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성전사 >
‘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가 사용되었을 때, 보라색 빛에 둘러싸인 신도 근처에서 김해역은 비텔에게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김해역의 의지는 강력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말이다. 그 강한 의지에 보라색 빛이 반응했다.
김해역의 의지에 반응한 보라색 빛은 조금씩 김해역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일정한 양을 넘어 섰을 때, 김해역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축복’을 받기 위한 준비과정 중 하나다.
‘축복’은 일정한 시험을 거쳐 자격을 얻은 자가 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신을 믿는 자가 수많은 경험을 통해 기반을 쌓고, 그 기반이 일정 수위에 도달해 신의 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신은 자신의 힘을 조금 떼어내 신도에게 내려준다.
그냥 신도에게 자신의 힘을 우겨넣어도 되긴 한다. 하지만 신의 힘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한계가 있으며 소모된다. 신도에게 받는 정신에너지로 보충할 수 있지만 효율이 지극히 나쁘기에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신도를 늘려 힘을 쌓기는커녕 오히려 힘이 깎이고 만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시험’이다. ‘시험’은 신도가 신의 힘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시험’은 한 종류가 아니다. 업의 축적, 몸의 단련, 정신수양, 정신적 만족, 세월 등, 수십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정신적 고양’이다.
김해역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비텔을 섬길 것을 맹세하며 그 ‘정신적 고양’의 가능성을 보였다. 필요수치가 100이라면 순간적으로 95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안정되어 80을 유지한 것이다.
‘축복’을 손실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100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능성을 느낀 비텔의 힘, 보라색 빛은 그 가능성을 완벽하게 개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김해역을 다른 세계의 비텔교에서 ‘성전사 입문 시험’이라 불렀던 ‘시험’의 과정에 집어넣었다.
‘성전사 입문 과정’은 간단하다. ‘축복’을 받을 가능성을 보인자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강제로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상당히 문제가 많은 과정이다. 이 과정 중 도달에 실패한 자는 정신적으로 죽게 되니까.
비텔교가 극한에 몰렸을 때, 다른 신의 신도들에게 학살당하는 자신의 신도를 구하기 위해 빠르게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로 올리기 위해 만든 ‘시험’의 한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을 도입했음에도 다른 세계에서 비텔교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
여하튼 신도가 죽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기에 빠르게 전도가 되고 있는 한상의 세계에서 비텔이 이 방법을 쓸 이유는 조금도 없었고, 그 어떤 신도에게도 ‘성전사 입문 시험’을 하지 않았다.
보라색 빛, 즉 비텔의 힘의 파편에 내장되어 있던 ‘성전사 입문 시험’이 김해역의 ‘정신적 고양’을 느끼고 반응해버린 것이다. 그 힘의 반응한 보라색 빛이 조금씩 김해역에게 향했다. 원래라면 그 정도에서 끝났어야 한다. 비텔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움직이는 힘의 파편 정도로는 ‘성전사 입문 시험’을 발동하기 위한 힘에 못 미치니까.
하지만 김해역의 주변에서는 수백 명의 신도가 기적을 받아들이는 중이었고, 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힘이 너무나도 쉽게 확보되어버렸다. 힘이 확보되자 비텔의 힘의 파편은 바로 ‘성전사 입문 시험’을 시작했다.
‘성전사 입문 시험’의 진행은 간단하다. 신도를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어 정신을 연단한다. 계속해서 두들겨 연단하다보면 더욱 강해져 ‘축복’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을 갖추는 원리이다.
물론 두들겨 맞다보면 부서지기도 한다. 정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본능적인 몇 가지 행동 외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백치가 되어버린다.
“어... 여긴?”
‘성전사 입문 시험’이 시작된 그 순간, 김해역은 생전 본적 없는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난 분명 식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몸을 움직였다.
쩔그렁.
“으윽.”
무거웠다.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무거워서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옷인가 해서 내려 봤더니 자신이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철갑옷만이 아니었다. 철갑옷은 상체의 몸통을 가리는 정도였고, 그 외의 부분은 가죽으로 보이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다.
철갑옷도 무거웠지만 가죽 갑옷 역시 상당히 두꺼워서 무거웠기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걸 입고 있지?’
갑옷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왼팔엔 작은 방패가 팔뚝에 고정되어 있었고, 오른손은 쇠막대 끝에 가시가 달린 철공이 달린 무기를 들고 있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으며, 중세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걸까.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난 분명 식당에서...’
“구워?”
천천히 생각해보려던 김해역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녹색 피부를 가진 거인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헐벗은 상태로 도끼만 들고 있는 그 녹색 거인은 김해역을 발견하고 잠깐 멈칫했다가 곧,
“구워어어어억!”
고함을 지르며 김해역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녹색 거인은 도끼를 김해역에게 내려쳤다.
“우아아아악!”
