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슈퍼스타 2 >
“후...”
언제나 그렇듯 비텔님의 음성을 들은 후엔 한동안 그 여운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한참동안 즐긴다. 누가 말릴 사람도 없고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한참 여운을 즐기고 일어났음에도 집안과 집밖의 신도 중 아직도 그 여운에 잠겨있는 이들이 많다. 전적으로 이해되는 장면이다.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조금이라도 그분의 음성이 머릿속에 진하게 남아있을 때 몇 번이든 반복해서 떠올리고 싶을 거다. 완전히 희미해져서 사라질 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내 한숨소리를 들었는지 맹연이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넌 어때. 방금 기적으로 뭔가 변한 게 느껴져?”
기적이 내게 무언가를 줬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론적인 지식 같은 걸 얻은 건 아니지만 예전과 달리 뭘 하든 노력하면 더욱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가슴속에 심어졌으니까. 하지만 그 외에 딱히 느껴지는 게 없다.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맹연도 나와 비슷한 걸 느끼고 있나보군.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몸속에 뭔가 다른 힘이 있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 아니면 교단 기여 포인트라는 단어나 다른 뭔가가 글자로 보인다든가.”
“그런 건 없습니다.”
“그래..”
교단 기여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그 힘을 느끼거나 볼 수 있는 건 아닌가보다. 앞의 두 가지 기적은 ‘나 기적이야! 기적이라고!’라고 광고라도 하는 거처럼 겉으로 많이 표가 났었는데 이번 기적은 조용하네.
세례를 써주면 어떨까.
-스킬 ‘교주의 명령 – 세례’를 사용합니다.
대상을 선택하세요.
손에 보라색 빛이 피어올랐다. 강렬하진 않고 은은하다. 이 빛을 내가 세례를 내리고 싶은 사람에게 대면되는 건가. 맹연에게 가져가 댔다.
사아아아아.
은은한 빛이 맹연의 몸 전체를 한 번 휘감더니 사라졌다.
-세례를 완료했습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100이 차감되었습니다.
“이건...”
“느낌이 어때?”
“잠깐 상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라도 한 것처럼요. 제게 해주신 게 뭔가요?”
“세례다. 비텔님께서 이번에 신도들에게 심어주신 가능성이 더 쉽게 개화할수록 도와주는 거야.”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잠깐 시원한 거 말고 다른 변화는 없어?”
“네. 딱히...”
맹연이 말끝을 흐렸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미안한 모양이다.
“솔직한 대답 고맙다. 많은 도움이 됐어.”
“네.”
잠시 기다리니 하나둘 사람들이 깨어나 다가와 수고했다고 인사했다. 수고는 무슨, 전부 비텔님께서 한 건데 내가 뭘 했다고 수고야.
잠시 창 근처에 서서 집밖의 신도들이 여운에서 깨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전부 해주고 나니 약 80%정도가 일어나 있었다. 저 정도면 되겠지. 아직 여운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끝자락을 잡고 있을 뿐, 정신은 제대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바로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
-그분께서 가장 원하는 건 그분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분께 너희의 인생을 바치는 것은 그분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너희의 삶을 살아라.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했습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2,424,631이 차감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3,000명 정도 늘었네. 신도가 너무 많아 ‘비텔의 목소리’를 겨우 두 번만 썼는데도 500만 가까운 포인트가 소모되었다. 처음엔 100점 쓸 때도 손이 벌벌 떨렸었는데 이젠 몇 백만씩 가볍게 쓰는구나.
그래도 해야 하는 말이었다. 한 번에 200만 명이 넘는 수가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로 이렇게 경고해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난 번 기적 때도 겨우 10만 명이었는데 길거리에 나와 전단지를 돌리거나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다닌 사람이 인터넷에 회자될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240만 명이니... 이렇게 말해놨는데도 불안하네.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마라. 비텔님을 알리려 노력하지 마라. 스스로 빛나는 분이시다.
전도를 하지 말라는 말까진 못하겠고 그걸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말까지만 해둬야겠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미 인터넷 세상에 비텔님에 대해 파다하게 알려진 이상 전도를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빠르게 신도가 늘어날 텐데 말이다.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이곳에 찾아올 테니까요.”
믿음이 깊어진 신도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이 뭘까. 비텔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바로 임시전당이다. 임시로 만든 곳이긴 하나 세계 유일의 비텔교 전당이니까.
정말... 엄청나게 몰려들 거다.
***
가득 찼다. 말 그대로 가득 찼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인파가 임시전당으로 몰려왔다.
점심 경 기적을 사용했다. 겨우 1시간 지난 오후 1시경, 사람들이 임시 전당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되자 임시 전당이 사람으로 가득 찼고, 오후 5시가 되자 임시전당이 위치한 야산 밑에 있는 도시가 가득 찼다.
사실 우리는 어제부터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 열심히 움직였다. 예던은 회사 전체가 일을 멈추고 나서서 도와줬을 정도였다. 물, 간이화장실, 침낭, 사발면 등. 많은 걸 준비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이 찾아오면 무슨 준비를 하든 소용이 없다.
지금이라도 ‘비텔의 목소리’를 써서 임시전당에 찾아오지 말라고 할까?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찾아오게 놔두는 게 났다. 괜히 엄한데서 사고치는 것보다는 좀 혼잡하긴 해도 이렇게 몰아놓는 게 낫지.
“오하넬. 혹시 모습을 감춘 채 절 들고 날아다닐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다행이다.
