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돈과 권력 >
-다시 말하지만 놈들의 이동만 방해하면 된다! 놈들을 응징하는 것은 교단의 수호자가 할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 쉬고 있던 홍성창이었지만 유나가 납치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다시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떤 천벌을 받을 놈들이 사제님을...’
“아빠. 저도 갈게요.”
방문을 열고나오니 아들이 거실에서 옷 다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한테 맡기고 들어가 있어라.”
홍성창의 아들은 이제 중학생이다.
“아니. 유나님이 납치당했는데 어떻게 가만있어요.”
“이름 말고 사제님이라고 불러.”
잠깐 실랑이가 이어졌다. 아들에 이어 부인까지 합류해 나가겠다고 하는 걸 이러다가 사제님 구하러 못 간다고 사제님 납치당하면 책임 질 거냐는 말까지 해서 겨우 말리고 혼자 나왔다.
그의 밥줄인 트럭에 타고 시동을 거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최씨였다.
“어. 최씨.”
-지금 나갈 거지?
“당연하지. 지금 차 탔어.”
-그럼 난 xx번국도 쪽으로 갈 테니까. 홍씨가 경부로 가봐. 홍씨 집이 경부에서 가깝잖아. 양씨는 oo번국도로 간데.
“오케이. 알았어.”
-발견하면 밴드에 바로 글 올리고 홍씨도 밴드 알림 켜놓고.
“알았어.”
홍성창의 직장 동료 모두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채팅 프로그램 한두 개는 항상 사용하고 알림을 켜둔다. 동료들에게 부업을 알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애들 키우려면 월급만 받아서는 힘들다.
그래서 다들 퇴근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뛰고 그에 대한 정보를 채팅 프로그램에 공유한다. ‘나 바빠서 여기 못가는 데 갈 사람 있으면 가봐.’란 식으로 일거리를 공유하는 거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익혔던 채팅 프로그램이 지금 이 순간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밴드의 대화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zz번 갑니다.
-난 xx번.
-강남 순환 갈게요.
-전 oo번입니다.
홍성창도 짧게 몇 마디 적었다.
-전 경부 갑니다.
이미 늦은 시간인데다가 고속도로를 한 번 타면 집에 늦게 돌아오게 되겠지만 그런 건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검정색 안드로마인.. 안드로마인..’
아직 고속도로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 있는 차란 차는 전부 훑어 봤다. 밤이라 멀리 있는 차는 잘 안보였기에 더욱 집중해야했다. 곧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홍성창은 차의 속도를 줄였다. 빠르게 달리다가 혹시 못보고 놓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앙!
“야이. 개새끼야! 여기가 놀이터냐!”
차 몇 대가 지나가면서 홍성창을 욕했지만 그는 누가 자신을 욕한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어디 있냐... 어디 있어...’
온 신경을 검정색 안드로마인을 찾는데 집중한 탓이다.
“어. 잠깐.”
저 멀리서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차량이 있었다. 검정색 안드로마인이었다.
‘어떡하지?’
갈등됐다. 계속 찾아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찾아낸 다음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탓이다.
‘저게 맞는 건가?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뭔가를 하려고 해도 저게 유나를 납치한 차가 아닌 다른 차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났다. 그렇게 갈등을 하고 있는 중,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한다. 무모한 일은 하지 마라. 너희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한상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시발. 교주님과 사제님은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데 뭘 망설이고 있는 거냐.”
홍성창의 눈에 중앙선이 들어왔다. 마침 시멘트나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곳이 아닌 빨간 플라스틱 경고만 있는 곳이었다. 잘됐다고 생각했다. 악셀레이터를 세게 밟고 핸들을 확 틀었다.
덜컹.
중앙선을 넘어가 자신이 본 검정색 안드로마인이 달리는 앞에 차를 갔다댔다. 그리고 충격에 대비해 좌석에 몸을 딱 붙였다.
쿵.
“윽.”
생각보다 살짝 박혔지만 옆에서 박혔기에 충격이 더 컸고 머리를 창문에 부딪쳤다.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어 안드로마인을 주시했다. 창문 안의 상황을 보려했지만 선팅을 얼마나 짙게 해뒀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달칵.
안전벨트를 풀고 보조석으로 옮겨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안드로마인에 최대한 가까이 갔다. 어느 정도 차 안이 보이려고 할 때,
끼익.
홍성창이 가로막은 안드로마인 옆에 똑같은 모양의 안드로마인이 멈춰 섰다. 두 안드로마인 모드 옆문이 열렸고 홍성창이 가로막은 차에서 한 외국인이 어린 여자를 둘러메고 나와 차를 갈아탔다.
“이 천벌 받을 놈들아! 사제님은 놓고 가라!”
홍성창이 흥분해서 소리치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안드로마인에 막혀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급히 운전석으로 다시 가서 문을 열고 내렸지만 유나를 태운 차는 이미 자리를 떠난 후였다.
홍성창이 남아 있는 안드로마인과 운전자를 보며 갈등했다. 이 차를 잡아둬야 할 것인가 유나를 태운 차를 쫓아가야 할 것인가. 답은 금방 내려졌다. 눈앞의 납치범을 두드려 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유나를 되찾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십새끼. 나중에 보자!”
“STOP!”
안드로마인의 창문이 내려가고 그 틈으로 이드릭의 대원이 홍성창에게 총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개 좃이다! 쏴 이 개새끼야!”
이미 눈앞에서 유나가 납치당하는 것을 본 홍성창은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총을 무시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대원이 망설이는 틈에 차에 탄 홍성창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거치되어 있는 폰의 채팅창을 열심히 두드렸다.
