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성전사 vs 오크 2 >
‘이끄는 자의 특권? 내 염원? 각성?’
갑자기 들려오는 전언에 그락카르는 활화산 같은 분노 속에서도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건... 저번에 그 인간 놈이 수호자를 얻었을 때 들렸던 전언인가?’
분노로 멈추다시피 했던 머리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잠시 헤매던 그락카르는 곧 한상이 ‘자유를 수호하는 자(1단계)’를 얻었을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원래 기억력이 좋은 그락카르이긴 하지만 한상이 듣는 전언까지 기억할 정도는 아닌데 그건 기억하고 있다. 그 스킬로 얻은 밴시 오하넬이 살면서 만나본 적 없는 스타일의 강자기에 너무나도 싸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전언을 들었을 때 그런 강자를 소환했을 정도의 능력을 받았다. 나는...’
그락카르가 원하는 건 많지 않았다. 고함을 칠 수 있을 정도로만 체력을 회복시켜주면 된다. 그럼 ‘성난 자의 외침’을 써서 완전 회복한 다음 다시 한 번 싸울 것이다.
바로 ‘스킬 목록 열람’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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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1단계) : 카록의 사도만이 쓸 수 있는 스킬. 전투 기여 포인트 1~1,000,000사이를 소모하여 물리, 정신적 능력을 강화한다. 투자한 전투 기여 포인트의 양에 따라 강화되는 양이 다르다.
현재 각성 : 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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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악성. 1단계. 카록의 사..도만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킬 설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사용한다. 각성.’
‘각성’이 어떤 스킬인지 알게 된 그락카르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각성(1단계)’를 사용합니다.
사용할 전투 기여 포인트의 양을 선택하십시오. 전투 기여 포인트의 사용은 최소 1, 최대 1,000,000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그락카르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내뱉었다.
-전투 기여 포인트 274,348을 차감합니다.
전투 기여 포인트가 카록에게 전달되는 중입니다.
이때 그락카르와 벤 자칸을 제외한 전체 전장의 상황은 오크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크들의 수도 꽤 많은데다가 족장급과 대전사급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기에 거대괴물과의 싸움 전부에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족잡급, 대전사급이 일반 전사들을 이끌었다.
거기에 오늘은 시작부터 그락카르가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했다. 오크들은 처음부터 100% 힘이 증가된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그것이 이 전투를 오크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리.. 와라.. 와서.. 누구도.. 이.. 오크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벤 자칸이 명령을 내렸고 거대괴물 하나가 싸우던 오크들을 무시하고 벤 자칸에게 달려왔다. 거대괴물은 덩치가 큰 만큼 빨랐기에 공격 몇 번만 허용하고 벤 자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켜라..”
구어어어어어어어.
벤 자칸이 거대괴물을 뒤로 하고 거대괴물을 쫓아온 오크들을 향해 걸어갔다. 거대괴물을 향해 달려오던 오크들이 벤 자칸을 보고 멈칫했다. 분명 그락카르와 싸우는 것을 봤는데 자신들에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오크들은 곧 뒤에 쓰러져있는 그락카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뜻은 벤 자칸이 대족장인 그락카르를 이긴 강자라는 뜻. 엄청난 강자가 눈앞에 있다.
1:1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락의 최강자가 이미 1:1로 졌으니까. 전사 대 전사로서 싸우는 걸 좋아하는 오크긴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것이 확실한 적에게 혼자 덤빌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다.
구워어어어어억!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오크들은 저마다 강렬한 고함을 지르며 전의를 끌어올렸다. 잔뜩 전의를 끌어올린 오크들이 벤 자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전투 기여 포인트가 카록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카록의 힘이 사용자에게 강림합니다.
하늘이 열리며 붉은색 빛이 내려왔다. 오크들이 멈추고 그 빛을 보았으며 오크들의 시선을 느낀 벤 자칸도 뒤로 돌아 그 빛을 보았다.
“카록.. 의 빛..?”
붉은색은 카록의 색. 하늘에서 내려오는 저 붉은색 힘은 카록의 힘이다. 그 저주받을 악신이 자신이 있는 이곳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분노의 함성을 지른 벤 자칸이 평소의 움직임과 다르게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붉은색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붉은색 빛이 그락카르에게 닿기 전,
“그어어어어어!”
보라색 빛을 잔뜩 머금은 그레이트소드가 붉은색 빛을 향해 휘둘러졌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보라색 빛과 붉은색 빛이 잠깐, 아주 잠깐 힘 싸움을 했다. 그 힘 싸움의 결과는 압도적인 붉은색 빛의 승리였다.
푸확!
벤 자칸이 달려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붉은색 빛이 그락카르에게 닿았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그어어어어어어어.”
붉은색 빛에 튕겨 뒤로 날아갔던 벤 자칸이 다시 고함을 지르며 그락카르를 향해 달려왔다. 그때 그락카르는 전신에 힘이 주입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움직인다.’
몸이 움직였다. 팔을 더듬더듬 움직여 미로크의 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억!]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힘은 100% 강해져 있었기에 그 효과가 중복되지는 않았고, 전신의 상처만 완전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벤 자칸을 향해 미로크를 휘둘렀다. 벤 자칸이 타워실드를 내밀어 막았다. 그리고 그레이트소드로 그락카르의 몸을 베려했지만,
쾅!
그대로 뒤로 튕겨나갔다.
쿠당탕탕.
벤 자칸이 땅을 뒹굴었다. 미로크에 담긴 힘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2배, 그 정도는 담겨 있는 듯 했다.
“빌어.. 먹을.. 카록.. 또 우리를.. 방해.. 하느냐..”
벤 자칸이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튕겨나가긴 했지만 타워실드로 막았기에 입은 데미지는 없었다.
