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비텔의 방패 >
“방금...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사가 해역이 너냐? 동명이인이 아니고?”
병실 근처를 지키고 있던 교도관 박태규가 병실로 달려와 문을 열며 물었다. 그때까지 비텔의 목소리로 인하 황홀함의 여운에 잠겨 있던 김해역이 눈을 떴다. 그는 박태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드디어 해냈구나! 잘 됐어! 잘 됐다고!”
박태규가 기뻐하며 김해역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교도소 내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김해역이 비텔교로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김해역을 다시 받아주길 비텔에게 빌었는데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성전사라는 높은 직책으로 말이다.
“아. 미안하다. 괜찮냐?”
박태규가 김해역이 10일간 단식기도를 하다가 쓰러져서 병실에 들어왔음을 떠올렸다. 걸을 힘도 없어서 교도관 중 한 명이 업어서 병실까지 옮겼었다. 그런 환자를 자신이 너무 강하게 끌어안았다.
“괜찮습니다. 지금 몸에... 힘이 넘치거든요.”
김해역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토록 원했던 감각이 온 몸에서 느껴졌다. 정말 그리웠다. 신체가 한계를 넘어서 강해지면서 느껴지는 고양감. 그 느낌이 예전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김해역은 어째서 강하게 느껴지는지 알고 있었다.
‘이게 성전사의 힘이구나.’
성전사에 대해 김해역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이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는 꿈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성전사를 지켜봤다.
처음 떨어졌던 숲에서 만났던 오크와 리자드맨, 김해역은 그들에게 수백 번도 더 죽으며 숲을 빠져나갔다. 숲을 빠져나가 도착한 곳이 비텔교의 은신처였다. 그는 그곳에 받아들여졌다.
그곳에서 그는 비텔교의 평신도이자, 은신처를 지키는 병사로서 살았다. 그가 그곳에서 산 ‘기간’은 정확하진 않지만 4~5년 정도였지만 그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10년 이상이었다.
처음 오크와 리자드맨을 만났을 때처럼 죽게 되면 기준이 되는 일정 시간대로 돌아가 다시 살아났다. 기준 시간대는 매번 바뀌었고, 대부분 죽음을 당한 시간으로부터 3일 안쪽으로 정해졌다. 일주일, 보름을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짧으면 1시간, 길어야 3일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4~5년밖에 되지 않는 기간을 10년 이상의 시간동안 살았다.
도대체 몇 번을 죽었다는 뜻일까.
‘적어도 천 번 이상...’
김해역은 은신처에 도착한 후 당한 죽음을 500번까지는 기억했다. 그 뒤에는 세지 않았지만 이미 죽었던 횟수보다 훨씬 더 죽은 것은 확실했다.
죽음이 반복될수록 죽음 자체에서 받는 충격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와 친해졌던 수많은 비텔교 교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반복해서 지켜볼 때,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해도 동료와 친구,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는 심적으로 거대한 충격을 받았었다.
금이 간 유리처럼 깨지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지만 비텔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견뎌내며 꿈속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꿈에서 나오기 직전까지는... 꿈을 현실이라고 믿었었지.’
그렇기에 더욱 충격 받고 힘들었었다. 진작 꿈이란 걸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꿈을 현실이라 믿으며 살았지만 깨어나기 직전 있었던 일로 인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삶이 꿈이고, 이미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 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그동안 단련될 대로 단련된 김해역은 견뎌낼 수 있었다.
여하튼 그때 김해역은 성전사와 함께 전장에 나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크에게 밀리지 않는 힘과 현란한 전투 기술, 그리고 비텔에게 받은 갖가지 능력들. 김해역의 눈에 비친 그들은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였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히어로가 됐다. 몸 안에 넘치는 힘과 방금 비텔이 자신에게 직접 준 그 능력이라면...
‘이번엔 지킬 수 있다.’
