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돈과 권력 >
조용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사람들이 스스로 입을 막고 날 지켜봤다.
손이 김해역의 몸에 닿았다. 보라색 빛이 김해역의 몸에 닿았지만 빛의 폭발이라든지, 큰 효과음이라든지. 이렇다 할 화려한 모습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조금씩 퍼져나가 김해역의 온 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조금씩 김해역의 몸에 스며들었다.
“오..오오.”
“쉿.”
누군가가 놀랐는지 탄성을 내뱉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했기에 크게 들렸고 옆에 있던 사람이 조용히 하라 눈치를 주자 바로 입을 막았다.
놀랄만하다. 그들로선 사람의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치유되는 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사실 나도 한상으로선 처음 본다. 그락카르로선 축복을 받거나 ‘성난 자의 외침’을 쓸 때 치유되는 것을 종종 봤었지만 말이다.
김해역의 몸은 얼마나 격하게 저항했는지 상처투성이였다. 적이 칼도 썼는지 찔리고 베인 상처가 온 몸에 있었고 총알 자국도 7개나 있었다. 아무리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 상처를 입었는데 아직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성전사라서 축복이 특별히 신체능력 향상에 집중된 건가?
여하튼 그 많은 상처들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베이고 찔려서 벌어진 상처가 다시 달라붙고, 총알에 뚫린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 구멍을 메웠다.
따랑.
새살이 구멍을 메우며 총알까지 밖으로 밀어나 바닥에 떨어졌다.
“비텔이시여!”
“기... 기적이다. 교주님께서 기적을 행하고 계셔.”
“비텔이시여. 믿습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텔님을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든 말든 난 줄어드는 보라색 빛을 보면서 난 다시 생명력을 쥐어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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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전이 : 시전자의 생명력을 대상에게 전달해 체력과 부상을 회복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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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능력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내 생명력을 김해역에게 전달하는 것뿐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 생명력이 지구의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할 거라는 사실이 말이다.
비텔님께 여러 번 축복받고, 그락카르의 생명력까지 전해받은데다가 ‘이끄는 자’가 되면서 신체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정말 확신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는 그 누구도 나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자가 없을 것이란 걸 말이다.
덕분에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던 김해역의 상처를 치유할 정도로 생명력을 밀어 넣고 있는데도 아직 상당히 여유가 있다.
“밑에 이가한씨도 이쪽으로 옮겨오세요.”
“아. 네! 네! 알겠습니다!”
기도에 빠져있던 신도들 중 반 이상이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밑으로 내려갔다. 몇 명만 내려가면 될 텐데 뭐 저리 많이 내려가나. 곧 이가한을 데리고 올라왔다.
“옆에 눕히세요.”
신도들은 내가 가리키는 곳에 이가한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상처는 김해역보다 적었지만 이가한은 일반인이다. 김해역보다 훨씬 위중해보였다. 그런데 이 사람 상당히 터프하다.
“커.. 커헉. 빨..리 가서.. 커컥. 사..제님을 구하..라니까. 여기..서 다 뭣들 하..는 거야.”
죽기 직전인데도 눈을 부릅뜨고 유나를 구하라고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다. 비텔교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 절대 죽어선 안 돼. 당신은 비텔교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왼손을 들었다. 김해역의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다. 왼손에도 보라색으로 빛나는 생명력이 모여들었다. 곧바로 이가한의 몸에 손을 올렸다.
“으음...”
생명력이 양쪽에서 빠져나가니 약간의 탈력감이 느껴졌다. 상당히 효율이 좋지 않은 스킬이다. 내 생명력 3이 빠져나가면 1만큼 치유를 하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이 스킬을 사용했다면 김해역을 살리기 위해서 3~4명은 달라붙어야 했을 거다.
“이제 괜찮습니다. 교주님. 그만하셔도 됩니다.”
김해역이 많이 괜찮아졌는지 더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난 손을 떼지 않았다. 이왕 생명력을 주기 시작한 거, 완치 될 때까지 줄 생각이다.
내가 멈추지 않자 김해역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내가 힘으로 눌러 다시 눕혔다. 김해역이 잠깐 발버둥 쳤지만 겨우 한 번 축복받은 몸으론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
“놔 주십시오. 가야 합니다.”
