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밥그릇 싸움 >
김재정을 처리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 동안 순백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NSA나 CIA 등의 각국 정보기관은 한국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정보까지 깊게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시 제대로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벤센이 순백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안녕하십니까! 교주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국정원의 정인호라고 합니다!”
순백교를 조사하는데 의외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국정원이었다. 정보력이 별로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국내 일이라고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국정원에도 비텔교도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많지는 않습니다. 말단 직원 중 몇 명 정도만 비텔님을 믿고 있습니다.”
“흠.. 혹시 정부에서 비텔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저번에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사건은...”
궁금했다. 정부의 높은 사람이 비텔교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말이다.
“비텔교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지금 정치시국이 워낙 복잡하잖습니까. 온 신경이 그쪽에 쏠려있기에 비텔교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 각국 정부에서 신경 쓰는 비텔교를 우리나라 정부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럼. 순백교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정인호가 순백교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허... 설명을 들을수록 가관이다.
순백교에서 박강성의 위치는 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있는 거라고 한다. 박강성의 자식들은 신이 인간과 결합해 낳았으니 천족이라 부른다고 한다.
간단하게 교리를 살펴보면 신인 박강성이 지구에 심판을 내리기 전에 내려와 구원할 자들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서 최후의 그날 5만 명을 자신이 있는 천국에 데려가 구원할 것이며 나머지는 전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니. 신도가 30만 명이라면서. 그런데 왜 5만 명만 구원해? 신도 사이에도 경쟁시키는 건가? 그래서 자기 재산 다 갖다 바치고 몸도 바치고 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건가?
“순백교는 달라이라마와 비슷하게 박강성이 죽으면 천족 중 한 명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박강성이 죽으면 그의 자식 중 하나가 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겁니다.”
완전 왕정이군. 왕이 죽으면 그의 자식 중 하나가 왕의 자리를 물려받는 거랑 뭐가 달라. 정말 이상한데 그걸 믿고 따르는 신도가 30만이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정인호의 브리핑은 계속 이어졌다.
박강성의 부인은 1명, 첩은 7명이며 부인은 박강성과 함께 내려온 여신이고 첩은 천사들이라고... 들으면 들을수록 웃기다. 거기에 정부가 수십 명으로 그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50명 이상.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 해결의 1등공신이 여기 있었군.
“그럼 박강성이 죽어도 5명의 자식 중 하나가 교주의 자리를 물려받는 겁니까?”
“네. 일단은 여신인 박강성의 부인이 대신 교주의 자리에 있다가 그녀까지 죽고 나면 자식 중 하나가 새로운 신으로 뽑혀 교주자리를 물려받을 겁니다.”
골 때리네... 그럼 박강성도 죽이고, 그 부인도 죽이고 자식도 전부 죽여야 한다는 건가? 그건 좀...
“교단을 움직이는 핵심은 박강성의 형제들입니다. 남동생인 박천성과 여동생인 박순성을 중심으로 친가의 인원들이 교단의 운영권을 잡고 있습니다. 박강성이 죽는다 해도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내세워 교를 운영할 겁니다.”
음... 이거 진짜. 삼족을 멸하기라도 해야 하나?
“외가는요?”
“부인이 고아인지라 외가는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개뿔.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죽여야 할 인물이 너무 많다. 몇 명 죽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내가 그락카르 그 극악한 놈도 아니고 박강성의 자식으로 태어났을 뿐인 아이들을 수십 명이나 죽일 순 없지.
“무력...은 제외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벤센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무력을 쓰는 건 그의 방법이 아니다.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나의 방법이다.
벤센은 항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정보전을 먼저 떠올리고 제시했다. 오룡파도 그들의 범죄를 파헤쳐 한국 경찰과 검찰에 제공한다는 해결책을 내놨었고, 글렘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각국 정보기관이 각자의 나라에 글렘의 악행을 보고해 국가단위로 압박한다는 해결책을 내놨었다.
이번 순백교에 대한 대처도 그랬다.
