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돈과 권력 >
“이 씨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덮쳐온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상황이지만 이가한은 놀라기는커녕 화내며 마주 달려들었다. 단순히 달려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달려들며 빠르게 상대를 살폈다.
‘칼.’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원래 좋았고 신체능력이 향상되면서 더욱 좋아진 눈은 그걸 포착해낼 수 있었다.
쉭.
침입자가 팔을 뻗었다. 정확히 이가한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이가한은 급히 몸을 옆으로 눕히며 피했다.
‘빠르..’
삭.
날카로운 날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친 것 치곤 상당히 깊은 상처가 났지만 이가한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어 침입자의 양팔을 잡았다. 침입자가 힘을 줘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침입자의 팔을 잡은 이가한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손.
이가한이 조직폭력배 사이에서 얻은 별명이다. 사람을 한 손으로 집어던지는 괴력을 가졌다하여 삼손을 변형시켜 붙었던 별명이다. 그는 비텔교에 들어와 더욱 강해진 힘으로 침입자를 단단하게 잡고 놔주지 않았다.
“칼은 시댕아.”
퍽!
그대로 침입자의 얼굴에 박치기를 했다.
“크윽.”
침입자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무릎으로 이가한의 허벅지를 찍었다. 급소이기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가한은 여전히 침입자를 잡은 팔을 놓지 않았다.
“빗나가면,”
퍽!
“끝이야. 시댕아.”
퍽! 퍽! 퍽! 퍽!
연이어 이가한의 박치기가 침입자의 얼굴에 작렬했고 버티며 발로 이가한을 치던 침입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후욱. 후욱. 후욱.”
이가한이 침입자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침입자는 실 끊긴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시발. 존나 아프네.”
이가한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리를 쩔뚝이며 유나의 집으로 향했다. 순찰을 돌고 있어서 혼자긴 하지만 방금 자신이 질렀던 소리라면 벌써 누군가가 달려왔어야 한다. 그 외에도 순찰을 도는 인원이 둘 더 있고 유나의 집을 지키는 사람이 넷이나 있었으니까.
이 고요한 밤에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 없는데 그들이 오거나 무전으로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않는 것은...
“빌어먹을.”
굳이 무전을 들어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정말 다른 경호원들이 침입자들에게 제압당했다면 무전을 사용하면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 적이 경계하게 할 뿐이다.
“이 새끼들은 귀머거리야. 뭐야?”
이가한이 괜히 다른 경호원들을 욕했다.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거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쩔뚝이며 겨우 도착한 유나의 집 외곽엔 쓰러져있는 경호원들의 모습과 활짝 열린 문만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잠깐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임시전당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경찰이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10분은 걸릴 터. 그 전에 모든 상황은 마무리 되어 있을 것이다.
“후우.... 후우.. 후..”
이가한이 숨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여전히 고통이 느껴지는 무릎도 한 번 주물렀다. 지금 저 집안엔 얼마나 많은 적이 있을지 모른다. 흥분해서 숨이 거친 상태로 들어갔다간 제 실력도 내지 못하고 당할 가능성이 높다. 아주 잠깐이라도 몸 상태를 점검해서 최상의 상태로 들어가야 유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텔이시여. 제가 사제님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비텔에게 짧게 기도한 이가한이 유나의 집으로 진입했다.
***
집밖으로 달려 나갔다. 맹연, 벤센과 요원들이 쫓아 왔다.
“임시전당에 요원을 배치해두셨다고 하셨죠? 당장 유나를 지키라고 하세요.”
“네!”
내 행동에서 심각함을 느낀 건지 별다른 의문 없이 시키는 대로 바로 행동했다.
“넌 경찰에 신고해 임시전당에 조직폭력배 30명이 쳐들어와서 난동피우고 있다고.”
외국 용병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쉽게 믿어주진 않을 터. 저렇게 신고하는 편이 나을 거다.
“저도 같이 가겠...”
“시키는 대로 해.”
“.. 알겠습니다.”
평소라면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설득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오하넬.”
-네.
오하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벤센과 레이먼, 얀타오가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무시했다. 오하넬에게 유나를 부탁해야겠다. 오하넬이라면 차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서 유나를 지켜주세요.”
-그럴 수 없습니다.“
“네?”
놀랐다. 오하넬이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저는 사도님의 수호자. 평시라면 몰라도 지금과 같은 위급상황엔 사도님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유나는 비텔교에 중요한 아이입니다.”
-저는 비텔교 소속이 아니라 사도님께 소속되어 있습니다. 다른 수호자가 있다면 명에 따르겠지만 수호자가 저 혼자인데 위급상황에서 사도님의 곁을 비울 수 없습니다.
표정을 보니 마음을 바꿀 것 같지가 않았다.
“...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겠죠?”
-네.
단호한 대답이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수밖에.
내가 운전석에 앉았고 옆자리에 벤센이, 뒷자리에 레이먼과 얀타오가 앉았다. 얀타오가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지금은 누구의 말에 친절히 대답해주고 그럴 기분이 아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급발진과 함께 차를 출발시켰다.
“뭐?! 연락이 안 되면 되게 만들어!”
벤센이 뭔가 잘못됐는지 소리친다. 아마도 임시전당에 배치한 요원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요원들에게 연락이 안 된답니까?”
“네. 교주님. 죄송합니다.”
“아뇨. 그분들이 무사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드릭 이 빌어먹을... 죄송합니다. 비텔님께 받은 은총으로 실력이 한층 더 올라 누가 상대든 이길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뚫리다니.”