그락카르가 미로크를 들어 벤 자칸을 향해 내밀었다. 벤 자칸도 타워실드와 그레이트소드를 들어 올려 전투준비를 했다.
“내게 준 치욕을 그대로 돌려주마.”
“카록.. 이번엔..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둘이 서로에게 쇄도했다.
그리고 한나절이 흘렀다. 전투는 밝을 때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사방에 어둠이 깔렸다.
일단 거대괴물과 오크 전사의 싸움은 오크 전사의 승리로 돌아갔다. 오크는 전체의 반에 가까운 수가 거대괴물에 의해 죽어 1만이 살아남았지만 거대괴물은 100마리 전부 쓰러졌다.
거대괴물을 전부 쓰러뜨린 오크 전사들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그 원의 중심에는,
쾅! 콰쾅! 콰가가가가각!
거대한 소음과 함께 붉은색 빛과 보라색 빛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어어어어어!”
“크워어어어억!”
콰콰쾅! 쾅! 쾅!
그락카르와 벤 자칸의 싸움. 그락카르가 압도적으로 밀렸던 1차전과 달리 ‘각성’후의 2차전은 막상막하였다.
그락카르의 공격력이 벤 자칸을 훨씬 뛰어넘었지만 벤 자칸의 방어를 뚫지는 못했다. 벤 자칸은 그락카르의 공격을 훌륭하게 막아냈지만 이렇다 할 치명상을 가하지 못했고 얕은 부상은 그락카르의 뛰어난 재생력에 의해 순식간에 치유되었다.
거대괴물을 물리친 형제들 덕분에 다량의 전투 기여 포인트를 얻은 그락카르는 온 몸에 ‘카록의 빛’을 둘러 벤 자칸의 보라색 빛이 침투해 생명력을 빼앗아가는 것을 방지했고, 그락카르의 ‘착취하는 손’ 역시 벤 자칸의 보라색 빛의 방어에 막혀 생명력을 빼앗지 못했다.
전투는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침이 찾아왔고 이어서 강렬한 햇빛을 뿌리는 정오가, 다시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 찾아오고 새까만 어둠만이 함께하는 깊은 밤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을 두 번 반복했다.
오크들은 누구도 이탈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락카르와 벤 자칸의 싸움을 지켜봤다.
“곧 결과가 나오겠군.”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그의 옆에서 함께 그락카르의 싸움을 지켜보던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출 정도로 강렬하던 그락카르와 벤 자칸의 빛이 그 쪽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 정도로 희미해졌다. 둘 다 극도로 지쳤다는 뜻. 이제 얼마가지 않아 둘 중 하나가 쓰러지든, 둘 다 쓰러지든 해서 결말이 날 것이다.
“그락카르가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괜찮을 것 같군.”
“동감이다.”
캅카스가의 말에 미흐로크가 동의했다. 벤 자칸은 적이지만 훌륭했다. 둘은 저런 적과 싸운다면 지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목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이냐. 무조건 그락카르가 이겨야지. 그락카르는 위대한 대족장이 될 거다. 어린 나이에 죽기엔 너무 안타깝다.”
노르쓰 우르드가 반박했다. 그는 오르히에게 한계를 느껴 그락카르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락카르와 함께 하면서 그와 함께라면 그가 꿈꿔왔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크제국. 거대한 오크만의 국가. 부락과 같은 하나의 마을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개의 부락을 다스리며 수십, 수백만 형제들을 움직여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
국가를 세워 인간 왕국이나 제국 전체를 한 번에 상대하는 오크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어떤 오크도 하지 못했을 거대한 전투를 하자. 수십 개의 부락을 동시에 상대하는 인간의 왕국을 보며 떠올렸던 젊은 날의 이상이다.
노르쓰 우르드는 발전이 빠른 그락카르라면 언젠가 대족장급 오크들을 휘하에 두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옆에서 그들을 잘 움직여 각각의 부락을 가지면서도 그락카르를 따르는 체계를 만든다면... 그러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핵심인 그락카르가 지금 죽는다니. 절대 그래선 안 된다.
‘그락카르가 질 거 같으면 내가 끼어들... 아냐. 그건 아니다.’
노르쓰 우르드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오크 전사가 아니더라도 오크다. 오크로서 전사 대 전사로서 맞붙은 다른 이의 싸움에 끼어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신인 카록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카록은 멋진 전투를 좋아하는 만큼, 그 멋진 전투를 망치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이겨라. 그락카르. 형제는 나와 할 일이 많다.’
노르쓰 우르드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락카르를 응원했다.
쾅!
그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3일간의 전투동안 미로크를 잘 막아줬던 벤 자칸의 방패가 부서졌다. 벤 자칸이 이어지는 그락카르의 공격을 그레이트소드로 막아냈지만 그레이트소드를 방어로 돌리니 공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락카르가 더욱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가 이어졌다.
쩡! 쩡! 쩡! 쩌정! 챙!
그리고 그레이트소드까지 미로크를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졌다.
“네놈의.. 무기.. 정말.. 강하구나..”
“강할 수밖에. 내가 만났던 가장 강한 암컷이 들어가 있으니까.”
미로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그락카르가 무기를 모두 잃어버린 벤 자칸을 향해 강하게 내려쳤다.
푸가아아악!
벤 자칸이 양팔을 들어 막았지만 미로크의 날은 양팔을 가르고 내려가 벤 자칸의 머리를 뚫고 들어가 사타구니로 빠져나왔다. 벤 자칸이 이등분 되어 쓰러졌다.
“크훅. 크훅. 크훅.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잠시 숨을 몰아쉬던 그락카르가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지켜보던 1만의 오크가 뒤이어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구워어어어어억!
구오오오오오오!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
오크들의 함성이 사방을 울렸다.
< 136 성전사 vs 오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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