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연이은 기적 >
글렘이 한국에?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교주님 말씀대로 교주님과 사제님께 직접 찾아와 사죄를 하고 싶다는 군요.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죄를 지었으면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죄하고 처벌을 받으라고. 글렘이 ‘진실한’ 신도가 됐고, 내 말대로 실천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우리를 돕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벤센에게 들은 글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단순히 무기 회사의 사주 정도가 아니라 미국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중 하나다. 미국 정재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영향력이 세계 모든 나라에 미친다는 말과 같다.
국내 기업순위 30위인 예던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떠올리면 글렘은 비텔교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그를 용서해야 할까? 감히 유나를 납치하려 했던 자다. 성전사인 김해역과 신도인 이가한이 죽을 뻔 하기도 했다. 내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면 무조건 죽었겠지.
그런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줘야 하나? ‘진실한’ 신도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물론 평생 비텔님만을 믿으며 반성하는 삶을 산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원래 성격으로 되돌아가겠지.
내가 벗어났고, 그락카르가 벗어났다. 우리 둘은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잠깐. 애초에 ‘진실한’ 신도가 된 게 아니라면 어쩌지?
혹시 글렘이 원래 정신을 유지한 채로 나와 유나를 만나서 뭔가 수작을 걸려고 하는 거라면... 위험하다. 내가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과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 세상엔 날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혼란스럽다.
-DH그룹. 비텔교는 제대로 된 종교. 그들을 돕기 위해 그룹의 모든 걸 걸고 도울 것.
-잔별그룹. 신의 아들인 비텔교 교주의 3배 크기의 은상을 제작할 예정.
아직 기적을 일으킨 지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비텔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10대 기업이 두 곳이나 됐다. 그 중 하나는 쓸데없이 은으로 만든 내 조각상을 만들 거라 발표했단다. 아니 내 조각상을 왜 만들어.
이것만이 아니다. 비텔님을 비웃는 자를 폭행한 신도도 벌써 1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신도가 광신도나 다름없게 되었을 텐데 비텔님을 비웃는 자를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여하튼 한국의 모든 매체에서 비텔교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좋은 일, 나쁜 일, 그냥 정보 등.
그런 게 너무 많으니까 머리가 혼란스러웠는데 글렘까지 찾아온다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모르겠다. 이런 때는 그락카르를 본 받아서 생각하는 걸 멈추자. 일단 만나자. 만나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고 처우를 결정하자.
만나기 전에 어느 정도 준비는 해두는 게 좋겠지.
“오하넬. 수호자 둘을 더 부를 생각입니다. 팔과 다리 어디에 머무를 수호자를 부르는 게 좋을까요.”
-팔은 신체능력이 강한 자들이 머물고, 다리는 특수능력이 강한 자들이 머물러요. 어떤 종류의 수호자가 필요하신가요?
팔은 그락카르, 다리는 노르쓰 우르드. 이런 느낌인가? 오하넬은 그 둘을 짬뽕해놓은 것 같은 능력자고 말이야. 차라리 오하넬 같은 밴시가 둘 더 나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거라면...
둘 다 필요하다. 신체능력이 강한 자도 쓸 데가 있을 것 같고, 특수능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하넬 수준으로 강력한 특수능력을 가진 자라면 어디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흠.. 팔과 다리, 하나씩 부르는 게 좋겠군요.”
-그렇다면 오른팔과 오른다리에 머무를 수호자를 부르는 게 좋겠어요. 능력 면에서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전부 뛰어나지만 생김새면에서 오른쪽에 머무는 자들이 그나마 괜찮거든요.
그나마라니. 도대체 생긴 게 어떻기에 그러는 거지. 오른팔과 오른다리... 오하넬이 추천해준 대로 해야겠지.
그럼 불러볼... 아. 부르기 전에,
“오하넬. 차원의 틈으로 날 데려가주세요.”
-네.
수호자는 소환될 때 작은 폭풍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주변을 파괴한다. 또 집에서 소환했다가 가구랑 창문 다 부숴먹을 순 없으니까.
차원의 틈으로 이동했다. 임시전당 근처의 차원의 틈은 좀 덥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들어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다. 여기서 라면 안심하고 소환할 수 있겠어.
