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성전사 vs 오크 >
우드득. 딱!
“크흐..”
이 맛이다. 씹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가 뼈를 부수고 이와 이가 만나며 내는 이 충격. 이래야 제대로 된 음식이지.
“매일 리자드맨 로드가 덤벼왔으면 좋겠군.”
리자드맨 로드는 생긴 건 물렁물렁한 살을 가진 멧돼지처럼 생겼으면서 피부부터 살, 뼈까지 전부 쫀쫀하고 단단하다. 그걸 씹어 먹는 맛은 큰 뿔 누의 앞다리보다도 뛰어난 부분이 있다.
“뭐가 매일 덤벼왔으면 좋겠군이냐! 죽을 뻔 했잖냐! 그락카르!”
노르쓰 우르드가 드물게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죽을 뻔 했다니.
“누가 죽을 뻔 했지?”
“형제 말이다. 형제!”
“나 말인가?”
“그렇다!”
이해가 안 되는군. 내가 죽을 뻔 했다니.
“그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은 왜 짓는 거냐. 형제 몸을 봐라.”
내 몸? 여기 저기 베이고 피를 좀 흘리고 있을 뿐이다.
“형제가 흘린 피로 목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흘린 피로 인해 밑에 웅덩이가 생길 정도다. 아무리 대족장이 되었다고 해도 형제들 없이 수천의 리자드맨에게 홀로 덤비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냐.”
“전사에게 이 정도 상처는 당연한 것 아닌가. 난 이정도 상처를 입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전사에게 상처는 명예의 상징이다. 역시 주술사는 우리 전사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군. 한창 싸우던 중 만난 미흐로크는 멋진 상처라고 칭찬해줬는데 말이다.
“전사들이 무모하다는 것은 알지만 특히 형제는... 카학? 상처가... 없군. 어떻게 된 거지?”
“아. 이거 말인가. 그냥 나았다.”
“그냥 나았다고?”
“맞다. 그냥 나았다.”
싸움 중에 얻은 상처가 싸우는 중에 아물었다. 내가 형제들에 비해 상처가 빨리 낫는 신체를 갖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 그렇군. 불굴의 의지 때문이군.”
불굴의 의지라면 전에 대족장이 되면서 얻은 능력이다. 가진 힘에 비례해 재생력을 올려준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효율이 훨씬 좋은가 보군. 역시 대족장이 되면서 얻은 능력답다. 이제 단시간에 죽을 정도의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 형제가 죽는 일은 없겠군. 그걸 알고 홀로 돌격한 건가?”
사실 지금 노르쓰 우르드가 말해주기 전에는 몰랐다. 그냥 오늘은 회복이 좀 빠르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냥 대답하지 말자. 몰랐다고 대답했다간 귀찮아질 거 같다.
“아까 싸우는 것 봤는데 역시 강하더군. 노르쓰 우르드.”
“... 말 돌리는 걸 보니 몰랐군.”
... 노르쓰 우르드는 너무 똑똑하다. 다른 형제라면 강함을 칭찬하면 좋아하며 넘어갔을 텐데.
“난 안 죽는다. 오르히 정도의 강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약한 놈들만으론 날 죽일 수 없다.”
방금 알았지만 전투 중 입은 상처를 전투 중 회복할 정도의 재생력, 인간에게서 얻은 ‘착취하는 손’으로 인한 체력의 무한 수급. 약한 녀석들만 상대여선 몇 명이 상대든 내가 이긴다. 시간은 좀 오래 걸릴 수 있겠지만.
그런데 오르히 같은 강자가 상대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처음 오르히를 만났을 때 느꼈던 충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아직도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진다. 그때 결투를 했을 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기까지 했었으니까.
물론 그 뒤에 여러 능력을 얻고 강해지긴 했지만 오르히는 그때 어떤 능력도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날 상대했었지. 궁금하긴 하다. 오르히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을지 말이다.
“말해봤자 듣지 않겠군. 다른 이야기나 하자. 아무래도 호수 쪽에 전사들이 사는 구역을 만들어야겠다.”
“호수 쪽에는 왜...”