꿈속에선 지키지 못했다. 지키겠다고 열심히 싸우는 법을 배우고 나서서 싸우고 했지만 결국 보호를 받는 쪽이었다. 힘이 부족했으니까.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비텔교의 은신처는 결국 무너졌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상황도 꿈속 세상의 비텔교처럼 절망적이지 않고, 준비할 시간도 있으며 자신도 비텔에게 힘을 받아 꿈속에서처럼 무력하지 않다.
이번엔 지킬 것이다.
‘나는 비텔의 방패다.’
김해역이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상념에 빠진 김해역에게 박태규가 물었다.
“교주님께서 찾아와 비텔님과 연결시켜주시고 가셨습니다.”
“교주님께서? 내가 복도를 지키고 있었지만 아무도 못 봤는데?”
교도소의 병실이기에 문 말고는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교주님이시니까요. 갑자기 나타나셨죠.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어느새 또 사라지셨군요.”
“으... 아깝다. 조금만 일찍 왔어도 교주님을 뵐 수 있었을 텐데. 교주님께선 어떠시든?”
“신비로웠습니다. 그분은 온 몸에서 새하얀 아우라를 뿜어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박태규는 나이든 아저씨답지 않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김해역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에도 김해역은 교도소의 사람들에게 수십 번도 더 교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
새벽 일찍 전당에 나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려던 김진서는 갑자기 들려오는 한상의 목소리에 바로 일어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한상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이 순간. 비텔교 최초의 성전사가 탄생했다! 성전사의 이름은 김해역. 그가 너희를 지킬 것이다.
“알겠습니다.”
김진서는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한상이 하는 말에 전부 대답했다. 혹시 다음 말이 있을까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한상의 말이 없다는 것을 확신 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난 김진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시 전당에 전화하는 일이었다.
-네. 본부장님.
김진서를 아는 신도들은 전부 김진서를 본부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유나가 김진서를 본부장이라고 부르기에 뭔가 교단의 직책인가보다 하고 따라부르는 것이었지만 교단에 김진서를 위해 마련된 직책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유일한 사제인 유나의 최측근으로서 신도들에게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
“방금 교주님 말씀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혹시 김해역이란 분에 대해 아시나요?”
-그렇지 않아도 이쪽에서도 그거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다들 서로 김해역이란 이름 들어본 적 있냐고 묻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제님께 혹시 아시냐고 물으러 한 분이 가셨고, 저희들은 인명부를 뒤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찾으시면 저한테도 연락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김진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임시전당으로 갈 생각이었다.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뭔가 일어나고 있어.”
방금 들은 교주의 말 중에서 걸리는 대목이 있었다.
‘너희를 지킬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말일까. 혹시 비텔교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주는 분명 비텔이 은총을 내린다고 했다. 신이 지금 이 순간 은총을 내려 성전사를 만들었다.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유나를 만나야했다. 만나서 성전사란 직책이 정확히 어떤 직책인지 물어봐야 한다. 교주와 연결되어 있는 유나라면 성전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성전사가 무엇인지 안다면 위협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종류의 위협인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나에게 김해역에 대해 물으러 왔던 신도는 유나의 집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유나의 경호원으로 있는 이가한이 가로 막은 것이다.
“사제님께서 자신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교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지금 비텔교에서 사제인 유나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경호원들은 이 자리에 누가 오든지 간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물론 유나를 찾아온 신도도 유나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이상 절대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30분 후,
“무슨 일입니까.”
김진서가 도착했다.
“아. 본부장님 오셨습니까.”
“네. 사제님을 뵙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김진서가 유나의 집 앞에 모여 있는 50명가량의 신도들을 보며 물었다. 임시 전당에는 꽤 많은 신도가 살고 있었다. 임시전당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직원으로서 머무는 신도도 있지만 단순히 기도를 하고 유나를 보기 위해 머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교주의 말을 들은 후 김진서와 같은 목적으로 유나의 집 앞으로 와 있었다.