“이번 일은 벤센이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우선 해결책으로 박강성 등 순백교 핵심을 죽이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힘들 경우를 대비해 벤센의 대책도 준비해왔다. 그래서 김재중의 사무실에서 장부와 USB 등을 챙겨왔던 거다.
“순백교에 대한 자료는 충분해요?”
“넘칩니다. 이번에 김재중에게서 얻은 것뿐만 아니라 교주님께서 추가로 주신 자료에서도 순백교에 대한 증거가 쏟아졌습니다.”
내가 추가로 준 자료면 김설중에게서 얻은 장부, 하드디스크 등이다.
그걸 벌써 다 분석한 건가? 내가 살펴보려다가 하드디스크 하나에만 열 시간이 넘는 동영상이 수십 개있고, 음성파일도 수백 개가 있어서 포기했는데.
“오룡파에서 얻은 자료보단 교주님께서 주신 자료가 더 덩치가 큽니다. 박순성이 납치교사 하는 영상과 음성이 7개, 납치한 사람을 순백교에 인계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5개, 거기에 장부에도 박순성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딱히 활용할 방안을 생각안하고 그냥 챙겨뒀었는데 제법 잘 쓰이네. 챙겨두길 잘했어.
“어떻게 할 건가요?”
“지금 자료들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전부 너무 굵직해서 한 번에 터뜨리면 오히려 효과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일 뒤부터 하나씩 차례대로 편집한 자료를 언론에 보내 터트릴 생각입니다.”
괜찮은 생각이다. 그래봐야 몇 명 직접 거론된 인물들만 구속되고 말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이때까지 항상 그랬으니까. 아무리 자료를 많이 가져다줘도 정부에서 순백교 자체를 없애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괜찮다. 당분간만 순백교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현재 비텔교 신도 수가 거의 40만에 도달했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만 5천 명 정도만 모였던 것이 조금씩 오르더니 어제 2만 명이 모였다. 이 추세대로 신도가 늘어난다면 한 달이면 100만 명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반년이면 1,000만 명. 그때가 되면 신도 30만 명의 순백교는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몇 달만 순백교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자. 그거면 충분하다.
“괜찮네요. 그대로 진행하세요.”
“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비텔교 교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어제 방영된 내용이 사실인지만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막지 마요! 우린 기잡니다! 정당하게 취재하겠다는데 왜 이럽니까!”
임시전당 입구가 들어오려는 기자와 막으려는 신도의 실랑이로 아주 난리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벤센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사과했다. 미국에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는 인사가 없을 텐데. 한국 와서 배운 건가?
“괜찮아요.”
“제가 미리 알고 막았어야 했는데.”
“어제 방송한 걸 보면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걸 겁니다. 쉽게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아니다.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리 알기만 했다면 막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담당자를 암살하든가, 새로운 더 큰 뉴스를 주던가. 그 외에도 수십 가지 방법은 생각해낼 수 있었겠지. 미리 알기만 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걸 못했다고 벤센을 책망할 필요 없다. 여긴 벤센의 나라도 아니고, 벤센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없다. 벤센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저 적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찔러 왔을 뿐.
‘무너진 공권력, 사이비 종교의 등쌀에 시달리는 국민.’
어제 방송된 시사 프로그램의 부제목이다. 저기서 국민 괴롭히는 사이비 종교가 바로 우리 비텔교다. 우리가 늦었다. 순백교의 범죄를 터뜨리지 못하고 우리가 먼저 터져버렸다.
내용은 간단했다. 경찰, 소방관 등 각 계통의 공무원 중 많은 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공권력을 종교를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저번에 유나가 납치당했을 때 우리 신도들이 고속도로를 통제했던 광경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어떤 새끼들이 우리 사제님을 납치한 거야! 걸리면 전부 죽인다!
-지나가는 차 다 뒤져!
-막아! 아무도 못 지나가게 해!
흥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소리치는 신도들과,
-납치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잠시 검문에 협조해주십시오.
그들과 함께 차를 멈춰 세우고 검문하는 경찰과 소방관들.