벤센의 말을 들으니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지금 임시전당을 공격한 자들도 비텔교도가 아닐까? 글렘이 비텔교도가 된 것처럼 말이다.
파문을 사용한다.
-스킬 ‘교주의 명령 – 파문’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지정해주세요.
대상... 일단 지금 임시전당을 공격한 자들만으로 한정하자. 글렘은... 지금 당장 어떻게 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내가 그의 적대행위를 알고 있다는 표를 내고 싶지 않다.
-스킬 ‘교주의 명령 – 파문’의 ‘대상’을 임시전당에 무단침입한 자로 지정합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110이 차감됩니다.
11명이군.
“당장 요원들 전부 임시전당으로 보내! 그래! 전부! 너도 가!”
벤센이 소리치고 있다.
“적은 11명입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적은 이드릭 포함 11명이다.”
화난다. 감히...
***
-누구냐!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김해역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유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바깥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요?”
이가한의 위치가 멀고, 집 안에 있었기에 유나는 이가한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김해역이 창문으로 바깥을 살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분명 그가 서 있는 창문에서 경호원 한 명이 보여야 했으니까.
“안쪽으로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유나는 김해역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따랐다. 그는 비텔이 교도들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성전사니까.
‘성전사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그렇다면 자신이 밖으로 나가 그의 능력을 100% 발휘하여 누가 적이든 유나 근처에 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밖으로 나가면 유나는 홀로 남게 된다. 그렇게 할 순 없다.
‘복도만 나갈 수 있어도...’
유나의 방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창문과 문 두 가지가 있다. 만약 창문이라는 선택지 없이 복도란 선택지만 있었다면 실력을 70~80%는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을 넘긴다면 창문을 열리지 않는 방탄유리로 만들자고 건의해봐야겠군.’
퍽. 투다닥.
유나의 방은 2층. 1층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보는 유나가 몸을 움츠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제님은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웅크리고 앉아 김해역의 등만 바라봤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바깥에 귀 기울인 채 기다렸다.
끼익.
옆방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주 작은 발소리가 가까워져갔다.
끼..
유나와 김해역이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순간 김해역이 유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뿌득.
문을 열던 침입자 앞에 나타난 김해역이 침입자의 목을 잡아 꺾어버리며 안으로 잡아당겼다.
‘검이 아쉽군.’
성전사가 된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성전사용 장비를 만들지 못해 맨손이었다. 검과 방패가 있다면 침입자를 상대함에 있어서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문이 다시 닫혔고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방을 향해 상당한 수의 사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해역은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조용히 그리고 철저하게 방을 조여오고 있었다. 고민했다.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당할 것 같았다.
‘나가서 쓸어버려?’
하지만 뒤에서 떨고 있는 유나를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때,
“이 시발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이가한이 행동대장 시절의 대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이가한이 여기 있다. 이 새끼들아! 나한테 덤벼!”
이가한은 침입자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일부러 소란을 피웠다. 김해역은 순간 침입자들의 멈칫하는 기척을 느꼈다.
‘기회다. 몇 놈만 잡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쾅!
김해역이 문을 박찼다. 침입자들이 순간 이가한에게 쏠렸던 이목을 문에 집중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문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빠각.
갑자기 김해역이 침입자 중 하나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며 침입자의 머리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총기 사용을 허가한다.”
이드릭이 소리쳤고, 이드릭과 부하들이 권총을 꺼내 쐈다.
퓨퓽. 퓨퓨퓨퓽.
하지만 김해역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끼이이익.
임시전당에 도착했다. 문을 부수다시피 힘 줘서 열며 유나의 집으로 달렸다. 온힘을 다해 달렸더니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나의 집 앞에는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유나는 안전하겠지.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가한. 1층에 쓰러져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이가한이었다. 그의 곁에는 침입자로 보이는 복면을 쓴 자들이 셋 누워있었다.
“커헉. 쿨럭. 쿨럭.”
이가한은 피투성이였다. 칼에 찔렸는지 총에 맞았는지 몸 곳곳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 같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급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유나의 방이 있다.
방안에도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원으로 둘러싼 채 보고 있었다. 유나이길...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욕을 내뱉었다. 사람들의 원 안에서 날 기다린 것은 피투성이의 김해역이었다.
“빨리 지혈해!”
“빌어먹을 구급차는 언제 오는 거야!”
사람들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들 옆으로 갔다. 순간 김해역과 눈을 마주쳤다. 누워있던 김해역이 발작하듯 움직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괜찮다. 가만히 누워있어라.”
내가 말했고 그러자 김해역이 움직이지 않고 편안히 누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날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김해역이 날 불렀으니까.
“죄송..합니다. 교주님...”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면서도 김해역은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사제..님을 지키..지 못해..습니다. 명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아니다. 넌 할 일을 제대로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입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와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김해역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원망스럽다. 어째서 난 신을 모시는 교주의 위치에 있으면서, 세상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는 신의 밑에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치유하는 힘을 갖지 못한 걸까.
소설 속 사제들이 가진 가장 흔한 능력인 치유 능력을 어째서 교주인 내가 갖지 못한 걸까. 어째서 그런 힘이 없어서 신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가슴 속에 폭풍이 치는 것 같다.
비텔이시여... 제게 힘을, 당신의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비텔이시여...
“비텔이시여!!! 제게! 제게 당신의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던 폭풍을 내뱉듯 강하게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스킬 ‘생명력 전이’를 얻었습니다.
스킬 설명을 보지도 않고 바로 사용했다. 오른손에서 보라색 빛의 생명력이 뿜어져 나왔다. 설명을 보지 않았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라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손을 김해역의 몸에 가져다댔다.
< 122 돈과 권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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