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대족장이 된다는 건 >
노르쓰 우르드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땅에 써준 글씨를 보고 읽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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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의지 : 힘의 크기에 비례해 재생력이 증가한다.
-무리의 군주 : 무리구성원이 얻는 전투 기여 포인트의 20%를 얻는다. 카록의 빛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카록의 빛 : 전투 기여 포인트를 사용해 추가 타격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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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능력을 얻었군. 전투에 관계된 능력이야.”
“내가 보기엔 별로다.”
재생력. 전사에게 상처와 부상은 당연한 거다. 그게 더 빨리 낫고 말고는 상관없다. 물론 상처가 빨리 낫는다면 큰 부상을 입은 후 다시 전투에 나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이제까지 상처가 낫지 않아서 곤란한 적은 별로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힘이 세지거나, 몸이 단단해지거나 빨라지거나 하는 능력을 얻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무리의 군주’. 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직접 얻는 것도 아니고 형제들이 얻은 것을 가져온다니. 내가 왜 형제들의 것을 빼앗아야 한단 말인가.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말이다.
“전투 기여 포인트?”
노르쓰 우르드에게 그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는 현명하고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잘 찾아주기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에게 말해서 답을 구한다.
“전투 기여 포인트라...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오르히에게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부락에 속한 형제들이 전투에 나가 활약하면 오르히 자신도 강해진다는 말을 했었지. 아마도 비슷한 개념인 듯싶다.”
그랬던가. 오르히도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당시 얻었던 내 전투 기여 포인트의 일부를 오르히가 가져갔을 수도 있겠군.
“열 받나? 오르히가 형제의 전투 기여 포인트를 가져가서?”
“딱히...”
전혀 화나지 않는다. 오르히는 부락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들을 위해 직접 전투에도 나가지 못하고 매일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해야 했으니까. 그게 전투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니 내 기여의 일부를 가져가도...
“아. 그렇군. 난 자격이 있어.”
“그렇다. 넌 자격이 있다. 이제 넌 대족장이다. 앞으로 만이 넘는 형제, 자매들을 보살펴야 할 테지. 넌 그 형제, 자매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힘들 것이다. 그러니 형제들의 기여를 적당히 받을 자격이 있다.”
“알겠다.”
‘무리의 군주’에게 가졌던 못마땅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형제들의 노력을 갈취하는 것이 아니다. 난 받을 자격이 있는 거였다. 역시 노르쓰 우르드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그에게 말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대신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형제들을 도와야겠지. 카록께서 그 능력을 주신 이유가 그것일 테니 말이다.”
“노력하겠다.”
생각하는 것은 귀찮고, 짜증나고, 힘든 일이겠지만... 카록께서 맡긴 일이다. 해내야겠지.
그리고 이번에 얻은 마지막 능력 ‘카록의 빛’
‘무리의 군주’에 딸려 있는 보조 능력이지만 제법 괜찮았다. 양 주먹에 사용하니 주먹이 붉은 빛에 물들었고, 주먹의 파괴력이 조금 올라갔다. ‘카록의 빛’을 사용하지 않고 바위를 가볍게 때렸을 때 반 정도 부서졌다면, ‘카록의 빛’을 두르고 때렸을 때는 3분의 2 정도가 부서졌다.
그래도 부족하다. ‘성난 자의 외침’이나 ‘불가사의한 힘’처럼 내 전투력을 크게 끌어올려주는 스킬을 얻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더욱 강한 자들과 싸울 수 있게 될 것이고, 강자가 없다면 수백, 수천의 적과 홀로 맞붙어 싸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정도면 훌륭한 거다. 지금껏 많은 형제들을 봐왔고 그들의 능력에 대해 들었다. 그들 중에는 전투와 전혀 상관없는 스킬을 가진 자들도 꽤 있었다. 두 개의 능력을 얻었는데 두 개 다 전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
“그런가.”
난 나 말고 다른 형제들의 능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전투 관련 능력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 대해 몰랐다.
“축복을 4번 받을 동안 3개나 되는 능력을 받았음에도 형제가 가진 ‘스킬 목록 열람’과 같은 전투와 관계가 없는 능력만 가진 형제도 있었다.”