“사제님께서 자신이 나오기 전에 아무도 안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다려야겠군요.”
“네. 그래야죠.”
김진서도 기다리는 신도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 평소 찾아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 유나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다는 것은 비텔에게 기도를 하거나 교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텔에게 기도를 이리 오래 할리는 없으니 아마 교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터, 곧 나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김진서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김진서는 그에게 다가갔다.
“덕형씨.”
“네? 아. 본부장님.”
오덕형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NSA요원 데니스 오였다. 김진서는 그가 NSA요원임을 알고 있다. 아니, 사실 임시전당에 있는 비텔교도 대부분이 그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두 번째 기적이 있었던 그 날, 데니스는 다른 신도가 있는 자리에서 유나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놨고 유나는 용서했다. 많은 신도가 본 일이기에 당연히 소문이 났지만 유나가 용서했다는 말을 듣곤 다른 신도들도 그를 용서했다.
그 뒤로 NSA는 비텔교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비텔교의 안전을 직접 점검하고, 안전을 위해 요원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교단 자체적인 무력단체의 훈련을 맡아주고 있기도 하다.
“혹시 김해역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김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정보기관의 요원으로서 예전에 비텔교에 대해 조사하기도 했으니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 사람이 성전사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한 명 알고 있기는 합니다.”
“정말입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찔러본 건데 의외로 긍정의 대답이 나왔다.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가 아는 김해역은 예전에 비텔교에서 파문당한 두 사람 중 하나입니다.”
“파문? 아! 그 사람.”
생각났다. 비텔교도가 100명도 되지 않던 시절, ‘헌금’을 자신의 초능력인 것처럼 속여 방송에 나갔던 자가 파문당했었다. 자신이 비텔교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그냥 3금기가 만들어진 사건이란 것만 기억하고 이름은 기억에서 지웠었다.
“그런데 그 자가 맞을까요? 성전사라는 큰 자리에 파문당한 자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유나님께서 나오시길 기다려야겠군요.”
그리고 그들이 기다린 지 1시간째가 됐을 때, 유나가 집에서 나왔다.
“자비로운 비텔님께서 파문신도 김해역을 다시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정말 그 김해역이었다.
“김해역은 죄를 지은 이후 한시도 쉬지 않고 반성하며 비텔님께 기도했고 교도소에서 수많은 죄수와 교도관을 비텔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유나가 한상에게 들은 김해역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를 신도들에게 해주었다.
“앞으로 김해역은 비텔님께 힘을 받은 성전사로서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 여러분을 지킬 것입니다.”
유나는 그 뒤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대체로 비록 파문당한 신도였지만 비텔이 다시 받아준 이상 가족이라 여겨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신도들을 해산시켰다.
유나는 김진서를 따로 불러 집으로 들어갔다.
“본부장님께서 성전사님을 만나러 가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진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비텔님께서 힘을 내려주시긴 했지만 그 힘이 정확히 어떤 힘인지 모릅니다. 저와 교주님께서 받은 능력도 서로 다르니까요.”
“그렇군요.”
김진서는 유나가 비텔에게 받은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유나가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비텔님께 따로 들은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셔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주세요.”
“알겠습니다.”
따로 홀로 비텔의 목소리를 들었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김진서였다.
***
김진서는 바로 김해역이 복역 중인 동부 교도소로 가 현장 신청을 통해 김해역을 면회했다. 김해역을 면회하러 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김진서를 경계하며 안 된다고 말하는 접수원이었지만 비텔교에서 왔다고 하니 곧바로 경계를 풀고 바로 김해역과의 면회를 성사시켜줬다.
교도소에서 만나는 모두가 비텔교도이니 혹시 문제가 생길시 비텔교에서 왔다는 것을 알리라는 이가한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저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꺼내주십시오. 비텔교를 지켜야 합니다.”
김진서는 유나가 말한 대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풀어드리겠습니다.”
비텔교 10만 교도가 김해역을 풀어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117 비텔의 방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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