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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12화 (112/228)

< 112 성전사 >

갑자기 전언이 들려왔다. 성전사라... 게임이나 소설에서 본 성기사와 비슷한 걸까. 비텔님께서 축복을 내리고 싶어 하시는 걸 보면 유나가 사제가 됐을 때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좀 더 전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쪽으로 말이야.

사제인 유나도 상당히 강한 감전 능력을 얻었었는데 성전사라는 싸움 잘할 거 같은 이름의 직책은 어떤 능력을 받게 될까.

그나저나 타이밍이 좋네.

딱 좋을 때 등장했다. 지금 비텔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력이다. 이번에 각국 정보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우릴 노리는 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날 테니까. 이미 유나에게 경호인력을 뽑으라고 했고 정보기관 쪽에 그들의 훈련을 부탁하라고 하긴 했지만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자가 함께 한다면 더 좋겠지.

힘은 크면 클수록 좋은 거니까.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부러뜨리러 오는 놈을 반대로 부러뜨릴 만큼 강해지면 된다.

여하튼 비텔님께서 저번에 유나에게 했던 것처럼 내 몸을 빌려 성전사가 된 자에게 축복을 내리시려는 것 같다. 성전사가 누구인지 알려주시지는 않았지만 누구일지 짐작 가는 자가 있기는 하다. 바로 김해역.

-해역이가 깨어났습니다. 탈진 사태라고 합니다. 그를 지켜주십시오.

방금 전부터 김해역이 깨어났다는 내용의 기도가 들려오고 있다.

10일간 보라색 빛에 둘러싸여 기도를 했고, 성전사가 탄생했다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기도에서 깨어났다. 가장 먼저 성전사로 의심해야 될 인물이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분명 김해역은 파문당했는데 어떻게 비텔님과 연결되었느냐는 거다.

내가 궁금해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찾아가는 건... 저녁에 가볼까? 김해역이 갇혀 있는 동부 교도소는 복역 중인 죄수나, 교도관 전원이 비텔교 신자니 그냥 가서 내가 교주임을 밝히면 바로 김해역을 만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니까. 그럴 순 없지. 그건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자.

저녁에 몰래 동부 교도소로 이동해서, 몰래 잠입해서 김해역을 만나는 거로 하자. 어떻게 잠입하는가는 일단 가서 생각해보자. 밤이라면 벽을 넘든 뭘 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될 거 같으면... 정식 면회 요청이라도 해보지 뭐.

지금은 유나에게 전화하자.

-안녕하세요! 아저씨!

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유나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혼자만 있나보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전화를 안 받고 혼자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전화 걸어주곤 한다.

유나가 어느 날부터인가 날 교주님이라고 부르며 의젓한 목소리를 냈었다. 자기 딴에는 비텔교 사제로서 격에 맞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나본데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나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된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누군가의 윗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나와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그런 모습을 꾸밀 필요 없는 휴식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 밥은 먹었어?”

-네! 아주머니가 된장찌개를 해주셨는데 엄청 맛있었어요!

폰 너머로 언제나처럼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는데 그 때문에 불행해지기라도 했으면 너무나 미안했을 거다. 유나를 비텔교에 끌어들인 것이 나니까.

“다음 달에 콩쿨 나간다고 했던가?”

-네. 다음달 22일에 하는 예던 콩쿨이요.

이제 학원에 나가지 않고 개인 교습을 받기에 참가자격을 충족하지 못해 못 나가는 콩쿨이 제법 많지만 예던에서 만든 콩쿨은 김진서가 유나를 위해 만든 거니까 당연히 유나는 나갈 수 있다.

들어보니 꽤 규모가 큰 콩쿨인 듯했다. 국내 최대 규모와 상금이라던가. 그래봤자 1억도 안 되기에 유나에게 그다지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돈보다는 명예와 충족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잘했으면 좋겠다.

“준비는 잘하고 있어?”

-네. 선생님이 칭찬 많이 해주셨어요. 무조건 제가 우승할 거래요.