“그건... 안타깝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능력을 얻었는데 조금도 강해지지 않는다니.
“그런 형제는 꼭 내 부락으로 데려오고 싶군. ‘군주의 위엄’으로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라고 말이다.”
“걱정마라. 이미 와 있다.”
“와 있다고?”
캅카스가는 아니다. 캅카스가는 예전에 결투할 때 두 손이 붉게 물드는 것을 봤었다. 그때 주먹의 위력이 상당히 강해졌었다. 한 방 맞고 의식이 날아갈 뻔 했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 내가 얻은 ‘카록의 빛’과 비슷하군.
그렇다면...
“미흐로크인가?”
“미흐로크는 형제의 ‘군주의 위엄’과 비슷한 스킬을 갖고 있다. 위력은 훨씬 약하지만.”
“그렇다면 새로 온 족장급 형제 중 하나군.”
여기저기 뻗어서 자고 있는 족장급 형제들을 봤다. 다들 얼굴이 잔뜩 부어 있고, 몸 곳곳이 퍼렇다. 어제 내가 때린 흔적이다.
그런 불쌍한 형제가 있는 줄 알았으면 조금 약하게 때릴 걸 그랬다.
***
“승리했다!!!”
강대한 힘이 담긴 목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포란의 국왕 솔렘니스의 선언이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지옥 같은 전투였다.
200의 거대 괴물과 10만의 ‘죽지 않는 자’의 군세.
인간 측의 병력은 50만에 달했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전투였다. ‘죽지 않는 자’의 군세라고 뭉뚱그렸지만 그 중에는 몸집은 작지만 거대 괴물에 못지않은 강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런 괴물 집단과의 전투다. 아무리 수가 5배에 달한다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전투였다.
하지만 이겨냈다. 전부 솔렘니스 덕분이었다.
솔렘니스가 몰란에게 받은 힘으로 인간들의 힘을 강화시켜주었고, 강화된 페가수스 ‘몰란의 사자’를 타고 용맹하게 날아다니며 홀로 5마리 이상의 거대 괴물을 쓰러뜨려주었기에 간발의 차이로 인간이 승리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병력은 7만. 43만이나 죽는 치열한 전투였다.
“이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군.”
솔렘니스는 이번 전투에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자신의 생명을 말이다. 그가 수십 일 동안 금식하며 몰란에게 한 기도의 내용은 간단했다.
‘제 남은 생명을 바칠 테니 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내려주소서.’
비록 늙었지만 거의 10번에 가까운 축복을 받았으니 앞으로 40~50년은 잔병치례 없이 거뜬히 살 수 있을 솔렘니스였다. 그런 그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을 포기했다.
포란 왕국 최강,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류를 따져도 충분히 100위 안에 들어가는 강자가 자신의 수명을 바치는 희생을 했다. 자신의 신도가 다른 신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좋아하는 몰란으로선 정말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거대한 힘을 내려주었다.
솔렘니스에게 몰란의 사자라 불리는 거대 페가수스를 내려주고, 솔렘니스의 몸을 키우고 전투력을 두 배 이상으로 올려줬다. 거기에 각종 능력을 주었으며 그 중에는 이끄는 병력을 강화시켜주는 것만 3개나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더해져 솔렘니스가 이끄는 50만 인간의 병력은 원래 전력의 1.5배에 가까운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만의 병력만 살아남았을 정도로 힘든 전투였다. 솔렘니스가 자신을 희생해 몰란에게 힘을 받지 않았다면 무조건 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왕국 포란은 ‘죽지 않는 자’의 군세에 짓밟혔을 테지.
‘곧 죽겠군.’
그가 몰란에게 힘을 받으며 한 약속에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한 번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만 살려주십시오.’도 있다. 이제 전투가 끝났으니 그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왕국을 지켜야 한다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죽는 것이니 말이다.
‘시작 됐군.’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몰란의 사자 위에서 내려왔다. 곧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갈 텐데 그 작은 몸으로 거대한 몰란의 사자 위에 앉아 있으면 볼품없을 것이다.