“어디 가려고.”
“사제님을 구하러... 교주님의 명을 완수하러 가야합니다.”
또 가서 죽으려고? 김해역은 비텔교의 첫 번째 성전사다. 아직 부족하지만 앞으로 성장해서 비텔교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가만히 있어라.”
“제가 있었음에도 적에게 사제님께서 납치당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놔 주십시오! 교주님!”
다시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다. 내 손을 벗어나려면 가서 축복 다섯 번쯤 더 받고 와라.
“기다려라. 가도 몸이 완전히 나은 후에 움직여라.”
김해역이 계속 가야한다고 소리치며 발버둥 쳤지만 무시했다. 괜히 반송장 보내서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
“벤센!”
“네! 교주님!”
문 밖에 서 있던 벤센이 대답하며 달려왔다.
“놈들은 미군 부대로 가겠죠?”
“네. 그럴 겁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그곳 말고는 사제님을 데리고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혹시 놈들이 탄 차의 번호나 종류 같은 거 모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위성사진으로 주변을 살피라고 해뒀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부 인원 전부가 달라붙었으니 1~2분 안에 알아올 겁니다.”
놈들이 탄 차의 종류를 알아내는 건 중요하다. 벤센이 꼭 찾아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더 커질 거다.
“오하넬.”
-네. 사도님.
오하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하넬을 처음 본 신도들이 놀랐다. 어떤 이는 오하넬을 ‘천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아직도 제 곁을 떠날 수 없나요? 전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이들로는 사도님을 지킬 수 없어요.
“... 다시 말하지만 전 안전합니다. 가주세요.”
-하지만...
“가주세요. 이대로 유나가 납치당한다면 당신을 미워할지도 모릅니다.”
유나는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아이다.
처음으로 비텔님의 힘을 사용해 암을 치료해줬고, 비텔님의 첫 번째 신도가 되었다. 처음 다른 사람들에게 비텔교를 전도한 것도 그 아이고,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내 대신 나서 비텔교를 이끈 것도 그 아이다.
그 아이를 만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진짜 내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 동생... 아니 낳아본 적 없는 딸 같은 아이다. 그런 아이가 사람을 쉽게 죽이고 납치하는 사람들 손에 있다.
그 아이를 절대 잃고 싶지 않다.
-...
오하넬은 여전히 말이 없다. 다시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가주세요.”
-... 알겠어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사도님께선 절대 이곳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벤센. 이드릭의 사진을 다시 보여주세요.”
-괜찮아요. 아까 보고 외웠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당신들... 목숨 바쳐 사도님을 지키세요.
신도들이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본 후에야 오하넬이 몸을 숨겼다.
“후..”
이제야 조금 안심된다. 오하넬이 간 이상 걱정할 게 없다. 그 누구도 오하넬을 막지 못한다. 오하넬에게는 현대의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으니까. 이드릭이 미군 부대로 들어가 미군 전원과 함께 대항한다고 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오하넬이 간 이상 유나를 구해오는 건 확정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사건이 커진 상태에서 유나를 구하냐는 거다.
이드릭과 유나가 미군 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오하넬이 따라잡지 못하면 문제가 한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드릭과 그의 부하들은 한국에 몰래 들어온 것이니 죽여서 처리한다고 해도 정식으로 문제제기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미군이 한 명이라도 이 사건에 말려들어 죽거나 다치는 순간 우리와 글렘의 문제가 아닌 미국과 한국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 비텔교는 안 좋은 이미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지.
그래선 안 된다.
“찾았습니다. 교주님.”
마침 벤센이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임시전당에서 5km정도 떨어진 곳에서 두 대의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벤센이 자신의 폰에 띄운 사진을 보여줬다. 위성사진이라서 화질이 좋진 않았다.
“이게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벤센이 대답하며 사진을 넘겼다.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 네 개가 승합차에 접근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20분 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확인해보니 이곳에 쓰러져 있는 적의 수는 일곱 명. 합치면 아까 교주님께서 말한 11명이 됩니다. 이 사진에 보이는 자들이 이드릭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것이 사제님 일 겁니다.”
벤센이 사진을 확대했다. 4명 중 하나가 누군가를 업고 있었다.