정말 그럴 수도... 개최자가 비텔교 신자다. 어쩌면 비텔교 사제에게 유리하도록 손을 써놨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유나가 상당히 실력 있는 발레리나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직접 본 적도 있지만 발레 무식자인 나는 봐봤자 잘하는지 못하는지 구분 못하지. 유나는 비텔교도가 되어 강인한 신체능력을 얻기 전부터 국내 유망주 중 하나였다.

거기에 유나는 비텔님의 축복까지 받았기에 ‘군주의 위엄’의 영향만을 받는 다른 신도보다 신체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무용은 힘보다는 기술로 하는 거지만 그래도 신체능력이 뛰어나면 더욱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와주실거죠?

“당연하지. 무조건 가마.”

-와. 오랜만에 아저씨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유나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한지 정말 오래됐다. 유나는 항상 신자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둘이 따로 만날 수가 없었으니까. 유나가 혼자 있는 시간은 집의 자기 방에 들어갈 때 만인데 그때도 바깥에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이번에 꽃이라도 사가야겠다.

-오늘은 말이죠. 신도 분 중 한 분이 아이를 데려와서 축복을 내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축복은 비텔님 밖에 내리지 못하는데. 그래도 너무 원하시는 것 같아서 축복은 못해주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줬어요.

언제나처럼 유나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매번 유나와의 통화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대부분 내가 유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다. 유나의 부모님도 비텔교 신자가 되어버려서 사제인 유나를 조금은 어려워하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유나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좀 길긴 하지만 유나가 말을 잘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즐겁다. 워낙에 기운이 넘치는 아이라서 말이지. 그 기운이 나한테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혹시 신도 중 이상한 일을 겪은 사람은 없었니?”

충분히 통화를 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상한 일요? 음.. 이런 말 하면 신도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꿈에서 비텔님을 봤다든가,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든가. 대부분 그분들이 착각하는 거지만요.

몇 번 들었다. 자신이 제 2의 사제라고 한 사람만 10명 쯤 된다던가. 물론 전부 가짜였다. 누구도 비텔님께 받은 능력을 선보이지 못했으니까. 유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유나가 나서서 신도들을 이끌지 않았으면 우후죽순으로 자신이 교주 혹은 사제라면서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다.

일부러 속이려는 건 아닐 거다. 진짜 신의 목소리를 듣고 기적을 체험했는데 설마 신을 기만하려고. 아마 환청을 듣거나 꿈에서 본 걸 진짜라고 믿는 거겠지만 잘못된 믿음은 큰 사고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 유나나 내가 없었으면 벌써 사고가 일어났어도 몇 번은 일어났을 거다.

“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전사에 대한 거.”

-성전사요? 자기를 성기사라고 하면서 갑옷 입고 온 분은 있었는데.

정말 별의별놈이 다 있네.

“성기사는 아냐. 성전사가 정확하게 2시간 정도 전에 생겼어.”

-2시간이면... 그때 제가 전당을 한 바퀴 돌았거든요. 별일은 없었어요.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바로 저한테 신도분들이 알려주시는데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전당 내에서 일어난 일은 아닐 거예요.

“그래. 알았다.”

지금 80%쯤 김해역이 성전사일 거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유나에게 확인한 거다. 어차피 저녁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성전사라니... 어떤 건가요?

“나도 잘 모르겠다. 비텔님께서 찾으라고 하셔서 알게 됐는데 아직 보질 못해서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비텔님께서 축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신 걸 보면 너나 나 같은 조금은 특별한 그분의 아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와. 사제가 한 명 더 생기는 건가요?

“성전사라고 하니까 사제는 아닐 거야. 뭔가 싸우는 직책이겠지.”

-그래도 그분께 축복을 받은 사람이 한 명 더 생긴다고 하니 너무 좋다.

나 말고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길 수 있으니까. 좋겠지.

-제 또래였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예쁜 언니거나.

예쁜 언니는 아닐 거 같은데... 예쁜 언니면 나도 좋을 거 같지만 시커먼 오빠일 가능성이 커. 아. 예쁜 언니가 한 명 생기긴 했어. 인간이 아니라 밴시지만 말이야. 나중에 찾아가서 오하넬을 소개시켜줘야겠다. 좋아하겠지.