“방금 리자드맨들이 호수를 통해서 공격해왔지 않나. 호수 가까이 부락을 만드니 생선을 잡기는 편한데 리자드맨의 공격에 너무 취약해졌다. 물은 리자드맨의 터전이니까.”
그건 그렇군. 리자드맨이 육로로 공격해왔다면 이렇게 가까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발각됐을 것이다. 방금 전처럼 내가 부락 내에서 리자드맨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없었겠지.
“호수 쪽에 전사들이 사는 구역을 만들어놓으면 습격을 당해도 암컷과 아이들보다 전사들이 먼저 당할 것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렇게 하자.”
전사들이 서로 거기에서 지내려고 할 거 같다. 나도 거기 살아야겠다.
***
보름이 흘렀다.
이곳으로 부락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리자드맨의 첫 습격이 시작된 후로 3~4일에 한 번씩 리자드맨이 습격해왔다. 정말 최고다. 찾아갈 필요 없이 찾아오는 적들이라니.
분명 여기 오기전에 노르쓰 우르드가 리자드맨이 끝없이 공격해올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전멸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 호수에서 모습을 드러낸 내 눈에 보이는 적의 수만 2만 이상이다. 그럼에도 끝나지 않고 호수에서 끝없이 새로운 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부락 전사의 수가 1만이 조금 안 된다. 이미 우리의 두 배 이상. 끝없이 등장하는 적의 숫자를 보면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던 싸우다 전멸 당하는 날이 오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흐..”
적어도 정말 즐거운 싸움을 할 것 같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이라니. 카록이 약속한 죽음 이후의 세상도 이보단 좋을 수 없을 거다.
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리자드맨 로드가 울음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울음소리에 담긴 힘이 제법이다. 저번에 대족장이 되기 위해 싸울 때 만났던 로드보다는 약한 것 같지만 그래도 최근 만난 로드 중에는 최고의 강자 같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리자드맨 로드가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듯, 나도 외침을 통해 내 존재감을 알렸다.
나와 로드를 따라 외치는 형제들과 리자드맨의 고함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형제를 따라온 것은 내가 살면서 한 결정 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캅카스가가 말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나도 마찬가지다.”
미흐로크도 똑같이 말했다. 역시 전사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
“이번엔 적의 수가 많으니 육지로 올라올지도 모른다. 기다렸다 싸우는 게 좋겠다.”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그를 바라봤다.
“...라고 생각했지만 형제의 얼굴을 보니 지금 돌격할 생각이군.”
“크흐.. 역시 노르쓰 우르드. 똑똑하다.”
어찌 저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는지.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대로 땅을 박차고 리자드맨을 향해 돌격했다.
구워어어어어억!
구오오오오오오!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
모든 형제들이 나를 따랐다.
***
우드드득. 딱!
크흐.. 리자드맨 로드의 고기는 언제나 별미다. 3만이나 되는 리자드맨 전사들을 이끈 로드답게 더욱 단단하고 쫄깃하다.
별미도 별미지만 격렬한 싸움 뒤에 먹는 적의 시체가 특히 더 맛있다. 방금 전까지 나와 격하게 싸우던 적을 떠올리며 하는 식사의 맛이란... 이런 맛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들만 알 수 있는 거다. 전투에 나서지 않는 암컷과 장인들은 평생 모르겠지. 정말 불쌍하다.
“이상하다.”
“뭐가 말이냐.”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설마 다른 리자드맨 맛이 이상하다고 로드를 나눠달라고 온 건 아니겠지. 슬쩍 로드를 노르쓰 우르드에게서 먼 쪽으로 밀었다.
“왜 도망치지 않는 걸까.”
“도망? 리자드맨 말이냐?”
“그렇다.”
그러고 보니... 원래 리자드맨은 도망을 잘 친다. 싸우다가 질 거 같으면 뒤돌아서 도망가는 게 특기인데 오늘은 호수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그리고 암컷도 많고, 어린 전사들도 많았다.”
그것도 그렇군. 그런데 리자드맨의 암컷, 수컷 구분은 나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노르쓰 우르드도 할 수 있었군.