다행이다. 20분. 여기서 미군 부대까지는 약 1시간 거리. 오하넬이라면 40분 안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스킬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합니다.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합니다.
전달할 내용을 직접 말해주세요.
“모든 비텔교도에게 알린다! 사제 유나가 적에게 납치되었다!”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했습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213,654가 차감되었습니다.
“차 종류가 어떻게 되죠?”
“검정색 안드로마인입니다.”
안드로마인.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차다. 잘 됐다. 더 눈에 잘 띄겠지. 이어서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
“납치범들이 탄 차는 검정색 안드로마인! 두 대가 함께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임시전당을 20분 전에 떠났으며 미군 부대로 향하고 있다!”
“무슨 수를 쓰든 상관없다! 그들의 이동을 방해해라!”
“그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나 법적 과실은 교단에서 모든 힘을 다해 책임져 줄 것이다!”
“놈들은 총을 들고 있으니 위험한 일은 하지 마라!”
“다시 말하지만 놈들의 이동만 방해하면 된다! 놈들을 응징하는 것은 교단의 수호자가 할 것이다!”
순식간에 150만 포인트가 사라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한 것이라도 쓸 수 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이 오고 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적들이 공격 중일 때 도착했다면 반가웠겠지만 다 끝난 후에 오는 경찰은 불청객이다.
“경찰은 돌려보내세요. 이일은 우리가 처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신도 몇이 밖으로 나갔다. 경찰을 돌려보내는 것은 쉬울 거다. 우리가 아무 일 없다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할 거야. 맹연이 허위 신고로 처벌 받을지도 모르겠군. 뭐. 끽해야 벌금이겠지. 돈은 썩어난다.
“이제 그만 놔 주십시오. 전부 나았습니다.”
김해역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놔주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다 나았다. 생명력 전이. 효율은 극악이지만 치유력은 괜찮은 것 같다. 그 다 죽어가던 김해역을 저렇게 쌩쌩하게 살려내다니.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여줬다.
“가라. 벤센. 김해역과 함께 가보세요. 가서 뒤처리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해역. 올 때는 무조건 유나와 함께다.”
“네!”
NSA 요원들과 김해역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젠 정말 맡기는 수밖에.
***
‘피해가 너무 컸다.’
작전지의 방해물 대부분 일반인인데다가 이제 갓 초능력을 얻은 여자 아이 한 명 납치하는 일이라 쉽게 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피해를 입었다.
‘일곱이나 당하다니.’
원래는 당한 대원들의 시체도 전부 가져와야 하지만 살아남은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 미국으로 돌아간 후 준비해서 2차 작전을 진행해야겠군.’
원래는 유나를 미군 부대로 데려가 심문해서 교주의 위치를 알아낸 다음 교주까지 납치해서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나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 피해를 입었다. 어쩌면 지금 인원으로는 교주에게 갔다가 역으로 당
할지도 모른다.
이드릭이 수면제를 맞아 잠든 유나를 바라봤다. 어린 여자애라고 우습게 봤다가 그 어린 여자애에게 한 명이 순식간에 당했다.
‘전기를 내뿜는 초능력인가.’
보자마자 마취총을 쏘고 마취되면서 쓰러지는 것을 잡아주려고 대원 한 명이 다가갔는데 육안으로 확인 될 정도로 큰 보라색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그를 감전시켰다. 전기를 뿜어내는 동안에는 감히 다가갈 생각을 못하다가 마취제 덕
분에 잠든 후에나 다가가 대원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죽어 있었다.
‘최상급이야.’
인간을 즉사 시킬 정도로 강한 전기를 뿜어내는 초능력. 세상에 없던 초능력이다. 이드릭은 정말 휴먼 빅뱅이 일어나 강력한 초능력자가 생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편이 이정도인데, 휴먼 빅뱅 당사자는...’
이드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는 라이플과 바주카를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끼이이이이익!
“어어. 저 미친 새끼가!”
운전을 하던 대원이 갑자기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앞을 봤더니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1톤 트럭 한 대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자신들 앞으로 넘어와 멈춰 섰다.
끼이이이이익!
대원이 있는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고,
쿵.
결국 부딪히긴 했지만 큰 충격은 받지 않는 정도에서 멈출 수 있었다.
< 123 돈과 권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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