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밥그릇 싸움 >
“순백교?”
“박강성이란 자가 교주로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세력이 큰 사이비 종교입니다. 지금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자들은 평범한 교회에서 나온 것처럼 꾸몄지만 실은 순백교에서 보낸 자들입니다.”
“흠.. 그렇군요.”
사이비종교에서 나왔든 제대로 된 종교에서 나왔든 아무 상관없다. 그냥 놔두면 된다. 놔두면 그냥 있다가 사라지겠지.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밥으로 신경을 돌리자 벤센이 사진 몇 장을 내게 건넸다. 아. 좀. 밥 좀 먹자. 밥 먹고 이야기 하면 안 되냐.
“이건...”
사진에는 어떤 남자가 건물 옥상에서 대포만한 사진기를 들고 있는 게 찍혀 있었다.
“이 자 역시 순백교에서 보낸 자이며 지금 임시전당을 찍고 있습니다. 어제 발견했지만 행적을 조사해보니 이틀 전 시위대가 왔을 때 함께 온 걸로 보입니다.”
“노렸군요.”
시위대와 우리가 부딪히는 장면을 찍으려고 했던 거군. 말리길 정말 잘했다.
“딱히 우리가 피해를 준 적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걸까요. 교단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짐작 가는 게 있긴 합니다.”
대답은 김진서에게서 나왔다.
“저번에 순백교에서 사람이 나왔었습니다. 자기들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밑으로요?”
“네. 말은 다수의 핍박에 맞서 힘을 합치자는 거였지만 내용은 하부 교단으로 들어가 순백교의 지부가 되라는 거였습니다. 사제님을 순백교 교단 본부로 연수를 보내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유나를 자기 교단으로 연수 보내? 이런 미친 것들이 있나. 볼모를 잡겠다는 이야기잖아.
“그게 언젭니까.”
“한 달 정도 됐습니다.”
한 달... 얼마 되지 않았네. 대충 교도가 4~5만 정도일 때인가.
“그 뒤에도 계속 찾아와서 권유해서 화내면서 내쫓았습니다. 그때 교주님께서 벌을 내릴 거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웃기는군. 교주가 내리는 벌이 가짜 시위대를 보내서 자극한 다음 우리가 흥분해서 저지하면 그 장면을 촬영하려고 한 건가. 그걸 가지고 인터넷에 뿌리거나 어딘가에 제보해서 우릴 완전 폭력적인 사이비 종교로 매도했겠지.
“웃기는 인간들이군요. 그래도 종교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니.”
저기 시위를 나와 있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된다. 다들 순백교 신도일 것 아닌가. 자기 교주가 다른 교회의 이름으로 가서 시위하라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의심하고 안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모르겠다.
“그냥 놔두죠. 놔두면 알아서 흩어질 겁니다. 우리가 상대해주지 않는데 저들이 뭘 하겠어요.”
어제 비텔교 신도의 수가 25만 명을 넘었다. 매일 1~2만 명씩 늘어나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한 달이면 100만 명을 달성할 거다. 100만 명이면... 업계 각층에 우리 비텔교 신도가 존재할 것이고 그들의 도움을 조금씩만 받아도 순백교가 이렇게 대놓고 핍박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니 꼬투리를 주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버티기만...
“이게 끝이라면 제가 교주님께 오지 않았을 겁니다.”
벤센이 말을 이었다. 뭔 말을 더 하려고.
“뭐가 더 있나요?”
“네. 예전에도 순백교는 비슷한 다른 종교를 압박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이런 구린 짓을 하는 놈들이 한 번에 그쳤을 리 없지.
“그 동안 순백교의 연합 요구를 거부했던 교단이 두 곳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순백교에 흡수되었으며 교단의 핵심 간부 전원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행방불명. 갑자기 회개해서 교단을 넘기고 사라졌을 리는 없겠지.
“뭔가 폭력이 수반된 흡수과정이 있었겠군요.”
“네. 그럴 겁니다. 소문엔 순백교 성지에 그들에게 반한 자들을 죽여 묻는 매장지가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묻힌 사람의 수가 적어도 1,000명은 될 거라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에서 그게 말이 돼? 마음대로 죽여서 자기네 땅에 묻는다니. 경찰한테 안 걸리나?
“그게.. 가능한 겁니까?”
“순백교의 신도는 약 3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만 명의 힘이라면... 살인을 덮는 건 쉬울 겁니다.”
“30만 명이요?”
놀랐다. 내가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사이비 종교의 신도수보다 훨씬 많다.
사실 이때까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같은 양지의 종교만 경계했다. 그들이 우릴 적대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경계했었다. 사이비 종교는 신경도 생각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쉽게 볼 일이 아닌 거 같다. 다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
변화는 다음 날 바로 일어났다. 시위대의 수가 50명 정도로 늘어났다. 그것도 대부분 건장한 남자들이다. 뭔가 일을 벌일 모양이다.
일단은 신경 끄고 평소대로 행동했다. 신도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신도와의 만남은 예배실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방에서 이루어졌다. 별건 없고 의자만 11개 가져다놓고 한 번에 10명 정도씩 만나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하는 정도였다.
“교주님 정말 멋있으세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잘생겼다, 멋있다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 그런 건가 착각이 들 정도다. 흠... 5분 정도 지났나?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군요.”