영상은 두 개를 입수한 모양이다. 검문 당하는 모습이 두 번 보여 졌는데 한 번은 경찰이, 한 번은 소방관이 검문했다. 급하게 시작된 검문이었기에 상당히 조잡했고, 정식 검문이 아니란 것이 티났다. 방송국이 관련 부처 모든 곳에 확인한 결과 당일 검문이 없었다는 MC의 발언까지 더해졌다.
그 외에도 우리 비텔교가 했다고 여러 가지 내용이 나왔는데 대부분 거짓이었다. 제대로 된 사실은 고속도로 검문뿐이었지만 영상이 너무 확실한 증거였기에 다른 거짓들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정부에는 벤센이 NSA, CIA 특별 훈련이었다고 알려서 유야무야 넘어간 거로 아는데 방송국에 동영상이 흘러 들어갔고 깊게 파고든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데서 일부러 흘렸거나.
“벤센.”
“네.”
“혹시 순백교에서 이번 방송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이상하긴 하다. 임시전당에 기자가 취재 나온 적이 없는데도 구조를 너무 잘 알고, 김진서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었다.
어제 방송에서 김진서가 나오진 않았지만 말미에 예고로 오늘 저녁에 ‘사이비 종교와 유착한 대기업’에 대한 걸 방송하겠다고 했다. 비텔교와 유착한 대기업이면 예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일부러 방송국에 흘렸다면 순백교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알겠습니다. 순백교 관련 제보는...”
“그건 나중에 하죠. 지금 순백교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서 보도한다면 사람들은 비텔교와 순백교를 구부하지 못하고 둘 다 욕할 거예요.”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의 이름까지 기억해주지 않는다. 어느 날 A사이비 종교가 잘못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B사이비 종교의 나쁜 뉴스가 보도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짓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두 사이비 종교 모두 나쁜 곳이라고만 기억할 것이다.
특히 그게 어떤 종교의 첫 이미지라면 나중에 오해를 푼다고 해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중의 머릿속에 나쁜 종교라고 기억될 것이다. ‘거기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쁜 종교야.’가 되어 버리는 거다.
“일단 우리에 대한 오해를 푼 후, 나중에 개별적으로 순백교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정정보도를 하게 만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정보도 따위는 보지도 믿지도 않는다. 나쁜 뉴스를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만들려면 더 큰 충격을 줘야 한다.
“후...”
아쉽다. 웬만하면 비텔교가 세상에 알려지는 속도를 늦추려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 아직 제대로 된 종교의 틀을 갖추지도 않았는데 신도가 40만 명이나 되지 않나. 자연스럽게 비텔교가 퍼지게 놔두며 최대한 틀을 갖춰나가려고 했었다.
그래야 신도들이 사고치는 걸 최대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군.
세상에 비텔교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게 악당의 이미지여선 곤란하다.
“맹연. 부탁해.”
“네.”
맹연이 다가와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어줬다.
“화장도 하실래요?”
“됐어.”
화장한다고 잘생겨질 얼굴도 아니고, 괜히 교주가 화장한 모습을 보이면 이미지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저도 갈게요.”
“유나는 나중에. 이다음부터 엄청 바빠질 거야. 그때는 유나한테 부탁할게.”
지금은 기자들이 거칠게 취재하려 할 것이다. 그런 곳에 어린 아이를 보낼 순 없지.
“제가 옆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김해역이 다가와 허락을 구했다. 깔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경호원처럼 보이겠네.
“그래. 부탁한다.”
“영광입니다.”
김해역이 반보 정도 앞장서 걸었다. 문 앞에 도착한 김해역이 문고리를 잡고 나를 쳐다봤다.
“그럼 다녀올게.”
“힘내세요.”
“교주님은 잘하실 겁니다.”
유나와 맹연이 응원해줬다. 살짝 웃어주곤 김해역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김해역이 문을 열었다.
오늘은 비텔교가 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알리는 날이 될 것이다.
< 134 밥그릇 싸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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