김해역이 비명을 지르며 방패와 모닝스타를 녹색 거인을 향해 내밀었지만 그저 허우적거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퍼석!
결국 녹색 거인의 도끼가 그대로 김해역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해역이 비명을 질렀다.
“어... 어?! 분명...”
김해역은 이상한 자신은 녹색 거인의 도끼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비명을 지르고 있지? 모닝스타를 바닥에 던지고 양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도끼가 박혀있지도 않고 쪼개지지도 않았다.
‘꿈인가? 그렇겠지? 꿈이겠지? 하지만...’
이게 꿈이라면 정말 엄청난 꿈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무 틈으로 불어오는 살랑바람과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 외에 촉감, 후각,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바로 옆의 나무로 손을 뻗어 만졌다. 확실히 제대로 된 나무다. 자신이 살면서 꿨던 꿈 중 이렇게 완벽하게 나무를 표현한 꿈이 있었던가?
“구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김해역은 나무를 만지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게 정말 꿈이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있으면 상황이 진행되지 않지 않을까?
“구워어어어억!”
하지만 그건 헛된 소망이었다.
퍼석!
김해역은 뭔가가 뒤통수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찰나의 고통 후 암전.
“아아아아아아악!”
김해역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또?”
또다. 또 이 상황의 첫 부분으로 돌아왔다. 손을 뻗어 뒤통수를 만졌다. 분명 방금 뭔가가 박히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하지만 손으로 아무리 만져도 도끼나 상처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정말 꿈이 맞기는 한 거야?”
그렇게 잠시 넋놓고 당황하고 있을 때,
“구워?”
다시 녹색 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있지도 않았다.
쩔그럭. 쩔그럭.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김해역은 느렸고, 녹색 거인은 너무 빨랐다.
퍼석.
다시 뒤통수에 도끼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김해역은 이번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에 대해 생각한다고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대로 녹색 거인이 나타날 곳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모닝스타와 방패를 집어던지고 철갑옷과 가죽갑옷도 전부 벗었다. 몸이 가벼워지니 확실히 빨라졌다.
김해역은 국가대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육상선수. 달리는 속도는 꽤 빨랐다.
“헉... 헉... 헉... 헉...”
김해역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5분, 10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이젠 한계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김해역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달려야 한다. 아까 봤던 녹색 거인의 움직임이라면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이 정도 거리는 순식간에 쫓아올 것이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30분 후, 김해역은 거대한 호수의 일부로 보이는 물가를 발견했다.
털썩.
비틀비틀 걷던 김해역이 그 앞에 쓰러졌다. 더 이상 달리는 건 무리였다. 정말 모든 힘을 다 쏟아서 달렸다. 몸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김해역은 누워서 쉬며 약간의 기력을 회복한 후, 기어서 호숫가로 가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물속으로 아예 들어갔다.
이제 달리는 것은 무리다. 혹시라도 녹색 거인이 쫓아오면 그대로 당할 터. 차라리 물속에 들어가서 힘 빼고 둥둥 떠다니면 녹색 거인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겨우 몸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힘을 쫙 뺀 후 누웠다. 얼굴 약간만 수면 위로 나온 채 둥둥 떠다녔다. 넘실거리는 물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어서 아예 감았다. 꽤 편했다.
‘조금만 쉬다가 다시 달려야지.’
아까부터 계속 한 방향으로만 달렸다. 계속 달리다보면 이 숲도 끝날 것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숲에서 나가야한다. 숲 밖으로 나가야 도로든 마을이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꿈... 이겠지?’
꿈일 것이다. 비텔에게 기도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 것이다. 예전에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푸욱.
“어?”
갑자기 등 뒤에서 뭔가가 파고들어 가슴 쪽으로 나왔다. 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을 꿰뚫은 그것이 신경이라도 건드렸는지 눈이 침침해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격통이 찾아왔다.
“크아아아아악!”
너무나도 큰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있었다.
“까락. 까락. 까락.”
‘녹색 거인인 걸까?’
목소리는 아까와 다르지만 오늘 처음 보는 녹색 거인이 한 가지 목소리를 가졌는지, 두 가지를 가졌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부우욱.
몸을 꿰뚫은 무언가가 몸을 아래로 양단하기 시작했고, 역시나 김해역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큰 고통을 느꼈다.
“끄아아아아악! 어.. 어?”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김해역은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지고 자신이 다시 처음의 그 장소에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뭐야.”
방금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절대 꿈은 아니다. 꿈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
“100만 드디어 달성했군.”
자고 일어나니 교단 기여 포인트가 100만을 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맹연에게 놀라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바로 ‘자유를 수호하는 자(1단계)’를 사용했다.
-스킬 ‘자유를 수호하는 자(1단계)’를 사용합니다.
수호자가 머물 곳을 설정하십시오.
머리,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110 성전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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