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119화 (119/228)

< 119 돈과 권력 >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이 방에 그 분이...”

“네.”

이드릭의 대답에 프레이즈가 숨을 크게 골랐다. 긴장된다. CIA의 부국장이 된 이후로 이렇게 긴장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상대가 누구든 긴장하지 않고 대범하게 말하는 성격의 프레이즈지만 하지만 지금 만날 사람은 긴장해야한다.

잠시 매무새를 가다듬곤 문고리를 잡고 있는 이드릭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릭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방은 큰 회의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브리핑을 준비해오라고 했으니 그걸 들을 생각으로 여기서 기다린 모양이다.

“음?”

이상하다. 프레이즈가 아무리 방안을 살펴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문 담긴 얼굴로 이드릭을 보았다. 이드릭은 대답 없이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서 오게.

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레이즈는 순간 그가 글렘임을 알아차렸다.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온라인으로만 보고했던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저택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해서 얼굴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는가 싶었더니 그냥 저택에만 들였을 뿐 얼굴은 보여주지 않을 생각인 듯싶었다. 평소와 같은 상황에 장소만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탁 풀어졌다.

“저기서 하시면 됩니다.”

“네.”

이드릭이 브리핑을 할 위치를 말해주었고, 프레이즈는 그곳으로 가 가지고 온 자료를 열심히 브리핑했다.

-그게 다인가? 별로 아는 게 없군.

글렘의 무심한 듯한 말에 프레이즈가 크게 위축되었다.

대통령 앞에서도 이렇게 위축되지는 않는 프레이즈지만 글렘에게는 그래야했다. 글렘이 대통령보다 권력이 강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프레이즈를 죽이지는 않지만 글렘은 프레이즈를 죽일 수 있다.

또 대통령이 프레이즈의 성장과정과 CIA가 된 이후의 행적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글렘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프레이즈의 약점도 알고 있으며, 프레이즈가 CIA에서 나온 이후의 노후도 보장해줄 사람이다.

그가 CIA의 부국장이 될 수 있도록 밀어준 것도 글렘이다. 대통령이 임시 보스라면 글렘은 프레이즈가 죽기 직전까지 모셔야 할 보스, 그러니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작전팀이 한국에 간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지라 정보가 많이 없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이제 가봐.

“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프레이즈가 나가는 길은 이드릭이 아닌 다른 이가 안내해주었고 이드릭은 바로 글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멍청한 놈들. 돈을 퍼부어서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NSA, CIA의 간부자리에 올려줬더니만 가져오는 게 이딴 부실한 것들이라니.”

글렘에게 브리핑을 한 것은 프레이즈만은 아니었다. NSA에도 그가 돈을 들여 키운 고위 간부가 있었고 그에게서도 브리핑을 들었는데 방금 프레이즈가 가져온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정보였다.

그들이 가져온 정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종교가 창시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다.

-현재 지도자는 정유나라는 이름의 14살 여자아이. ‘사제’라 불리고 있음.

-교주의 자리는 공석. 다만 사용되는 자금의 대부분을 ‘예던’이라는 기업이 내고 있으며 이번에 건설되는 성전의 건설비용도 ‘예던’의 사내 유보금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예던’의 회장 김건영이 교주일 가능성이 높다.

-김건영의 아들인 김진서가 사제의 보좌역을 맡고 있음. 사제는 실질적인 힘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일을 김진서가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텔’이란 이름을 떠올리며 기도하면 신체능력이 향상된다. 신체의 변화는 없다.

-비텔교도의 수는 약 10만~20만 사이이고 그들 모두가 신체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추정.

-진짜 신인지, 누군가의 능력인지에 대해 조사 중. 지금까지 발견된 초능력의 위력을 생각하면 신일 가능성이 높다.

“중구난방에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 이딴 것들이 최고의 정보기관이라고 설쳐대고 있다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일부러 그렇게 보고 했으니까.

한국에 와 있는 NSA와 CIA의 작전팀장 둘 다 비텔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기에 둘 다 상부에 보고할 때 알려져도 될 만한 것은 그대로 보고하되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비틀어서 보고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는 꼭 집어넣었다. 신이라고 강조해두면 상부에서 허튼 짓을 안 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물론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허튼 짓을 할 수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북한과 남한의 전쟁을 일으켜 잘 조정해 남한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종교를 미국이 다시 세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이용한다.’는 작전. 실제로 CIA 작전팀장이 비텔이 정말 신일 가능성을 대비해 세웠던 작전 초안이다. 비텔의 목소리를 들은 직후 보고하지 않고 폐기했지만 말이다.

“정말 신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NSA와 CIA 양쪽의 보고서를 보면 두 곳 다 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쓰여 있잖습니다.”

“말했잖냐. 신이 있으면 나도 죽었을 거라고.”

이드릭도 그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글렘에게 비텔교에 대해서 알려줄 때만해도 아는 사람이 얼마 없는 비밀종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아보니 신도의 수가 10만에서 20만 사이라고 한다. 그들 모두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초능력자라고? 있을 수 없다.

