 같은 뭔가를 말이다.

만약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현일이었다면 저 남자를 보면서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 폭탄테러를 한 남자를 봤을 때처럼 그저 ‘특이한 남자구나.’라고 한 번 생각하고는 관심을 끊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현일은 다르다. 망설이지 않고 소리쳤다.

“저 남자 잡아요! 또 폭탄 테러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다친 사람이 많았지만 현일처럼 적게 다치거나 멀쩡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한 번에 달려든다면 폭탄이 터지기 전에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현일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갔다.

“으아아!”

“꺄악!”

남자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일처럼 주변 사람들을 돕던 사람은 물론이고 다쳐서 쓰러져 있던 사람들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남자 근처에 남은 사람은 너무 심하게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의식을 잃은 사람뿐이었다.

‘빌어먹을. 저 사람들 도대체... 그냥 달려들어서 스위치 못 누르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현일이 사람들을 욕했다. 하지만 현일도 감히 그 남자에게 달려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스스로는 ‘너무 멀리 있어서 지금 가봤자 늦을 거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달려들었어야 하는 건데.’라고 합리화 하기는 했지만 실은 겁이 났다. 막겠다고 다가갔다가 폭발에 휘말릴까 두려웠다. 폭발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처럼 전신이 검게 탄 채로 목숨을 잃을까 무서웠다.

‘아까보다 가까워. 나도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이대로 여기 있다간 다칠 수도...’

그는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끌고 나가면서 ‘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다른 사람과 달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테러범이라 예상되는 남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꿈틀.

순간 현일의 몸이 멈췄다. 남자가 향하는 방향에 쓰러져 있던 아이가 몸을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5~6살이나 되었을까.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도 함께 쓰러져 있었다.

‘잘못 봤나?’

아이는 한번 움직이더니 조용했다. 현일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아이의 팔이 다시 움직였다. 아이의 팔은 어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일의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구해야해.’ 현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서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혹시 아이를 구하겠다고 갔다가 죽으면 어떡하나. 아니, 죽는 건 양반이다. 팔다리를 잃은 채 살아남기라도 하면.... 인생이 완전 망가질 것이다. 너무 두려웠다.

눈 딱 감고 그냥 가면 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벗어나면 폭발이 아무리 커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남자는 제법 걸어 들어가서 멀어져 있었으니까.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지하철 내부 깊숙이 들어가서 자폭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미 한 번 터진 곳에서 터뜨려봤자 별 피해를 못 줄 테니 말이다.

‘한 번만... 한 번만 그냥 가자. 난 홀몸도 아니잖아. 정연이도 있고 엄마도 있는데... 그래. 더 안으로 들어가서 폭탄을 터뜨리지 않을까. 여긴 이미 한 번 폭탄이 터졌잖아. 그러니 저 아이도 무사할거야. 이따 구급대원들이 와서 구해줄 거야.’

그렇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최면 하듯 여기에서 나가야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냈다. 가장 좋은 핑계는 3년을 사귄 여자 친구와 어머니였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다시 사람을 끌고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잘못 본 걸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잘못 본거야.’

두 번이나 봤지만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 자신일 잘못 본 걸 수도 있다고 연거푸 되뇌었다.

꿈틀.

“시발...”

혹시 테러범이 들을까 조용히 하고 있던 현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이가 다시 한 번 더 움직였다.

혹시 저 테러범이 저 아이 근처에서 자폭이라도 하면... 아니면 저 안에 들어가 자폭을 했을 때 저 아이 같은 피해자가 나온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나간다고 해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저 아이들, 아니 아이만이 아니라 다시 터질 폭탄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덜덜덜.

따다닥.

약하게 떨리던 다리의 후들거림이 온 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턱도 제멋대로 떨리며 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시...시발. 시발. 시발.”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는 현일의 입에서 상스런 욕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아는 욕이 없기에 하나의 욕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그런데...

“시발!”

이렇게나 무서워하는 자신이 꼴사나웠다. 나름 당당한 성격이라 생각했던 현일으로선 지금 보이는 신체의 반응에 짜증이 치솟았다.

‘왜 떨리는 거야. 떨지 마! 빌어먹을. 떨지 말라고!’

자신의 몸에게 소리쳤지만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점점 짜증이 커져갔다. 그리고... 곧 공포를 짜증이 이겼다.

“시바알!!!!!!!”