신도들은 여기에 온 이상 아주 작은 거라도 얻지 못하면 쉽게 돌아가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저 많은 수의 사람을 일일이 만나줄 수도 없다. 그러니 차라리 내 모습을 보여준 후 ‘비텔의 목소리’로 몇 마디 해주는 게 낫다.
“나가실 건가요?”
“응.”
대답을 들은 맹연이 다가와 내 외관을 정리해준다. 맹연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정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아. 맞다.
“유나야. 네가 갈래?”
얼마 전부터 대부분의 일을 내가 독단적으로 하고 있다. 내가 교주긴 하지만 비텔교의 초석은 유나가 다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것도 아니고 유나를 이렇게 소외시키면 안 되지.
“아뇨. 당연히 교주님이 나서셔야죠.”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당연히 교주님이 나서야 하는 자린데.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아저씨.”
유나의 말이 맞다. 미안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여기선 내가 나가는 게 맞다. 유나는 ‘비텔의 목소리’를 못 쓰니까. 모습을 보여줘도 말을 못하기에 마무리를 할 수 없다.
“그럼. 부탁합니다. 오하넬.”
-네.
오하넬이 뒤에서 날 껴안아 가슴 어림에서 깍지를 꼈다. 참 가냘픈 팔인데 담겨 있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곧 오하넬이 날 안은 채 하늘로 떠올랐고, 오하넬의 몸은 투명해졌다.
김해역이 창문을 열었고 그곳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어? 어어어? 교주님이다!”
누군가 날 발견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교주님.”
“수고하셨습니다. 교주님.”
“수고하셨어요. 교주님.”
“수고했어요. 아저씨.”
한 번에 수십만 명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냥 시선일 뿐인데 그 시선에서 힘이 느껴졌다. 거기에 여기저기서 날 찍고 있는 방송국 카메라 속에 있는 수만, 아니. 수십, 수백만이 되지도 모르는 시청자들의 시선까지 느꼈다.
그 시선에 담긴 힘에 의해 조금씩 가슴속에 열이 일었고, 나중에는 불덩이가 되어 날 흥분시켰다.
“내가 말실수 한 건 없었지?”
원래는 간단하게 몇 마디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흥분하는 바람에 꽤 길게 말했다.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말실수는 없었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죄가 있으면 신께 고하지 말고 지은 죄의 피해자에게 가서 사과하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라고 했고, 신께서 내려주신 가능성을 저버리지 말고 개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라고 했고 또...
정말 많은 말을 했군. 이건 뭐 교장선생님 담화시간이나 마찬가지였네. 당연한 이야기를 쭉 늘어 놨어. 그래도 마지막에 한 말은 아주 잘한 거 같다.
‘수시로 비텔님께 기도해라. 밥 먹을 때, 잠 잘 때, 일어날 때, 감사할 일이 생길 때 등 적어도 하루 3번은 해라.’
이 말을 하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기도가 들려왔지. 그래. 기도를 열심히 해야 교단 기여 포인트가 모자라지 않지.
앞으로 언제 어떻게 쓰게 될지 모르니 교단 기여 포인트는 모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모아둬야겠다. 잘 모인다고 그냥 놔뒀다가 이번에 기적도 못 쓸 뻔 했다. 또 그런 일을 겪을 순 없지.
***
또 한 번 세상이 놀랐다.
내가 하늘을 날아 수십만 신도 위를 빠짐없이 돌아다니는 장면은 수십 대의 카메라에 의해 찍혀 세상에 공개되었다.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냥 인터넷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영상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뉴스시간에 틀어준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작이라고 우기기엔 비텔교 신도가 너무 많아졌다. 조작이라고 말하는 순간 수십 개의 비텔교 옹호 댓글이 달렸다.
-제가 가서 직접 봤습니다.
-꼭 가보지도 않는 것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올린다니까.
-저게 어떻게 조작이냐. 투명, 무음 비행기가 교주님을 달고 다니기라도 한 거냐?
비행기는 아니지만 투명, 무음 밴시가 날 달고 날아다니긴 했다.
여하튼 인터넷에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여론이 하루 만에 비텔교에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240만 명이다. 240만 명이 ‘진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들은 사회각계각층에 있을 것이고 비텔교에 호의적인 목소리를 열정적으로 내고 있을 것이다. 비텔교에 호의적인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240만. 그들을 뚫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지.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되면 경찰관과 소방관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던 사람들도 의견을 바꾸지 않을까? 안 한다면... 하게 만들어야겠지.
무력을 쓰겠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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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3,211,341명
교단 기여 포인트 : 104,734,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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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 만에 80만 명의 신도가 늘어났다. 이 속도라면 일주일 안에 1,000만 명이 가능할 거다. 신도가 1,000만 명에 도달하는 순간 다시 비텔님께서 목소리를 들려주실 거다. 그러면 ‘진실한’ 신도의 수가 1,000만 명이 되는 거다.
외국인을 제외한다고 해도 적어도 900만 명은 넘겠지. 5,000만 명이 조금 넘는 한국에서 900만 명이 열성적인 우리 편이 된다.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며칠 전까지 우릴 괴롭혔던 순백교? 순백교는 이제 우리에게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감히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겠어.
그리고 이 상황이 좀 진정되면 순백교의 범죄행위에 대해 각 언론에 뿌릴 것이다. 그때 벌을 내리면 되겠지. 어쩌면 순백교가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그리고 글렘,
그를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수호자 둘을 더 불러내 날 지키게 하고 오하넬을 글렘에게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글렘도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터. 지금쯤 ‘진실한’ 신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말 죽여야 할까? 그가 가진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이라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렇게 고민하던 중, 벤센에게서 전화가 왔다.
-글렘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 138 슈퍼스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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