“글렘님을 좋아하는 신일 수도 있지요. 초능력자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글렘님께서도 초능력자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초능력자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허접’하다. ‘허접’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대부분의 능력이 카드 뒷면 맞추기나 손에 잡은 물건에 새겨진 글 보지 않고 맞추기 등이다. 숟가락이라도 구부릴 수 있으면 최상위 초능력자로 꼽힌다.

“너도 초능력자면서 너무 평가가 박하군.”

“제가 초능력자기에 더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 초능력자는 불가능합니다.”

이드릭도 초능력자다. 그렇기에 젊은 나이에 글렘의 최측근으로 뽑혀 지금까지 정리당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거다.

“네 능력도 다른 초능력자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 네 수준을 뛰어넘은 초능력자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이드릭의 능력은 염동력. 1kg이하의 힘을 보는 것만으로 가할 수 있다. 나쁘지 않은 능력이지만 그냥 기도만 했다고 신체능력을 10%이상 향상시켜주는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차원이 달라도 몇 십 차원은 다르다.

“좀 다른 엄청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많았으면 이해하겠지만 이건 중간이 없지 않습니까. 1층 계단에서 갑자기 999층으로 올라간 느낌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이거 봐라.”

글렘이 이드릭에게 서류를 하나 건넸다. 이드릭은 천천히 정독했다. 자신이 모르는 정보였다. 이상하지는 않다. 그가 글렘의 오른팔이기는 하지만 글렘이 오른팔이 모르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 중 하나가 가져온 정보일 것이다.

“최면술사?”

“어떠냐.”

“... 대단한 능력이군요. 100%라니. 거기에 고통을 가하거나, 신체를 마비시키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밝혀진 초능력 중 최고입니다.”

“그게 바로 증거다. 한국에서 빅뱅이 일어났어.”

빅뱅은 우주가 만들어질 때 일어났던 거대한 폭발을 말하는 거지만 지금 글렘이 말하는 것은 그걸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이드릭은 글렘이 뭘 말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 자신과 관련 있기에 관심을 두고 있던 정보다.

“1980년에 CIA에서 작성된 휴먼빅뱅이론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휴먼빅뱅이론. 한때 CIA에서 초능력 부대를 육성하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온 논문 중 하나로서 인간의 진화는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빅뱅이 일어나 우주를 만들 듯 갑작스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에 초능력부대에 대한 모든 연구를 접게 만드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직 휴먼빅뱅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연구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하튼 논문에는 휴먼빅뱅의 당사자는 인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휴먼빅뱅이론을 보면 한 명의 빅뱅이 주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고 나와 있지. 이게 그 증거다. 비텔교가 생겨난 것도 반년, 저 최면술사란 초능력자가 활동을 시작한 것도 반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비텔교의 사제라는 정유나란 아이. 왜 발레를 하던 14살짜리 여자아이가 교단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따르고 있을까.”

“그럼 그 아이도 초능력자라는...”

“그래. 맞다. 교주란 자가 휴먼빅뱅의 당사자일 거고, 사제는 교주에게 발견되어 교단에 들어온 초능력자인 거겠지. 최면술사는 아직 교주가 모르는 초능력자일 테고.”

“.....”

이드릭은 글렘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그도 휴먼빅뱅이론을 읽어봤다. 그 내용엔 분명 휴먼빅뱅의 당사자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진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비텔교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진짜 신’과 같은 힘일까? 그냥 과장해서 말한 건 아니었을까?

물론 확인할 수는 없다. 논문의 작성자는 이미 죽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이제 CIA랑 NSA는 못 믿겠어. 네가 직접 가서 교주를 찾아봐라. 그리고 잡아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됐지만 지금처럼 숨어있는 것을 보면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을 거다. 지금 잡아야 해.”

이드릭도 글렘의 말에 동의했다. 위협을 느끼기에 숨는 것이다. 즉, 교주란 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노릴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숨어 있는 것이다.

“서울로 가라. 최면술사와 사제 둘 다 6개월 전 서울에 살고 있었다. 휴먼빅뱅은 서울에서 일어난 것이 틀림없어.”

“알겠습니다.”

이드릭은 미군부대로 향했다. 그리고 미군 수송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미군 수송기는 한국의 검문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에게 들키지 않고 그와 그의 부대가 몰래 한국에 들어가기에는 최고의 운송수단이었다.

하지만 자국 정보기관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던 벤센의 눈은 말이다.

“이드릭? 빌어먹을. 된통 걸렸군.”

벤센은 자신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신체능력이 강해진다는 정보는 숨길 수가 없어서 그대로 전달했기에 미국 내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거란 걸 알았다. 그래서 감시망을 최대로 펼치고 있었는데 감시망에 걸리는 처음이 이드릭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부 측 인물이 움직인다면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틀 내에서 움직일 거고 벤센이 많이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움직임을 막으며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비텔교는 세를 늘려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영향력을 갖추고 말이다.

지금의 비텔교 성장세라면 그게 가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신도가 수백만 명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드릭은 안 된다. 그의 뒤엔 글렘 막스가 있고 글렘 막스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위험하다.

“별수 없군. 그분을 만나야 해.”

벤센은 한상을 만나기로 결정했다.

< 119 돈과 권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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