여하튼 생각해 보니 오늘 습격해온 3만의 리자드맨의 구성이 이상하긴 했다. 암컷과 어린 전사의 참여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군. 그래서 약했어.”
분명 방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형제들의 피해도 컸다. 거의 4,000정도 죽었으려나?
하지만 3만이나 되는 리자드맨과 싸운 것 치고는 피해도 적고 쉽게 이겼다. 싸우기 직전엔 오늘 카록의 곁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과는 달리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 없이 싸웠던 것 같다.
“특이하긴 하군. 암컷과 어린 전사들이 대거 포함된 도망치지 않는 리자드맨이라니.”
“뭔가 도망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유? 리자드맨이 도망칠 수 없는 이유도 있나?”
그 비겁한 족속들은 유인을 위해서든, 살기 위해서든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인데 말이다.
“어쩌면 이대로 도망쳐봐야 무조건 죽는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도망치지 않겠지.”
“흠.. 물에 들어가면 우리는 못 쫓아갈 텐데 그걸 모른 건가?”
“우리가 무서운 건 아니었을 거다. 우리가 무서웠다면 애초에 덤벼오지도 않았겠지.”
우리가 아니라고? 노르쓰 우르드가 호수 너머의 북쪽을 바라봤다.
“저 너머에 리자드맨이 우리에게 덤벼들 수밖에 없게 만든 무언가가 있을지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노르쓰 우르드의 시선을 따라 호수 너머를 봤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우드드득. 딱!
로드의 고기를 씹어 먹었다. 역시 맛있군.
“걱정되지 않나?”
“걱정? 저 너머에 리자드맨이 무서워하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걱정 말인가?”
“그렇다. 리자드맨이 감히 덤벼들 생각도 못하고 도망치게 만드는 무언가.”
우드득. 콰작. 로드의 뼈를 씹으며 생각했다. 그런 게 있다면...
“크흐.. 꼭 만났으면 좋겠군.”
얼마나 좋을까.
***
인구가 1만에 달하는 마을의 로드인 아즈는 도망치는 동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대가 ‘죽지 않는 자’의 권속이긴 하지만 숫자가 100도 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거대 괴물 100이라 할지라도 그 수라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 마을의 로드를 설득해 전력을 끌어 모았다. 150살이 되지 않은 젊은 로드들은 아즈에게 설득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로드들은 전부,
‘죽지 않는 자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라고 하며 남쪽으로 도망쳤다.
‘멍청한 겁쟁이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아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남쪽엔 수십만 오크가 들어와 터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 강력한 마넨이 졌을 정도로 강력한 전력의 오크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오크와 싸울바엔 100마리의 거대 괴물과 싸우는 것이 훨씬 편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미 모은 3만의 동포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즈의 마을은 리자드맨 영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편, 길을 잃고 흘러든 거대 괴물 몇 마리하고 이미 싸워본 전적이 있다. 거대 괴물 1마리에 200의 동포면 충분하다. 100마리라고 했으니 이미 전력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산이었다.
우우우웅. 쾅!
“왜! 왜 내 공격이 아무 소용없는 거냐!”
아즈가 공포가 가득담긴 고함을 질렀다.
그에게 다가오는 검은 갑주를 입은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공격을 행하고 있는데 상대는,
쿵. 쿵. 쿵. 쿵.
어떤 타격도 입지 않고 그대로 공격을 받아내며 일정한 속도로 다가올 뿐이었다. 마치 아즈의 공격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왜!”
우우우웅. 쾅!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해 가한 공격이 검은 갑주에게 도달했지만 역시나 소리만 요란할 뿐 검은 갑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분이..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넌.. 넌 도대체 뭐냐!”
아즈의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질문대신 검은 갑주는 검을 치켜들었다.
‘늙은이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어.’
아즈가 곧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릴 검을 보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난.. 인내의.. 성전사.. 그분의.. 방패.. 벤 자칸이다.”
그 말과 함께 검이 아즈를 향해 쇄도했다.
< 128 성전사 vs 오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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