우선 오른팔부터 하자. 당연히 소모 포인트는 100만.
-검색 완료했습니다.
수호자가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수호자를 부릅니다.
수호자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100만 포인트가 그냥 사라질까? 아니면 다시 다른 수호자를 찾아보는 걸까.
역시나 보라색 빛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저게 내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 다시 한 번 내가 아끼던 모니터가 부서지는 장면이 떠오르네.
푸화화확!
회오리치던 빛이 뭉쳤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아. 젠장. 좀 떨어져있을 걸. 옷 생각을 못했다. 옷이 또 찢어졌다. 비싼 건데. 젠장.
-데스 킹 아딜 사도님의 부름에 달려왔습니다.
검은색 전신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났다. 그는 거대한 양손검을 앞에 꽂은 채 내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음. 데스 킹이라니. 뭔가 어감이 데스 나이트하고 비슷한데... 이름과 오하넬이 생김새 운운했던 것이 걸린다. 투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 불안하다.
-저를 불러내셨을 때도 느꼈지만 데스 킹을 불러내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각 수호자계열 최강자들을 불러내시는 군요.
-그 모습은... 퀸? 설마 밴시 퀸인가?
-맞다. 데스 킹.
-이번 사도님은 대단한 분인가 보군. 너와 나를 불러내다니.
-대단한 분이시지. 새로운 세상에서 비텔교를 알리고 있는 분이다.
-비텔교라... 그래서 너와 내가 수호자로 선택된 거군.
뭔가 날 칭찬하고 있지만 내 신경은 오로지 데스 킹 아딜의 투구에 쏠려 있었다. 저 안에 해골이 있으면 어쩌지?
“데스 킹. 투구를 벗어줄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아딜이 망설이지 않고 바로 투구를 벗었다. 아앗. 눈부셔. 아딜의 잘생김에 눈이 멀 거 같다.
“이제 쓰셔도... 아니. 써주세요.”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중에 경우에 따라서 갑옷을 벗고 평범한 옷을 입은 채 날 수행하는 일도 있을 텐데. 그때 아딜의 옆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게 무섭다. 이건 오징어 정도가 아니라 바퀴벌레라고 불릴 거 같다.
-운이 좋군요. 저들은 반 이상이 뼈만 남아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데스 나이트 계열이었던 건가. 차라리 해골이 나왔으면 내가 바퀴벌레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건데.
-제가 육신이 남아 있는 것이 걸리신다면 살을 전부 뜯어버릴 수 있...
“아뇨. 괜찮아요. 지금이 딱 좋습니다.”
과격하네. 살을 뜯겠다니. 그래도 옆에 해골을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바퀴벌레가 되는 게 낫겠지.
그럼 이어서 오른다리에 머물 수호자를 부르자. 못생긴 남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만 바퀴벌레가 될 순 없잖아. 나보다 못생긴 남자가 함께 있으면 난 오징어정도론 보이겠지.
푸화화확!
또 보라색 빛이 터지고,
-마스터 네크로맨서 카일라 사도님의 부름에 응합니다.
-오. 마스터 네크로맨서.
오하넬이 놀라는 걸 보면 센가 보다. 그런데 생긴 게... 왜 이리 예뻐. 보석으로 장식된 붉은색의 화려한 오하넬의 드레스와 달리 밋밋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카일라지만 그 미모는 절대 오하넬에 뒤지지 않았다.
오하넬이 북유럽계 금발 미녀라면 카일라는 동유럽계 흑발 미녀라고 하면 되겠군.
-젊구나. 그 나이에 마스터 네크로맨서라니.
-당신에 비하면 젊겠지만 저도 300이 넘었습니다.
-1,000살이 안 된 마스터 네크로맨서를 본 적이 없는데 겨우 300살이라니. 대단하군.
10대 후반의 동유럽계의 미녀 같은데 300살이 넘었다고? 증조... 아니 고조.. 도 아니네. 고조의 고조의 고조 할머니 쯤 될까? 그런 카일라를 보고 젊다고 하는 오하넬은 도대체 몇 살인 거야?