“벌써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짧지만 어쩔 수 없다. 5분정도에서 끊지 않으면 매일 찾아오는 수천 명의 신도 중 반 이상은 날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거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조금만 더요.’, ‘에이~~.’ 등의 말을 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텔교 교도는 대체로 젊다. 처음 퍼지기 시작한 게 운동계 쪽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수십 명은 만난 것 같다. 그 중에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그룹도 10명 중 일곱 명이 20대였다. 젊은 사람이 많다보니 반응도 젊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다음에 시간이 좀 지나고 한가할 때 오시면 천천히 여유를 갖고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함께 기도하죠.”
기도하자는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는데 수백 번도 더 했더니 이젠 익숙하다. 어릴 때 잠깐 교회 나갔을 때 목사님들이 기도 참 잘하신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반복 학습의 결과였던 거야.
“비텔이시여.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이 못난 아들을 보겠다고 찾아온 아이도 있습니다. 부산에서 찾아온 미영, 남원에서 찾아온 선익...”
방금 만난 그룹의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기도를 이어나갔다. 유나에게 전수받은 노하우다. 이렇게 하면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좋아한다고 했던가.
우당탕탕탕. 와그그그그.
-사이비 종교는 물러가라!
-당신들은 속고 있습니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함께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난 전혀 동요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갔다.
“이들 모두가 자신이 원한 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들이 행복하도록 도와주소서.”
-악덕 교주는 물러가라! 악덕 사제 정유나는 물러가라!
내 이름은 모르나보다. 유나 이름만 부르는 걸 보니까.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신도들의 얼굴이 어둡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동이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저 자식들을 그냥...”
젊은 남자 중 하나가 욱하면서 튀어나갈 것처럼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우리가 화나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겁니다.”
“교주님...”
“다들 제가 어제 한 말 기억하시죠? 뭐라고 했죠? 절대..”
“다른 이들의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다들 합창하듯 똑같은 문장으로 대답했다. 어제 ‘비텔의 목소리’로 교육한 보람이 있군. 다들 잘 기억하고 있어.
“도발해오면?”
“한 발 물러나 그들이 자신이 하는 행동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라.”
초등학교 애들한테 뭘 가르치는 느낌이다. 좀 유치한 행동인데 다들 잘 따라줬군. 유치하다고 대답 안 해줬으면 무안했을 텐데. 착하다 우리 신도들.
“좋습니다. 그럼 나가서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동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볼까요.”
앞장서서 방을 나섰다.
“뭐야 이것들아! 그거 당장 치우지 못해!”
이미 그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걸 시작한 모양이다. 나도 함께 해야겠다. 걸음을 빨리해 순백교의 시위대가 난동을 부리는 곳으로 갔다. 이미 수백의 신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신도들이 자리를 비켜줬다. 덕분에 가장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이거 초상권 침해야! 콩밥 한 번 먹고 싶어!”
초상권은 무슨... 지들이 연예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니들 찍어봤자 어디에 팔아먹지도 못해. 뭔 놈의 초상권이야. 우린 그냥 범죄현장을 찍을 뿐이지. 기물파손 현장.
“아우씨. 이 악마의 자식들아! 너희들의 신이 이러라고 가르치더냐!”
아니. 교주가 가르쳤지. 내가 이쪽으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거든. 동영상 찍어서 돈도 번 적 있어. 대신 직장에서 잘렸지만.
“얼굴과 하는 행동이 다 보이게 찍어야 합니다. 주로 상반신을 찍으세요. 상반신만 제대로 찍어도 대부분의 행동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동영상을 찍는 신도들에게 팁도 줬다.
“아. 좀 꺼지라고!”
“당장 안 집어넣어?!”
역시 효과가 좋다.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얼굴 가리고 폰을 뺏으려고만 하고 있잖아. 물론 폰을 뺏으려고 한 행동은 전부 실패했다. 대부분 건장한 남성들이지만 이쪽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고 ‘군주의 위엄’에 의해서 신체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있는 상태다.
힘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지. 그리고 유나의 경호원과 NSA 요원들이 곳곳에 서서 저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뺏을 거야?
그리고 뺏는다 해도 여기 수백 명이 찍고 있는데 그걸 다 뺏을 건가?
당황해 한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저들 대부분이 녹음기나 몰카 장치를 갖고 있을 것이고 창문이나 열린 문틈으로 저 멀리 대포 카메라를 든 녀석이 이곳을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이미 차단됐다. 저들이 예배실로 들어오자마자 경호원과 요원들이 문을 닫고 창문에 커튼을 쳤으니까.
저들이 가진 녹음기와 몰카도 전혀 소용없을 것이다. 거기에 찍힌 장면과 소리는 우리보다 저쪽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거니까. 좀 애매한 장면을 편집해서 우리한테 불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우리가 찍은 게 훨씬 더 많다.
“아이씨! 가자!”
결국 철수한다. 훗. 이겼다. 동영상 촬영은 언제나 옳다.
***
새벽 3시. 고요하기만 하던 임시전당으로 들어가는 도로 초입에 승합차와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승합차와 버스는 임시전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초입에 멈췄고, 그곳에서 100명에 가까운 건장한 남자들이 저마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내렸다.
< 131 밥그릇 싸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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