-반견어기경부3ㄱㅅ
급하게 누른 터라 오타가 난무했지만,
-경부? 좋아 간다. 놓치지 마.
-빌어먹을 놈들. 가서 다 죽여 버린다.
-개새끼들. 우리 사제님 몸에 난 긁힌 상처 하나당 칼빵 하나씩이다.
채팅방에 있는 모두가 알아들었고, 그들은 바로 경부 고속도로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직장동료 외에도 평소에 알고 있던 다른 신도들에게도 연락했고 그들을 통해 유나를 찾으러 나왔던 모든 신도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미군 부대로 향하는 길목으로 순식간에 수백 명의 신도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차로 길을 막아 차량 한두 대만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놓고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했다.
들키고 나서 혹시 차량을 바꿔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신도 중에는 경찰도 꽤 있었고,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한상의 말을 듣고 순찰차 채로 달려온 사람들 덕에 순찰차 여럿이 멈춰 서서 경고등을 번쩍이니 정식 검문소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 미친놈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이드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비 종교의 사제 한 명을 납치했다고 고속도로까지 막아버릴 줄은 몰랐다. 유나를 지키던 김해역이 마지막 난관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차를 버린다.”
이드릭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됐다. 멈추지 않고 달려서 저기를 돌파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저걸 돌파했다고 저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차 수백 대가 그들을 쫓아올 텐데 그걸 뚫어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들키기 전에 산에 가서 움직이는 게 낫다. 그곳에선 일반인인 저들이 자신들을 쫓아오기 힘들 것이다.
‘아쉽군. 파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더 쉽게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탈력감이 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신체능력이 갑자기 10%이상 떨어지니 독에 중독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설마 파문이 가능할 줄이야.’
아니. 가능하다하더라도 자신은 몰라도 대원들에 대한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을 텐데 정확히 전부 파문 시키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다.
‘정말 신의 능력 일지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드릭과 대원들이 차를 버리고 떠나고 1분 정도 흘렀을 때, 경부 고속도로를 거슬러 올라오던 신도의 눈에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검정색 안드로마인 두 대가 들어왔다. 그는 즉시 사람들에게 연락했고 순식간에 수십 대의 차가 몰려와 안드로마인 두 대를 에워쌌다.
수십의 신도가 용기를 내서 그 차에 다가갔다. 하지만 차는 이미 비어 있었다.
“차를 버리고 산으로 간 게 틀림없어!”
신도들도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선두는 중요하다. 길을 개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야했다. 그래서 이드릭이 가장 앞에 섰다. 그가 계속 선두에 서서 달리고 세 명의 대원이 번갈아가며 유나를 업고 달렸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라 길이 험했다. 이드릭은 길을 개척하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후욱. 휴식은 없다.”
“훅. 훅.”
“하아. 하아.”
“헉. 헉.”
대답 대신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거면 충분하다.
“후욱. 부대까지만 가면 된다.”
“훅. 훅.”
“하아. 하아.”
“후욱. 그러면 바로 수송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수 있다.”
“훅. 훅.”
“후욱. 체력 훈련이라 생각해라.”
이드릭이 이상한 점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는 어찌어찌 줄인다고 해도, 자신이 이렇게 숨을 몰아쉴 정도로 달리고 있는데 뒤따라오고 있는 대원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감히 뒤돌아 볼 용기가 들지 않았다.
-감이 좋네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놀랐다. 산속에서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드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은 듯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대원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음. 당신은...
오하넬은 이드릭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이대로 손을 뻗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저 멀리서 느껴지는 강한 생명력. 김해역이 오고 있다. 금방이라도 폭발 할 것 같은 성질의 생명력.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다른 이를 대상으로 한 분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다.
유나를 지키지 못한 것과 교주의 명을 따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그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좋겠네요.
이대로 오하넬이 이드릭마저 처리하면 김해역에게 남는 것은 실패뿐이다. 그건 좋지 않다. 이제 막 시작한 성전사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교단의 젊은 성전사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줘야 하니까요.
김해역이 성장하는 것이 한상에게 도움이 된다. 오하넬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드릭은 감히 그 말을 거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허억. 허억. 허억.”
김해역이 도착했다. 그 혼자였다. 축복을 받은 그가 숨을 몰아쉴 정도로 달려왔다. 당연히 모두가 뒤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수호자님.”
그가 도착해 본 것은 유나를 안고 있는 오하넬과 뒤로 돈 채 마네킹처럼 서 있는 이드릭의 모습이었다.
-젊은 성전사.
“네. 수호자님.”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세요.
오하넬이 턱짓으로 이드릭을 가리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 성전사를 이기면 놔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드릭이 몸을 돌렸다. 그제야 오하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 이젠 놀랍지도 않군.”
오늘 짧게 비텔교를 상대했지만 놀라운 광경을 너무나 많이 봤다. 그 덕분인지 하늘에 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봤음에도, 분명 죽기 직전의 상처를 입었던 상대가 멀쩡하게 눈앞에 서 있음에도 놀랍지 않았다.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날 싫어하는 건 알겠군.”
김해역은 이드릭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파문당해 ‘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의 효과를 잃어버린 이드릭은 김해역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말속에 가득한 적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드릭이 품에서 권총 두 개를 꺼내들었다.
둘은 잠시 말없이 대치했다. 잠시 후, 먼저 움직인 것은 이드릭이었다. 그가 빠르게 권총을 들어 김해역을 겨누고 발사했다.
퓨퓨퓨퓽.
하지만 김해역은 그곳에 없었다.
“빌어먹을. 휴먼빅뱅의 파편인지, 신의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난 좃됐군.”
“맞아. 좃됐어.”
뒤에서 김해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각.
김해역의 팔꿈치가 이드릭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 124 돈과 권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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