그가 내려오자 몰란의 사자는 곧바로 하늘 위로 올라가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솔렘니스의 몸은 계속해서 작아졌다. 그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자. 이번엔 검어졌던 머리가 다시 하얗게 변하고, 탄력 있던 피부가 푸석하게 변했다.
“으음..”
“전하...”
솔렘니스의 몸에서 급격하게 힘이 빠져나갔고 결국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비틀거렸다. 옆에 서 있던 페가수스 나이트가 급히 다가와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어서 가서 쉬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페가수스 나이트들이 하나둘 나서 말을 걸었다.
“됐다. 예정된 수순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도 알고 있다. 솔렘니스가 무엇을 걸고 그런 강대한 힘을 얻었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웠고 더욱 편안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싶었다.
“가시지요. 뒤에 쉬실 곳을 마련해뒀습니다.”
“됐다니까. 자꾸 그러는구나.”
솔렘니스는 페가수스 나이트들의 부축도 뿌리치고 스스로 몸을 세웠다. 힘이 없어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 괴물을 때려잡던 강대한 몸을 갖고 있었던 그인데 말이다.
그는 떨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 자신의 무기 앞으로 갔다.
“세워다오.”
자신의 무기지만 더 이상 그에게 그 무기를 들 힘이 없었다. 페가수스 나이트 하나가 급히 달려와 무기를 세웠다. 솔렘니스가 무기의 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순간, 그 자신이 살았던 인생 전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포란 왕국 왕족의 삶은 간단하다. 걸을 수 있게 될 무렵부터 단련하고, 단련하고 또 단련한다. 왕족은 자신을 단련하여 백성을 이끌고 적을 물리쳐야 한다. 그것이 최전선에서 끝없이 이종족과 전쟁을 벌이는 포란 왕국 왕족의 의무다.
솔렘니스 역시 기억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몸을 단련했다. 그리고 일반 페가수스 훈련생이 되어 훈련을 받고, 페가수스 나이트가 되고... 계속해서 단련하고 강해져서 페가수스 나이트를 이끌게 되고, 종국에는 모든 왕족 중 가장 강한 자가 되어 포란 왕국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한결 같았다. 항상 병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돌아다니며 모든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연전연승했고, 포란왕국의 영토를 1.5배 더 넓히는 업적을 세웠다.
“훌륭한.. 훌륭한 삶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페가수스 나이트가 맞장구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솔렘니스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크흐흐흐흑.”
“끄윽. 끄윽.”
페가수스 나이트들이 참고 참던 눈물을 터뜨렸다. 위대한 영웅이 끝까지 위대한 업적을 남기며 떠나갔다.
“모두 할버드를 들어라!”
살아남은 페가수스 나이트 중 최고선임이 외쳤다. 그는 할버드를 솔렘니스 머리 위 공중에 위치시켰고 다른 페가수스 나이트들도 그 위로 자신의 할버드를 올렸다.
“위대한 영웅 솔렘니스가 왕국을 구원하고 몰란의 곁으로 가셨다. 그분의 위대함은 우리가 증인이 되어 자자손손 널리 퍼뜨릴 것이다!”
최고선임이 외쳤고 다른 페가수스 나이트들이 가슴속에 새겼다. 이제 솔렘니스는 그들의 입을 통해 전설이 되어 왕국 전체에 퍼질 것이다.
“웃기는 인간들이군. 모든 인간이 죽어 들을 인간이 없을 텐데 누구한테 퍼뜨리겠다는 것이냐.”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윽.”
“으으윽.”
페가수스 나이트들을 무릎 꿇릴 정도로 큰 비명소리와,
구오오오오오오오!
거대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죽지 않는 자’가 자신의 머리이자 딸이라 불렀던 밴시 프린세스 이올라가 이끄는 두 번째 군세가 인간을 덮쳤다.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던 인간들이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아아아아아악!”
“몰란이시여!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끄아아아아악!”
지옥 같은 첫 번째 전투가 끝이 났지만... 두 번째 지옥이 찾아왔다.
< 115 대족장이 된다는 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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