아니 그보다. 수호자가 되려면 예쁘고 잘 생겨야 하는 거야? 왜 다들 선남선녀야. 이러면 내가 무조건 바퀴벌레 해야 하잖아. 오징어라도 되고 싶었는데.
... 이렇게 된 이상. 항상 김해역을 옆에 데리고 다녀야... 아니다. 걔는 유나를 지켜야 하니까 안 되고. 나중에 나보다 못생긴 사람으로 한 명 뽑아서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니자. 나 혼자 죽을 순 없지.
“두 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사도님.
-계약 기간 동안 제 힘은 당신의 것입니다.
계약 기간이... 있었어? 막 반년 일하다가 가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계약 기간이 언제까지죠?”
-사도님의 영혼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입니다.
죽는 것도 아니고 영혼이 사라져? 음... 뭐 평생 계약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겠지. 괜찮네. 계약기간. 100만 포인트에 저런 강자들을 평생 부려먹을 수 있다니. 완전 남는 장사야.
“이제 돌아가죠. 오하넬.”
-네.
***
하루가 지났다.
-지금 임시전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글렘이 탄 비행기가 도착했고 벤센이 글렘을 데리고 임시전당으로 데려왔다.
“오하넬. 가서 확인해주세요.”
-네.
이미 벤센이 몸수색을 마쳤겠지만 혹시 모르기에 오하넬을 보내서 한 번 더 확인하게 했다. 오하넬은 사람의 몸까지 그냥 통과할 수 있기에 몸속에 숨긴 것까지 찾아볼 수 있다.
-깨끗합니다.
“그런가요?”
그럼 정말 글렘도 ‘진실한’ 신도가 된 건가.
“두 분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네.
아딜과 카일라가 각각 내 오른팔과 오른다리로 들어왔다. 저 큰 사람 둘이 팔다리에 들어왔지만 딱히 뭔가 느껴지는 건 없다. 어떻게 내 팔다리에 머무는 걸까. 신기하다.
잠시 후 벤센이 집으로 글렘을 데리고 들어왔다. 저 사람이 글렘인가? 77살 먹은 노인이라더니 더 늙어 보인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나?
퍼벅.
글렘이 무릎을 꿇었다. 무릎과 목재 바닥이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났다. 어이구. 무릎 나가겠어요.
“죄를 청합니다!”
라고 하면서 팔을 쭉 뻗어 나에게 절한다. ...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사람들 그렇게 안 해요. 도대체 언제 적 사과하는 법을 배워온 거야. 한 100년 전에도 안 저랬을 거 같은데.
“이미 벤센에게 제가 가진 모든 재산 목록을 넘겼습니다. 재산 모두가 비텔교 명의가 되는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죽을 각오로 찾아온 건가.
“다만 죽기 전 마지막 청이 있습니다.”
설마 살려달라는 건 아니겠지.
“제가 살면서 지은 죄가 너무 많습니다. 죽기 전에 최대한 기억해 적어둘 테니. 부디 제 재산을 그들을 돕는데 써 주십시오.”
그건... 괜찮은 생각이네.
“네가 살면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을지는 이번 행실을 보면 예상할 수 있지.”
“정말 악마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죄 값은 죽어 지옥에 가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천국에 가겠다는 말은 안하네. 저 정도면... 당분간은 살려둬도 될 거 같다.
“죽어서 지옥에서 죄 값을 받겠다니.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군. 네가 죄 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을 텐데.”
“크흑.”
“죽지 마라. 네가 지은 죄를 사람들이 용서해줄 때까지 살아라. 그들에게 계속해서 용서를 구하고, 보상을 해주어라.”
일단 살려주자. 이제 비텔교는 한국을 넘어 세상에 나갈 것이다. 그때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글렘을 살려두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
글렘은 바로 돌려보냈다. 뭐가 예쁘다고 함께 시간을 보내겠어. 그냥 미국에 보내서 비텔교의 이름 아래 사람들을 돕게 시키다가 필요할 때만 찾으면 되겠지.
그 날 오후. 전국 경찰서엔 죄를 자백하겠다는 사람들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리고 5일 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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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10,000,000명
교단 기여 포인트 : 335,63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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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신도가 1,000만 명에 도달했다.
< 139 연이은 기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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