-지금 나가서 확인해볼게요. 성전사에 대해 물으면 되는 거죠? 신도분들에게 말해서 전당 밖에 계신 분들께도 연락해서 알아봐달라고 할게요.

“그래. 부탁해.”

-그럼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그래. 수고해라.”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통화를 마치고 맹연을 불렀다.

“김진서 본부장한테 연락했어?”

이제 수호자도 있고 슬슬 다시 바깥 활동을 개시해도 될 거 같아서 맹연에게 김진서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중개권리증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쓸 수 있게 해줘야지.

“네. 비서에게 연락해서 이제 중개가 가능하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랬더니 김진서 본부장에게 연결을 해줘서 바로 날짜를 잡았어요.”

“언젠데?”

“내일입니다. 점심이나 저녁 중 아무 때나 편할 때 하자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급했나? 딱히 시간이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약속을 바로 잡네.

“점심으로 하자.”

저녁은 혹시 오늘 교도소 갔다가 일이 잘 안 풀려서 내일 또 가야할 수도 있으니 비워두는 게 좋을 거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으로 약속을 잡겠습니다.”

맹연이 다시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냥 내 옆에서 해도 되는데 꼭 저렇게 나가서 한다.

“오하넬.”

-네. 사도님.

오하넬이 대답하며 왼쪽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감쪽같다. 뭔가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건 내가 사전에 오하넬에게 근처에 숨어 있겠다는 말을 들었기에 찾을 수 있는 거였다. 나도 미리 언질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좀 이상한 느낌이 드네?’라고 생각하고 끝냈을 거다.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더니 대단하다. 저렇게 숨어서 다가와 기습을 한다면... 무섭다. 신을 제외하곤 누구나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거 같다.

몰랐는데 오하넬이 나와 있는 동안 교단 기여 포인트가 소모됐다. 1분에 5포인트. 계산을 해보니 하루면 7,200 포인트가 소모된다. 아까워서 머릿속에 집어넣을까도 생각했지만 ‘몸에 들어갈시 사도께서 불러내기 전까지 가사상태에 빠집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항상 꺼내놓기로 결정했다.

오하넬이 가사상태에 빠지면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를테고, 그렇다면 내가 위험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라면 오하넬을 꺼내기도 전에 적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하루에 쌓이는 포인트가 몇 십만 규모이기에 7,200정도는 적은 양은 아니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내 안전을 위해서라면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

“혹시 성전사가 뭔지 알아요?”

-음... 알지만 개념이 너무 여러 가지라서 쉽게 대답하기 힘드네요.

동음이의어가 많은 모양이다. 딱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는 모양이지.

-신의 힘을 받은 자, 신의 힘을 받을 준비가 된 자,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자, 신의 힘을 받아 전장에 나서는 자, 육체계열의 신의 힘을 받은 자 등. 종족, 지역별로 그 뜻이 조금씩 달라요.

그렇군. 그럴 수 있겠네. 그락카르의 세계는 통신이 발달한 세계가 아니니까. 그락카르가 일주일정도 떨어진 북쪽의 오크들의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것처럼 조금만 멀어져도 아예 교류가 없을 수 있으니까. 단어의 뜻도 달라질 수 있지.

“혹시 어떤 개념이든, 성전사라 불리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요?”

-어려워요. 성전사의 증거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걸 물으신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니다. 능력을 사용한다면 오하넬 찾을 것도 없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사람 잘 찾는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 그냥 찾는 건 힘든 모양이다. 저녁에 김해역이 있는 교도소나 가봐야겠네.

***

12시에 집을 나와 버스 막차를 타고 동부 교도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부 교도소 근처가 아닌 꽤 떨어진 곳에 내린 후 걸어서 동부 교도소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 주변은 cctv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니까. 혹시나 내 행적이 누군가에게 들킬 수 있다. 걸어가는 게 최고지.

“높다...”

동부 교도소에 도착하니 내 생각보다 담이 훨씬 높았다. 저걸 넘는다고? 그것도 남한테 들키지 않고? 내 신체능력이라면 넘는 게 가능하긴 하겠지만 남한테 안 들킨다는 보장은 할 수가 없었다.

“난감하네...”

-혹시 저 안에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오하넬이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네. 저 안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안 돼서요.”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112 성전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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