현일은 끌고 나가던 사람을 잡고 있던 손을 내팽겨 치듯 놓고는 남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발새끼야!!!!”

현일의 처절한 외침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가지런히 모인 발 한 쌍이었다.

“컥.”

현일이 몸을 날려 드롭킥을 남자의 옆구리에 먹였다. 비텔교에 들어와 신체능력이 강해진데다가 전력으로 달리던 힘에 떨어져 다치는 것을 생각 않고 온 몸을 던진 덕에 강력한 위력이 담겨 있는 드롭킥에 맞은 남자가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윽.”

단단한 바닥에 떨어지며 현일 역시 충격을 입었지만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향해 달렸다. 튕겨나갔던 남자 역시 곧바로 몸을 일으켜 현일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일에게 오른손을 들며 소리쳤다.

“멈춰! 터진다!”

어눌한 한국어가 흘러나왔지만 그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현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더 힘을 주어 달렸다. 결심을 하고 왔는데 단순히 협박을 한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으아아아아!”

멈추지 않는 현일의 돌격에 남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현일이 달리던 그대로 어깨를 남자의 가슴에 들이 박았다. 남자가 드롭킥을 맞았을 때처럼 튕겨나가 벽에 꽝 부딪혔고 현일 역시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나뒹굴었다.

“으윽.”

그저 밀쳐내기만 했던 드롭킥과 달리 이번엔 현일과 남자 양쪽이 큰 충격을 받았다. 둘 다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도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현일이었다. 어깨로 들이박은만큼 가슴에 충격을 그대로 받은 남자보다는 충격을 덜 받은 덕분이었다. 현일의 눈이 남자에게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기회다.’

현일은 그대로 남자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스위치를 빼앗으려 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스위치는 테이프로 주먹 쥔 남자의 손에 칭칭 감겨 있었다. 현일이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딱히 테이프를 잘라낼 날카로운 것이 보이지 않았다. 현일은 카페로 가서 유리조각이라도 가져와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계획은 곧바로 취소했다.

“으으음.”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낸 것이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차려 폭탄을 터뜨릴 것 같았다. 현일은 조급해졌다.

“시바알!!”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갔다.

평생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얼굴에 닿은 적 없는 현일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느껴본 적 없는 둔탁한 충격이 주먹에서 느껴졌다. 절대 좋지만은 않은 느낌, 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가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일이 주먹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왜!”

오른손 왼손 가릴 것 없이 연이어 뻗어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현일의 손가락이 골절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러졌지만 현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무아지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멈출 수가 없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먹질을 할수록 현일의 마음속에 안도감이 커져만 갔다.

“허억. 허억. 허억.”

그리고 공포가 사그라지고 안도감이 공포를 뛰어넘었을 때. 현일의 주먹이 멈췄다. 남자의 얼굴은 처음의 그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끝난 건가?’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짙었다.

꿈틀.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현일이 남자의 미동을 감지했다. 다시 공포가 치고 올라왔다. 폭탄은 손가락만 움직여도 터뜨릴 수 있다. 현일의 머릿속엔 남자가 당장이라도 의식을 되찾아 스위치를 눌러 폭탄을 터뜨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수 폭탄. 현일은 남자가 이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폭탄처럼 느껴졌다.

‘치워버려야 해.’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현일의 눈에 관계자외출입금지라 적힌 철문이 하나 보였다.

‘저 안이라면...’

현일이 달려가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철컹.

열렸다. 안을 살펴보려 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 뭐하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출구가 철문 하나인 공간은 튼튼해보였다. 저 안이라면... 폭탄이 터진다 해도 큰 피해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목덜미 옷을 잡고 끌었다. 손가락이 부러져 힘이 잘 안 들어갔지만 손을 옷에 감으니 끌만했다. 그를 철문 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혹시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고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열심히 문을 막을만한 것들을 들고 날랐다. 낑낑거리며 문을 막을 무거운 것을 두 개째 날라 문 앞에 뒀을 때.

콰쾅!

폭발이 일어났다. 철문이 폭발을 견디지 못했고 튕겨 나갔다. 현일은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문짝을 보았지만 몸을 피한다거나 막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벽에서 뜯겨 나올 정도로 강력한 폭발에 의해 날아오는 문이다. 그것을 피한다거나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슬로우비디오처럼 철문이 뜯겨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시발...”

그냥 눈을 감았다. 마치 주사 맞는 것이 두려워 눈을 감는 것처럼.

< 146 지하철 테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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